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의 희망배달부입니다 -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위로와 나눔 이야기
김완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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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문뜩 밖을 보았다.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건물 밖에 세워둔 자전거가 떠올랐다. 아마 다 젖었을지 모른다. 비는 멈췄지만 빗물이 스며든 안장은 축축히 내 엉덩이를 적실 예정이었다.

비가 몰아치다가 잦아든 밖을 내다 보았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손 쓸 방법은 없었다. 축축한 엉덩이가 벌써 느껴지는 듯 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자전거'를 타고 나오지 말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해가 지고 건물을 나섰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전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우산'이 꽂혀 있었다. 우산은 자전거의 안장을 덮고 있었다.

'누가 우산을 씌워 놨을까'

알 길이 없었다.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선행으로 그날은 기분 좋게 집으로 퇴근할 수 있었다.

모든 선행에는 '댓가'가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믿었다. 다만 어떤 선행에는 댓가가 필요없다. 겉으로만 그럴싸한 '표면적인 열정'이 댓가를 충족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무거운 짐을 여럿이 들어야 할 때, 조금 더 생동감 넘치는 거짓 표정과 거짓 기합 정도면 함께 들고 있는 여럿을 속일 수 있다. 굳이 조금더 남들보다 큰 노력을 들였다고 남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고로 적당한 힘과 적당한 연기만으로 적정선의 댓가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가짜 노력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 직업도 마찬가지다. 그럴싸한 표면적 열정만으로도 '급여'를 제공 받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삶의 자세는 자칫 지금 약간 편안함을 느낄지 모르지만 삶 전체로 볼 때, 커다란 에너지 손실을 얻을 수 있다.

내가 거짓 노력을 하고 삶을 대하면, 나의 삶에서 '진실된 노력'은 판타지가 된다. 고로 다른 사람의 노력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 없다. 내 직업에 '진실성'이 없으니 타인의 '직업'에 진실성을 기대하지 못한다. 의사를 만나도 의사가 진심을 다해 치료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없고, 변호사를 만나도 변호사가 진심을 다해, 변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 이삿짐을 맡겨도 그들이 책임을 다해 물건을 정리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도 그들이 최선을 다해 요리를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부족해진다. 고로 삶 전반적으로 에너지 소비량을 보면 '손해'에 가깝다.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삶'에 대한 '진실성'이다. 댓가에 맞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댓가를 충족하고 흘러 넘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을 채우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잔을 충족시킬 수 없다. 내 잔이 흘러 넘칠 때, 우리는 다른 이들의 잔을 충족시킬 수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진실성을 갖는다면 우리는 타인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굉장히 생산적이고 삶 전체적으로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매우 탁월한 가치관이다.

'공무'를 보는 사람을 우리는 '공무원'이라고 부른다. 공무라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는 법이다. 때로 사람들은 공무원을 바라보며 '철밥통'이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다만 그들의 직업 윤리를 탓하는 사람들의 직업윤리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삶은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한국어 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와힐리어'로 꿈을 꾸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신이 가치관과 세계관 밖의 세상에 대해서 상상하기는 어렵다. 고로 어떤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느냐는 자신이 어떤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가와 일치한다.

김완필 작가의 '나는 제주의 희망배달부 입니다.'는 제주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작가가 그간 자신의 보고 들었던 다양한 '공무'에 대한 일화와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한지는 그가 직업을 바라보는 태도로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사회'에 다양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자신의 개인사와 가정사를 통해 제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시간에 연민의 시각을 느끼고 자신의 하는 '공무'에 대한 단단한 철학을 갖는다. 그러한 바른 시각이라면 단연컨데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바를 것이다. 그는 남을 의식하고 의심하는 불필요한 걱정과 에너지를 줄이고 점차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줄어든 에너지는 자신에게 꽤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흔히 말하는 '카르마'로 반드시 어떤 부분으로 그에게 돌아갈 것이라 확신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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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장 한자 4권 초등 2-2 - 한자 급수 시험 대비 6급 2 초등 하루 한장 한자
미래엔 교육콘텐츠연구회 지음 / 미래엔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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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뉴턴에게 물었다.

