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크레이브 1~2 세트 - 전2권
트레이시 울프 지음, 유혜인 옮김 / 북로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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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트레이시 울프'는 뉴욕타임즈와 USA 투데이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녀는 판타지 소설이나 로맨스, 청소년 소설을 주로 집필하는 작가다. 그녀의 특징이라면 교육자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문학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전문 작가가 됐다. 즉 가장 많은 삶의 경험을 '교육현장'에서 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배경과 다르지 않게 소설은 역시 전개 배경이 '학교'다.

예전 뉴질랜드에서 첫 유학을 시작할 때 였다. 알고 지낸 백인 여자가 있었다. 나 보다 몇살은 어렸는데 고등학생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트와일라잇'이라는 소설이 당시 여고생들 사이에서 꽤 '핫'하다고 했다.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그녀는 책과 영화를 모두 읽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의 매력으로 꽤 많은 여학생들이 영화와 소설의 팬이 된 듯했다. 책을 읽기도 전, 그 말이 떠올랐다.

'우리 딸이 나중에 이 책을 읽으면 정말 재밌어 하겠다.'

소설을 읽고 든 생각이다. 소설은 어렵지 않으며 충분히 흡입력있었다. 얼핏 '트와일라잇'과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완전히 다르다. 캐릭터 간의 관계, 학교라는 폐쇄적 공간이 주는 몰입력이 매력있다. 주된 내용은 주인공 그레이스가 겪는 정체성의 발견과 내적 성장이다. 단순 로맨스와는 차이가 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소설은 알레스카다. 알레스카 한 외딴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그레이스'는 부모님의 사고로 고아가 된다. 이후 카틀미어 아카데미로 전학가게 된다. 그녀가 간 학교는 단순 학교가 아니다. 뱀파이어, 늑대인간, 드래곤과 같이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다. 현실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과정은 역시 매력적이다. 현실에서 '판타지 세계'나 '무협계로 넘어가는 소설을 본 적 있다. 이런 소재는 물론 '현실도피'지만 자연스러운 흐름은 '판타지 소설'이 가진 '허무맹랑함'에 설득력은 준다.

갑자기 난데없이 등장하는 세계관보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세계관이 마음에든다.

소설의 배경은 '학교'다. 폐쇄적인 공간이다. 이런 폐쇄성은 긴박감을 더해준다. 닫혀진 공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유대감. 이런 것들이 인물의 특징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소재로 치지면 매우 독창적인 소재는 아니다. 익숙한 소재다. 다만 유치하지 않고 세계관 구성도 좋다. 책은 '척척'하고 넘어 갈 만큼 가독성이 좋다. 읽으면서 마흔을 바라보는 남자가 읽어도 괜찮은가...,하면서도 몰입하며 읽었다.

성별과 나이를 초월할 수 있는 꽤 유의미한 시간인 듯 하다. 개인 취향이긴 하지만 '트와일라잇'보다 더 재밌게 읽었다.

소설은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빠르고 쉽고 몰입력 있는 이 소설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내가 읽었던 2권이 아직 완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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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시간 책쓰기의 기적
황준연 지음 / 작가의집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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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존 F 케네디'를 미국 대통령으로 알고 있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사망 2년 전인 1961년이다. 즉, 그의 삶에서 '대통령'이라는 정체성은 아주 짧게 스치고 간 셈이다. 존 F. 케네디는 실제로 상원의원 6년, 하원의원 7년을 활동했으며 2차세계대전 당시 해군에서 복무한 기간도 '대통령 재임기간'보다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그를 기억하는 방식이란 '미국 대통령'이다.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제임스 딘' 또한 그렇다. 영화 배우로 활동한 기간은 불과 3년 뿐이었다. 그의 대표작도 고작 3편이다. 이소룡의 주요 활동기간도 1970년에서 1973년으로 극히 짧은 편이다. 우리나라 서태지와 아이들의 활동 기간도 4년이 안된다. 마지막으로 '링컨'은 4년 간 미국대통령으로 재임했으나 그의 삶에서 가장 오랜 시간 정체성으로 남아 있던 활동은 '변호사'로 24년간 일했다.

역시 그래도 대중이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이 다르다.

우리에게 각인된 '순간'만을 그것의 모든 것으로 여긴다. 그들에게는 짧게 스쳐지나간 '경력'이지만 대중에게는 그것이 정체성으로 남는다. 무엇으로 기억되는지는 그렇게 의미를 만들어낸다.

