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는 책 읽기 - 책벌레 아빠의 쌍둥이 딸 돈 공부
오인환 지음 / 금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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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해 두었다가 ‘아이들이 크면 꼭! 해줘야지!!‘ 했던 좋은 이야기들은 반드시 ‘꼰대어‘가 되어 역효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들에게 성취감, 자유, 즐거움이 동반된 교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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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되는 책 읽기 - 책벌레 아빠의 쌍둥이 딸 돈 공부
오인환 지음 / 금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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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확률과도 같다. 주사위에서 3이 나올 확률처럼 단순하게 계산된다. 단 한 번의 기회로 숫자 3이 나오는 확률은 1/6이다. 굉장히 낮다. 하지만 2번을 던질 수 있다면 확률은 1/3으로 떨어지고 3번을 던질 수 있다면 1/2로 떨어진다. 당신이 성공할 확률은 단순히 기회를 여러 번 가질 수록 100%로 향해 간다. '실패'라는 것은 그렇다.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거기서 멈춰지는 것이다. 단순히 실패의 숫자가 2번과 3번으로 커지는 것은 내가 주사위를 한 번 더 던져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무조건 성공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의 확률이 점차 높아짐을 의미한다. 모든 것은 운이다. '부자가 되는 것' 또한 운이다. '돈'보다 '행복'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돈'은 부정한 것처럼 설명된다. 하지만 가난한 행복과 부유한 행복을 고르라면 고민하지 않고 부유한 행복을 고르겠다. 행복은 '돈'과 연관이 없다는 말은 돈이 없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돈이 있던 없던, 행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일단 돈이 많고 행복하는 것이 현명하다. 돈이 없다는 것을 '행복'을 선택했다는 합리화로 귀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재 자신이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결코 좌절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 주어진 주사위 던지기의 기회는 내가 던질 때마다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경제적 조언이 많다.

'라떼는 말이야~', '너 좋으라고 해주는 말이야~', '내가 해보니까~'

묻지도 않은 했던 말을 두 번씩, 세 번씩한다면, 귀담아 들을 것인가. 때로 누군가의 이야기는 돈주고 사 들으면서, 누구의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찾아 듣는 것과 계속 찾아오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인간에게는 네가지 기본 욕구가 있다. 소속감, 성취감, 자유, 즐거움의 네가지 심리적 욕구다. 다시 욕구라는 것은 무엇을 얻거나 바라는 일이다. 인간은 소속감, 성취감, 자유, 즐거움을 탐하고 얻고자 한다. 여기서 묻지도 않은 조언은 '성취감, 자유, 즐거움'을 해친다. 이것에 '꼰대어'가 듣기 싫은 이유다. 대화의 기본은 '상대'에게 있다. 상대는 대화에 자유도와 성취감, 즐거움을 느낄 때, 흥미와 관심을 보이고 학습을 시작한다. 대화의 기본이 '나'에게 있는 사람의 기여코 교훈을 떠먹이고 말겠다는 이기심에는 성취감도, 자유도, 즐거움도 없다. 여기에 소속감도 사라진다. '혼잣말'이면 충분한 넉두리와 자기 시야에 갇힌 이야기를 듣게 강조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너 좋으라고 해주는 말'과 '라떼는 말이야~'에는 '상대'가 없다. '내 기준으로 생각컨데, 너에게 좋을 것 같다.'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나는 이러 저러 했었다'라는 자기 푸념과 자랑만 있을 뿐이다. 도움이란 필요가 절실한 이에게 적절한 타이밍에 '열쇠'를 쥐어주는 것이다. 나가고 싶지 않은 이에게 문을 열고 등을 등 떠밀거나, 들어오고 싶지 않은 이에게 문을 열고 잡아당기는 '나만의 호의'는 결코 고맙지않다. 되려 불쾌할 뿐이다. 하지만 반드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필요로 하지 않아 할 때, 묻지도 않았을 때, '좋은 말 일 것 같아서....' 해주는 말이 잔소리가 된다면 사람에게는 반항심리가 작동한다. 마침 읽으려고 했던 책을 누군가가 '무조건 오늘 안으로 읽어!'라고 한다면 읽기 싫어지는 것처럼 상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반대로 작동하는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성공한 사람들이 '독서'를 취미로 가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책'은 먼저 떠먹여주지 않는다. 독자가 스스로 펴서 호기심과 흥미를 갖고 읽어 내려간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또하고, 또 하지 않는다. 이미 들었던 이야기라도 내가 다시 필요한 시기에 또 해주기는 한다. 여기에는 성취감과 자유, 즐거움이 함께 한다.

