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요시미 슌야 지음, 서의동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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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가 이미 꺾여 있던 2000년대에도 일본의 경제 위엄은 실로 엄청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일본 패션이나 제품은 그 때까지도 많은 이들의 동경경의 대상이었다. 나의 첫 핸드폰은 '산요'에서 나온 폴더 폰이었다. 당시 75만원이라는 거금으로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그 핸드폰은 당시 주변인들 사이에서 관심의 대상이곤 했다. '일제' 하면 일단 고품질로 인정하던 시기를 지나 우리는 지금 일본과 무역 전쟁을 할만큼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유학을 하던 시기에도 한국은 일본의 아류국가 정도였다. 마치 우리가 캐내다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미국'과 비슷하지만 작다라는 이미지 인것 처럼 한국은 일본과 비슷하지만 조금 저렴하고 규모가 작은 나라일 뿐이 었다.

88년 세계 10대 기업에서 IBM과 엑슨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일본 기업이었다. 그 뿐만아니라 전세계 50대 기업 중에서 34개가 일본 기업이었을 정도다. 지금 니케이 지수가 20,000포인트를 겨우 넘었던 것에 비해, 이미 89년도 니케이 지수는 거의 4만불에 육박할 정도였다. 정기예금 금리가 8%에 소비지출로 미국을 넘어서고 일본 국영기업인 NTT 하나만으로 독일의 모든 회사의 주식가치를 넘어서는 엄청난 시기를 거쳤던 일본은 이제 힘 빠진 호랑이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한 일본에 대한 뼈아픈 참회의 책이다.

책은 경제로 시작한다. 나는 일본 경제를 좋아한다. '일본의 경제'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다, 일본 경제가 담고 있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거나 유럽의 변방인 포르투칼이 세계 패권을 쥐거나 떠돌이 유목민이었던 몽고가 세계를 지배하듯, 우리는 반전을 좋아한다. 이것이 역사가 재밌는 이유이다. 일본의 반전은 아래에서 위로의 반전도 있지만, 그 반대의 반전도 있다. 현재 진행형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근현대사 100년 가장 다이나믹한 흥망성쇠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기세를 세우던 아시아 패권국에서 1950년대 영국GDP 50% 수준까지 떨어졌던 일본 경제는 다시 반등 하시 시작하여 결국 40만에 영국의 3배 가까운 GDP를 기록할 정도로 급성장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경제 전쟁에서 '해볼만하다'라는 의견들이 들려온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성장도 있겠지만 가장 크게는 일본의 빠른 속도의 몰락이 이유이다.

일본의 버블경제와 잃어버린 30년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플라자 합의'를 이야기한다. 마치 미국이 일본의 경제만 망치기 위해 한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버블경제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인의 그리움일 뿐이다. 사실 플라자 합의는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에 대한 조치가 명분이었다. 달러화의 가치 상승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에, 마르크화도 엔화와 마찮가지로 7% 이상 가치 절상되며 경제에 타격이 가해졌다. 하지만 현재 독일과 일본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힘든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의 건전성을 유지하였던 독일과는 다르게 일본은 기존 자신들에게 영광을 안겨 준 여러가지 방식을 고수했다. 화폐개혁이나, 구조조정 혹은 정권교체도 없이 일본은 가진 것에 대해서만 유지하기 위한 보수적인 정책을 폈다. 이는 일본을 최강국의 자리에서 유지하게 했지만, 성장없이 머물거나 조금씩 침체하게 만들기도 했다.

유럽은 유럽통합이라는 커다란 이벤트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는 행운 적인 요소도 있다. 하지만 그 요인은 결코 그저 행운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독일은 패전 후 각 국가들에 사죄와 반성의 뜻을 빠르게 내비췄고 그로인해 타 국가와의 교역양이 늘어나면서 생필품 가격이 낮아지고 물가 안정과 주택가격 안정이 일어났다. 독일의 실질 부동산 가격은 1975~2007년 사이에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는 점에서 일본과는 전혀 다르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정치 뿐만 아니라 외교와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부동산 가격 뿐만아니다. 그와 함께 농산물 가격도 낮게 유지 되었다. 이 또한 남유럽 등지에서 저렴한 가격의 농산물 유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동유럽에서 저렴한 노동자들도 유입되었다. 실질적으로 2차세계대전 전범국이던 독일이 주변 국가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받았단 것이다. 과거에 대한 사죄나 반성의 자세가 외교의 힘으로 그리고 그것이 경제의 힘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주변국은 중국과 한국이다. 사실상 한국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노동력은 일본의 물가와 임금을 안정시킬 수 있는 좋은 곳이다. 하지만 일본은 독일과 반대로 주변국 간의 꾸준한 마찰이 있어 왔다.

