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보상
신재용 지음 / 홍문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왕권은 신이 주신 것으로 신민은 왕에게 복종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오랫동안 인간 세계에서 지켜오던 정치 이론이다. 굉장히 오랜기간 인간은 공동체 내부에서 생산수단과 권력을 독점하는 집단을 만들었다. 그들은 소수의 권력은 상대적 다수의 인간 집단을 지배했다. 이는 대를 물리고 물려, '혈통'이라는 이름으로 정의가 됐다. 똑같이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인 다를 것 없는 인간들 사이에 계급이라는 추상적 관념이 들어섰다. '이 아무개'가 하는 말을 '무조건 복종하세요'라고 현대 대한민국인들에게 말한다면 당췌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불과 110년 전 까지, 이 땅에는 518년간 27명의 임금이 대를 이어 통치해 왔다. 그들은 '신성불가침'한 존재였다. 이런 존재는 현대에도 세계 곳곳에 있다. 가장 가까운 곳은 '북한'이다. 1984년 생, 젊은 통치자는 철저한 우상화 작업을 통해 '백두혈통'이라는 선전도구를 이용했다. 30대의 젊은 리더는 '국정안정'을 위해, 지도자 지위의 '신성불가침'이 필요했다. 남들과 다른 생물학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정치 선전'을 통해 이뤄졌다.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수공업 위주의 생산은 공장제 기계 공업으로 발전했다. 기존 '땅과 노동력'을 독점하던 계급이 아닌, '자본과 생산설비'를 독점하는 이들이 부를 얻게 된다. 산업혁명이 가속화 될수록 지주와 신흥 자본가 간에는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왕과 지배계층이 독점하던 '농업'의 중요성이 낮아지고 시설과 자본을 가진 '자본가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주의 위상은 급격하게 축소됐다. 젠트리라는 계급은 신흥자본가, 법률가, 의사, 상공업자, 금융업자 등으로 넓어졌다. 사회는 '계급'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다. 되려 하는 일 없이, 국고나 축내는 '지배층'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이에 16~18세기 유럽 전역에서는 그간 '무지했던 사회 구조의 모순'에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났다는 '계몽주의'는 그렇게 탄생했다. 왕이나 귀족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국가 운영 또한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것에 도달했다. 그렇게 왕권을 몰아내고 '의회'가 들어서며 세상은 진일보했다. '알게 된다'는 사실은 그처럼 무섭다. MZ세대가 '공정성'에 그토록 목을 매는 이유는 그간 알지 못하던 사실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불공정은 사실 이제와서 생긴 문제는 아니다. 아주 오랜 기간 우리 사회는 점차 공정한 방향으로 진화해 오고 있었다. 과거보다 더 공정한 방향으로 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에서는 '공정'에 매말라 한다. 이유는 '인터넷 발달'이라고 본다.

'젠더이슈', '세대 간의 이슈', '지역 간의 이슈는 언제나 있어왔다. 심지어 과거보다 더 공정한 방향으로 진보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처럼 '갈등'이 표면적으로 들어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이유는 분명하게 있다. 없었던 일들이 발현된 것도 아닌데, 젊은 층은 굉장히 예민하게 군다. 이유는 앞서 말한대로 '인터넷'의 발전이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젊은 층에는 두 가지 독특한 특징이 발생했다. 하나는 '열등감', 다른 하나는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다. 과거 우리 동네에는 굉장히 유명한 통닭집이 있었다. 통닭 집은 동네에서 유명하여 항상 줄을 서서 주문을 해야 했다. 특별한 소스나 메뉴도 없이 후라이드 치킨을 판매하던 통닭집은 후추가 들어간 소금을 종이에 싸서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통닭은 굉장한 인기였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 둘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점차 통닭집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세상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 치킨이 사실상 기본 튀김 반죽옷을 입힌 닭고기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금액이면 꽤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치킨집으로 사람들은 이동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를 야기한다. 과거에 동네에서 공 좀 차던 누군가는 '축구 신동'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지금은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세계 최고 선수의 플레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

