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시크릿 - 어제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한 56가지 마음 훈련법
류창장 지음, 정은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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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우주 만물의 생성 원리로 상호 대응하는 두가지 성질이 있다고 믿었다. 이 두가지 성질은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상호작용하는데 이를 음과 양으로 구분했다. 음과 양은 특별할 것없는 기본적이고 평범한 개념이었다. 마치 해와 달 혹은 겉과 속처럼 상응하는 성질이 구성이 만물에 적용된다는 것을 원리로 했다. 암컷과 수컷, 삶과 죽음, 겉과 속, 해와 달, 낮과 밤 등 우리가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이분법적인 것들부터 시작해서 사람 몸의 오장육부, 생년의 난월 난시까지 그 개념은 점차 넓어지고 포괄적이게 되었다. 우주와 자연 만물에는 음양의 이치가 있다는 것이 이 철학이 갖고 있는 포괄적인 의미가 됐다. 현재의 의미로 확대해 보자면, 부와 빈, 성공과 실패 등의 세속적인 의미에도 적용 가능하다. 그렇다면 상대하는 개념 없이 한 쪽의 것만을 취하는 것은 가능할까. 그것이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기준에도 중요하다. 빈곤한 사람이 없다면 부유한 사람이 탄생할까? 겉이 없다면 속은 존재할까? 애초에 이 질문에는 한가지 오류가 있다. 이분법이란 두가지를 빗대어 기준을 두고 서로를 정의함으로 한가지가 없다면 다른 한가지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행복을 이분법으로 생각하고 음과 양의 구분으로 둔다면 어느 쪽에 속할까? 그게 음이던 양이던 중요하진 않지만 행복의 반대가 불행인 것만은 그것을 정의하는 언어로 봤을 때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인생에 불행을 지워버린다면 행복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자석의 N극과 S극은 상호 그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한쪽에 힘이 강해진다면 다른 한쪽의 힘도 강해지고, 한쪽의 힘이 약해진다면 다른 한쪽의 힘도 약해진다. 결국 불행을 줄이고 싶다면 행복과 불행이 구성하고 있는 행,불행 전체 파이를 줄여야 한다. 공부하는 인내의 시간과 결과 얻어내는 기쁨은 비례한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행동력과 사회적 지위의 성공 여부도 비례한다. 한 쪽의 것을 지우고 반대쪽만 갖겠다는 것은 욕심이고 이것은 동아시아의 주된 철학인 음양설에 극명히 위반된다. 음양설은 동서양을 포함해 가장 오래된 철학 중 하나다. 인간이 수 많은 세월 간, 수많은 사람과 상황으로 직접 경험해오고 시행착오를 겪어왔던 철학이다. 이것을 위반하고 음이나 양 한 쪽을 취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몰상식한 일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무지의 산물이라 이 욕심을 조금만 이용하면 많은 욕심이 붙은 돈을 얻어 낼 수 있다. 쉽고 빠르게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큰 돈을 벌어다 준다. 많이 먹어도 살빼는 방법이나 조금만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는 방법, 급등주를 찾아서 전날 미리 매집을 하는 프로그램 등. 머리는 알면서도 이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행복할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불행을 철저하게 피하고 행복만 취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굳이 내가 말하지 않는다 해도 이미 결과값은 추론가능하다. 정답은 '없다' 불행을 피하고 싶다면 스스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줄여야 하고, 행복을 키우고 싶다면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을 감내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나 열반처럼 행복으로 여겨지는 수행의 정점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해탈이나 열반은 행복을 키우는 방법이 아니라, 불행을 없애는 방법이다. 즉, 행복과 불행 모두를 탐하지 않음으로서 세속에 존재하는 감정을 출렁이는 결박이나 장애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어떤 상황을 마주 하더라도 극하게 기뻐하지도 않고 극하게 슬퍼하지도 않는 초월의 상태를 해탈이라고 하고 이 해탈의 경지의 최고조를 열반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2500년 전 붓다가 발견한 인생의 원리다. 책에 소개된 몇 가지 사례에는 실제로 행복이라고 여겨지는 것 뒤로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보기에 따라 한쪽 부분을 부각해서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음과 양이 모두 존재하는 하나의 현상과 상황에 대해 일부를 극대화시킨다. 그 감정의 출렁거림에 쉽게 자극받는다. 책 표지에는 '어제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한 56가지 마음 훈련법'이라고 적혀 있다. '훈련'이라는 용어는 현대인들에게 쉽게 사용되는 어휘지만 지금 산속이나 오래 전 선인들은 이런 훈련을 '수행'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살면서 불행이라고 판단되는 몇 가지 사건에 틀림없이 직면한다. 또한 행복이라 판단되는 사건에도 틀림없이 직면한다. 하지만 행복함 가운데 불행에 대한 대비는 필연이고, 불행함 가운데 행복이라는 선물이 필연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감정에 의해 왜곡하는 일련의 사건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 어떤 것에 대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왜곡없이 바라보는 마음을 '긍정'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긍정'이라는 단어를 좋은 쪽으로 왜곡해서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긍정'이란, 내가 이미 어쩔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것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음의 영역과 양의 영역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실패하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로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말해준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지만 성공 또한 실패를 이어 낫는다. 실패를 통해 성공을 얻고 생사의 삶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성공은 실패를 낳고, 실패는 또다시 성공을 낳는다. 그 순환고리에 있다. 이렇게 삶의 고와 락이 반복하며 돌도 도는 것을 불교적 용어로 '윤회'라고 부른다. 좋은 일이 있으면 틀림없이 나쁜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틀림없이 좋은 일도 있다. 이미 존재해버린 어떤 사건의 양과 음의 영역을 객관화햐여 중립적으로 바라보고 거기서 양의 영역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기회를 찾아내는 것은 우주의 이치를 유일하게 벗어낼 수 있는 인간의 영역이다.