"어떻게 만유인력과 같은 대단한 생각을 하셨나요?"

뉴턴이 답했다.

"내내 그 생각 밖에 안하니까."

열매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떨어지는 구나'하고 넘어갔을 일을 뉴턴은 놓치지 않았다. 과연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누구나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떠올린다. 고로 기회가 나무에서 송두리째 떨어지며 힌트를 주어도 뉴턴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맞추지 못했다.

열매가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면 누구나 '만유인력'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다. '허생전'에서 '허생'은 열매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곧 풍년이 될 것을 알았다. 열매의 가격이 폭락할 것을 예측한 허생은 열매가 헐값이 되기 전에 대량 구매하고 저장한다. 열매는 풍년이 됐으나 허생의 독점으로 공급이 부족해지자 가격이 치솟는다. 허생은 그때 자신이 사둔 열매를 높은 가격에 팔아 큰 이익을 얻는다.

열매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인류사의 위대한 물리학적 업적'을 남겼고 누군가는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주어진 '행운'과 '기회'를 '시기'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기회는 나에게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기회를 발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뉴턴의 대답이 해답이다. 뉴턴은 '늘 그 생각만 했으니까'라는 명쾌한 대답을 했다.

다른 대안이 없이 늘 그 생각만 한 사람들의 뇌속에는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망상활성계'는 정보의 중요도를 구분하고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에 기민하게 반응하도록 한다. 가령 자라보고 놀라게 되면 솥뚜껑을 보고도 놀라게 된다.

중요 정보에 대한 기민성이 작동되면 모든 사고가 일방향으로 전환된다. 미국의 경제는 꽤 단단한 편이었으나 1차 세계 대전에는 참전하지 않았다. 이에 미국의 국방력은 과소평가되곤 했다. 다만 미국은 전쟁에 참여하면서 모든 사회 기반시설과 경제 체제를 전시체제로 바꾸면서 전례없는 생산성을 갖게 됐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중공업 산업은 미국 경제를 활성화 시켰고, 특히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미국이 세계 최대 군수물자 공급국으로 자리 잡게 됐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이러한 것은 분산되어 여러 방면에 흩어져 있다가 긴장상태에 돌입하면 모든 에너지가 한곳에 집중되며 오로지 한 부분을 비대하게 만든다.

어떤 하나의 정보에 기민하게 되기 위해서는 항상 그 생각만 하면된다. 다이어트를 결심하면 전에 없던 '먹방'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사고나면 길에 세워진 자전거 브랜드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비슷한 또래가 눈에 자주 보이게 된다.

이는 모두 망상활성계 탓이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정보가 세상에 임의로 뿌려진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 중 선택 취합하는 것이다. 즉, 뉴턴은 실제로 늘 만유인력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마침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우주의 법칙'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친 이유도 그에게만 특별한 기회가 주어져서가 아니다.

박찬호 선수는 길을 가다가 '계단'이 나오면 그것을 오르지 않고서는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실제 그런 심리는 그가 보이는 계단마다 오르게 했고, 남들이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계단 중 일부라도 오르고 내리게 했다.

즉, 어떤 것에 '약몰입' 상태로 집요하게 집념하면 그것은 우리 뇌에 의해 '중요 정보'로 분류된다. 이것이 어째서 무서운가. 이유는 이렇다. 이렇게 우리의 망상활성계가 작동되면, 우리의 뇌는 의식을 내려 놓은 모든 시간과 공간에 정보를 선택 취합하여 일방향 목적으로 인도한다. 즉 걸어가면서, 샤워하면서, 먹으면서, 심지어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학습하고 발견하고 취합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잠'에는 '잠을 자는 동안' 꿈에서 공부하여 의대에 들어가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비약은 역시 비현실적이겠지만 그렇다고 우리 현실에 완전히 없는 내용은 아니다.