나보다 덜 힘든 일을 하는 누군가의 연봉을 알게 됐고 나와 상관없는 지역에 사는 누군가의 '성공' 소식을 알게 됐다. 사람들은 두가지 감정을 느꼈다. '시기'와 '공정에 대한 의문'이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은 시기를 느꼈다. 이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와 같은 '수저론'을 탄생시켰다. 또한 동시에 '공정'에 대한 요구가 생겼다. 쉽고 투명하게 공개된 정보 속에서 알게 된 불공정은 '사회구성원 간의 이해관계 상충'이었다. 간혹, 정원이 정해진 '취업인구' 중, 누군가가 성공한다면, 나는 떨어져야 한다. 사회의 제한된 이익을 나눠 갖는 제로섬 게임에서 사람들은 그간 알지 못했던 '유명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들의 행위를 가깝게 맞이하게 됐다. 또한 그들이 사실상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치 절대왕정 시기에 누구는 태어나보니 백정이고, 누구는 태어나보니 왕자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이제는 '신'이 부여한 권력의 의미가 사라져 버렸다. 같은 직업군에서 '남자와 여자'의 성비를 알게 되고 그들의 급여 수준을 알게 되며 재벌가의 가업승계가 사실상 '불법'의 영역에서 이뤄져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을 갖기 시작했다.

어른의 말이라면 무조건 옳을 것이라는 믿음에 의문을 품고, 남성과 여성은 사회적 이익을 두고 공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으며, 제한된 이익을 어떤 지역에 몰아 주는지 또한 너무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말 그대로,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은 계몽했으며 사회에서 사실상 그냥 저냥하고 넘어가던 문제들이 쉽게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세상이 의외로 '법률적'으로 움직이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행동은 '국가원수'의 권력에 핵심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면 사실상 그 곳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게임은 공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자들은 '최대한 공정'을 앞세운다. 운이 생사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동하면서도 사람들은 진행자들의 말에 따라 '공정성'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심지어 '진행자'가 아닌, '게임 이용자'들 간의 다툼이 전개된다. 사실상 공정은 MZ세대의 성향의 문제라기보다 전세계가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이슈다. 오징어 게임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히트를 한 이유도 비슷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공정한 보상에 대한 목마름은 어디서 해결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해 세계의 경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참가자이며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을 기념하라 - 카체트에서 남영동까지, 독일 국가폭력 현장 답사기 보리 인문학 2
김성환 지음 / 보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If you don't like a rule... Just follow it... Reach on the top... and change the rule. -Adolf Hitler

(규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냥 따르십시오. 정상에 올라서면 그 규칙을 바꾸세요. -아돌프 히틀러)

'보리 출판사'에서 출판한 '김성환'작가 님의 '악을 기념하라'라는 책을 읽었다. 글은 말 그대로 '악을 기념'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일정이 바쁘다보니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굉장히 생각할 거리가 많은 좋은 책이다. 대체로 '악'을 규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선'과 '악' 구별하는 것 또한 '죄악'에 속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미 다수에 의해 '악'으로 규정된 어떤 사건에 대해 이를 기념하고 잊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에는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할까.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 '악'이란 무엇일까. 사자가 토끼를 사냥하는 것은 '악'에 속할까. 이순신 장군이 왜적 십 수 만 명을 죽였던 것은 '악'일까. 전쟁을 멈춘다는 명목으로 떨어뜨린 원자폭탄 리틀보이는 '선'일까, '악'일까. '악'을 규정하는 것 자체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 가치관과 역사관의 문제가 발생하고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다수의 합의점을 찾을 수는 있지만 이또한 '절대적 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다수가 분명하게 '악'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인류가 기념하고 학습하자는 의미로 이 책은 너무 좋다.