행복의 시크릿은 그렇다. 우리에게 우주나 외부세계가 주는 일종의 자극에서 벗어나 스스로 상황 속에서 양의 부분에서 기회를 찾고 확장하며 불행이라 여겨지는 사건에 행복을 찾아내고 행복이라 여겨지는 사건에서 불행을 찾아내어 어두운 부분을 인정하며 밝은 부분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신이 창조해낸 만물과 우주에서 유일하게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마음먹기 수행'을 통해 삶을 긍정적이고 밝게 살아가라는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 56가지가 책에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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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4 - 의사의 길 아르테 오리지널 9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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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일본 소설을 읽었다. 예전에는 일본 소설을 꽤 좋아했는데 요즘은 많이 읽지 않는 듯 하다. '신의 카르테'는 나쓰카와 소스케 작가의 시리즈 소설이다. '카르테'는 의사의 진료 기록부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다.작가인 그는 현직 의사로 일하고 있으며 자신의 배경을 토대로 소설을 써내려 갔다. 이 책은 1, 2, 3권이 시리즈로 출간 되었다가 0권에 이어 4권이 나온 것이다. 시리즈 물이라고 하더라도 앞 전 시리즈를 몰랐다고 이해가 되지 않거나 하진 않는다. 이 책 한권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24시간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혼조 병원의 내과의사 구리하라 이치토의 이야기는 어쩌면 작가인 나쓰카와 소스케의 많은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요즘과 같이 '워라벨'이 강조되고 있는 시기 자신의 직업에 좋은 점을 찾고 애정을 갖는 다는 것은 부럽고도 존경해야하는 일이기 도하다.

