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자유로워지기까지 - 스스로 만족하는 자유로운 삶을 향한 작은 용기
케이엠 지음 / 허밍버드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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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없는 청년의 시대'

국민학교 시절부터 학교는 꾸준히 '장래희망'을 적어 내도록 했다. 기억이 나질 않는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아마 유치원이나 그 이전부터 어른들은 '이 아이'가 사회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 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 과거에도 분명 있긴 했다. TV에서는 꿈을 꾸라는 이야기를 한다. 꿈 없는 세대에 대한 한탄스러운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말 배우는게 5년, 글과 숫자를 배우는게 5년인 고작 10세를 겨우 넘은 아이들에게 20~30년 뒤에 '뭐 먹고 살래?'를 생각해 보라는 것은 참 참을성 없는 어른들의 보챔일 뿐이다. 청소년은 '뭘 하고 먹고 사는지' 보다,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린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쯤, 직업은 대게 현재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가치관은 입으로 뱉고 글로 쓰면서 정의되어 버린다. 어린 나이부터 꾸준하게 직업에 대한 미래를 묻는 것은 그 아이가 커 나갈 미래 사회에 뒤쳐지길 바라는 지도모른다. 현재의 직업이 수 십 년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철지난 좋은 직업에 연연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마 저자와 나의 생각은 상당히 비슷한 듯 하다. '꿈'을 이야기 할 때, 나는 '주체적인 삶'을 항상 이야기했다. 정체성을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은 '직업'을 묻곤 한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주체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집요하게도 '직업으로써의 목표와 꿈, 비전'을 듣고 싶어 한다.

모호한 대답에는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며 직업적인 방향을 끝으로 정해두길 은연 중 바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꿈이 더 모호한 경우가 많다. 제2의 빌게이츠, 스티브잡스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이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하거나, 한국의 워랜버핏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가 '주식매매기법서적'을 구매한다. 정작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는 각각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워렌버핏의 투자법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주식매매기법'이 아니라 '현명한 투자자'라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 원칙과 태도에 대한 책이다. 직업을 꿈으로 착각하면 '본질'을 잃어버리는 이런 아이러니 한 상황이 발생한다. 현재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의 직업은 무엇인가. 현재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직업은 무엇인가. 그들은 현재 특별한 직업을 부를 만한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존경받는다. 그리고 희안하게도 그들을 존경하는 이들의 꿈이란, 이미 그들이 하고 있지 않은 직업들이다. 그 누구도 도서관에 파뭍여 사는 17살의 빌 게이츠를 보며 동경의 눈빛을 보내지 않는다. 그는 누구에도 존경받지 않는 17살과 18살 그리고 19살 등의 평범함들을 쌓아가며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 냈다. 사람들은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한 동경을 가질 뿐이다.

저자는 학창시절 전교1등, 서울대학교 입학, 로스쿨과 대형로펌 입사 등의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다. 세상이 정의내린 정답에 정확한 정답을 내려 그의 진로 또한 모든 이들이 정답으로 내놓는 방향으로 정했다. 그런 그는 '주체적이지 못한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갖기 시작한다. 결국 사회가 정답이라고 하는 직업이 스스로에겐 정답이 아니였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물음에 성실하게 정답을 고민하던 그 이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질문과 고민이 부족했었을 것을 보자면 나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결을 갖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삶의 정답이란 좋은 직업을 갖고 무난한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키우고 평범한 일생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사회가 내린 일반화 된 모범적 삶이 아닌 나에게 꼭 맞는 삶을 찾기 위한 노력은 사실상 아주 오랜 시기부터 학업과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의사가 될텐가.', '변호사가 될텐가', '선생님이 될텐가.' 주어진 목적지를 정해두고 열심히 걸어가도록 채찍질을 하는 것은 소를 타고 있는 사람의 의지이지, 소의 의지는 아니다. 소를 모는 사람은 소에게 의견을 묻지 않는다.

