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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ㅣ Art & Classic 시리즈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유보라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2월
평점 :
초등학교 교실에 '갈매기의 꿈'과 더불어 이 책이 꽂혀 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어렴풋 그 두 권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내용은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간이 꽤나 지나 나는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저 자주 언급되는 사막 여우나 장미의 이야기 정도만 남겨두고 모두 잊어 버리고 있어다. 기껏해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리고 아기 염소를 그리는 방식을 작은 상자로 표현했다는 기특함만 갖고 있다면 수수함을 잊지 않은 어른이 될 거라는 독특한 망상으로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다시 읽게된 '어린왕자', 어린왕자는 사실 많은 작가들의 번역 작품들이 있다. 이 책은 '유보라'님의 따듯한 그림 감성으로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 책이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어린왕자의 엄청난 팬이다. 어린왕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국어 본 뿐만아니라, 영어나 일본어로 번역된 책들까지 섭렵했다. 그렇게 어린왕자에 빠져 들었던 친구를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 깊은 감성에는 '나도 이미 읽었는데 별 거 없었다'라는 식의 오만이 스며들어 있었다.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자의 문자를 읽어 넘어갔던 행위가 나에게는 거기서 무엇을 얻었는가 보다 중요했던 모양이다. 시간이 한 참이나 지나고 나서 종종 '어린왕자'의 문구를 인용하는 다른 책들을 만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생텍쥐페리'라는 나에게 적절하지 못한 평가를 받았던 작가의 삶을 인용하는 글들을 접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적당히 유치한 동화 같은 이야기였던 이 '어린왕자'라는 소설을 왜 이토록 사람들은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어린왕자의 첫 페이지를 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확한 설명이 없이 이야기는 진행한다. 1939년 2차세계 대전 발발초기 예비역이였던 생텍쥐페리는 공군 비행기 조종사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녹여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일 것이다. 최근 읽었던 '먼바다'를 비롯해 주인공들은 그 소설의 만물을 창조하는 창조주 같은 작가로 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어떤 사소한 역할을 하는 조연과 상황, 사물 모두가 작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당연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불착륙한 사막 어느 가운데에서 어린왕자를 만난다. 어린왕자가 자기 별에서 지구로 내려오면서 주인공을 만나고 난 뒤 부터는 이야기의 흐름은 어린왕자로 옮겨진다.
어린왕자는 지구를 포함한 여러가지 '별'들을 여행한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저 동화같은 이 이야기에는 사실 어른들의 삶을 투영하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오만에 가득찬 사람과 명령에 복종만 하는 사람을 포함, 술에 빠져 잊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며 어린왕자는 그들을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사실 그가 독특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지만, 어른인 내가 본 그들은 전혀 독특하지 않았다. 그들은 곧 우리이며, 모두 그런 모습을 하고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에 중요함'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이 전반적인 스토리 라인에 적당히 설득되었다.
나는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에 속한다.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치부해버린다. 어떤 사건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는 정확한 근거나 자료가 있어야 '진실'이라고 판단하고 누군가를 오만하게 대하기도 하고, 스스로 자책하기도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이루고 싶어한다. 이런 오만들과 많은 감정들이 이 짧은 소설 안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동화'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얼핏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이야기가 유명해지자 저자인 생텍쥐페리는 그 것 자체를 슬퍼했다고 한다. 어떤 틀에 벗어나야한다는 관념을 심어주고자 시작한 간단한 예시가 또 다른 틀이 되어 우리 어린들의 관념 속에 녹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어제는 우연히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을 최초 공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보게 되었다. 최고의 프리젠테이션이라며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를 갖는 그런 프리젠테이션을 다시보니, 무감각했다. 'MP3플레이어'와 '전화기' '인터넷 디바이스'를 서로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프리젠테이션에서 우리는 그 다음에 소개할 애플의 디바이스가 '그 모든게 되는 아이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치 식스센스의 결말을 알고 영화를 다시보는 것처럼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집게 손으로 사진을 확대하는 모습이나. 지도를 통해 스타벅스의 위치를 확인하고 전화를 연결하는 모습을 보는 당시 참석자들은 환호했다. '왜 환호하는 거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틀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서쪽으로 항해만 하면 인도보다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는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여겨지는 '콜롬버스'를 당시 사람들 중 평가 절하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 앞에서 콜럼버스는 탁자 위에 계란을 하나 두고, 계란을 세워보라고 말한다. 아무도 계란을 세우지 못하자 콜롬버스는 계란의 끝트머리를 깨어 그것을 세운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런 식이면 나도 세울수가 있소!'라고 말한다. 이미 결과를 알고 난 뒤에는 그 참신함은 참신함이 아니라 언제나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이 되어버린다.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막여우'가 말하는 '길들여지는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만하다. TV를 키면 나오는 무의미한 미녀 미남를 질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은 '별'일 뿐이다. 서로가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나를 스치는 수 억개의 별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아무리 먼 거리를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나에 길들여진, 즉 나와 관계 형성이 된 누군가는 다른 별들과 다르다. 살면서 나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 이 자리에서 돌이켜보니, 지금 그들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적당히 잊혀지기도 하고 어쩌다 생각이 나기도 한다.
다만 그들이 세상 밖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면 나는 세상을 바라볼 때, 조금이라도 행복한 표정을 하고 돌아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인연은 제주를 넘어 다국적으로 넓어졌다. 게중에는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나 궁금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과 형성된 관계 속에서 결국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들을 통해서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 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중요함 때문이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