책은 단순한 흥미로운 이야깃 거리라고 치부하기에 삶의 많은 부분을 가르쳐준다. 소설 속에 있는 글 중에는 담아두고 싶은 글귀가 꽤 많다. '가야할 갈이 명확하다면 비통함에 젖어 멍하니 서 있을 것이 아니라 우선은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리라.' 책의 120 페이지에 있는 글과 더불어 너무 많이 아는 탓에 필요 이상으로 허무하게 생각한다는 글... 넘어가는 페이를 붙잡고 한참을 읽었던 부분이다. 사실 살다보면 너무 뻔하게 흘러가는 일을 알면서 맞닥뜨리는 경우가 있다. 걸어갈 길이 불 속임을 알면서 한발 한발을 내딪는 일들은 더 많이 아는 이들이 선택하는 바보 같은 일들이다.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예전 리쌍의 노래 '광대'의 가사를 보면 '저 순진한 사랑의 초보, 애인있는 남자와 눈맞어, 사랑에 빠져, 슬픔을 기다리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가 죽음과 삶과 희노애락의 다음 순서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아는 이들이 보기에 허무하기 짝이 없는 '웃음'이나 '눈물'을 흘리고 사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주할 미래보다 더 중요한 건 맞이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많이 아는 것 보다는 조금은 덜 아는 편이 낫은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다리는 비통함은 완전하게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한 걸음과 다음 한 걸음을 떼어 움직여야 한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슬픔이거나 죽음이거나 비통함이라 할지라도 눈을 뜨면 보이는 미래를 억지로 가려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다보면 목적지라는 순간보다 과정이라는 연속에서 더 많은 보상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바라던 대로 가족들과 집에서 임종을 맞이한 후타쓰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담담하게 맞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건, 죽음보다 그 걸음과 걸음에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지 않을가 생각한다.

요즘 의사라고 하면 그 인기과로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꼽는다고 한다. 병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사람으로의 의사를 어떤 이들은 미용을 위해 일하는 미용서비스 업종 종사자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또한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분명한 '선의' 행동임으로 비하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육체적인 질병보다 사회적인 시선이나 관념에 의해 상처를 더 받는 법이니까. 어쨌건 어떤 의사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분명 누군가의 상쳐나 질병에 환자만큼의 고민을 하게 된다. 책에는 자신의 인생만큼이나 환자의 인생을 관찰하는 주인공이자 작가 나스카와 소스케의 시선이 엿보인다. 얼마 전, 읽었던 골든아워가 문뜩 문뜩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물론 문체나 분위기는 사뭇다르지만 어쩌다보니 의사의 글들을 자주 읽게 되는데, 이 책을 포함하여 의사의 글이 차갑고 투박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되려 읽기 편하고 문체가 좋은 듯 하다. 시간이 나면 관련 드라마와 다른 책도 찾아 봐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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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의 알고리즘 - 잘될 운명으로 가는
정회도 지음 / 소울소사이어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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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된 이야기는 어느정도 진실일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도무지 믿기 힘든 현상들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꼭 역사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불가나 성경에서 또한 의미가 모호하거나 믿기 힘든 일들이 자주 나오곤한다. 이런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고대에서 현대로 오면서 점점 줄어든다. 그 이유는 기이한 현상 자체가 줄어 들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기록의 방식의 변화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특별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오랫동안 전하기 위해서 특히 '글'이라는 도구가 없던 시기에는 '말'과 '기억'이 큰 역할을 해야 했다. '곰을 숭배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의 전쟁에서 곰 부족이 통일하고 고조선이 되었다.'로 단군신화를 해석하자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로써 전해지지 않는다면 역사가 아니게 된다. 누군가에게 전해지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스토리텔링과 비유법이다.