'헤이세이'와 '쇼와'는 이는 일본의 연호이다. 이는 아키히토 일왕 시대의 연호인데, 우연찮게도 일본이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1989년부터다. 책은 이 시대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른다. 첫번째 장에서 경제를 설명하고 두번째 장에서 정치를 설명한다. 경제는 참으로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정치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 어렵긴 했다. 아무렴 일본에 대해 정치는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책을 중반부까지 읽으면서 느꼈던 건, 우리가 생각하는 잃어버린 30년에 관한 관념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30년을 이야기할 때 보통, 경제에 관하여만 떠올린다. 하지만 일본은 정치, 경제, 문화, 생활 전반적으로 후퇴해가고 재난을 겪는다.

그무렵 동일본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포함하여, 일본 사회 전반에 암울한 기운을 만드는 여러가지 이벤트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일본은 경제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가혹한 시간을 맞이한다. 이런 가혹한 시간에 대해 일본인들은 '옴 진리교'를 포함하여 이색적인 돌파구를 찾았는다. 그 괴이한 사회적 활동들이 일본사회에 일어나며 일본이 얼마나 암울하게 변했는지를 대변해 준다. 이책은 일본사회가 갖고 있던 두려움을 전반적으로 훑어준다. 얼핏 미야자키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들이 많아지며, 우리는 극단적인 사건과 일본을 동일시 하기도 한다.

책이 단순 경제 서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판단을 자세와 함께 고쳐앉고 저자가 말하려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간의 사회 상실감에 대해 접했다. 격차사회나 소자화 사회 등 일본의 몰락은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현실이 과거가 아닌 현재 진형이라는 것이다. 지금 일본은 해결되지 않은 원전 문제와 코로나라는 국제적인 이슈에 대한 부담도 껴앉고 있다.

얼핏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누구나 있는 듯하다. 하지만 막상 일본의 참혹한 내면을 바라보니 그런 일본에게도 동정심이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썩어가는 내부를 숨기기 위한 자격지심이 외교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은 어쨌거나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이다.

주변 국가가 모두 망하고 나서는 대한민국이 혼자 그 대륙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기는 쉽지 않다. 마치 아프리가 대륙 한 가운데 일류국이 생성되지 못하는 것 처럼 우리가 더욱 잘되기 위해서는 주변국가들이 함께 상생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다만, 일본의 완전한 몰락보다는 비등비등하지만 대한민국이 조금 더 살기 좋고 외교력이나 경제력에서 일본에게 큰소리 칠수 있는 위치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우리는 흔히 일본을 '악'이라고 분류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국가의 관념에서의 라이벌은 존재할지라도 일본인 개개인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반인일 뿐이다. 이 책은 일본인이 일본을 바라보는 가감없는 반성문이다. 읽고서 괘씸한 일본사회가 빠져있는 절망에 통쾌하다고 시작했다가 결국은 연민의 마음이 한 켠에 들게 했다. 조금 안타까운 게 있다면, 일본 한자 식 번역이 가끔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그 또한 일본의 저자가 썼다는 감정이입이 되어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어쨌던 싸우지 않을 수 있다면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일단 싸우게 된다면 이겨야 한다. 일본은 우리의 적이 아니지만 동아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함께 드높이는 라이벌 국가로써 두 국가가 함께 공생하고 자라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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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공지능이다 - 하룻밤에 읽는 AI(인공지능)의 모든 것!
김명락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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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1980년대 중반 이래 제임스 왁슨이 주축이 되어 인간의 게놈지도를 완성하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었따. 이는 1990년부터 공식적으로 시작하여 전세계 연구팀이 참여 했다. 이는 2000년 6월 26일, 밑그림을 완성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유전자들이 구성하는 30억 쌍의 화학 염기 중 97%를 해독했다. 이 프로젝트는 2006년 공식 종료가 되었다.