책을 쓴다는 것은 '정체성'을 남기는 일이다. 사람과 삶은 워낙 유동적이라 변화무쌍하고 생각과 가치관도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보는 사람의 시각, 관계, 태도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고로 '사람'을 '컨텐츠화'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책을 쓴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황준연 작가'를 만난 적 있다. 당시 부모님 댁은 꽤 농촌에 위치했다. 우연히 네이버 지도를 살피다가 그의 사무실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됐다. 간단히 메모를 해놓고 잊고 있다가 어느날,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불쑥 전화를 걸었다.

'네이버 지도를 보니까 근처에 계신다고 해서 연락 드렸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실제 활동하시던 주소지는 아니었다. 이후 따로 '서귀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남을 잡고 만났다. 짧은 만남이었으나 '책쓰기'에 진심인 편이다. 간단한 대화를 주고 받고 가끔 인스타그램에서 안부를 확인하는 사이가 됐다.

책을 쓰는 일은 꽤 흥미있는 일이다. 이미 과거에 두고 왔던 '정체성'을 뒤늦게 사람들이 쫒아 읽는 일이다. 첫 책이 나온지는 벌써 5년도 넘었다. 이어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책이 나왔다. 당시 거의 초고 수준이던 글은 그대로 출간됐다. 지금 보면 오탈자와 비문 투성이다. 문체도 많이 달라졌다. 심심찮게 과거 썼던 글을 읽은 독자의 리뷰가 올라 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꽤 죄송하다는 생각과 조금 정돈해서 출간 했었으면...,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만 책이 출간되자, 간혹 강연요청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고 새로운 출간제의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일은 부수적인 일이라 차치하고 가장 괜찮은 점이라면 '스스로가 정의됐다'는 점이다.

책을 쓰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밖에 없고 드러낼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다시 생각해보고, 독자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된다. 이 과정으로 내가 얻은 것은 '작가'라는 호칭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하는 점이다.

스스로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출간'하면 명확해진다. 이 명확함은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도 명확히 갖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소개'할 때 유용하기도 하다.

일정 수준의 책이 출간되거나 일정한 판매부수가 넘어사면 '네이버 인물등록'이 가능하다. 혹은 '인스타그램'에 '파란색 체크'를 받을 수도 있고, '위키피디아'에 이름이 등록되기도 한다. 그것이 큰 의미를 갖진 않지만 본인을 소개하는데 이처럼 간편한 방법도 없다. 나의 경우에도 위 세 가지가 모두 등록됐다. 간혹 '위키피디아'에 어떻게 이름을 올리셨어요?'하고 묻는 경우도 있었는데, 잘 모르겠다. 해당 페이지에 '작가'라고 이름이 올라가 있고 짧은 프로필이 있는데 내가 올린 부분은 아니다.

황준연 작가 말대로, 책이 알아서 해주는 역할이 분명 있긴 하다. 개인적으로 '작가'를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 '삼고 싶어도 가능하지도 않다. 본업 작가라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고 글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꿈 같은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어떤 글을 보건데, 직업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 1위가 '작가'라고 한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평균 소득도 꽤 높은 편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대부분의 작가는 글쓰기가 본업이 아닌 경우가 많다. 고로 일에 대한 부담보다는 '취미'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고 고소득자가 출간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단다.

어쨌건 생각보다 책을 출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한글'이나 '워드'를 켜서 하루에 한 페이지씩 두 세달만 꾸준히 쓰면 책 한권 분량이 나온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하면 그만이다. 좋은글은 필요없다. 어차피 출판사가 출간 의향을 내비칠 때, 그들이 원하는 글의 방향이 각기 달라서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고로 그냥 매일 같이 취미삼아 한장씩 글을 쓰는 습관만 잡혀 있으면 1년에 3~4권의 책 분량의 글밥은 나온다.

고로 황준연 작가의 말대로 책쓰기는 생각보다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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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 아이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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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와 '기욤뮈소'를 좋아한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글이 쉽고 빨리 읽힌다. 두께에 비해 빨리 넘어가는 탓에 긴장감과 몰입감은 한층 더해진다.

