초등 저학년 독서습관 만드는 결정적 시기 - 독서습관 일주일 프로젝트
김기용 지음 / 미디어숲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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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용 금붕어는 어항속에서 5cm 정도 크기로 자란다. 금붕어가 5cm인 것은 유전자 탓인 걸까. 아니다. 같은 종의 금붕어를 연못에 풀어 놓으면 이 금붕어는 30cm까지 자란다.

금붕어의 크기를 결정짓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환경'이다. 환경은 왜 중요한다. 환경은 '성장'의 '시작'이고 끝이다. 유전자를 탓할 이유는 없다. 우리의 유전자는 이미 훌륭하다.

유전자를 기준으로 볼 때, 생물종을 번식하는 것이 '우월성'이다. 우리의 '이기적 유전자'는 우리의 형태로 잠시 모여 있다가 다음 형태로 유전자를 넘긴다.

즉, 우리를 구성하는 유전자는 세대를 이어받아, 우리까지 이어져 있다. 우리에게 유전자를 넘긴 조상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고조를 포함해 최초의 사피엔스가 탄생한 4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도, 단 한 명의 패배 없이 유전자를 전승했다.

유전자를 전승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만약 동서고금할 것 없이, 남성과 여성은 서로 짝을 찾는다. 남성은 '매력적인 여성'을 짝으로 선택하고자 하고, 여성은 '유능한 남성'을 짝으로 선택하고자 한다. 이것은 '성선택'의 본질이다.

인류는 한정된 자원을 승리한 일부가 차지하는 '승자독식'구조로 진화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남성은 큰 부와 권력을 누리고 때로는 더 많은 암컷과 관계를 맺는다. 이때 남성은 가장 매력적인 여성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가장 매력적인 여성은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가장 유능한 남성을 선택한다.

태조왕권은 스물 아홉의 부인을 두었으며 성경의 솔로몬 왕은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슬람의 무함마드는 13명의 부인이 있었고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3세는 마흔 일곱 명의 아들과 쉰 다섯명의 딸이 있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과 현대 정주영 회장은 각각 8명의 자녀가 있었고 LG의 구인회 회장은 10명의 자녀가 있었다. 일론 머스크는 11명의 자녀가 있고 세종대왕은 18명의 자녀가 있었다. 2003년 발표된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약 8%의 중앙아시아 남성들(대략 1600만 명)은 징기스칸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Y 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특정한 유전적 표지가 중앙아시아 지역의 많은 남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징기스칸과 그의 직계 후손들로 유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남성 정복자는 틀림없이 가장 매력적인 여성을 선택할 것이고, 매력적인 여성은 틀림없이 가장 능력있는 남자를 선택할 것이다. 즉 이 경쟁에서 도태된 어떤 유전자는 반드시 후대에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고 죽음을 당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핏줄을 따라 시간의 역순으로 직렬로 올라가면 그 상위에 있는 모든 조상은 그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의 유전자들이다.

경쟁에서 이긴 남성과 가장 매력적인 여성들이 작게는 40만 년 사피엔스 종의 시작부터 이겨왔고 더 크게 올라가서 40억년 전 생물 탄생부터 지속되었다.

즉 우리의 유전자는 40억의 지리한 시간 동안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우리에게 승리의 유전자를 남겼으며 '자연 선택'에 의해 쭉정이들은 도태시키고 가장 강력한 하나의 핵심을 남긴 것이 바로 우리다.

그렇다면 우리의 유전자는 이미 완전하다. 마치 아름다운 금붕어처럼 말이다. 다만 유전자와 다르게 우리의 종을 결정짓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환경이다. 환경은 우리를 유전자 만큼이나 완전히 다른 종으로 바꿔 놓는다. 어항속 금붕어가 연못속 금붕어와 완전히 다른 종처럼 보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환경에 던져져야 하는가.