민족문화추진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1968년부터 착수한 '조선왕조실록'의 1차 번역은 26년이 걸린 1993년이 되어 끝이 났다. 30살인 학자가 56살이 되는 나이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이 번역작업은 어쩐지 1980년 대에 미국에서 이루어진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어딘가 닮아 있다.

우리는 유전공학과 같은 최첨단 용어가 사용되는 과학을 받아드릴 때,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공상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 염기 서열을 하나 하나 살피고 기록하는 일은 무언가 그럴 듯 해보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냥 사람이 '하나 둘 셋...' 하고 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왕조실록 번역 일 또한, 실로 엄청나게 의미있는 프로젝트임에도 사실상 그냥 페이지 한장 한장일 누군가 읽고 연필로 꾹.꾹. 눌러 적는 일에 불과하다.

모든 건, 속된 말로 '노가다'이다. 신약을 개발하거나 식품에서 새로운 물질을 찾아내는 것 또한, 이것 저것을 여러번 시도하며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이다. A라는 물질을 투여했을 때, 암세포가 얼마나 사라졌는지를 확인하는 일일이 끝나면, B라는 물질을 넣어보고, C라는 물질을 넣어볼 뿐이다. 그 엄청나게 고귀한 실험실에서 누군가는 현미경에 눈을 꼬라박고 엄지손가락에 채워진 카운팅 기계를 '하나, 둘. 셋...' 하고 누르는 단순함이 반복일 뿐이다.

인공지능은 단순하다. 기본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그 다음에 대한 예측을 하는 일이다. 쉽게 말해, A라는 사람이 어제와 오늘 담배를 피웠으면 내일도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일 담배를 피울 것이라는 예측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오늘과 어제에 대한 데이터가 필요하고 사실성 그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예측력이 높아진다. 이러한 데이터베이스들의 총합을 빅데이터라고 부른다. 이런 빅데이터는 인터넷을 통해 혹은 SNS를 통해 공급되고 사용한다. 그런 이유로 알파고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구글'이라는 검색기관을 통해 나온 것이다.

책의 50쪽에는 인공지능과 머닝러신 그리고 딥러닝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그림이 나와있다. 우리가 이러한 용어를 부담없이 듣고 말하는 시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용어에 대해 자세하게는 모른다. 이 책은 시작기점에 인공지능에 대해 여러가지 기본적인 상실을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가면서 그 활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와같은 초보들은 뒷부분보다 앞부분이 훨씬 도움이 많이 되는 듯 하다. 인공지능의 한계에 대한 설명 또한 나도 공감이 많이 가는 부분이기도 했다. 인공지능이 만능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우리 인간들이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산물일 뿐, 사실상 인공지능은 인간의 보조자의 역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친구의 부탁으로 인공지능(?)관련 어플을 개발하는 일에 대한 간단한 소일거리를 도와 준 적이 있다. 내가 한 일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인공지능에 사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은 간단했다. 보여지는 사진 중 '차'를 '클릭'하는 일이었다. 사진은 수 십장 수 백장이 됐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찾은 차는 아마 데이터 베이스로 활용되지 않을까 추측하기는 한다.

사실 모든 건 노가다이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경기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수백, 수만가지의 경우를 단순하게 돌려보면서 대입해보는 것이다. 단순한 대만의 GPU 파운드리 공장인 TSMC는 인공지능이 화두가 된 이후 갑작스럽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지금은 삼성전자를 제치고 시가 총액 면에서 세계 최대의 반도체 제조사가 되었다. 시가총액이 무려 3063억 달러로 삼성전자의 26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미 시가총액 면에서는 세계 10위로 올라섰다는 기사를 지난 주에 접했다.

세상이 인공지능이라는 최첨단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단순작업을 해야할 GPU의 엄청난 수요가 필요했다. 비트코인 신드롬이라는 말을 유행하면서, 누군가는 100만원이 1억이 됐다거나 1000만원이 10억 100억이 됐다는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비트코인'은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첫 신호탄이었을 뿐이다.