무엇을 얻고 싶거나, 하고 싶거나, 가고 싶거나, 되고 싶다면,

고로 간절히 바라고 끊임없이 집요하게 의식해야 한다. 그저 표면적이고 명시적으로 '하고 싶다'고 앵무새처럼 되뇌일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가 그것에 기민함을 가질 수 있도록.

*어릴 때, 특이 언어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언어빅뱅 시기에 '한자'를 접하면 이후에 접하는 모든 어휘가 '한자' 보여진다. '복리'로 커지는 어휘력의 속성에서 최초에 2를 곱했는지 4를 곱했는지는 이후에 1000만을 더했는지, 말았는지 보다 중요하다. 아이가 하루 한장 한 글자의 한자를 아침에 보고 하루를 보내면 그 스치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중요 정보가 습득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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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의 아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7
아서 밀러 지음, 최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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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밀러의 희곡 '모두가 나의 아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평범한 가정을 말한다. 테마는 '비극'이다. 주인공 조 켈러는 전쟁 중 불량 비행기 부품을 납품해 군인의 목숨을 앗아간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책임을 동업자에게 전가한다. 이로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많은 가족은 고통을 받는다. 다만, '조'는 자신의 선택이 '정당했다'고 믿는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의 아들인 '크리스'는 아버지의 진실을 알게 된다. 결국 가족은 이와 관련한 갈등을 겪는다.

우리가 하는 선택은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지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맞이하는 선택은 항상 이런 식이다. 희곡과 같이 어떤 선택은 가족을 위하거나 지극히 개인을 위한 '선'일수 있고, 어떤 선택은 '사회적 책임'을 동반한 결정일 수도 있다. 다만 모든 선택에는 그 이면에 감춰진 '책임'이라는 것이 따른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허준'에는 비슷한 선택의 결과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고 심지어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허준'은 드라마 후반부에 가서 '아들'의 '원망'을 듣는다.

임진년, 왜군이 쳐 들어왔을 때, 불에 탈 위기에 처한 '서책'을 짊어지기 위해, '국왕'의 호위길을 이탈했고 경황없는 전쟁의 위기에서 '가족'을 새까맣게 잊어 버린다.

이 드라마에는 굉장히 철학적인 서사가 있다. 바로 '허준 아버지', '허론'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 상 허론은 굉장히 덕망있는 무반계 양반이다. 다만 '허론'은 '밀무역'이라는 중범죄를 지은 자식의 죄를 덮기 위해, 자신의 이름에 치명적인 선택을 한다. 반대로 '허준'의 경우에는 자신의 자식이 위독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순번을 지켜 아들을 치료하는 지독함을 보인다. 어떤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어떤 가치관으로 상황을 보느냐에 따라, 분명 다른 평가가 나올 법하다. 허준의 융통성 없음은 분명 가족들에게 치명적인 불행이었겠지만, 역사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린다. 그렇다면 그의 행동은 무전무결한 '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 알 수 없다.

'모두가 나의 아들'이라는 제목은 작품의 주제와 상징성을 갖는다. 제목은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인류 공동체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메시지를 담는다. '조 켈러'는 자신의 비도적적 선택으로 전쟁 중 수많은 군인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의 선택은 직접적이지는 않다.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사건처럼 굉장히 철학적 사고를 요하는 선택이다. 그가 만든 불량 부품으로 인해 죽은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자신의 자식이 사망한 모든 부모들의 아들이다. 고로 '모두가 나의 아들'이라는 제목은 조가 자신의 아들만 보호하려 했던 이기적인 태도와 전쟁에서 죽어간 많은 군인에 대한 책임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희곡이 쓰이진 배경적 지식의 영향으로 희곡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호하지 않다. 다만 이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여지는 분명하게 있다. 희곡에서 크리스는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되고 상황과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세운 도덕적 가치관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우리 대부분은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고 그것에 의지하여 자신의 세상을 구성한다. 다만 그러한 부모가 자신이 믿고 있던 도덕적 기준을 배신 할 때, 그 충격은 분노나 슬픔을 넘어, 나는 누구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를 보면, 얼마 전 읽었던 소설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떠오른다. 다자이 오사무 역시 꽤 부유한 배경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부의 출처가 '대부업'이라는 사실은 그를 괴롭게 한다. 그의 사상적 배경에는 '마르크스 사상'이 자리잡았기 때문에 그의 출신 배경과 생각해 볼 때, 자아에 대한 모순과 혼란이 필연적이었다. 실제 다자이 오사무는 이러한 배경적 지식과 자신의 철학에 대한 인지부조화로 삶을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이민진 작가의 소설은 '파친코'와 비슷하다.