바로 '어항'이 아니라 '연못'이 아니라, '강'이 아니라, 바다로 던져져야 한다. 스스로를 강으로 던져져야 한다. 현대인에게 가능성이란 '육체적 조건'으로 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체로 현대인의 성장은 육체보다 '정신'을 의미하며, 한계가 있는 육체적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한히 성장하는 정신적 성장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일론머스크'는 그곳에서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만들지 않았다. 그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청소년기에 '남아공'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런 물리적 환경에 더불어 그는 '책'을 좋아했다. 책은 우리를 어떤 환경 속으로 집어 넣는다. 이 환경은 물리적 한계를 훨씬 뛰어 넘는데, 간혹 '마션'의 경우에는 화성에서 감자를 심는 환경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하멜표류기'는 우리를 조선 중기로 데려다 놓으며, '안네의 일기'는 우리를 세계 2차대전 속으로 집어 넣는다.

우리는 물리적 공간에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할 환경을 체험하며 성장한다. 때로는 공포, 위기, 행복, 불행, 슬픔, 성공, 실패, 고통, 미움, 사랑 등의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며 다차원의 감성적, 이성적 깊이를 확장한다.

다른 사람의 실패를 읽으며 교훈을 얻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읽으며 자신감과 노하우를 얻으며, 다른 이의 불행을 보고 상대적 행복감을 갖고, 다른 이의 행복을 보고 행복한 마음을 얻는다. 또한 전혀 위험없이 '위험'을 겪어보며 위기 의식을 키우는데, 그 위기라는 것은 원래 '생존력'을 길러내는 가장 중요한 감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물리적 환경이 가진 제약을 무한히 뛰어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환경을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책 읽는 습관'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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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꽃 - 강병인 글씨로 보는 나태주 대표 시선집 강병인 쓰다 3
나태주.강병인 지음 / 파람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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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뉴베리 아너 상을 수상한 '제이슨 레이놀즈(Jason Reynolds)의 소설 중에 Long Way Down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굉장히 모호한 특징이 있는데, 소설인데, '시'이다. '시'인데 소설이고 글이 글이 되어 글을 표현하기도 하고 띄어쓰기나 빈칸 여백이 모두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을 펴보기 전까지 이 책을 온전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예전 한 배우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본에 있는 '.'과 '..' 그리고 '...'에 대해 표현하는 방식을 설명한 적이 있다. 글은 어떻게 전달하는가를 볼 때, 우리가 사용하는 '고딕체'를 이용한 정보의 나열은 심히 많은 걸 담을 수가 없다

인간의 소통에는 '언어적 소통'보다 '비언어적 소통'이 압도적으로 높다. 굳이 그것을 비율로 표현하건데 7 대 93 정도가 된다. 다시 말해서 언어적 소통보다 더 중요한 정보는 꽤 나 직관적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모름'이라는 명사보다는 사람이 짓고 있는 표정과 눈빛, 말투, 분위기 등이 더 많은 '모름'을 표현하는 법이다.

페이지 한 가운데 있는 단 하나의 글자, 혹은 페이지를 가득 담은 여러 단서가 전체적으로 물음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경우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시'에서 '폰트'는 몹시 중요하다. 같은 사람도 때와 장소에 따라 의복과 표정, 화장법, 눈빛을 다른 것처럼 '시'도 때와 장소에 따라 옷을 갈아 입어야 한다. 정숙해야 하는 곳에서는 차분한 표정을 짓고, 경건해야 하는 곳에서는 양복을 입는다. 본질은 그대로 두고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달라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라는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언어적 아름다움' 뿐만아니라, '비언어적 아름다움'이 추가되어야 한다.

서예가 '강병인'의 글씨로 보는 시인 '나태주'는 번듯한 사내가 때와 장소에 맞는 의복과 표정을 맞춰 입은 모습이다.

언어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서예가'는 비언어적으로 표현한다. '봄비'라는 시를 보면 'ㅂ'이라는 단어에 들어갈 점이 비처럼 점점점 내리고 있다. 천지인은 묵직함과 가벼움을 번가르며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거나 흘리며 글의 운율을 더하고 시 전체를 정방형으로 두거나 띄어쓰기 간격을 극도로 줄이여 의미를 곱씹게하는 구간도 분명 존재한다.