아이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해 두었다가 '아이들이 크면 꼭! 해줘야지!!' 했던 좋은 이야기들은 반드시 '꼰대어'가 되어 역효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들에게 성취감, 자유, 즐거움이 동반된 교훈을 남겨주고 싶다. 그들이 반드시 읽어봤으면 좋겠지만, 들어 올 때가 아닌 시기에 문을 열고 팔을 잡아 당기진 않겠다. 한 해에 250권에서 300권 가량의 책을 읽는다. 벌써 4권의 책이 출간했고 교육업, 무역업, 해외취업, 유통업, 출판, 유학 등 다양한 경험을 미리 했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다. 돈이 가장 중요한 이유와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벌 수 있는지, 또한 만약 그렇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실패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지. '실패'는 어떻게 감내하는지. 아이가 반드시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해주고 그들이 언제 그것을 필요로 하는지 적절한 시기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러기에 그들이 언제든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보물지도를 그려놓고 입을 다물기로 했다. 이 책은 내가 읽었던 좋은 책들을 기반으로 나의 경험과 생각을 섞어 만들어졌다. 나의 이야기가 부족하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책을 직접 읽어 볼 수 있다. 아버지가 딸들에게 해주고 싶은 '가장 이기적인 이야기'들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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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농담
김준녕 지음 / 채륜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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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없이 하는 이야기를 농담이라고 한다. 여기서 '실'이란 '열매'를 뜻한다. 알맹이 없이 주절 주절하는 이야기들을 흔히 '실없는 농담'이라고 한다. '소설가의 농담'은 '김준녕 소설가' 님의 머릿속 이곳 저곳에서 '소설'이 되기를 기다리다 삐져나온 파편들의 모집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야기를 짓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 하나를 완전하게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하는 한마디와 한마디에 숨겨져 있는 그 인물의 배경과 삶이 녹아져 있어야 한다. 그런 인물들이 얽히고 섥히며 새로운 상황을 맞이한다. 그저 허튼 이야기나 해대는 것과는 다르게 소설은 굉장히 많은 생각과 배경지식을 필요로 한다. 김영하 소설가 님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를 해내는 정도를 넘어서, '완전한 세계'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지식들이 필요하다. 실제로 소설가들은 그들이 다루는 여러 분야에 대해 '준전문가' 수준까지 깊게 파고 들어간다. 그런 그들이 소설 한 편을 짓기 위해 떠올리고 공부해야 했던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들은 소설로 남지 못할 때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그의 책은 '사랑에 관해 쓰지 못한 날'을 통해 접했었다. 그 또한 수필이었다. 소설을 쓰다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는 어떠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꾸준히 무언가를 읽고, 무언가를 쓰며, 무언가를 경험해 내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야깃거리가 솓아난다. 나 또한 그렇다. 매일 꾸준하게 일정 분량을 써내는 습관을 보며 누군가는 어떻게 그렇게 매일 다양한 소재로, 여러 이야기를 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단순히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글을 읽고, 누군가로의 감정이입을 하고, 어떤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며 거기에 몰입하다보면 되려, 이야기는 소비할수록 더 샘솟는다. 흔히 말하는 '글쟁이', '이야기꾼'이라는 사람들은 아무리 글 써서 머릿 속 아이디어를 소비시킨다고 해도 더 샘솟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짧은 시와 간단한 산문들이 이 책에 형식없이 소개된다. 아마 이야기 하나를 지으며 떠오르던 수많은 사색이 모두 녹아져 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떠올려 볼 엄두도 내보지 않았던 여러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살면 우리는 생각보다 '누군가'의 입장을 생각해 보지 않는다. 오롯하게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자신의 주장에 매몰되기 쉽상이다. 하지만 소설가는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최대한의 인물의 속과 겉을 모두 이입하고 본다. 그런 이들의 생각을 훔쳐보는 것은 값싸게 자기계발을 해내는 불공정 거래라고 생각한다.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고 그것을 업으로 삼지 않는다. 글로 돈을 벌고 그것으로 생활해 내는 사람에 대해서는 굉장히 호기심이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많지 않은 직업 중 하나다. 탈무드 임마누엘 제 6장 27~29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대들은 땅 위에 큰 보배들을 쌓아 두지 마시오. 땅 위에는 좀이나 녹이 그것들을 잠식하며 도적들이 훔쳐 갑니다. 그 대신 영혼과 의식들에 보배들을 모으시오. 그 곳은 좀이나 녹이 쓸지못하고 도적들이 훔쳐가지도 못합니다. 보배들이 있는 곳에 그대들의 마음 또한 있으니, 참된 보배는 지혜와 지식 뿐입니다.' 우리가 쌓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감가상각이 일어난다. 갑작스럽게 위험에 쳐 해지거나 누군가가 훔쳐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금고보다 강력하게 보배를 간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마음속에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정 부분의 지혜와 지식을 꺼내어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만큼 완전한 사업은 존재하기 힘들다.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또한 누군가의 머릿속에 자신의 것과 비슷한 복제품을 전달하는 일이다.

