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와 융 -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두 영성가의 가르침
미구엘 세라노 지음, 박광자.이미선 옮김 / BOOKULOVE(북유럽)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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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성경 신약성서 중,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을 기록한 복음서들이다. 성경은 예수가 직접 집필한 서적이 아니다. '논어' 또한 공자의 저서가 아니다. '반야심경' 또한 붓다의 글이 아니며 소크라테스도 저서를 남긴 바가 없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학문과 사상은 제자들과의 단체 작업을 통해 이뤄졌고 503권의 저서가 알려져 있다. '데미안'이나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등의 저서를 갖고 있는 '헤르만 헤세'와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의 이야기 또한 '그들 스스로'가 아닌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책의 저자는 '미구엘 세라노'로 칠레 출신의 작가이다. 그는 외교관, 정치가로 일을 하며 독일과 스위스를 여행하는 중 헤세와 융을 만난다. 두 거장을 그들의 인생을 마무리할 노년 쯤에 짧게 그들을 만나며 나누었던 이야기를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동양(인도)'와 '서양(유럽)'의 사상에 대해 '남미인'이 시선은 헤세와 융의 이야기를 제3의 시선이 담아내는 것처럼 객관적이어 보이고 신비로워 보인다. 인간의 내면에 대해 깊게 고민하던 두 거장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서는 짧게나마 그들의 인생을 정리한다. 노년에 무르이은 그들의 철학이 비춰지기도 했다. 이 둘을 이야기 함에 있어 '동양철학'을 빼 놓을 수 없다. 서양의 천재들이 항상 동양의 고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동양의 철학의 깊이가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칼 융'의 '인간 무의식'에 관한 연구는 주역의 8괘의 영향을 꽤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치 '진화론'이 당시 지식인 사이에 상식과 같은 이론으로 보편화되어가 중 '자연선택설'이라는 근거를 통해 '진화론'의 창시자로 알려지게 된 '찰스 다윈'처럼, 동양철학의 모호함 속에서 현대적 해석의 근거인 '동시성의 원리'를 통해 무의식을 관찰해 내는 '칼 융'이 모습이 보인다.

어떠한 우연의 일치가 심리적, 현실적으로 변화를 맞이하는 시기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한 '칼 융'은 우리가 맞이하는 세계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은 연관이 있다고 믿었다. 이런 '동시성의 원리'는 과학과 철학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인간의 생애가 무의식적인 자기실현의 역사며,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이 겉으로 흘러나오며 이처럼 내면과 외면이 변화가 운명이다는 이론은 현대에 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챙김'을 실현해야 할 명분으로 사용되고 있다. 결국 내면을 다스리는 일은 현실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며 이런 일들은 물리학이나 심리학, 운명학 등과 공통분모로 사용된다. 양자역학이 발견됨에 따라 철저하게 분리되어있던 철학과 물리학이 연결되고 여기에 '칼 융'의 '동시성의 원리'가 합하면서, 심리학과 물리학, 철학이 어떤 접점에 이르는 현대과학이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 '칼 융'의 생각과 비슷한 철학을 갖고 있던 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관점이 소개됨으로써 책은 앞서말한, 철학, 물리학, 심리학, 운명학에 이어 문학까지 넓어진다.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사상이 다른 분야에서 서로 각자의 방향으로 확장되는 일을 겪어가는 과정을 그 구심점이 무르 읽을 쯤, 제3의 눈으로 관찰한다는 것은 참으로 오묘한 매력이 있는 일이다. 사유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일을 보자면 어린 시절 내가 좋아하던 '끌어당김의 법칙'이 떠오르곤 한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끌어당김의 법칙'은 사이비취급을 받기도 했다. 사람들이 많은 이유로 열광했던 그 이론의 뿌리에는 '칼 융'의 '동시성의 법칙'이 존재했다. 실제로 '무의식과 정신과학'의 영역의 역사가 짧다. 그런 이유로 '칼 융'과 '프로이드'는 사이비과학의 근거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학이라는 범주가 실재하듯, 인간이 만들어 낸 수 천년의 역사에서 과학의 역할을 대신하던 분야가 철학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철학 또한 실재한다. 우리가 철학의 범주을 과학의 범주로 바꿔 해석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지성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 현상과 사건을 만나게 된다. 양자역학의 중첩상태처럼 우리 과학이 철학의 깊은 부분으로 들어가면서 점차 심오해지기 시작하던 시기 대중들에게 이를 문학으로 설득해내던 헤세의 역할은 분명 크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6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총 1억 5천만 부가 넘게 팔렸다. 현대 문학에서 엄청난 히트작품으로 알려진 '해리포터 시리즈'는 10년 간 총 67개의 언어로 4억부가 팔렸다. 이는 자본과 영화 등의 컨텐츠로의 확대와 더불어 일어난 현상이라는 점을 보자면 '헤르만 헤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실제 '해리포터'가 담고자 하는 이야기를 폄하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판타지'에 비해 헤세가 전 세계로 알리고자 했던 메시지가 분명했던 것 또한 분명하다.