1942년 절명 수용소인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는 4개의 가스실을 만들고 유대인을 대량학살하기 시작했다. 아우슈비츠에서만 대략 90에서 125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됐다. 수감자를 학살하는 방식은 유해가스인 자이클론B(청산가스)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친위대원들은 수감자들에게 가스실을 목욕탕이라고 속였다. 그들은 탈의실에서 옷을 벗도록 했다. 부유한 유대인들의 소지품을 재활용하기 편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다. 유대인들은 큰 저항없이 가스실로 향했다. 수 백명이 목욕탕으로 들어가면 문은 밖에서 걸어잠긴다. 그리고 천장에 달린 샤워 꼭지에서 앞서말한 유해가스가 흘러나온다. 자이클론B(청산가스)는 무거운 속성을 지니고 있어 밑으로 내리고 바닥에 가라앉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 뒤, 이 목욕탕 문을 열었을 때, 수많은 시신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또한 무기력하게 바닥 곳곳에 유대인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다만, 실제는 조금 달랐다. 가스실 문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사람으로 만들어진 작은 피라미드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유는 공기보다 무거운 청산가스 때문이었다. 청산가스가 바닥에 가라앉고 얼마뒤 점차 차오른다. 사람들은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청산가스를 피하기 위해, 서서히 인간 피라미드를 만들며 높은 곳으로 올라섰다. 가장 밑에는 노인과 아이가 있었고 그 위에는 여성이, 가장 위에는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가 있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731 부대의 모성애 실험 또한 비슷한 영감을 준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아이를 지키는 엄마의 힘을 일본제국은 확인하고 싶었다. 마루타 부대는 엄마와 아이를 좁은 방 안으로 가두었다. 바닥의 온도를 천천히 높히고 극단적인 상황까지 관찰했다. 실험 초기 엄마들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고통을 참으며 아이를 껴안고 버텼다. 실험이 계속되자, 극한의 고통 속에서 엄마들은 자신의 아기를 바닥에 깔고 올라가 고통을 피하려 했다. 이 처참한 실험이 끝나고 부대원들은 기록지에 이처럼 기록했다.

'한계에 다다르면 모성애보다 자신을 보호하는게 인간의 본성이다.' 이 실험을 주도한 책임자 '이시이 시로'는 결과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1959년 병사했다. 끔찍한 실험과 역사가 만든 결과물들이지만, 그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악하다'라고 설정해야 맞는 것일까. 인간은 극단에 몰리면 결국 자신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선택하는 본능을 가진 것일까. 자신이 살기 위해 나약한 노인과 어린아이를 밟고 올라서려 했던 이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악'한 것일까.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여라가지 감정과 생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그 해석에 개입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모두가 각자의 몫이다. 악을 기념하는 방식에는 '해석'의 여지가 충분하게 있어야 한다.

김영삼 정부는 조선총독부의 건물을 철거했다. 당시 정치는 '반일'을 이용했다. 사회적 분위기가 '친일청산'에 치우쳐 있으며 상징적인 이벤트가 분명하게 있어야 했다. 인물청산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인물청산보다 조금 더 확실한 이벤트는 '건물 철거'였다. 당시에는 일제가 한반도에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전국으로 쇠말뚝을 박아 놓았다는 이야기가 확산됐다. 이어 일제가 박아 놓은 쇠말뚝을 찾아내자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것은 '김영삼 정부'의 사업이 되어 전국에 걸처 쇠말뚝 제거 작업이 펼쳐졌다. 이때 수거된 쇠말뚝은 전두환이 세운 천안 독립기념관에 전시됐다. 다만, 이 쇠말뚝의 목적이 '한민족 정기를 끊기 위해'가 아니라, 토지 측량이나 등산로 안전설비의 목적으로 설치된 경우가 많았다. 조선총독부는 어찌됐건 대한민국 현대사에의해 철거됐다. 당시 이 건물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지어진 서양식 건물중 그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이었다. 그것을 반드시 철거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반드시 부숴 없어 버리는 것이 악에 대한 철저한 복수인 걸까.