비트코인이며, 인공지능이며, 알파고며 모든 건 사실은 단순 노가다를 얼마나 가능하는지를 따지는 문제이고, 이런 단순 노가다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인 GPU의 수요는 꾸준하게 늘어난다. 현존하는 세계 최강의 슈퍼컴퓨터는 IBM의 '서밋'이다. 이는 1초에 33경 번의 연산능력이 있다. 또한 77만5000개의 CPU와 3만 4000개의 GPU를 갖고 있다. 사실 따지고보면, 1개가 할일을 1만개가 하면 더 빨라지는 건 단순한 이치다.

이세돌 9단을 이긴 건 알파고이지만, 실제 알파고 대신 바둑알을 올렸던 건 알파고 엔지니어로 아마 6단이었다. 누구나 인공지능을 등에 엎으면 세계최고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걸 전 세계가 관찰했다. 우리의 역할은 단순하게 인공지능이 내린 지시에 정확하게 따르는 일이 세계 최고가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인공지능의 완벽함은 세상을 대체 할 수 없다. 우리는 아무도 100만 단위 수를 제곱해주는 '엑셀' 프로그램에게 감탄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같은 일을 인간이 해냈을 때 감탄해 낸다. 아무도 시속 100km로 달리는 자동차에 감탄하지 않지만 시속 36.8km로 달렸던 몽고메리의 단거리 기록에 대해 놀라워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인간이기 때문에 기적을 바란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길 바라면서 한편으로 그들의 한계를 느끼게 해주는 인공지능에 대한 기초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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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성 인간을 위한 지적 생산술 - 천재들이 사랑한 슬기로운 야행성 습관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윤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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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다카시'의 글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표지를 훑어 후 바로 저자가 누구인지 살핀다. '사이토 다카시'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어디서 들어본 듯 했다. 나는 역시나 그의 책을 몇 권 읽었던 적이 있다. 그는 다작을 하는 작가이다. 내가 그의 책을 처음 접한 건 2017년 발매된 '메모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다. 그는 보통 메모나 독서, 공부법에 대해서 글을 쓰는 편이다. 이 또한 그런 그의 특색에 맞는 주제이다.

어린시절 SBS의 '호기심천국'이라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밤에 공부하는 학생과 낮에 공부하는 학생을 두고 결과를 비교하는 주제로 방송이 된 적있다. 결과는 이렇다. 아침 공부가 저녁 공부보다 3배 이상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그 뒤로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성실하고 효율적인 사람이라고 인색했다.

책은 데카르트의 죽음의 원인을 이른 아침 기상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끌어낸다. 사실 조금 억지 비약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충분하다. 나는 이 책에 일부 공감하고 일부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하지만 책의 중반부까지 읽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야행성이 되면 뭐가 좋다는지는 말 안하고 딴소리만 자꾸하네?' 그러다 다시 책의 제목을 들여다봤다. 책은 야행성이 무엇이 좋은지를 말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야행성 인간이라면, 어떻게 지적 생산을 하는 게 좋은지를 말하는 책이다.

사람은 살다보면 무언가에 미쳐있을 때가 있다. 사실 어떤 걸 이루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노력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더 간단하다. 우리가 단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의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살빼는 방법은 덜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덜먹는 방법과 많이 움직이는 방법을 고민하게되고 다시 덜 먹는 방법에 대한 방법을 고민하고 많이 움직이는 방법에 대한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가령, 어떤 음식이 칼로리가 몇인지? 자전거를 타는게 운동이 되는지? 빠르게 걷는게 좋은지? 몇 시부터 몇시까지 얼마나 움직여야 하는지? 먹기 전에 운동하는게 좋은지? 운동 후에 먹는 게 좋은지?등을 고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방법은 그 방법의 방법을 찾게 되고 다시 그 방법의 방법의 방법을 찾으며 점점 쉽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성공하려고 따지고 들게 된다.

하지만 기본으로 돌아가야한다. 아침에 공부하는지와 저녁에 공부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절박하게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아침에는 일찍 눈이 떠질 것이다. 그럼 그때마다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게 접근한다면 이 책을 읽으려는 예비독자들의 희망을 무참히 짋밥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이쯤 접어두고 책에서 말하는 밤이 좋은 이유에 대해 함께 공감해보자. 아마 우리의 대부분은 야행성이다. 때문에 사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밤에 활동하는 일에 좋다는 근거를 이 책에서 찾고, 마음것 자신의 스타일대로 살아가 보는 것도 좋다.