사실, 책은 200쪽이 겨우 넘는 얇은 분량의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데는 상대적으로 오래 걸렸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다. 사유가 없이 문자를 읽어내는 작업은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곱씹고 곱씹으며 겨우 이 책을 마무리하며 인간 세계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스스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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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유튜브를 컨설팅해드립니다 - 초보 크리에이터를 위한 유튜브 완벽 솔루션 탐탐 2
강민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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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을 때, 나는 해외에 있었다. 한국 언론에서 '한류'라고 떠들던 시기, 국내에서 해외활동을 통해 큰 수익을 얻고 있다고 말하는 가수와 배우들은 실제 현지인들은 관심없는 경우가 많았다. 'Korea'라고 물음에 답하면 제일 먼저 들러오는 질문은 'South or North'였다. 여기에 농담으로 'North'라고 대답해도 그 누구도 놀라지 않을만큼 한국의 입지는 크지 않았다. 한국 매체에서 말하는 것보다 한류가 대단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을 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나왔다. 그전까지 '월드스타'니, '한류열풍'이니 했던 이름은 고작해야 '동남아시아'에서나 통용됐지만, '싸이'가 등장하고 심심찮게 현지인들이 강남스타일의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싸이의 얼굴이 찍혀있는 티셔츠를 입고다니는 모습을 보게 됐다. '이게 진짜 한류구나...' 시골 백인 마을의 어떤이들도 싸이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는 그 때부터 '한류'를 체감했다. 이제는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한류의 존재감을 증명한다.

5G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 '스페인', '일본'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 중, '한류'는 특이하게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확산되는 거의 유일한 컨텐츠라고 생각한다. 제국주의의 영향이나 전쟁없이, 컨텐츠만으로 이처럼 '언어'와 '문화'를 수출하는 것을 보면 '헬조선'이라고 부를 것만은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내가 해외에 거주하던 시기는 한류가 확장돼었던 시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한류는 '일부 마니아층'의 취향 정도였다. 하지만 5G시대가 열리면서 한류는 유튜브를 타고 엄청난 속도로 확장해 갔다. 심지어 넷플릭스는 아시아 시장에 대한 투자를 위해 '한국 컨텐츠'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MBC 드라마 '허준'이 방영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 산업이 이처럼 거대 자본에 의해 헐리우드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유튜브는 이제 앞뒤없이 '컨텐츠'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공정한 시장의 판이다.