'서로가 꽃'이라는 시에서 '꽃'에 해당되는 'ㄲ'은 마치 꽃잎처럼 하늘하늘 거리며 그 꽃잎을 피운 줄기는 그 마디마디가 서로 얽히며 '꽃'이라는 언어가 주는 '의미'와 글씨가 주는 '비언어적 감성'을 동시에 느기도록 한다. 어떤 '시옷'은 기억처럼 누워 있고, 어떤 시옷은 ㅜ처람 꺾여 있다.

어여쁨이라는 시는 쌍비읍을 이루는 'ㅂ'이 7번이나 사용되는데 그 위로 'ㅂ'이 3번, 아래로 4번을 사용된다. 이는 분자가 분모보다 작은 '진분수'와 같은 형태다. 진분수는 가분수에 비해 안정감을 준다. 가련 1/4는 아래로 단단히 기둥이 되어 받치고 있는 형상이라면 4/1은 자칫 그 숫자가 넘어질 것 처럼 불안하다. 홀수의 분자와 짝수의 분모가 진분수이 형태가 되어 그 균형을 매끄럽게 잡는다.

뿐만아니라, 'ㅇㅓㅇㅕ'라는 구간에서는 그 글이 주는 여백이 넉넉하여 둥글 둥글 물고기가 좌로 헤엄하는 형상이다.

우리가 읽는 글씨는 대체로 컴퓨터에서 정형된 모양을 가진다. 고로 그 의미 전달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가진 감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떤 폰트로 글을 전달하느냐에 따라,때로는 화난 것 같은 감정이 전달되고, 때로는 애교스러운 감정이 전달된다.

과거 조상들은 '명필'의 기준에 단순히 '내용'을 기준으로 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의 '추사체'가 대표적인데 우리가 '추사체'라고 부르는 '추사체'는 하나의 정형화된 글씨체가 아니다. 문제는 내용에 따라, 시기에따라 상황에 따라,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것이 정말 천재적인 표현법 아니겠는가.

가만보건데 '모든 시'라는 것은 꼭 어떤 서예를 만나 그 감성이 다시 재표현될 필요가 있어보인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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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카를로 로벨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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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생각보다 정교하고 섬세히 연결되어 있다. 물질과 원자 단위 뿐만 아니라, 모든 행동과 생각이 사정없이 연결되어 있다. 선택은 단일 선택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물결처럼 퍼져나가고 그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선택이라는 '원인'은 형태만 변하고 그 본질은 영원히 남아 우리와 우주를 잇는다. 즉, '선택'이라는 입력값에, '결과'라는 '출력값'이 나오는 것이 함수를 닮았다. 예전 '피타고라스'는 수를 우주의 근본 원리로 여겼다. 피타코라스 학파는 수학적 관계가 우주의 질서를 설명한다고 믿었으며, 수를 종교처럼 여겼다.

우리가 우주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역시 수학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규칙과 대응'이라는 이름의 '함수'와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데이터를 무수하게 대입하여 규칙과 대응의 값으로 출력하는 '알고리즘'이 '신'처럼 추앙받는 세상에 과연 '연결'이라는 것의 의미를 생각치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은 연결된다. 원인은 결과에 연결되고, 삶은 죽음에 연결되고, 빛은 어둠에 연결된다. 이러한 상호 연결성 속에서 각각의 요소는 상계처리 되어, 결국 모든 값은 더하면 0이 된다. 이는 각 요소가 서로를 보완하고 상쇄함으로써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는 상태가 된다는 의미다. 회계학에서 '차변'과 '대변'을 정리하여 완전히 균형이 맞는 상태로 유지해야 그 자산의 '본질'을 이해 할 수 있듯, 음수 1은 양수 1을 만나 0이 되고, 출구는 입구를 만나 0이 되고, 시작은 끝을 만나 0이 되며, 만남은 이별을 만나 0이 된다. 자칫 '극'처럼 가장 멀어보이는 것들은 결국 하나의 덩어리로 연결된 아이러니를 갖는다.

까르마라는 말이 있다. 이는 무언가를 심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단순한 진리다. 이 진리는 우리가 세상에 남기는 모든 흔적이 에너지를 닮아서 결국 소멸하지 않고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결국 우리의 선택과 생각, 행동에 대한 응답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입자가 상호작용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가 우주의 다른 끝에 있는 무언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로 모든 것이 얽혀 있는 듯하다. 이 얽힘은 우주의 본질을 보여준다. 얽힘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며 이 얽힘이 '연결'이 아니라 '동일성'에 가깝다는 것을 말한다.