기록은 기억에서 말로, 글로 그리고 영상으로 많이 변해오고 있다. 가장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단은 영상을 저장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없던 시기 사람들은 자신들의 뿌리에 대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든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고대신화'들이 탄생했다고 믿는다. 물론 종교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는 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우리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어떤 현상이나 일들에 대해서 모호한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대게 미신으로 치부하던 일들이 뒤늦게 과학으로 풀어지는 것들을 보면 과거인들의 지혜가 과학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많이 넓어져 있다는 것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과거에는 특이하게 느끼곤 하던 명상의 효과나 잠재의식에 관한 이야기, 양자역학과 같은 이야기는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지금은 과학의 범주에서 새로운 발견들이 되어지고 있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한 영어단어는 'fortune'이다. 이는 행운이나 운을 이야기하는 영어 단어이다. 그 뿌리를 살펴보자면 force라고 하는 '힘'에서 찾을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사람의 '운'은 인간이 거역하기 힘든 어떤 커다른 힘(force)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그런 모호한 말은 운(fortune) 뿐만 아니라 기(energy)에서도 나온다. 분명 명확하게 존재한다고 느끼는 어떤 존재에 대해 우리는 정의를 하지 못한채 오랫동안 '운' 혹은 '기'라는 표현을 써왔다. 하지만 이는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미래에서 온 아버지의 메시지를 과학은 '중력(gravity)'말하고 딸은 유령(ghost)라고 말한다. 인터스텔라는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하지만 유령이라는 존재나 현상을 과학적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유령은 없다!' 따위의 이야기를 상대성이론으로 풀어낸다니 결국 우리가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단지 미지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정회도 작가 님의 글이다. 그는 명확하게 운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마치 그것이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알게 모르게 찾아오고 사라지지만 결국 내가 이전에 살펴봤던 영상에 상호 영향을 주는 것처럼 운에도 알고리즘이 작용한다고 그는 말한다. 과거에 봤던 영상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추천 영상이 되고, 이를 통해 미래에 보게 될 영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것이 운의 알고리즘이다.

그를 잘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영상을 우연하게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그는 멀끔하게 잘 생긴 내 또래의 사람처럼 보였다. 어쩐지 그를 다시 책으로 만난 건 우연을 가장한 인연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끔 타로카드에 대해 실험을 하는 영상들이 있다. 얼마나 이 타로라는 것이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밝히는 목적의 영상들이 있다. 나는 지금도 별자리나 타로 혹은 사주팔자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믿지 않는 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영역이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타로카드를 뽑고 전혀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양자역학에 의하면 관찰자에 의해서 결과 값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즉, 실험자가 미립자를 입자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입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바라보지 않으면 물결의 모습 즉 파동이 되는 관찰자 효과처럼 우리의 미래는 유연하게 달라지는 현상이다.

책에서는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앞서 말한 운(fortune) 즉,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힘(force)와 비슷한데, 대략 운명과도 같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음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지 않는 것은 나태함이며,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평온함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을 용기라고 한다고 한다. 이를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하는데, 우리는 반대로 바꿀 수 없는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지 않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은 가독성이 좋아 쉽게 읽힌다.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 대기업이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단체일 수록 이런 운에 대한 영향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쩐지 우리가 모르는 어떤 세계에 대한 이해를 위해 마음의 문을 열어놓을 필요는 반드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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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당연함을 버리다 - 고지마치중학교의 학교개혁 프로젝트
구도 유이치 지음, 정문주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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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기간 반복하다 보면 맹목적으로 당연한 일들이 생기곤 한다. 으레하던 일이라 의심할 여지 없이 지속하는 일들이 그렇다. 가령 위험한 무기를 다루는 군인에게 필요했던 강력하게 필요한 규율은 내무 부조리가 되어 이유를 알 수 없는 문화를 만들어 내곤 한다. 학교 선후배 혹은 직장 선후배 간에 있는 의미를 상실한 군기 문화나 학교나 군대의 부조리가 그렇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목적전도 현상들이 많다. 이는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교육활동은 학교가 달성해야 할 본래의 목적을 잃은 것 같다고 저자 '고도 유이치'는 말한다. 그는 고지마치 중학교 교장으로 중간고사 기말고사 폐지나 고정 담임제 폐지, 숙제 폐지 등 우리가 듣기에도 파격적인 학교 개혁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바로 '본래의 목적'인 본질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본질을 잃어버린 채 무의미한 반복만 남은 것들을 마주하곤 한다.