책은 기억은 밤에 더 잘 정착된다고 한다. 자는 동안 뇌에서 하루의 기억을 저장하는 최적화 작업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인 '잠'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이 소설에서는 자는 동안의 뇌의 작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소설을 가지고 근거로 삼는 것에 고개가 갸우뚱 해질 수도 있지만, 사실 그의 소설은 뇌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집필했던 흔적들이 있다. 그런 걸 보자면 밤이 훨씬 더 유리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의 소설에서는 소설 속 주인공이 잠을 자면서 꿈을 통해 공부를 하여 의사가 되는 장면도 매우 설득력있게 나온다.

그의 책을 읽다보니, 그의 전공 처럼 굳이 '밤'과 상관 없이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의 전공답게 그는 독서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한다. 그리고 마무리로 그런 독서를 하는 가장 좋은 시간은 밤이라고 말한다. 역시나 책을 좋아하면, 다만 밤낮 없이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하는 내용 중 가장 큰 건, 밤이 주는 감성이다. 사실 어떤 글을 쓴다고 할 때, 밤에 쓰는 글이 조금 더 감성적이다. 같은 책을 고르더라도 아침에 고르는 책과 저녁에 고르는 책이 다른 것 처럼 우리의 생체 리듬에 맞는 감성이 존재하고 그 감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아무래도 아침에 읽는 계발서가 훨씬 마음에 와닿고 저녁에 읽는 시가 더 감성에 와닿는다. 필요에 의해 선택이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미 야행성이라면 내가 야행성이라서 좋은 점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밝은 면을 찾는 행위다. 아마 자신을 더 잘 알아가는 독자들이야 말로 미래가 밝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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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데믹, 끝나지 않는 전염병
마크 제롬 월터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책세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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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책은 전문용어도 너무 많이 나오고 딱딱하여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의 첫 문장만 읽고도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며 들던 생각이 있다. '과학을 문학으로 표현한 명작'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은 그랬다. 딱딱한 과학용어 부터 '나 잘났소'하고 던지고 보는 다른 서적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참 문학적이다.

'마크 제롬 월터스(Mark Jerome Walters)는 대학에서 언론학과 수의학을 전공했다. 문과와 이과를 넘나드는 그의 이력 때문에 이 책은 문학적이기도 하고 과학적이기도 했다. 책은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제목 그대로 '에코데믹'이다. 이름이 낮설기도 하고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이해하고 보자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인포데믹(infodemic)라는 말이 있다. 정보라고 하는 information과 전염병인 epidemic의 합성어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팬데믹(pandemic)은 모두를 뜻하는 pan과 epidemic의 합성어이다. 또한 endemic은 고질적인 혹은 풍토적인이라는 이다.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demic'이라는 접미사에 주목이 된다.

demic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의 domos에서 유래 했다. 데모스(demos)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Democracy(민주주의)나 Domon(악마)에도 들어 있는 말이다. 이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빠질 수 없는 전염병에 '생태'라고 하는 Eco-라는 접두사를 사용한다.

즉, 사람이 지구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서 생기는 병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있다.

2008년, 서울을 중심으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명분은 '광우병'.

정치적인 이슈로 변해갔던 이 시위의 정치적 입장을 재하고, 우리는 광우병이라는 병을 알게 되었다. 머리 속 두뇌가 스폰지처럼 구멍이 송송난 소들은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데 그 병의 이름이 광우병이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미국산 소를 먹던지 말던지, 그것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영국에서 시작한다. 때문에 영국이 나쁜 나라라고 말할 수도 있다. 미국인인 저자 또한 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이던, 미국이던 우리는 불리한 상황이 되서야 너와 나를 가른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인류가 저지른 실수이다. 1954년 출생한 아베 신조 일본총리에게 '사죄하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 지은 죄에 대해서만 사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범인류적으로 혹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소속원으로의 책임을 지고 반성해야하는 일들이 있다. 광우병은 제품단가를 1센트라도 아껴보려는 인간의 아둔한 욕심에서 시작한다.

'빨리 크고 가격이 낮아 진다면, 뭘 먹으면 어떤가.' 초식동물에게 죽은 동물의 사체를 분쇄해 먹이는 일로 인간은 죽은 사체처리 비용과 사육비를 아끼는 '비즈니스의 성공'을 거뒀다. 낮은 단가로 더 많은 인간을 부양할 수 있다는 하찮은 마케팅을 통해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 없어야 할 광우병을 초래했다.