다들 '독서'에 입문하게 하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나의 경우는 '추리소설'이다. '책'이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은 '추리소설'을 접하고 완전히 달라졌다. 게임이나 TV, 영화에 몰입하듯 소설에 잔뜩 몰입하고 보면 다른 매체와는 아주 다른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 그 한번의 몰입의 경험은 몹시 중요하다. 고로 지금도 나는 '책'에 가깝지 않은 이들에게 '추리소설'을 추천하곤 한다. 너무 어렵거나 쉽다면 책에 대한 흥미가 다시 사라질지 모른다. 고로 여기에 꽤 적절한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와 '기욤뮈소'라 생각한다.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남부다. 이탈리아에 30억 유로 상속녀가 요트에서 공격 당하고 사망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자, 어떤 이야기인지 읽어 볼까'

소설을 집어들고 너무 빠른 급전개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꽤 캐릭터 형성을 하고 살인이 벌어져야 하지 않나. 그러나 '미로속아이'는 일단 사건이 벌어지고 점차 흐렸던 안개를 헤쳐 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해당 사건이 벌어지고 1년이 지나 남편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 근거가 황당하게도 1년 전 살해 도구다.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책을 읽고 있는 독자와 의심을 받고 있는 소설속 용의자도 같은 생각을 한다. 이를 추리해 나가는 경찰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살해 도구를 1년이나 지나서 그것도 너무 허술하게...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는 역시 '반전'이다. 반전 없이 스릴을 만들어내는 스릴러 소설도 있지만 대부분의 추리 소설은 '반전'을 가지고 있다. 작가가 숨겨놓은 단서를 찾고자 끊임없이 의심해가며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소설은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러있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초리소설을 읽기 전에는 완전한 준비를 하는 편이다. 대체로 한자리에서 읽어야하고 스마트폰이나 스마트기기는 모두 꺼둔다. 가장 좋아하는 음료를 미리 준비해 놓고 화장실도 먼저 다녀온다.

그만큼 추리소설에 진심인 편이다.

특히 잠들기 전에 읽으면 어쩐지 몰입감은 극에 달한다. 사실 자기 전에는 잘 읽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이유는 자기 전에 '추리소설'을 펴면 대체로 거의 밤을 세우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런 소설은 '속도감'과 '몰입감'이 생명인데 나의 경우는 책을 읽다가 자고나면 머리가 정화가 되는 느낌이 들어 다시 몰입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다.

소설의 특성상 '스포'가 될 법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은 몹시 아쉽다. 다만 분명히 실패하지 않는 작가의 소설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두고 싶다.

개인적으로 꽤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는 '책' 번역과 '구성'이다. 책이라는 것이 단순히 활자나 옮겨 놓으면 되는 것 아닌가, 싶겠지만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 책은 말대로 추리소설 답다. 단순히 활자가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그림과 설명이 충분히 들어가고 지도나 그밖에 다양한 단서들도 있다.

그 심경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말투, 필요시 변형된 폰트와 글자 크기, 친절하고 딱맞는 '번역', 거기에 들어가는 페이지마다 짧게 소개되는 명언들까지.

'밝은세상' 출판사의 에디터들과 번역가가 꽤 소설에 진심이구나,가 절로 느껴진다.

하나 둘, 등장하는 인물들 중 누가 과연 범인일까. 그것을 추리해 가는 과정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와 그 속을 엿보는 묘한 기분까지.

예기치못한 일정 때문에 잠시 쉬어 읽었다는 것을 빼면 딱! 앉은 자리에서 두 호흡에 모두 읽어 버린 책이다. 아마 이 글을 다 쓰고나서 다시 첫페이지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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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의 기원 - 우리의 뇌 그리고 AI를 만든 다섯 번의 혁신
맥스 베넷 지음, 김성훈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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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을 생김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좌우대칭동물과 방사대칭동물이다. 말그대로다. 앞뒤가 없이 중심축을 따라 약쪽으로 비슷한 신체가 바열되어 있는 동물이 방사대칭동물이다. 또한 입, 뇌, 눈과 귀와 같이 주요 감각기관이 앞부분에 몰려 있고 배설 기관이 뒷부분에 있는 것이 좌우대칭동물이다.