2020년 11월 기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1위는 유튜브다. 총 622억 분의 시간으로 국민 어플이라고 불리는 카카오톡보다 2.3배가 넘는 숫자다. 3위인 네이버가 190분이니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비대면'에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인간은 지난 수 백 만 년간, 사회성을 발달 시켜 온 동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최적의 방법으로 '외모'를 선택할 만큼, '얼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글과 사진이 인간의 정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그만큼 한정적이다. 실제로 타인의 목소리와 외모가 이성을 선택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는 것 처럼, 우리는 비대면활동으로 해결되지 못한 일부 정서적 안정감과 사회적 유대감을 유튜브로 해결하려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나의 유튜브 구독자는 현재 292명이다. 적으면 적지만, 많으면 많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영상에는 '전기차 리뷰', 'MBTI 검사', 'Read with me', '육아 영상' 혹은 '독후감 낭독' 등 갈피 없는 영상들이 편집없이 무차별적으로 업로드 되어 있기 때문에 292분이나 구독을 해 주신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지금도 나는 유튜브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유튜브 할꺼야'가 3대 허언증으로 불린다지만, 나는 꾸준하게 이 생각을 놓지 않고 있다. 내가 구독하는 채널 중에는 '슈카월드'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경제 유튜브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 채널은 사실상 '인문학'과 '역사'를 포함하여 잡다한 이야기를 하는 곳이었다. 나는 이 채널의 초기 구독자로 현재 150만이 넘는 슈카월드 채널의 구독자가 현저하게 적을 때부터 함께 지켜봤다. 내가 구독하고 응원하는 '인플루언서'의 성장이 눈에 보이는 것을 보며 무언가 적잖은 희열이 느껴졌다. 구독자 150만이나 200만이라고 하는 엄청난 인플루언서들은 어느 순간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평범한 일반인이 커다란 영향력이 생겨가는 과정을 보며 유튜브와 컨텐츠의 힘을 실감하게 됐다.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명은 '이한의 책카페'다. 이름에서 벌써 정체성이 존재한다. 나는 책에 관한 리뷰를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책'이라는 컨텐츠와 '영상'이라는 컨텐츠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책과 같이 정적인 컨텐츠를 재밌게 영상으로 풀어내려면 컨텐츠만큼이나 편집능력도 필수적이다. 나의 영상의 대부분은 편집이 없이 올린 것으로 댓글의 대다수는 '영상 플랫폼에 맞지 않네요'이다. 단순히 독후감을 낭독하는 일로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북튜버'에는 엄청난 구독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비중이 현격하게 적은 편이다. 이에대한 딜레마 때문에, 나의 현재 채널은 '답보상태'다. 이렇게 저렇게 여러 시도를 하면서 자리를 잡고나면 앞서말한 것 처럼, 292명 중 누군가는 자라는 채널의 성장과정을 함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까지는 오히려 구독자가 줄고 있지만 말이다.

책에서 소개한 내용중 필터버블이라는 말이 있다. 알고리즘은 내가 선택하고 좋아했던 것들 위주로 추천한다. 때문에 나와 전혀 다른 새로운 정보를 접하기 보다는 스스로 택했던 주제에 함몰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유튜브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를 켜면 '책에 관한 내용'만 소개되고 인스타그램 친구에는 '책'에 관해 관심 있는 사람들만 나오다보니, 스스로 많은 사람들이 책에 관심이 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생긴다. 특히, 정치적 성향에서도 이와 비슷한다. 자신과 비슷한 정치 성향을 보이는 영상을 보다보니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구독자들끼리 섞이며 결국 5G시대에 맞는 더 넓은 세계관이 아닌, 고립과 순환이 반복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확증편향과 비슷하게 자신이 말하는 것이 세상의 응원에 힘입고 '진리'에 가깝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책'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만 기민할 때, 조금더 넓은 의미에서 유튜브를 진행해야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나는 컨텐츠를 '책'이 아닌, 책이 갖고 있는 여러 이야기 소재를 갖고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냈다.

책은 이미 유튜브를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더 큰 동기부여와 자신감을 주고, 아직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얇은 책 속에 아주 많은 내용들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 완독에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이젠 거의 필수적으로 알아야하는 것이 유튜브가 되었다. 이 책이 알려주는 내용들이 필수적이다. 어린 시절 워드프로세서로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컴퓨터활용'시간에 배우곤 했다. 이제 어쩌면 우리 아이들의 '컴퓨터 활용'시간에는 워드프로세서와 별개로 '유튜브 편집'에 관한 교과 내용이 수록되진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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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 당신의 아이를 바꾸는 문해력
진동섭 지음 / 포르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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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스트키즈'는 중국으로 이사를 간 '제이든 스미스'가 중국인 친구로 부터 따돌림을 받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미국 흑인이 중국 친구들에서 따돌림을 받는 도중 우연하게 '무술'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과정 중 '성룡'을 알게 되며 무술을 배우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빨리 멋있는 무술을 배우고 싶었던 '제이든 스미스'는 '성룡'에게 멋있는 기술을 알려달라고 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룡은 땅에 떨어진 자켓을 줍거나 옷걸이에 거는 하찮은 일만 계속해서 시킨다. 전혀 무술과 상관없는 '자켓 주워, 옷걸이에 거는 행위'만 무한적으로 반복하던 '제이든'은 기어코 '성룡'에게 무술을 배우는 일을 그만 두겠다고 말한다. 그때서야 성룡은 자켓을 주워서 다시 옷걸이에 거는 행위를 바탕으로 멋있는 무술동작을 연결 시킨다. 이런 영화같은 설정은 영화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복싱 학원을 가면 바로 가장 먼저하는 기본 훈련은 '줄넘기'다. 또한 검도를 배우기 위해서는 단순히 목검을 공중에 내려치며 뛰는 단순 동작을 수 십, 수 백 번 반복한다.