만 스물에 해외로 유학을 떠나고 현지에서 취업을 했다. 괜찮은 조건으로 취업하여 일상을 보내던 중 여러가지 사건으로 현재는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 그의 모습이 상당히 닮아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매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미션을 완성하고 나의 성장과는 상관없이 사업주의 성장을 고민하는 나의 모습에서 나는 주체성을 잃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누군가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고 그에게서 떨어지는 일정 할당량을 나눠 받는 모습에서 초기 계급제 형성 어느 시기와 닮아 있는 것을 보게 됐다. 매달 만근 시 1일씩 발생하는 연차를 모아 겨우 다른 직원들과의 스케줄 조율을 통해 휴가일을 정하고 상사의 허가 하에 겨우 쉴 수 있는 직장인의 삶은 전혀 주체적이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것과 같이 현재까지 존경받아오던 전문직들의 종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전문직들이 독점해 오던 고유한 지식의 소유가 무한대로 공유된다. 전문가들의 영역이 허물어지면서 사람들은 더 댜앙한 분야로 직업형태가 변형되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가령 엄청난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변호사가 있기도 하고 사업을 하고 있는 가수나 연예인들도 쉽게 볼 수 있으며 학교 교사가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다른 이들이 높게 쌓아왔던 지식의 장벽을 쉽게 넘나들며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강사나 작가, 유튜버, 모델 등 본업과 상관없이 여러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나답게 살기 위해선 특정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삶에 대한 가치관을 확실하게 형성해야 한다. 가수겸 프로듀서인 박진영의 꿈이 '가수'였다면, 현재 대한민국 최고 엔터테인먼트 기업인(하이브 논외) JYP는 탄생할 수 없다. 박진영이라는 인물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바뀌어 나갈 방향을 미리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현재도 가수이기도 하고 작곡과 작사를 하기도 하며 후배양성과 경영, 집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철학을 있는 인플루언서'다. 앞으로 이와같은 삶의 형태가 더 보편화 된다고 볼 때, 저자가 앞으로 겪을 경험과 이력에 굉장히 큰 기대가 된다. 물론 나 또한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삶을 살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저자의 삶을 응원하는 것이 곧 나의 삶을 응원하는 모양이 되니 다른 독자들 보다 더 간절하게 그를 응원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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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말하지 않을 것
캐서린 맥켄지 지음, 공민희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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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의 살인 사건... 살해 피해자는 있지만 범인은 없다. 가장 편해야 할 곳이 불편한 곳이 되고,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이 적이 된다. 불쾌한 사건사고는 즐거워야 할 20년 전의 어느 날을 악몽으로 만들었다. 소설은 두껍지만 사건이 일어난 20년 뒤에 3일 간,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년 전 맥알리스터의 가족은 여름 캠프를 떠난다. 여기서 '아만다'라는 한 소녀가 몽둥이를 맞은 채 보트 안에서 발견되는 끔찍한 사건을 겪는다. 소설은 3일 간의 기록을 인물별로 관점을 다르게 하며 서술한다. 중간 중간에는 20년 전, '아만다의 관점'이 들어가며 과거이 현장과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된다. 얽히고 섥혀 있는 문제가 과거와 현재가 교차로 힌트를 주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설의 표지 분위기는 얼핏 스릴러 같지만 추리소설에 가깝다. 분위기와 다르게 유머도 섞여 있다. 모두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몇 번을 뒤집으며 범인을 좁혀 나간다.

소설을 읽은지는 꽤 됐다. 500쪽 가까이 되는 분량 탓에 독서를 시작한지 꽤 시간이 지나 완독을 했다. 제주도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아지면서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가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실시가 되고, 본의 아니게 2~3주간 나 또한 여유 시간이 생겨버렸다. 더할 나위 없이 책읽기 좋은 기회를 맞아 진도를 나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는 날들이 계속 되면서 소설 속 분위기를 현실이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나는 웬만한 책은 '정독'으로 읽는다. 물론 비슷한 분야의 책을 몇 권 읽다보면 저절로 속도가 붙거나 속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가끔 책에서 얻을 정보가 대략적으로 파악 가능한 경우에는 속독으로 넘겨 읽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의 경우는 결코 속독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상황과 감정에 대한 적절한 이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읽기 시작하고 일주일이 넘게 밤마다 읽었던 책이다. 아이들이 잠에 들고나면 겨우 조용해진 시간에 먹먹한 귀를 잠시 진정시키고 몇 장의 책장을 넘기곤 했다.