우리 인간과 같이 대부분의 동물은 좌우대칭동물이지만 산호나 말미잘, 해파리와 같은 동물은 방사대칭동물이 된다. 이 둘은 크게 6억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가 5억 5천만년 전 살았던 단일 공통조상에 의해 분리되어 나왔다. 오늘날 방사대칭동물은 전체 동물의 1%, 좌우대칭동물은 천제 동물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진화가 이렇게 이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로 방사대칭동물에게는 구멍이 하나가 있다. 이들은 먹이를 입으로 먹고 다시 먹었던 입으로 배설을 한다. 반면 좌우대칭동물은 입으로 먹이를 밀어넣고 엉덩이로 배설을 밀어낸다. 즉 방사대칭에서좌우 대칭으로 변한 이유는 먹이를 탐색하며 이동하기 위해서는 먹이의 위치를 감지해낼 수 있는 감각기관이 앞쪽에 존재해야 한다. 즉 좌우 대칭은 운동방향을 단순화 하여 기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인간이 개발하고 있는 대부분의 공학은 이런 생물학적인 장점을 따르고 있다. 자동차, 비행기, 배, 잠수함 등 인간이 만든 모든 탐색용 기계의 구조는 앞과 뒤가 존재하며 조종을 통해 탐색하고 이동하기 위해서 그렇다.

공학자들이 모두 이런 진화의 매커니즘을 모방하고 기계를 만들었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로봇'을 만들어낼 때, 시작과 동시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어내는 것은 논리에 적절치 않다.

수 억년의 생물 진화가 가졌던 다양한 실행착오가 어떤 의미에서 '공학'의 오답노트인 셈이다. 초기 좌우대칭동물은 '시각'을 이용하여 방향을 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앞을 보지 못했는데 고로 그냥 무작위로 돌아다니다가 부딪치며 길을 찾아다녔다. 이들은 먹이를 향해 직선으로 나가지 않고 원을 그리며 다가간다. 이들이 먹이를 찾는 방법은 '시각'이 아니라 '후각'이나 '촉각'인 경우가 많다.

이들이 후각을 통해 대상을 파악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냄새가 짙어지면 앞으로 나아간다.

2. 냄새가 옅어지면 방향을 바꾼다.

이와 같은 매커니즘은 '조종'의 혁신이었다. 1990년 브록스는 아이로봇이라는 로봇회사를 공동창업했다. 2002년 이 회사는 진공청소기 '룸바'를 출시 했는데, '룸바'는 집안을 스스로 탐색하고 다니며 청소하는 로봇청소기였다. 이 최초의 로봇청소기는 '좌우대칭동물'을 닮았다. 이들은 무작위로 이동을 하다가 벽에 부딪친다거나 충전 스테이션에 가까워 진다는 정도의 감각만 존재했다.

로봇은 무작위로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부딪치면 피하고 충전이 부족하면 충전 스테이션으로 돌아갔다. 이들의 센서는 대체로 앞부분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이동을 위해 감각기관이 앞으로 향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후각'과 '촉각'을 이용하여 먹이를 발견하고 이동해 나가는 것이 초기 선충의 이동방식을 많이 닮았다. 냄새의 농도가 짙어지면 먹이가 가까워진다. 즉 선충은 먹이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신경 세포를 머리 방향에 배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감각기관은 여럿으로 구분되어야 했다. 첫째, 방향 전환을 위해 체계, 자극을 감지하여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분류하는 체계, 내적 상태를 바탕으로 운동 능력을 조절하는 체계, 입력 신호를 종합하여 단일 결정할 수 있는 체계.

이렇게 초기 좌우 대칭동물은 '뇌'라는 '세포집단'을 머리에 배치하게 됐고 이것을 통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고 '방전'과 '충전'의 상태를 구별하는 '최초의 '감정'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감정은 여러 화학물질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것들은 '신경전달물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신경전달물질은 최초의 선충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발견하여 '먹이'와 가까워지기 위해 필요했다. 대표적인 '신경전달물질'은 '도파민'이 있다. '도파민'은 흔히 '쾌락의 화학물질'이라 불려지지만 그렇지 않다. 도파민은 '좋아함'이 아니라 '원함'에 반응한다. 즉 쾌락 신호가 아니라 앞으로 느낄 쾌락이 예상될 때 나오는 신호다.

도파민은 먹이가 가까이 있지만 먹지 못할 때 분비한다. 즉 우리의 뇌가 도파민 중독 상태에 빠지는 이유도 '쾌락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느낄 쾌락에 대한 '원함' 정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파민은 '먹이'에 대한 갈구를 높인다.