책의 시작하는 부분에 '주의'가 적혀 있다. '지금부터 당신이 보게될 모든 글은 농담이다. 말 그래도 웃자고 하는 소리다. 웃긴 농담부터 슬픈 농담까지 그 범위는 헤아릴 수 없다. 부탁이니 절대 기억하려하지말고, 담아두려 하지말아 달라. 냇물 흐르듯 당신의 머리에서 흘려 버리길 바란다. 당신이 이 책을 펼친 순간부터 위 내용에 동의했다고 판단하고서 난 마이크를 잡겠다. 만약 기분이 나쁘다면, 뭐 어쩔 수 없다. 허공에 내 욕이라도 시원하게 해라. 값을 치렀으니, 응당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는가.' 이는 책이 시작되면서 적혀 있는 부분인데, 사실상 굉장히 많이 공감했다. 전문가의 인문 혹은 전공 서적이 아닌 이상 작가의 글은 사실상 이렇게 오락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작가는 글 속에 '교훈'이나 '교육적 내용'을 담기보다 읽는 시간 즐거움을 더 추구한다. 어떤 책이라도 마찬가지다. 이 책 외로 나 또한 그렇다. 어떤 책이던 무언가 남기려고 강박을 갖고 읽는 것이 아니라 그저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재밌는 예능프로를 보며 펜과 종이를 들고 장면을 돌려보고 사진찍으며 무언가 남기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자세는 예능 프로를 더 재밌게 만들고 즐기게 만들며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아도 찾아보고 반복해 보게 한다. 결과적으로 어제 들었던 수업내용보다 어제 봤던 예능프로의 내용이 더 기억이 남는 이유는 거기서 출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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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은 PK로 이루어져 있지 시스타북스 Seestarbooks 18
최진영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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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들여다 본다. 부숴지며 파도 하얀 거품이 해얀가로 몰려 들다가 사라진다. 다시 파도가 몰아온다. 크고 때로는 작게 파도가 왔다가 가다. 모래장난을 하는 아이 옆에 엉덩이를 묻히고 앉아서 바다를 바라봤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 꽤 많다. 누군가는 멍하니 사색에 잠기고, 누군가는 친구와 장난치고 있다. 누군가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해결해 보려는 듯 인상을 쓰고 있다. 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바다는 각자에게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때, 그들은 모두 같은 바다를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내가 바라 본 바다는 마냥 즐거운 바다는 아니였다.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할수록 우리는 그것으로 받는 위로나 즐거움, 슬픔이 줄어든다. '슬프다'하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긴 문장보다, 이별 후 먹먹한 가슴으로 바라보는 달이 더 많은 걸 말해 줄 때가 있다. 긴 글을 읽는 것이 그 것만으로 충분히 매력이 있다면, 추상적이고 짧은 글은 다시 그것만으로 매력이 있다. 누군가는 단풍놀이에서 낭만을 느끼고 누군가는 흘러가는 세월을 탓한다. 누군가는 쓸쓸한 감정을 느끼고 누군가는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풍은 말이 없다. 우리가 낭만을 느끼거나, 쓸쓸함을 느끼거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은 '단풍'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 속'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많은 것을 바라본다. 얼굴에 묻은 주름살을 찾아보기도 하고, 뒤에서 쫒아오는 트럭을 차에 달린 사이드미러로 보기도 한다. 손 거울로 화장을 고치기도 하고, 화장실에서는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라곤 평평한 면 위에 발라져 있는 수은일 뿐이다. 우리는 빛을 반사하는 수은을 통해 돌이어 반사되는 피사체를 바라본다. 단풍이 그렇고, 바다가 그렇다. 달이 그렇고 모든 것들이 그렇다. '시'라는 것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프랑스의 시인 '쥘 르나르(Jules Renard)'는 '뱀'이라는 시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겠다.