소설은 너무나 극명한 모순과 반전을 두고 있다. 추리소설의 특성상 이것을 적는 건 맞지 않다. 다만 가까워야 할 이들사이에서 벌어진 사망사건에 그들 모두는 서로 알면서 모르는 척, 모르면서 알면 척. 불완전한 관계를 이어가며 살아간다. 사건이 현장 또한 그렇다. 사망 사건이면서 휴양지이기도 하고 추억이 있으면서 악몽같은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상기시키는 곳이다. 20년이라는 세월 간, 입을 열지 않은 이들을 바라보며 해결되지 않는 오해를 갖고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들은 어쩐지 추리소설의 배경설정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우리의 삶과 같다.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의 속마음을 가장 모르고서 우리는 표면적으로 '그럴거야' 싶은 일들을 '그럴거야' 인지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꼭 살인 사건과 같은 중대한 일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각자 다르고 복잡한 생각을 갖고 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이들이 가장 멀다는 설정이 감정이입 되는 건, 어쩌면 비현실적일 것 같지만 가장 현실적인 설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얼핏 이 20년 전의 하루의 오점만 지우고 난다면 평온하고 평범한 가족들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조부모님이 부모님에게 물려주고 부모님이 다시 5남매에게 물려주기로 한 캠프의 소유에 문제와 추도식 참여를 위해 캠프를 찾아왔다. 20년이 지나 다시 모인 그들은 20년 전의 찜찜한 하루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서로와 서로의 과거와 비밀을 하나씩 들쳐내야 했다. 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쩐지 지난 2018년 개봉한 '완전한 타인'을 생각나게 했다. 말하지 않으면 일상을 이어 갈 가까운 인물들끼리 모여, '진실'을 빙자한 '과거'와 '비밀'을 서로에게 밝혀내며 결국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만들어 낸다. 책의 제목 'I'LL NEVER TELL(절대 말하지 않을 것)'은 추악한 진실을 가려 거짓 평화를 가지는 것에 대한 일종의 '상호합의적 비밀'을 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겠다'는 상호 간의 호의와 불완전하지만 안정적인 평화를 원하는 이들의 암묵적 합의. 책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를 과거 현재를 끌고 다닌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에 와서야 책이 말하고자하는 바가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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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뇌 - 뇌의 신비로움을 알면 인생이 즐거워진다
최성범 지음 / 밥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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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을 보면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에게 언제나 고통을 안겨주는 것은 '파란 하늘'이다. 그는 낮이되면 언제나처럼 고통에 시달리다, 밤이 되면 다시 편안함을 되찾는다. 이런 과정은 이 사람의 평생에 걸쳐 이뤄진다. '파란색'은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요인이고 안타깝게 지구의 시간에서 절반은 파란 마주칠 수 밖에 없다. 그가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주변을 에둘러싸고 있는 파란 환경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 모든 빛을 빨간색이나 노란색으로 바꾸는 노력은 가능하지도 않지만, '파란하늘'을 바라보며 '치유'를 얻는 다른 이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일이다. 그에게 필요한 변화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어야 한다. '프라이밍'이라는 효과가 있다.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무의식에 쌓여있는 정보를 촉진시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학습했던 대부분의 것들은 단기로 우리에게 머물다가 중요도에 따라 잊혀질 것들은 잊혀지고 기억되야 할 것들은 장기기억, 즉 무의식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기억할 수 없지만 무의식에 쌓여간 장기기억은 컴퓨터에 설정된 '기본설정값'처럼 '디폴트(default)'되어 우리가 쉬거나 먹거나 심지어 자고 있는 순간까지도 꾸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냥 싫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들을 따지고 보자면, 숨겨진 장기기억 속에서 기본설정값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태어나기 훨씬 이전 부터 존재했던 '밖'의 환경을 모두 바꾸는 불가능에 에너지를 쏟는 일보다, 스스로 깨우치고 변화가 가능할 수 있는 '안'의 것을 확인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어떤 사건에 의해 그 사람이 '파란색'을 싫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 우리는 그가 당시 처했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지와 인식변화를 통해 그의 취향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가질 수 있다. 어쩌면 단지 어떤 오해나 사소한 일로 인해 그 취향이 결정되었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단순한 오해와 사소한 원인으로 인해 그 사람의 인생 절반은 우울과 고통으로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 세상을 고통으로 살아갈지, 행복으로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세상의 색깔이 '파란빛'이냐, '노란빛'이냐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과 그것을 인지하는 '뇌'의 역할 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를 학습시킨다. 환경은 뇌를 변화시키고, 뇌는 다시 환경을 변화시킨다. 이런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무한대로 돌아가는 영원의 고리에 '환경'과 '뇌' 중 어떤 고리를 먼저 바꿔야 한다. 여기, 주어진 옵션에서 '환경'을 선택하는 바보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좋은 환경과 그것이 학습시키는 건강한 뇌, 다시 건강한 뇌가 만들어가는 좋은 환경의 선순환 무한의 고리를 가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뇌는 곧 환경이 되고, 환경은 곧 뇌가 된다. 이 순환은 하나의 자아가 된다. 이 자아는 집단이 되고 집단이 흘러 온 과정은 '역사'가 된다. 1966년 8월, 텍사스 주 오스틴 텍사스 대학에서 미국역사에 기록될 만한 총기난사 사고가 일어났다. 예비역 해병대원인 찰스 하이트만은 총기 난사 후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 이 사건에서 어머니와 부인을 포함한 15명이 사망하고 31명이 부상을 당하는 결과가 일어났다. 찰스 하이트만의 집을 수사한 경찰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이 청년은 결코 이와 같은 사고를 일으킬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범행 직전에 책상에 유서를 남겨놨는데 이 유서는 '무의식'이 현실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 시켜주는 사건이 되었다. 그는 유서의 마지막에 그의 행동과 극심한 두통에 대한 생물학적인 원인을 밝혀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 후, 그의 시신을 부검한 뒤, 그의 뇌에 작은 종양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이 종양이 압박하고 있던 뇌의 부위는 편도체였다. 편도체는 감정적 반응의 조절을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인간의 역사는 이처럼 어떤 이들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정보가 외부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발현 됐을 것이다. '손'과 '발', '간'과 '위' 또한 우리 신체 중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인간의 역사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뇌'를 아는 것은 단순히 '의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어떤 경이로운 활동일 지도 모른다.