결국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비극은 '단순히 한 가정의 비극'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 속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이 단순히 개인적 이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아들러가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관계속에서 성장한다. 진정한 도덕적 선택이란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과의 관계속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나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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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아들러의 말
알프레드 아들러 지음, 이와이 도시노리 엮음, 박재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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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여름을 좋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여름을 싫어한다.

자, 그렇다면 초콜릿과 동물과 여름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고로 무언가를 넌지시 건내는 일에는 '죄'가 없다. 건내지는 '무언가'에도 문제가 없고, '건내는 행위'에도 문제가 없다.

다만 문제가 발생할 때가 있다.

건내받는 쪽이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변수가 워낙 많아서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두 예측할 수 없다.

누군가가 말했다.

'참 여성스러우시네요.'

칭찬일지 모른다. 다만 상대는 불쾌함을 들어냈다. 이런 경우는 적잖게 볼 수 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가 받아드리는 경우 말이다. 이런 경우가 몇번 반복되면 그것은 학습된다.

이후로 우리는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하고 걱정을 할 때가 있다.

'싫어하면 어떡하지' 혹은 '잘못 받아들이면 어떡하지'

말 뿐만아니라 행동이나 상황도 그렇다. 같은 행동과 상황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

초등학교를 중퇴하여 학력이 부족한 것

몸이 병약한것

이 셋은 어떤 누군가에게는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만 일본 경영의 신인 '마쓰시타 전기산업(현 파나소닉)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는 성공의 비결이었다.

그는 남들이 '불행'이라고 받아드린 이 세가지를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인자로 인식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어떤 누군가는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고 누군가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다. 이 둘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고로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혼자 있는 사람의 에너지를 채워주기 위해 끊임없이 부르고,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함께 있는 사람이 에너지를 채울 수 있도록 혼자 있는 시간을 주도록 배려한다.

이 배려가 오해가 되고 서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적잖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러'의 이론이다. 아들러의 이론은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을 닮았다. 상대성 이론은 빛의 속도를 절대적 기준으로 둔다. 빛의 속도를 절대적 기준으로 두면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으로 변한다.

아들러의 이론도 마찬가지다. 현상과 관계에 절대적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제에 절대적 기준을 두는 것이다. 자신의 과제에 집중하게 되면 타인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변한다.

빛의 속도가 모든 관측자에게 일정하듯, 우리의 과제도 우리가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 즉, 내가 어떤 말을 하거나 선물을 하는 것은 그것으로 나의 과제를 다한 것이다. 그것을 받고 기뻐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은 '상대의 과제'이다. 상대의 과제를 간섭하려는 시도는 갈등으로 이어진다.

예를들어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그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걱정은 사실 내 '과제'가 아니다.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드리는지는 그들의 '과제'다. 내가 할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나의 과제를 완수하는 것 뿐이다. 마치 물리적 세계에서 시간이 각자 다르게 흐르는 것 처럼, 나의 과제와 상대의 과제는 분리되어 있으면서 서로 영향을 끼친다.