'너무 길다'

단 두단어로 이루어진 시. 여기에 누군가는 인간의 본성과 유혹에 관한 해석을 내놨고, 누군가는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해석을 하며 누군가는 기독교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죽음에 대한 예찬으로 보기도 했다. 무엇이 정답이었을까. 내가 바라 본 바다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시는 그렇다.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거울은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노래도 이별 후에는 슬프게 들릴때가 있고 슬픈 노래도 즐거운 일에는 신나게 들릴 때가 있다. 시가 하는 역할이란 기본에 충실하여 읽는 이들에게 충분한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다.

무척이나 얇고 얇은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그저 평평한 판대기에 수은이나 발라 놓은 것을 왜 구매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수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도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투영하는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이다. 시가 투영하고 있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한다. 시인에게 만물은 '시'가 된다. 이처럼 시인이 스치고간 흔적들이 주변에 쌓이고 흔한 것들이라는 것에서 시인이 시도했던 투영들이, '시'가 없어도 보이곤 한다. 가끔은 거울도 없이 나의 표정이 느껴지거나 인기척을 알아차릴 때가 있다. 그런 기민한 감성을 만들도록 '시인'은 독자의 감성을 꾸준히 건든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과 일기들로 시인은 독자에게 꾸준한 거울을 들이민다. 거울은 동그라미도 있고 별모양도 있고 달모양도 있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독자의 마음에 이미 존재한다. 거울의 모양과는 상관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곧, 시이고 시는 곧 세상의 모든 것이며 이것은 밖이 아닌 안에 이미 존재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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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
주진오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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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3년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인 20만 명이 포로로 잡혀 갔다. 몽골은 수차례 고려를 침입해 왔음으로 포로의 숫자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다. 당시 고려 인구가 500만 명 안팍으로 추정된다니, 고려인 25명 중 1명 꼴로 원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샘이다. 당시에는 부원배라는 세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원나라의 힘을 등에 업고 출세하여 백성의 땅과 재산을 강탈했다. 고려는 이렇게 몽골에 지배당하며 90년에 가까운 내전 간섭을 받는다. 반면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조선인 사망자는 최대 934명이다. 일본의 기록에는 553명으로 되어 있다. 어째서 우리의 인식에는 몽골에 대한 감정보다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이 훨씬 크게 작동하는 것일까. 간혹 영화나 소설을 보다보면 일본 순사가 군인의 기분에 따라 현장에서 민간 조선인을 즉결처분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유대인 학살을 그렸던 '쉰들러리스트'의 독일군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일제하에서도 원칙적으로 '법치'는 있었다. 무차별적인 학살과 살상이 아닌 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았다. 일제의 불법적 만행에 대해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감정을 우선하고 역사가 그것을 뒷받침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21년에는 이판능이라는 젊은 조선인이 일본의 동경에 돈을 벌기 위해 갔다가 묵고 있는 일본인 하숙집 주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이 말다툼 끝에 이판능은 부엌칼로 하숙집 주인 두 부부를 살해한다. 그리고 길거리로 나와서 1시간 동안 17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이판능은 재판을 받게 됐고, 일본 변호사를 선임한다. 그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 하지만 2심에 와서는 그 형량이 7년 6개월로 감형됐는데, '정신착란'이라는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 오늘날의 '심신미약'과 같은 이유로 그는 무죄감형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일본 사법 역사상 최초로 정신의 문제로 감형된 사건이기도 했다. 완전 무법의 시대일 것 같은 국권피탈의 기간에도 사법은 작동했다. 