뇌는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기관 중 하나다. 인간의 역사에서 문명의 발달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인간의 문명은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달했다.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 성공이란 그런 이유로 사회성을 기반으로 한다. 인간의 성장은 양보와 갈등해결, 공감 능력을 빠른속도로 배우며 일어난다. 2020년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번지면서 정부와 사회분위기는 외출 자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아이들은 사회적 학습기회를 상실했다. 2017년에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난 4년의 기간 중 절반을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했다. 어떤 연구에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빈도와 지능의 상관관계를 이갸기 하기도 했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과 감정적 추론 능력은 학교나 사적인 인간관계를 비롯해 직장에서도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관리하는 능력은 언어능력을 발달시키고 이는 사회적 소통 능력에도 영향을 준다. 쉽게 말해, 문자와 대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실제, 사회적 인지능력이 발달한 아이들이 학업 성적이 더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조금 자극적인 연구 결과를 인용해보자면 국제의학지인 랜싯은 코로나19에 걸렸다가 회복했던 이들은 이전에 비해 지능지수IQ가 최대 7포인트나 낮아질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과연 이런 환경적 요인이 뇌에 끼치는 영향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마 이런 뇌의 변화는 다시 또 환경에 영향을 끼치며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지도 모른다. 지난해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는 중3 수학을 제외하고 모든 영역에서 기초학력미달 학생 비율이 전년보다 증가했다. 뇌는 환경이고 환경은 뇌다. 우리는 이처럼 외부와 직접 소통하는 유일한 신체을 가지고 있다. 뇌의 신비로움을 알면 환경을 바꿀 수 있고, 환경을 바끌 수 있다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거시적인 생각으로 범위를 확대해 보자면 한 사람의 인생이 모이면 사회와 역사를 바꿀 수 있으니, 과연 '뇌'가 가지고 있는 신비로움은 알면 알 수록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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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읽고 쓰기 - 건강한 미디어 생활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이승화 지음 / 시간여행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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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핵심 역량 4가지를 4C로 표현한다. 의사소통능력(Communication), 협업능력(collarboration), 비판적 사고능력(Critical Thinking), 창의력(Creativity).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차세대 리더에게는 주어진 틀 밖으로 언제든 넘나드는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능력이 필수적이다. 또한 다른 이들의 생각의 틀을 이해하는 의사소통능력과 협업능력이 필수적이기도 하다. 다른 이들의 틀을 인정하고 또한 다른이들의 틀 속에 갖히지 않기 위해선 모순되지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주어진 데이터를 이용하여 짜여진 알고리즘의 결과값을 내어놓는 로봇에게 기대 할 수 없는 '인간다움'이 다음 세대의 리더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력된 데이터를 토대로 원하는 결과 값을 유도해 내는 알고리즘의 한계는 곧 '주체성'의 벽에 부딪친다. 아무리 유능한 프로그래머가 짜놓은 알고리즘일지라도 스스로 데이터를 생성하거나 경험하는 주체성을 가지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직접 행동하고 경험하면서 얻는 AI가 얻지 못할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인간만이 가능한 사고의 영역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런 데이터를 생성하는 일에는 기계가 개입할 수 없다. 책이나, 유튜브, 영화 등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우습게 넘본다는 식의 기사를 접할 때가 많다.