마치 혼자서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행동이 우주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 처럼 살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모든 것은 기록된다. 우리의 생각, 말, 행동은 파동이 되어 퍼져나가고, 그 파동은 다시 돌아온다. 언젠가 우리가 보게 될 결과는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원인'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삶은 주고받음의 연속이다. 우리가 던진 돌은 반드시 물결을 만들고, 그 물결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때로 그 물결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물결은 사라지지 않으며 크기를 줄이지도 않고, 오로지 모양만 바꾸어 다가온다는 것이다. 모든 행동은 결국 제자리를 찾아 돌아간다. 봄은 여름을 떠나 가을을 거치고 겨울에 도달하지만 다시 봄이 되듯, 수레바퀴가 땅을 딛고 굴러 하늘을 향하다가 다시 땅을 딛게 되듯.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주고 받으며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 하는 것이다. 수레바퀴는 굴러 제자리를 향하는 듯 하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지나간 흔적은 바닥에 고스란히 남는다. 이는 피해 갈 수 없는 대우주의 진리다.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하는 생각, 행동, 선택, 말 모든 것은 스스로만 속이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곳에 연결되어 기록되고 있으며 그것은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처럼 온 우주가 알게 하며 다시 나에게 돌아와 나를 알게 한다.

혼자 있어도 우리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혼잣말도 혼자하는 것이 아니며, 혼자하는 생각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모든 것을 관찰하듯, 모든 것은 나를 관찰하고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관찰함으로써 존재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되도록 한다.

그것이 양자역학이다. 세상이 나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 없이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세상은 나의 창조자이고, 나는 세상의 창조자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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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욕의 세계 - 우리는 왜 소비하고, 잊고, 또 소비할까
누누 칼러 지음, 마정현 옮김 / 현암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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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평생 소고기를 먹지 않으면 줄일 수 있는 탄소 배출량은 43톤에 이른다. 이는 상당한 양의 탄소 절감 효과를 가지며 개인의 식습관 변화가 환경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상당하다. 43톤이다. 자그마치 43톤.

이는 2000 그루의 나무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다. 또한 이는 런던에서 뉴욕까지 스물 일곱번의 왕복 항공편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간단하다. 소고기만 먹지 않으면 된다.

죽을 때까지 비건으로 산다면 120톤의 탄소를 아낄 수 있다. 엄청나다. 앞서 말한 숫자들에 3배를 곱할 수 있다. 대략 6000그루의 나무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고 런던에서 뉴욕까지 88번의 왕복 항공편을 사용하는 바와 같다.

간단하다. 비건으로 살기만 하면 된다.

간단하다. 평생 옷을 입지 않으면 12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가 있고 평생 쌀을 먹지 않으면 17톤의 이산화 탄소를 줄일 수 있다. 평생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24톤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

탄소배출을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등의 노력을 하는 것은 분명 탄소 배출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획기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법은 있다. 바로 '저출산'이다. 인간 하나가 태어나면 태어난 인간은 죽을 때까지 대략 1천 톤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조금더 극단 적으로 말하면 '자살'이나 '살인'도 '지구를 위한 행동'이 될 수 있다. 가장 지구를 위해 극단적으로 필요한 것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 한 사람을 만드는 것보다 사람 하나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가장 좋다.

개인적으로 베스트셀러 작품 중에 '지구를 위한 착각'이라는 도서가 있다. 이 책은 주제 만큼 제목이 직관적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지구를 위한 착각을 하고 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환경을 이용하기에 사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 가장 대척점에는 '인권'이 있다. 다시말해서 어떤 극단적 환경주의는 필연적으로 '모순'을 맞이한다.