또한 '선충'은 세상을 돌아다니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한다. 또한 일부 스트레스 반응이 생겼을 때, 자신의 신체를 회복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렇게 생물은 일전 스트레스 반응에 대해 '완화'와 '회복'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때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이 '세로토닌'과 '도파민'이다. 이 둘은 부정적 감정에 대해 '회복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외부적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 인간도 역시 회복력을 위해 최대한의 식사량과 최소한의 운동량을 갖고자 한다. 이렇게 스트레스는 인간에게 폭식을 유도시킨다. 이렇게 세로토닌은 포만감과 안정감을 준다. 이런 세로토닌이 지나치게 분비되면 이후 '무감각'한 상태에 빠진다. 더이상 탈출할수 없는 스트레스 요인에서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한 비결이다. 이후 동물은 더이상 스트레스 요인에 도 좋은 먹이, 짝짓기 대상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 상태'에 빠진다.

이런 생물이 진화과정에는 크게 두 가지가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첫째는 바로 '학습'이다. 로봇청소기는 스스로 진화하지 않는다. 다만 생물은 여럿의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진화를 해왔다. 둘째는 패턴 인식이다. 생물은 냄새분자의 배열을 통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해 내야 한다. 분자배열에 대한 패턴을 인식함으로써 '포식자'와 '먹이'를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우리 인공지능은 대체로 '알고리즘'이나 '딥러닝'을 통해 이 초기 단계에 도달했다고 보여진다. 인간의 지능을 넘어 AI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뇌가 생각을 위해 존재한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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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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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청소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다. '김완 작가'는 특수 청소를 하고 있다. 그의 직업은 자살한 사람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일이다. 매 38분마다 한 명씩 자살로 목숨을 잃는 나라에서 '특수 청소'에 대해 큰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다는 것이 꽤 이상할 정도다. '김완 작가'의 책에는 특수청소를 하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꽤 인상 깊은 이야기라면 자기 죽음에 드는 가격을 알아보기 위한 남자의 이야기다. 자기가 죽고나면 그 청소 비용이 대략 얼마가 드는지 알고자 했던 사람의 인생은 과연 무엇으로 채워져 있었을까.

김완 작가에 따르면 비슷한 문의는 적지 않다.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떠났다. 아이러니이다.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포기하며 죽음에 책임을 지는 모습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죽음을 선택하는 다수에게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밀려 있는 전기요금이라던지, 기타 독촉장이 그렇다.

법원의 어떤 독촉은 채무자의 사망을 확인하고 상속자를 찾는다. 이런 이유로 자살하는 이들의 주변인 심지어 가족마저 그들의 죽음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상속포기를 하고 나면 법은 독촉 절차 중지에 들어간다.

모든 이들이 외면할 때, 최후까지 그들의 '안녕'을 확인하는 이들이 '채권자'라는 사실은 꽤 씁쓸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외면하고 있나.

스탈린은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의 죽음은 통계일뿐이다.'라는 말을 했다. 어쩌면 우리는 매순간 일어나는 비극에 대해 무관심하다. 단순히 그것은 '통계'와 '숫자'라고 여긴다.

죽음에 대해 얼마나 경각심을 갖고 있는가. '죽음'이라는 사건은 개인에게 결코 가볍지 않다. 어떤 개인이라도 '죽음'은 '전지구적 종말'과 같은 끝을 말하며 그가 구축했던 모든 세계와 과거, 현재, 미래가 무너지는 일이다. 이런 죽음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살까.

산 사람들은 죽음에 관한 언급 자체를 불경한 일로 여긴다. 독특하게도 대한민국에는 매1분 30초마다 한 명이 목숨을 잃는다. 많은 죽음은 꽤 우리와 격리되어 결국 남의 일이다. 그 비극이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나면 모든 죽음의 서사가 안타깝다.

수필은 쓰여진지 꽤 오래된 듯하다. 어째서 이 책을 지금에와서 읽게 됐는지 아이러니하다. 글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진다.

'이완 작가'는 자신의 직업을 두고, 타인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직업이라고 했다. 그의 직업은 '철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죽음'을 떼어 낼 수 없다. 그가 바라보는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철학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기도 하다. 죽은 이들이 남기곤 흔적은 '지독한 악취'와 '기름', 혈흔'처럼 현실적이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매스컴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아름답게만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누구보다 '삶'에 직결되어 있어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고 읽게 됐다. 문장이 얼마나 좋은지 직업이 '글쓰는 사람'인가. 했더니, 실제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직업에 대한 철학적 깊이도 간접적으로 느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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