AI가 집필한 소설이 등장하고 가상인물이 유튜브에서 많은 수의 구독자를 소유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앞으로 인간의 영역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한 인간이 몸소 겪었던 경험들에 대한 주체적인 해석과 창의적인 표현을 기계가 흉내내기 어려운 이유도 앞서말한 주체성에 달려 있다.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데이터들 중 합리적인 값이나 표준값을 정확하고 빠르게 기계가 계산해 낼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고 인간이 외부표출한 데이터에 의존한 인공 지능에게는 '침실에서 일어나고 싶지만 일어나지지 않는다'거나 '하고 싶은데 하기 싫은' 인간의 모순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공감해주는 자신과 비슷한 이들에게 이끌리기 마련이다.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기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매력은 영향력을 만들고 영향력은 홍보력을 만들며 홍보력은 수익성을 만들어낸다. 현대 우리가 공짜로 이용하고 있는 SNS나 유튜브, 메신저와 같은 여러 플랫폼들은 이런 인간의 영향력 확대를 보조한다. 그리고 여기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홍보력으로 수익성을 만들어낸다. 앞으로의 세계에 인간미의 매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것을 이는 암시한다.

미디어란 영어로 Media로 중간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한자로 매체 또한 연결을 의미한다. 결국 TV나 책, 잡지, 신문 모두가 인간과 인간을 잇는 가운데 역할일 뿐이다. 스마트폰이 발달하고 난 뒤, 우리는 엄청난 기술적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하지만 이중에 가장 큰 기술적 발전은 미디어의 발전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라는 모든 플랫폼이 미디어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기술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 결국은 이들의 역할 인간과 인간을 잇는 역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때, 앞으로는 다른 인간에게 더 매력적인 인간의 영향력이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을 이겼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알파고가 대전하는 바둑대회를 응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패했던 이세돌 기사는 수많은 광고와 매체 홍보 모델로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알파고는 그 어떠한 상업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세돌 9단은 1995년에 친형을 따라 12살의 어린 나이에 입단을 했다. 어린 나이에 뛰어난 기량을 토대로 2000년 초반에 이미 '불패소년'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그는 공익광고협의회에서 공익광고를 출현하면서 광고 출연료를 받지 않기도 했을 만큼 공익적인 내용에 관심있는 편이기도 했고 대국 이후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함으로써 당시 센세이션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경기 시작되기 전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도 아무런 말이 없는 알파고에게 사람들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은 경기에 패한 이세돌에게 더욱 집중하며 그에게 광고 모델 계약 의사를 밝힌 기업만 십 수개를 우습게 넘어갔다. 경기에서 패한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 상금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얻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이세돌의 승리로 끝났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수익으로 대변 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수익성이 없다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어진 대국과 바로 두어야 할 바둑 돌의 가장 합리적 위치를 결정하는 능력이 아니라 인간다움이었다는 사실을 알바고와 이세돌의 대국에서 배울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인간다움을 개발하고 그것을 가장 적절하게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미디어다. 