흔히 'PC주의 사상'이라고 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전세계적 추세가 됐다. '극단적 환경주의자', '극단적 페미니즘', '극단적 동물주의', '극단적 반인종주의', '극단적 반자본주의'는 틀림없이 '모순을 맞이 한다. 극단적 주의자들은 오늘 사회에서 더큰 목소리를 낸다. 이들의 신념에 대해 비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이들이 다른 이들에게 그들의 신념을 관철 시키려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 사회규범과 대치하거나 그 규범늘 뒤엎으려는 시도는 최근에 와서 더 많아졌다. 이들은 필연적 다수와 대립하면서 일종의 쾌감을 갖는다.

어떤 이들에게는 단순히 대세를 거스르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소속감과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류의 견해를 반박하고 맞서 싸우며 성취감을 갖는다. 특히 스스로를 '각성된 사람'으로 인지하며 남들보다 '도덕적 우월감'을 갖기도 한다.

이들의 특징은 '나르시스트'인 경우가 많은데, 대중을 '무지한 대중'으로 평가 절하하며 '계몽해야할 대상'으로 여긴다.

'누누칼러'의 '물욕의 세계'라는 도서에서 '현대사회의 물질적 욕망과 소비주의가 우리 삶을 어덯게 지배하는지 말한다. 물질의 소유와 소비는 단순히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체성과 권력 구조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거나 콩으로 만든 소고기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물욕은 어떻게 형성되고 개인과 사회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소비는 때로는 '소품종 대량생산물', '다품종 소량생산물' 혹은 '친환경 생산물'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우리가 소유하는 소유물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물욕이라는 것, 자신이 무엇에 돈을 쓰고 있고,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가 실제 나를 스치고 지나다 만들어진 '자아'라는 '상'과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은 생각보다 큰 책임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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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월드 - 알고리즘이 찍어내는 똑같은 세상
카일 차이카 지음, 김익성 옮김 / 미래의창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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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아마 200개에서 3,000개의 '좋아요'가 달릴 것이다. 글이 발견된 플랫폼은 '네이버 블로그'일수도 있고 인스타그램 일수도 있다. 한창 계정을 운영하던 시기에는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노출됐었다. 지금은 '글태기', '책태기'를 비롯해 여러가지 일이 겹치며 관리 소흘로 겨우 현상 유지만 하고 있다.

2024년 8월 16일 기준으로 네이버 블로그 14,160명, 인스타그램 8,333명, 스레드 6,153명, 유튜브 1,434명, 브런치에 203명의 팔로워가 있다. 이처럼 다양한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깨달은 몇가지가 '카일 차이카'의 '필터월드'라는 도서와 오버랩됐다.

글밑으로 어쩌면 댓글로 다음과 같은 해쉬태그가 달릴 것이다.

#필터월드 #미래의창 #카일차이카 #김익성 #Filterworld #KyleChayka #책스타그램 #책그램 #북스타그램 #북그램 #독서스타그램 #독서그램 #생각스타그램 #생각그램 #알고리즘 #인스타그램 #네이버블로그 #인플루언서 #팔로워#페이스북 #넷플릭스

글의 저자인 '카일 차이카(Kyle Chayka)와 출판사인 '미래의창'은 게시글에 태그가 되어 올라갈 것이다. 대상은 '대통령'이건, 대기업 '회장님'이건 상관없다. 글과 연관되어 있으면 태그될 것이다.

태그된 글에는 어쩌면 작가나 출판사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하기'를 누르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쪽지를 통해 '당신의 도서를 최소 다섯 이상의 플랫폼에 홍보했습니다'라는 쪽지를 보낼 것이다.

블로그, 브런치, 알라딘, 예스24, 유튜브, 인스타그램, 스레드 등의 글에 동시 업로드 된 글은 URL을 첨부하여 작가와 출판사에게 보낼 것이고 운이 좋으면 '작가'와는 개인적인 사담을 나눌 기회가 생기고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가 오기도 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영향력 3만 미만의 '인플루언서'가 계정을 운영해오는 방식이다. 이렇게 업로드 된 글은 의도치 않게 각 플랫폼에 맞는 방식으로 올라간다. 가령 블로그에 올라가는 도서의 사진은 인스타와 마찬가지로 정방형이다. 하나의 글을 여러 플랫폼에 동시에 올리기 위해 각 플랫폼마다의 특징에 부합하는 중간지점을 찾은 것이다. 사진은 정면, 가운데, 후면으로 찍힐 것이고 이렇게 세 장이 사용되는 이유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좋아하는 최소한의 사진 갯수가 세장이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의 글자수 제한은 3,000자 이상인데, 그런 이유로 해당 개시글은 아마 4,000자 정도로 쓰여질 것이다. 인스타그램에는 3,000자 이후 글에 대해 "...중략..."이라는 표기가 달릴 것이고 글의 후반부를 궁금해하는 이들은 '네이버 블로그'로 넘어와 나머지 글을 볼 것이다. 그 특성에 맞게 글은 '미괄식'으로 쓰여지는 편이 좋고, 호기심을 강하게 불러 일으키는 소재를 가장 첫줄에 두고, 글에 대한 총정리를 마지막에 둠으로써 시작을 붙잡고 끝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할 것이다.