이런 본질과 상관없는 행위를 꾸준하게 지속시키는 이유는 결국 피할 수 없는 '기초체력 증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기술이 뛰어난 축구선수라고 하더라도 운동장에 오래 뛸 수 없는 체력을 가진 선수는 주전으로 뛰기 어렵다. 모든 것에는 기초체력이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지속가능'해야하고 진짜 기술을 자유 자제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체력'과 '기본'이다. 정돈되지 않은 자갈밭에 아무리 씨앗을 뿌려 본들, 풍작이 나오지 않는다. 농사의 시작은 '씨앗을 뿌리는 행위'부터가 아니라, '토양'을 관리하는 일 부터 시작한다. 성질 급한 농사꾼이 실패하는 이유는 빠른 수확을 위해 자갈밭 위에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최초 '기반'을 잡는 행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실패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갈밭에 뿌리를 박고 양분을 제대로 빨아들이지 못하는 나무는 매년 꾸준하게 흉작을 만들어 낸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인간에게는 '문해력'부터 시작한다.

우리 아이의 성적 향상을 위해서 비싼 과외와 학원을 보내는 일은 자갈밭에 뿌려진 나무 밑에 영양제를 투여하는 일이다. 애초에 토양이 자갈밭일진데, 무한대로 영양제를 공급할 것이 그 어떤 것이던 지속은 쉽지 않다. 뉴질랜드는 '축복받은 나라'다. 실제로 구글에 'Why New Zealand is' 까지 쓰면 자동검색으로 나오는 문장은 'why new zealand is the best', 'why new zealand is the best place to live' 등이 나온다. 전세계 사람들이 뉴질랜드를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를 나는 '날씨'라고 생각한다. 뉴질랜드의 좋은 날씨는 공짜 초원을 꾸준하게 만들어 낸다. 홍수나 가뭄도 없고 일정하고 좋은 날씨가 꾸준하다. 일교차도 적고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도 적다. 때문에 초원에 방목한 양이나 소 같은 동물들은 스스로 풀을 뜯고 먹는다. 뜯어먹은 자리는 스스로 새로운 풀이 자라난다. 인간에 의한 관리가 필수적인 다른 나라의 낙농업과는 다르게 뉴질랜드의 낙농업은 '자연이 스스로 낙농업'을 하는 '전자동 낙농업 국가'나 다름없다. 이는 저절로 규모있는 농업생산이 가능하게 했고 현재 뉴질랜드를 최고의 복지 국가로 만들었다.

좋은 토양과 날씨는 이처럼, 큰 노력 없이도 성공을 얻게 해준다. 똑같이 배워도 더 빨리 습득하는 능력은 '지능'이 아닌 '문해력'에서 나온다. 이것의 부재는 최초 학업성적으로 확인되지만, 성인이 되서까지 영향을 끼친다. 우리 아이에게 급한대로 학원과 과외를 붙일 것이 아니라, 무엇을 심어도 제대로, 스스로 그리고 쉽게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줘야 한다. 본질과 크게 벗어난 것 같은 '책 읽기' 습관은 앞서 말한 '베스트 키즈'나 '복싱', '검도'와 같이 결국은 가장 뿌리에 있는 본질을 키우는 일이다. 당장 공부를 위해서 문제 하나 더 풀어야 할 시간에 책을 들고 있다고 불안해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TV를 보는 아이에게 '정자세'를 요구하지 않는다. 음악을 들으며 게임을 하는 아이에게 '그게 집중이 되니?'를 묻지 않는다. 하지만 엎드려서 공부하거나 걸으며 공부를 한다면 '그게 머릿속에 들어가니?'라고 말한다. 짬짬이 오랫동안 지속되기 위해선 자신이 가장 편한 습관을 만드는 것이 좋다. 이처럼 짬짬이 시간을 글을 읽게 하는 것은 공부습관에 쉽게 적용되기도 한다. 누워서 책읽고, 엎드려 보고 하는 여러가지 방식이 곧 '책'이 교과서로 바뀌면서 성적이 올라가는 법이다.