이런 미디어가 왜곡되거나 변질된다면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가장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일일 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미디어의 역할과 함께 중요한 것을 그것을 파악하는 미디어 문해력이다. 우리는 '배가 있다.'라는 한 문장만 가지고 여러가지 해석을 할 수 있다. '먹는 배가 있다'라고 해석 할 수도 있고, '물 위에 뜨는 배가 있을 수도 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며, '원래보다 2배나 있다'라고 해석 할 수도 있다.

앞과 뒤의 문맥에 따른 편집으로 인해 우리는 아주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것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앞과 뒤에 대한 정확한 문맥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디어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해석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인지해야 한다. 1986년 1월 28일 오전 11시 30분경,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된 지 70여 초만에 폭발했다. 여기에 타고 있던 승무원 7명은 전원 사망했다. 당시 챌린저호에 타고 있던 승무원의 가족의 사진이 신문기사에 실렸던 적이 있다. 이 기사는 사망한 승무원들의 가족에 대한 충격적인 슬픔에 대해 이야기 했다. 가족들의 슬픔의 눈물이 담겨져 있는 이 사실에 대한 정정기사는 반년 이 지난 후에 다시 실렸다. 사진 촬영 시간이 폭발 지후가 아니라 폭발 직전에 찍힌 것으로 가족들이 흘렸던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감격의 눈물이라는 사실이었다. '배가 있다'는 명확한 사실을 기재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자만 오해 가능할 만한 정보를 송출하는 일은 거짓과 다를 바 없다. 앞서말한대로 현대 기술에서 가장 큰 발전은 미디어의 발전이기도 하다. 미디어의 발전에서 우리는 걸러지지 못하는 거짓정보와 오해하기 쉬운 정보를 너무나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앞으로 커져가는 미디어의 역할에서 우리는 미디어 문해력을 키워야 하고 그것을 올바르게 활용하여 미래 세계에 더 큰 영향력과 수익성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포 미디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던 미디어 문맹은 과거 시대 글자를 읽지 못하는 까막눈처럼 정보의 흐름에서 주체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인 객체로 전락하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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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해 쓰지 못한 날
김준녕 지음 / 채륜서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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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렇게 하나의 점이 된다.'

어제는 어제를 살고 오늘은 오늘을 살았다. 그때는 그때를 살았고 지금은 지금을 살았을 뿐이다. 알아차리기 어려운 미묘한 방향이 나를 지금 여기있게 했다. 특별하게 빨리 진행하거나 특별하게 천천히 진행하지도 않았다. 특별하게 모나지도 않았고 특별하게 돌발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주어진 시간과 상황을 차근 차근 밟았을 뿐이다. 차근 차근 한 점을 찍어 왔을 뿐이다. 획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이 기하학적 무늬는 떨어지는 물방울 모양을 하다가 일기를 마무리하는 마침표로 세겨진다.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마저 특별할 것 없는 한 점이 되어 내 일생의 어느 부분에서 지금의 나에게 이어져 있다. 끊어지지 않는 한 이 점은 길에 이어져 언제든 오늘 찍을 점과 만나고 하나가 된다. 벌써 오래된 기억들은 점차 잊혀지고 오늘과 멀어지지만 끊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시에 나온 구절에는 사랑은 서로의 살점을 나눠 먹는 것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서로 한 점도 공유하지 않은 이들이 서로의 살점을 떼어주고 상대의 살점을 건내 받는다. 상대의 살점을 입에 넣고 소화시키면 상대의 일부는 나의 일부가 된다. 다시 나의 살점이 상대의 입에 들어가 소화가 되면 나의 일부는 상대의 일부가 된다.