책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책을 인용하거나 느낀바를 적음으로 비슷한 키워드에서 경쟁하는 일을 없앨 것이고 '네이버 인플루언서'의 '키워드 챌린지'를 덕지덕지 붙여 마치 본인 도서를 판매하듯 상위노출을 시도할 것이다.

책을 읽으며 중간 중간 찍은 문구는 짧고 강렬한 한문장이 바로 담겨질 수 있도록 좌측 45도로 기울여 찍고 소재가 떨어지는 경우마다 노출할 것이고, '읽는책', '읽을책', '읽은책'이라는 이유로 여러차례 노출 할 것이다.

대단히 연구한 결과는 아니며 상황이 변함에따라 조금씩 바꾸어가던 관습이 하나둘 자리 잡았을 뿐이다. 진화론의 '자연선택'이 그렇지 않은가. 살아남은 개체가 진화에 성공하고 후손을 남긴다. 아마 '알고리즘'이라는 환경에 맞는 '유저'가 더 많은 '노출'에 성공하고 더 많은 팔로워와 반응을 얻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렇게 자연 혹은 알고리즘에 선택 받은 생존개체는 더 많은 이들에게 노출되고 이것이 흔히 말하는 '영향력'이라는 형태로 남게 되는지 모른다.

미미한 팔로워임에도 적잖게 그 영향력이라는 경우를 느낄 때가 있다. 손편지를 받거나, 개인 메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점에 책을 고르다가 '인스타그램 팔로워 중이에요'라는 인사를 받는 경우도 적지만 있었다.

이런 긍정적인 반응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반응도 꽤 있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대한 지적을 받거나 논리가 어색하다, 글이 산만하다, 비약이 심하다, 근거 중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도 받는다.

부정적인 피드백의 경우에는 항상 함께 오는 말이 있는데, '작가라는 분이....', '인플루언서이시면...'이라는 '자격'에 대한 이야기다.

'글에 영향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싶다가도 이런 반응이 있을 때면 크지 않지만 책임감을 가져야 하나, 생각하곤 한다.

2017년 11월, '몰리 러셀(Molly Russell)'이라는 런던 북서부 출신 열네 살 여자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여학생은 어린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2022년 북런던 고위검시관인 앤드루 워커에 따르면 '러셀'의 자살은 소셜 미디어에 의한 영향력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의 사망 6개월 전, 러셀은 인스타그램에서 1만 6천 개가 넘는 콘텐츠에 노출이 됐는데, 러셀의 사망을 조사한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그중 2천 개 또는 13%가 자살, 자해,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이런 이미지를 469개나 모아두기도 했는데, 그녀가 수집하면 할수록 알고리즘은 그녀에게 더 비슷한 소재의 컨텐츠를 제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데, 1만 6천개의 컨텐츠 노출이라면 하루에 하나씩 올리는 내 컨텐츠의 노출 빈도를 봤을 때, 누군가에게도 영향력이 들어 갈수도 있을까, 하는 노파심이 생기기도 한다. 글을 올리는 입장에서 '아무도 글을 봐주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으로 올리진 않는다. 꽤 많은이들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올리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이라는 환경에 적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 많은 노출을 위해 그에 맞는 변화를 만들어야 생존이 가능한 이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자연'과 '환경'을 조성하는 '플랫폼' 기업은 이 세계의 '신'과 다르지 않지 않을까 싶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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