또한 독서법은 읽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글을 쓰거나 토론하는 방식이 가장 좋다. 원래 학습법 중에서 효율이 가장 좋은 학습법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지식을 아웃풋하기 위해선 인풋을 자신화해야한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에 인간은 기억을 명확하게 한다. 남이 했던 일을 지켜보는 일보다 자신이 직접 말했던 기억이 조금더 직접적이다. 같은 사물이라도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의 모양이 다 다르듯, 책도 비판적으로 읽을 수도 있고 공감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의 관점을 바꿔가며 읽고 속독과 정독 등 독서법도 다양하게 시도해보면서 여러가지를 체험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모쪼록 책은 몹시 앏고 쉽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요즘처럼 '책'의 인기가 시들해 질 때야 말로, 문해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우리 아이를 위해 일단 부모가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우리 아이의 독서 습관에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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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에디터가 알려주는 책쓰기 기술 - 기획부터 출간까지, 예비저자가 궁금해하는 책쓰기의 모든 것
양춘미 지음 / 카시오페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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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 열렬한 '팬'이 된 적은 거의 없다. 연예인을 포함하여 '스타'가 하는 플랫폼을 찾아다니며 '구독'을 누르고, 영상이나 글을 찾아보는 일도 극히 드물다. 하물며 꼬박, 꼬박 댓글을 달고 영상을 찾아보는 페이지가 있다면 '양춘미' 작가 님의 글과 영상들이다. 따지고 보자면 '꼬박 꼬박'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애매하다. 워낙 정신없이 살고 있어 나름의 지속있지만, 빈도가 많다고 하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개인적으론 최근에 가장 많은 응원을 하고 있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우연히 유튜버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신사임당' 님의 페이지를 보면서다. 글쓰기와 책쓰기에 관한 인터뷰를 하는 영상이었다. 처음 영상을 보고서 얼마 간 잊고 있었다. 이미 한 번 본 영상이지만 알고리즘은 얼마의 시간 뒤에 또 그 영상을 추천 영상으로 올렸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같은 영상을 다시 봤다. 그리고 나서도 잊고 지냈다. 다시 얼마 뒤, 그 영상이 몇 번을 추천영상으로 나오고 몇 번을 돌려보며 '왜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그냥 생각없이 네이버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리고 네이버 인물검색에 있는 유튜브를 들어가 보았다.

영상에서 작가 님은 그냥 출근 준비를 하는 일상을 올렸다.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 하면서 다른 브이로그를 몇 편을 봤다. 그리고 '구독없이' 관련 영상을 몇 차례를 누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의 블로그, 인스타, 유튜브를 모두 구독하고 업로드 되는 영상마다 좋아요를 누루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처음 그녀를 봤던 '신사임당' 님과의 영상과는 다르게 털털하고 유머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유튜브에 댓글을 거의 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영상에 댓글을 갈고 있다. 그녀는 십 수 년 간 출판사 에디터로 일했다. 작가들의 글을 수정하고 출판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직업에서 이제는 '더배우다'의 대표로 글과 교육에 관한 일을 하고 계신다. 어제는 불현듯 인스타그램에 올라 온 '문해력'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됐다. 너무 공감하는 글을 읽었다.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는 내용이었다.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라는 식의 전개가 예상됐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문해력을 확인하는 '테스트'의 글들을 예로들며 '문해력'의 문제가 아니라, '글'이 형편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공문이나 뉴스기사처럼, 무언가 완전한 상태로 존재할 것 같은 성역을 건들 수 있는 일은 '글'에 관한 확실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번, '공문'으로 올라오는 혹은 '공시'로 올라오는 여러 글은 아무리 읽어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보통 '나의 문해력이 잘못됐구나'를 생각한다. 따지고보면 우리 딸 아이가 읽고 있는 '발가벗은 임금님'처럼 모두가 그것이 갖고 있는 '힘'에 의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알고보면 틀릴 수도 있다. 그녀는 '우리 아이의 문해력에는 문제가 없으니, 좋은 글을 많이 읽게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녀의 영상에서는 만약 자신의 후배가 해당 글을 갖고 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너는 이게 무슨뜻인지 이해가 가니?" 여기서 그녀의 내공이 느껴졌다. 짧은 영상을 마무리하고 잠에 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제주도에 있는 대표 서점들에 전화를 걸어 '양춘미 작가 님'의 책이 있는지 물었다. 안타깝게도 제주의 나름(?)대형 서점에서는 그녀의 책이 없다고 했다. 내 책이 출간했을 때도 확인해보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우습기도 하다. 어쩔수 없이 나는 예스24를 들어갔다. 예스24는 내가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서점이다. 하지만 여기는 배송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책은 읽고 싶다는 열정이 타오를 때, 첫장을 펴야 마지막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다.