완전하게 다를 것 같던 이들이 하나씩 서로의 것을 섞어가며 동화되는 과정이 길면 길수록 이것을 분리하기는 쉽지 않다. 기억이 그렇고, 감정이 그렇고, 공간과 시간이 그렇다. 나의 어디를 되새겨봐도 상대의 살점이 툭하고 튀어나온다. 나라고 생각한 부분에는 상대가 있고, 상대라고 생각한 부분에 내가 버젓하게 있다. '길들인다'는 것은 무엇이지?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소설 '어린왕자'에 '길들인다'의 의미를 정의해봤다.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짓는 일이다. 이 세상 아주 많은 것들 중에 서로에게 필요한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4시가 가까워 질수록 점점더 행복해지는 일. 아무런 동작이나 행위없이, 단지 존재가 있고 그것이 나에게 가까워 질수록 행복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의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일... 그런 것에는 항상 상대와 시간과 추억, 공간과 감정, 기억을 공유해야 되는 일이다.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 때문이야.'

나를 구성하는 것은 '지나간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의 살점을 상대에게 떼어주고 그의 것을 받아들였다. 나도 그의 것을 삼키고, 그 또한 나의 것을 삼킨다. 서로가 서로를 소화시키고 서로 동화된다. '지금 아무렇지 않은 걸 보니, 우린 꽤 오래 이별을 준비해 왔나봐요.' 공감되는 글귀에 흘러 내려가던 눈동자가 멈춘다. 다시 위로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하지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영원할 것 같던 순간을 마무리 짓고 나면 다른 의미로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앞선 영원이 그 끝을 보게 됐듯, 다시 찾아 온 영원의 시간도 끝이 날 것을 알고 있다. 처음 찾아 온 그 가짜 영원이라는 착각에 속았듯, 다시 찾아 온 영원이라는 착각에 다시 한 번 속는다. 잊혀지고 잊혀지길 반복하다보면 어쩐지 오랜기간이 찰라의 순간으로 느껴진다. 마치 오늘이 있기 위해 존재했던 필연이었던 것 처럼 어쩌면 만남과 동시에 이별인 오늘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또... 그렇게 하나의 점이 된다.' 어제 찍었던 점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적당히 언제나와 같던 점이 되고 난다. 문장은 그렇게 완성된다. 의미 없는 한 줄을 쓰고도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된다. '하나의 점이 된다'는 문장조차 깊지 않은 생각을 뱉은 '비어있는 문장'이었을 뿐이다. 그것을 채우고 채우는 일을 반복하면 거기에는 의미가 생긴다. 내뱉은 '빈문장'은 속을 알 수 없는 바다와 같기에 가늠하지 못한 깊이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것은 짧고 설명없는 '시'가 가진 매력이다. 말 없는 달을 보고도 이태백은 달을 보며 마음속 생각을 시에 담았다. 달과 노닐던 그에게 달은 지구를 도는 위성이자 늑대인간이 나타난다는 광기의 상징이 아니라 근심을 나누는 대상이자 친구였다. 가끔은 수다쟁이 친구보다 말없는 무생물에 더 깊은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읽어 내려가는 시는 투명하거나 명확한 전달은 아니지만 분명히 비어 있으면서 가슴을 가득 채울하다. 이성과, 친구와, 지인과의 이별을 단 한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언제나 계속 될 것 같던 그 순간들도 한낱 점으로 남겨져 있다. 넘어가는 페이지마다 어렴풋 실루엣처럼 보이는 작가의 감정에 함께 동화되며 나또한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살을 베어 물어 소화하고 있진 않은가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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