간혹 우리는 타인의 과제까지 내가 직접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하며 내가 더 많은 책임을 떠안는다. 이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다.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둘 때, 시간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변화하듯, 나의 과제에 집주아면 상대의 반응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과제에 충실할 때, 관계는 그에 따라 더 유연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아들러의 '과제분리'는 '상대성 이론'처럼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론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할 때,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며 타인과의 관계역시 더 건강하게 형성된다.

자칫 가장 이기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 '과제 분리'는 서로가 각자의 세계에서 완전하게 작동되는 '상대성 이론'인 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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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지문은 DNA를 말하지 않는다 - 유전자에는 없는 세포의 비밀
알폰소 마르티네스 아리아스 지음, 윤서연 옮김 / 드루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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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NA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가.

 흔히 우리는 DNA를 본질이라 생각한다. DNA는 우리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결정 짓고 정체성의 모든 것이라 여기기도 한다. 다만, DNA는 우리를 구성하는 여러 정보 중 하나일 뿐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생명은 정보를 활용하고 변화하는데 단순히 DNA가 아니라 더 복합적인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것의 정보의 흐름과 맥락 속에 우리의 정체성은 만들어진다.

 이는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는 것과 같다. 도면 하나로 건축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도면은 건축물의 기본적인 구조를 설명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선물이 완성되기까지, 재료, 환경, 작업자의 숙련도 등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개입한다. 우리의 DNA도 다르지 않다. DNA는 설계도일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실현되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실제 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DNA만큼이나 환경이 크다. 세포 간의 상호작용과 외부 환경의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가. 세포는 서로 대화하고 신호를 주고 받으며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적응한다. 이런 상호 작용은 단순히 유전자에 의해 지시된 기계적 행동이 아니라, 생명이 가진 능동적인 역동성의 결과라고 볼수 있다.

 어항 속의 금붕어를 예로 들수 있다 같은 종의 금붕어를 어항 속에서 키우면 5cm밖에 성장하지 않지만 이것을 연못에서 키우면 30cm 이상 자란다. 우리는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아가는 기계적 존재가 아니라, 주변 환경과 상호 작용하며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를 유전자의 집합체로만 보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지나치게 유물론적으로 보는 관점을 닮았다. 생물학이라는 과학의 영역에 '철학'을 대입하는 것이 자칫 우습지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변화하며 바꿔 낼 수 있다.

 뇌의 '신경가소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신경가소성은 우리의 뇌가 학습, 경험, 혹은 새로운 환경에 따라 재구성되고 변화할 수 있음을 말한다. 예전에는 뇌가 성장과 성숙이 완료되면 더이상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면 현대 신경과학은 말한다. 뇌는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변화는 우리가 어떤 환경에 놓이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와 관련한 예시로 '런던의 택시 기사'에 대한 실험이 대표적이다.

 런던의 택시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난이도가 높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복잡하기로 유명한 런던의 거리 구조를 모두 외워야 하고, 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를 찾는 능력을 요구 받는다. 이 시험을 준비하면서 수년 간 기사들은 런던의 모든 길을 철저히 암기 한다. 이 과정에서 뇌의 해마라는 부위가 크게 발달하는데, 해마는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뇌는 새로운 정보를 배우고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물리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는 우리의 뇌가 경험을 통해, 혹은 환경을 통해 재창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지 유전자에 의해 고정된 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경험을 통해 뇌가 새롭게 구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런던 택시 기사들이 그들의 환경적 요구에 맞춰 뇌를 변화시키는 것 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자극에 반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

 유전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는 분명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단순히 DNA에 프로그래밍 된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언제든 재구성되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변화하기도 한다.

 8살 일란성 쌍둥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과학적으로 일란성 쌍둥이의 유전자는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나 이 둘은 성격도, 취향도 다르고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성장한다. 물론 우리 아이를 보건데, 키, 몸무게, 눈의 색깔처럼 유전자가 결정하는 기본적인 정보도 분명 있다. 그러나 아이를 구성하는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어쩌면 비슷조차 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이란 단순 결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재구성의 과정 속에 존재한다. 고로 우리는 '자유선택'에 의해 존재하고 변화할 수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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