고민없이 전자책을 구매하고 읽었다. 점심식사를 하면서도 눈을 떼지 않고 책을 완독했다. 감상평은 이렇다. 혹시 '책을 쓰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다른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일단 이 책부터 사고 봐라.' 여기에는 유튜브나 네이버 혹은 미리 겪었던 누군가로부터 찔끔찔끔 배울 수 있는 책쓰기의 거의 모든 자료가 실려있다. 우리 집에는 '책쓰기'와 '글쓰기'에 관한 책이 꽤 많은 편이다. 이 모든 것에도 실제 책과 글을 쓸 수 있는 실천이 바로 가능한 책은 없다. 이 책은 나 또한 여러 실행착오 끝에 얻은 내용들과 그 외로 얻지 못한 다수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지루하지 않고 재밌다. 유튜브에서 그녀의 말투에 익숙해져 있을 쯤, 읽어서 그런지 그 유쾌하고 뼈를 때리는 직설적임이 책에 있었다. 책은 직설적이다. 돌려말하는 법이 없다. 글을 읽으면서, '움찔, 움찔', '내 이야기잖아?'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다수는 '나도 책 한 권 쓰고 싶다'는 막연함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포함하여 다수의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책쓰기 강좌로 수 백에서 수 천 만원이 들어가기도 한다고 한다. 그 강좌가 어쨌거나 일단, 책을 쓰고 싶다면 이 책부터 집어 들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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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당신의 안부가 궁금했던 걸까요
김본부 지음 / 나무야미안해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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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얻게 된 몇 가지 단어로 당신의 마음을 사려 하다니 나의 꿈은 이렇게 큽니다.'

내가 읽는 책들은 대중 없지만, '시'를 많이 읽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쩐지 '시'를 싫어한다기 보다 '시'를 읽을 줄 모르는 것 같다. 책의 한 구절은 짧다. 스무 단어도 되지 않는 짧은 문장을 책의 첫 줄을 펴기도 전에 만났다. 좋은 문장과 좋지 않은 문장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좋은 문장은 한 번만 읽고도 쉽게 이해되는 문장이다. 좋지 않은 문장은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다. 이것은 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좋은 시는 '읽고 또 읽고 다시 읽기'를 통해 곱씹고 사색하게 만든다. 이 책의 중간 중간에는 이런 시들이 굉장히 많다. 커다란 여백의 공간에 한 두 줄만 차지 하는 시 구절은 자신이 넓은 평수를 차지 하고 눌러 앉은 선인인 듯, 여백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분명하게 비여있지만 꽉차 있는 이런 시구절이 짧은 산문 사이 사이에 들어 앉아 있다.