책은 읽다보면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매우 문학적인 필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특히 광우병의 들어가는 부분과 에이즈의 마무리되는 부분을 읽을 때는 이게 과연 생물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맞나 싶을 만큼 문학적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에코 데믹'이라는 키워드이지만, 이에 관한 이야기만 서평하기에는 문체가 좋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필력을 이용해야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될 테니 그런 면에서는 아마 성공적인 책이라고 생각된다.

세 번째 장에서 살모넬라의 이야기를 하며 저자가 서술한 부분은 인간의 단 하나의 실수가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확장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농장에서 쓰이는 항생제를 이야기 하며, 이 것들이 가축에게만 쓰인다 하더라도 가축 몸속을 통화해 나온 뒤에도 여전히 활성을 띠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약물이 세균이 우글거리는 오수로 흘러들고, 약물이 든 폐수 찌꺼기는 비료로 밭에 뿌려지며 이 약물 내성 세균들은 지하수나 지표수로 유입되었다가 다시 토양으로 스며든다고 했다.이는 냇물과 강, 지하수, 호수와 연안을 오염시키고 농토도 오염시킨다. 그리고 자연 순환의 원리에 따라 다시 우리의 입속으로 유입된다.

우리는 단 하나의 실수를 행하지만 결과적으로 여러 형태의 영향을 자연과 인간에 주고 있는 셈이다.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면서 진드기의 수가 늘어나고 도시의 평균 기온이 2도 정도 상승하며 강수량이 증가했다. 이런 서식환경은 진드기 개체 군 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이로서 라임병이 활발해진다. 특히나 도톨이가 풍작일수록 라임병이 활발해진다며 인간의 건강은 도토리에 달려 있다는 작가의 비약이 재밌기도하다.

한타바이러스 장에서는 책에서는 나와 있지 않지만 최초로 질병이 발병한 한국의 한탄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한타바이러스폐즈후군은 희생자가 자신의 체액에 익사당하게 되는 치명적인 감염질환이라라는 저자의 표현이 재밌다.

책은 인간이 걸리는 여러가지 전염병들이 원인이 결국은 생태와 환경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런 생태와 환경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라고 말한다. 책은 17년 전 쓰여진 책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창궐하는 지금을 예견이라도 한듯 책은 바라본다.

책에 담겨져 있는 6가지 종 모두에 사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같은 원인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현재 우리는 '닫힌 세계'를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은 '전염병'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인류는 스페인 독감을 포함한 여러 차례의 전염병을 앓고도 다시 세계화의 문을 두드렸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경제적 혹은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 이다. 인간 사회는 현재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두고 있다. 자본주의는 아무리 선해진다 하더라도 환경과 건강을 위해 세계질서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 닫힌 세계, 플랫폼 산업과 바이오 산업의 대두 등도 따지고 보자면 자본에 의한 논리로만 설명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끊임 없이 소비하며, 생산해낸다. 이런 반성없는 인간의 욕구의 끝은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지금 이순간에도 전세계를 휩쓰는 바이러스에 대해, '우한 바이러스'이다라는 둥, '중국 바이러스'라는 둥, ', '바이오, 플랫폼 기업 주가 폭등' 이라는 둥. '과일박쥐 때문이라는 둥' 모든 상황을 경제와 정치로만 판단한다. 하지만 틀렸다. 모든 건 우리 인간들 때문이다. 더이상 잘못을 외부에서 찾아서는 안된다. 결국 모든 인간이 병에 걸려 멸종하고 '돈'만 남는 상황이 되지 않길 바란다면, 이 세상을 이어 살아갈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줘야 할 노력과 반성을 꾸준히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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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셔스 - 내 인생을 바꾸는 힘
문성림 지음 / 미디어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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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제이콥스 헨델의 '오늘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를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감정은 지금 주어진 환경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지적 능력과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생각하는 뇌는 우리에게 어떻게 반응하고 싶은지 고민할 시간을 주지만 감정의 뇌는 오로지 반응할 뿐이다.'