어린 시절 근대사를 배울 때마다 선생님들은 '일본놈들'이라는 말을 했다. 일본은 '악', 한국은 '선'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당시에는 정확하게 맞게 떨어졌다. 시대가 지나고 내가 믿고 있던 것들이 과연 내가 믿고 싶던 것들이었는지 떠올리게 됐다. 어째서 몽골에 비해, 일본에 대한 역사가 조금 더 극단적인 것일까. 추측컨데 이는 '현재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몇 가지 사례에 대해 아마 몇몇은 굉장히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일본이 나빠야 하는데, 일본을 옹호하는 듯한 글'에 대한 반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비교적 현재와 가까울수록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 혁명을 보면 '승리한 근현대 정치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이 혁명들은 왕권을 몰아낸 의회의 승리다. 이 혁명을 통해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은 의회정치를 통해 근현대 정치사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단순히 따지고 보자면 이 혁명은 우리가 삼국시대 당시 '절대선'으로 여겨지던 '율령반포, 영토확장, 법치주의'의 결과를 만들어낸 '왕권강화'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다. 왕권약화의 끝을 보여주던 서구의 정치역사는 그렇게 '혁명'을 통해 '절대선'으로 바뀌는 듯 했다. 반면 흥선대원군이 세도가문을 몰아내기 위해 했던 여러 정책 중 이부는 우리가 배운 '왕권강화'가 명분이었다. 동아시아 최강대국이던 '청나라'와 떠오르던 신흥강국 '일본'과의 외교능력은 그렇게 왕권을 확립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동학농민운동'이 서구 선진국과 다르게 성공하지 못했던 여러 이유들이다. 역사는 꼭 정해진 '선'과 '악'이 있지 않다. 시기에 따라 지금 '선'으로 보이는 것들이 '악'이 되기도 하고, '악'으로 보이는 것들이 '선'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역사를 이용하려 들기도 한다.

수학과 같이 정해진 정답을 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여지가 항상 존재하는 '역사'라는 분야에서 우리는 흔들거리는 양팔저울을 떠올리곤 한다. 한 쪽으로 쏠리면 다른 한 쪽에 무게를 실어 균형을 맞추고, 다시 다른 한 쪽으로 무게가 쏠리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반대 쪽에 무게를 더해간다. 현대에와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과 '일본'을 적으로 두고자 한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도 그렇다. 안중근과 이봉창, 서재필의 이야기를 보면 이런 역사의 해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믿고 싶은 것에 더 열광하기 마련이다. 1909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안중근에 대해 국내에서는 '사죄사절단'을 구성하여 뤼순까지 가기도 했다. 또한 조의금을 모으고 대대적인 활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독립투사 이봉창 또한 색다른 해석이 있다. 그는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이름을 '기노시타 쇼조'로 바꾸기도 했고 여느 젊은이들과 다를 것없이 술마시고, 영화보고, 골프를 치러 다녔다는 기록이 적지 않다. 서재필 또한 미국으로 국적을 바꾸고 죽을 때까지 '필립 제이슨'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는 정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했던 '독립신문'을 자신의 소유로 등록했고 1898년에는 미국에 돌아가면서 일본에 팔려고 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들이 했던 애국의 마음과 공적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 편향적이게도 사람들은 결과에 맞게 모든 것들을 재해석하려고 시도하는데 있다. 존재도 하지 않던 아프리카 대륙의 '콩산맥'이 20세기초까지 지도에 있었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있지도 않은 산을 올랐다는 사람과 그 풍경을 묘사하는 여행가들의 말들이 꾸준하게 이어지면서 '존재하지 않던 콩산맥'을 부정하는 것은 천치 취급당하기 일수였다. 나도 굉장히 오랜 기간을 입맛에 맞는 역사 이야기를 찾아 다녔다. 조금더 자극적이고 조금더 극적인 이야기들에 흥미가 생기고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과 감정, 삶의 태도가 있었다. 역사는 그렇게 여러가지 이해관계에 자유롭지 못 할수록 시끄러워 지는 법이다. 한국의 현대사 또한 진보와 보수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쓰여지는 역사를 볼 때면, '단 한 권의 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준다.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집필하는 교과서라는 단 한 권의 책에도 참 복잡한 역사가 숨겨져 있다. 정확히 무엇을 알아야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위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교과서 집필' 만큼이나 '독서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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