길게 쓰여진 산문을 읽다가 덜컥하고 만나는 짧은 시구절은 도통 넘어가지지 않았다. 아주 어린 시절, 어머니와 대화했던 기억이 난다. 정확하게 어떤 음식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머니는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기 전에 '음미'를 해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어린 나이였다. '음미'라는 말을 알리가 없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코로 음식의 향과 맛을 감상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먹는 것이 배부르게 먹는 것보다 음식을 제대로 먹는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당시 내가 그 말을 이해했을리가 없다. 하지만 가끔 불현듯 떠오르는 그때의 상황과 말은 성인이 되면서 불쑥 불쑥 떠올랐다. 음식을 먹을 때, 음악을 들을 때, 글을 읽을 때, 눈을 감고 제대로 향과 맛을 감상해야한다는 어머니의 말이 불쑥 떠오르는 것이 어쩐지 '시를 읽는 방법'과 같은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함축적인 단어의 힘은 되뇌고 되뇔수록 풍미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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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서는

처음 짓는 표정도

모국어처럼 발음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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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중간 중간 짧게 삽입되어 있는 '시'는 글을 많이 읽어 본의아니게 겉을 훑어 지나가려던 속도감을 낮추게 해주었다.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빠지는 것이 여행의 목적인 것 처럼, 독서의 매력은 빠른 시간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의 것을 흠씬 즐겨야한다. 습관적으로 전투적인 움직임을 보이려던 동공을 붙잡고 제동을 걸어주는 이런 산문과 시는 앞으로 종종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읽어야 할 듯 하다. 책은 '김본부'님의 글이다. 그간 그가 만나왔던 여러 사람들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는 그들의 안부를 궁금해 한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작가'와 그보다 더 낯선 그의 '지인들'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며 나는 내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삶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아무리 무난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도 우리는 부득이하게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의 끝은 좋기도 했고, 나쁘기도 했다.

어쨌건 시간이 이만큼이나 흐른 마당에 그들과의 추억은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당시 '울그락 붉으락'하다가 차갑게 식기도 하고, 칼날처럼 날카로웠다가 다시, 솜처럼 부드러워지기를 반복했던 나의 표정들이 지금 돌이켜 보면 찰라의 순간들이었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왜 그들을 바라보며 그토록 많은 감정을 바꾸며 살았을까.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일로 얼굴을 붉히고 별거 아닌 일로 쉽게 마음을 열기도 했다. 마치 그들과의 관계가 내 인생의 전부라도 되는 것마냥 살았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에 나오는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라는 구절처럼 고의성이란 1도 없는 그저 인생의 흐름에 왜 그들과 이별했는지, 어떻게 그들과 함께하게 됐는지는 기억에 나질 않는다. 정말 사소한 사건 사건과 추억이 스치듯 기억이 날 뿐이다. 책의 어느 한 구절에는 '당신도 누군가가 그리워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식의 짧은 문장이 나온다.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만큼,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일 것이라는 생각은 좀 처럼 하지 않고 살았던 듯 하다.

내 어린 시절은 조금 특이하다. 내 멋대로 인생의 책임을 스스로 진다는 명분을 내세워 갈피없는 시절을 보냈다. 그런 일관성 없는 삶의 방식 덕분에 내 추억과 인맥은 '제주, 서울'을 넘어서 해외의 시골까지 넓어졌다. 한인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뉴질랜드 '랑기오라'라는 작은 마을에서 종교도 없는 내가 왜 '장로회 예배'를 참석해서 현지인과 인사하고 그들의 자녀들과 자기 소개를 나눴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와카타네라는 지역에서 공원에 앉아, 거기서 뛰놀던 초등학생들이랑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연날리기를 같이 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동양인이라곤 거의 찾아보기 힘든 백인마을에 살던 젊은 동양인을 그들은 아마 어렴풋하게라고 기억하게 있을 것이다. 내가 그처럼 완전한 로컬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는지 세상이 만들어낸 흐름이 어떻게 나를 이곳으로 돌이켜 놨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알 수는 없다. 다만 길지 않은 세월을 살며 정말 많은 사람들을 전 세계 이곳 저곳을 다니며 만났다. 나와 함께 시간을 공유한 이들은 각자, 나와의 추억을 갖고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그곳에 남아 이곳 저곳에서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바쁜 일상을 살면서 가끔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들은,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음미'하는 법처럼 느닺없이 찾아온다. 나는 느닺없이 찾아온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지금의 음식과 글, 노래를 음미해본다. 불현듯 떠오른 사람들이 나에게 불쑥 불쑥 찾아왔을 때, 나는 그들과의 기억을 음미하듯 더듬으며 떠올려보곤 한다.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고 있을지...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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