영어 단어 100번 씩 쓰기나 문제집 2장 풀어오기 등 본래 목적과 전혀 상관없이 과정의 동작이 그저 목적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전도현상을 마주하곤 한다. 학원을 가는 아이의 목적은 '점수향상'에 있고 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목적은 '사회에 나가서 더 잘 살기 위해'다. 학교는 의미 없는 숙제와 규율을 지키도록 강요하고 잘하는 이와 못하는 이를 나눠 열등감과 우월감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군대의 본질은 국가나 지역의 방위나 전투 수행을 목적으로 한다. 요즘 '여성징병제' 같은 군에 대한 이슈가 한창이다. '여성 징병제'를 찬성한다거나 반대한다거나의 정치적 견해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징병'에 대한 근거로 '남자만 군대를 간다'는 형평성을 든다면 그것은 본질을 벗어는 행위다.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군대 조직을 이용하는 일은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고 본질에서 벗어난 행위가 모여있으면 사실상 무의미한 것들이 된다.

사람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해야할 의사가 본질을 잃어버리면 돈을 더 벌기 위한 과잉 진료가 상식인 나라가 되어 버리고 치안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경찰이 본질을 잃어버리고 돈을 더 벌기 위해 취업을 목적으로 경찰직을 선택한다면 경찰의 부패는 치안 불안정이되고 만다. 군의 존재의 목적은 방위와 전투 수행의 최적화이고 경찰의 본질은 치안 유지이며 선생의 본질은 인재 양성이고 강사의 본질은 학력신장이다. 사회 전반이 본질에서 벗어나면서 세계 최강국에서 자리를 내어 놓고 망조의 역사를 걸었던 '청나라'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청나라의 주력군이던 팔기는 임관 후에 토지 소유를 받고 1년을 먹을 식량과 더불이 매월 용돈을 지급받았다. 그렇게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군임기나 채우려는 군인들이 많아지던 청나라 군인들은 결국 교만해지고 사치가 심해지기 시작하며 안위한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이로 건륭 중렵에 이르러서는 군기가 해이해져 제기능을 담당하지 못하는 지경이 왔다.

보고체계는 이미 본질을 상실하여 군향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된 청나라 군은 지휘관들이 사병의 수를 허위로 보고 하기 시작했고 해군 전력증강을 위해 들어가야 할 병선 축조의 수를 조작하여 그 비용을 착복하는 일도 일어났다. 그렇게 청나라는 비교적 훌륭한 경제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군내부의 재정부족으로 군향지급이 밀리기 시작하고 병사들은 훈련을 빠지기 일수였으며 훈련을 빠진 대신에 장사를 하거나 무기를 팔아 호구를 해결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본질을 상실한 군인들이 방위를 담당하니 17세기까지 만만하게 여겼던 일본의 침략에도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지만, 본질을 잃은 건 군대 뿐만 아니라, 정치를 비롯해 사회전반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후 최강국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던 청나라는 영국, 프랑스, 심지어 일본과의 전쟁에서도 어김없이 지고 만다.

외부에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것은 분명하게 '군사력'이다. 내부적으로 강력한 힘을 행사 할 수 있는 것은 '경제력'이다. 그리고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보호하고 육성하여 미래의 강력한 힘이 되는 것은 '교육'이다. 이런 교육은 반드시 '본질'에서 벗어나선 안된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와 같은 전체주의 시대, 그것도 일본에서 사용되던 인사 방법이 한국에서 본질을 상실하고 의미없이 반복하던 시기가 있었다. 머리의 길이는 0.6mm를 유지해야 하고 단순히 외워야 할 '암기처리대상'이 된 역사나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외국어 공부' 따위가 그렇다. 이 책은 결국 '교육'의 본질에 맞게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 할 뿐, 엄청난 실험적인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진 않다. 책은 꽤 얇다.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본질'을 중요시 해야 한다는 나의 철학과 맞닿아 교육 이외로도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본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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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 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성과 용기를 최후까지 지켜 낸 201인의 이야기
피에로 말베치.조반니 피렐리 엮음, 임희연 옮김 / 올드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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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꼭 알아야 할 역사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평범한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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