우리가 감정은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고, 생각은 머리에서 떠오른다고 믿지만 사실은 두 가지 모두가 두뇌의 다른 작용일 뿐이다. 모두가 '뇌'라는 기관에서 만들어낸다. 오늘 아침에 어떤 옷을 입을지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의지가 결정하지만, 오늘 내가 기분이 좋을지 나쁠지는 생각이 결정하지 않는다. 이는 감정의 몫이다. 얼핏 생각은 능동적이고 감정은 수동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자면, 우리의 두뇌를 지속적으로 능동적인 생각으로 가득 채울수만은 없다. 우리는 감정과 생각을 반갈아가며 반응하고, 그중에 다수를 차지 하는 것은 어떻게 보자면 감정일지도 모른다.

우울한 생각을 잠시 할 수는 있지만, 아침 눈을 뜨고 잠들때까지 우울한 생각을 억지로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울한 감정은 내가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며 하루종일 지속된다. 책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의식과 잠재의식이라고 분류하는 의식의 세계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능동적으로 살아가고 있고 모두 의식하고 행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우리는 저자의 말처럼 1차의식과 2차의식중 1차의식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 즉,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한 정확한 인지가 없이 자동적으로 살아가도록 놔두는 것이다.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습관처럼 일어나고 습관처럼 씻고 습관처럼 일하고 잠에 들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자동화 시스템'에 맡겨둔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무의식이라는 또다른 나에게 맡겨 두고 살아간다. 우리가 능동적인 의지를 갖지 않더라도 저절로 뛰는 심장이나 소화, 혈액의 움직임처럼 그저 우리의 뇌는 저절로 작동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심장이나 소화기관과는 다르게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반복적인 습관에 따라 그 능력을 상실하고 저절로 행할 뿐이다. 책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제대로 눈치 챈 적 없는 이 무의식이 그동안 생리적 현상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곳을 지배하고 있다.

가끔씩 정신을 번뜩 차리고 보면 잠깐 생각하는 그 순간동안만 의식이 들어왔다가 나간다. 우리를 조정하고 있는 것은 진짜 '나'가 아니라 무의식의 나라는 이야기다. 오랜시간 반복된 일을 계속하다 보면, 자아가 분리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반복적인 육체 노동이나 운전 혹은 런닝머신 위의 운동처럼 최초 의식을 두고 하던 일이 지속되고 반복되면 우리의 몸은 저절로 움직이고 우리의 의식은 몸과 별개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있다. 드디어 우리의 신체를 무의식에게 맡겨 둔 것이다. 나를 움직이는 이런 무의식을 경계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나에게 좋은 무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반복이 있어야 한다. 그런 반복으로 인해 좋은 습관이 무의식이 되면 나를 저절로 움직여주는 자동화시스템은 내가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 미 국립과학재단은 보통 사람들은 하루에 많게는 6만가지 생각까지 하고 산다고 하고 그중 80%는 부정적인 생각이고 95%는 전날 했던 생각의 반복이라는 조사를 발표했다고 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입하는 반복적인 학습이 사실은 '부정적인 것들'이다. 때문에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를 그 방향으로 이끈다. 이런 이유로 세계의 부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 5%가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부정적인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매커니즘을 내려놓고 긍정적인 매커니즘을 심어두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조종할 수 없다. 앞서 말한데로 생각은 아주 짧은 순간만 담당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긍정적인 암시를 꾸준하게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앞서 말한 '감정'이다. 감정은 생각과 다르게 하루 종일 지속이 가능하고 뚜렷하지 않은 여러가지의 긍정적인 생각을 양산해 내는 효과를 준다.

책은 내가 좋아하는 무의식과 의식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책에서는 무의식과 의식에 대한 저자가 그 동안 연구하고 찾아왔던 여러가지 근거를 나열해 놓는다. 읽으면서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무의식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하루에 긍정적인 감정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한다. 책을 읽고 나의 생각과 지식이 다시금 체계를 갖게 되는 느낌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돈'과 '행복' 등의 긍정적인 요소를 얻고자하면서 항상 그걸 얻을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한다. 아이러니하다. 이 책을 읽고서 그런 걸 얻기 위한 고민과 걱정 또한 그런 것들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긍정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는 더 긍정적인 감정과 사고를 갖은 사람으로 거듭나야한다. 그것이 우리도 모르게 저절로 성공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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