고대 중국에서는 종종 '분서갱유'가 일어났다. 실용서적을 제외한 모든 사상서적을 모아다가 불을 태워버리고 살아있는 유학자를 땅속에 묻어버렸다. 당시의 '악'에 대한 '응징'으로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역사적 사료를 잃었다. 인간은 역사를 반복하면서 꾸준하게 상대의 기록을 부수고 파괴하고 태워버렸다. 그들의 이런 행위는 당시 그들은 '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곡하고 부수고 파괴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잘못인지 모를 것을 다시 반복하는 지도 모른다. 독일과 한국을 넘나들면 현재의 시선에서 악으로 규정되는 어떤 사안에 대해 우리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독재시대의 고문현장을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건축가'의 사상을 담은 건축물을 올리고 책임자가 말하고자 하는 감정을 철저하게 불러 일으키기 위해 고문을 받는 마네킹을 세워두는 것이 옳을까. 알 수 없다. 인생의 커다른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 당시의 내가 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나의 일부이며 모습이다. 그또한 역사로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객관적으로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한다. 책은 허투로 읽기에는 그 내용이 심히 좋고 생각할 부분이 많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퀀텀의 세계 - 세상을 뒤바꿀 기술, 양자컴퓨터의 모든 것
이순칠 지음 / 해나무 / 2022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이 세상 삼라만상은 모두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무슨 말일까.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물체를 입자라고 한다. 어떤 한 곳에서 에너지가 흔들리며 전달되어 나가는 것을 파동이라고 한다. 결국 물질과 파동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어떤 것이다.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얘기는 "사과는 파도다."만큼 허무맹랑한 말이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이상한 현상을 확인했다. 아주 작은 세계인 미시세계에서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다. 전자는 원자핵 주위에서 특정한 궤도에 존재한다. 현대물리학자가 발견한 것은 전자의 운동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이다. 전자를 관찰한 결과, 평소에는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관찰자가 그것을 관찰하는 순간 입자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빛이나 전자 같은 미소한 물질이 입자와 파동성 둘 다 갖는 다는 것을 '양자성을 띈다'라고 말한다. 힘과 운동 관계를 역학(力學)이라 하므로, 양자역학이란 입자성과 파동성을 갖는 역학에 대한 연구다. 원자핵을 주변에 있는 전자는 고전물리학에서 봤을 때, 일정한 속도와 방향이 있어야 한다. 원자핵의 어느 부분에 있던 전자가 다시 얼마 뒤에는 다른 위치에 존재해야하고 그 운동의 방향과 속력을 통해 위치를 알아 낼 수 있는 것이 고전 물리학이다. 마치 태양 주변을 돌고 있는 지구의 속력과 방향을 알면 얼마 뒤에는 지구가 어디 쯤에 있을지 계산이 가능해야 했다. 하지만 미시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확률적으로 어딘가에 존재할 뿐이다.

누군가가 관찰하기 전에는 파동 것들이 누군가가 관찰했더니 입자가 된다. 즉, 모든 상태는 '중첩'되어 있다가 관찰자가 관찰하는 즉시 물질이 된다. 즉, 당신이 옆 방에 있는 책상은 당신이 관찰하기 전까지는 그저 에너지와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다가 당신이 관찰하는 즉시 물질로 바뀐다. 또 하나의 양자역학 중 하나는 '얽힘'이다. 쉽게 말을 하자면 마주보고 춤을 이들을 통해 예를 들 수 있다. 마주하고 있는 파트너가 오른 발을 내민다면, 상대하고 있는 파트너는 왼발을 뒤로 빼야만 한다. 이처럼 우주가 팽창하기 전 하나로 존재하던 입자들은 서로 '얽힘' 상태로 존재한다. 즉 임자들이 우주 팽창과 함께 깨지면서 분리되었다고 하더라도 영자역학적에서는 여전히 '얽힘'의 상태로 존재하여, 이쪽에서의 어떤 변동이 떨어져 있는 다른 어떤 쪽에도 같은 변화를 갖는다는 것이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이런 양자역학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되자, 나는 광활한 우주에 대한 호기심 보다 '미시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 이런 사이비 같은 이론은 '아인슈타인' 또한 믿지 않았다. '그저 어떤 특정한 확률로 존재한다'는 비과학적인 이론을 어떻게 받아 들 일 수 있을까. 양자역학의 아버지인 '닐스보어'와 '아인슈타인'은 이에 관해 편지를 조고 받곤 했다.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에 대해 주장한 '닐스보어'에게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네." 그러자, 닐스보어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시지요."

세기의 천재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주장에 대한 논리를 서로 따져가며 꽤 치열하게 살았던 듯 하다. 모범적으로 잘 정리되어 오던 물리학이 '양자역학'을 만나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현상은 참으로 재밌다. 양자역학의 모호성 때문에 이는 유사과학의 단골 소재다. 가령 '상상만 하면 모든 게 이뤄진다'거나 '철학'과 '종교'를 오가기도 하고 '외계인', UFO, '타임머신' 등에서도 언급된다. 실제로 얼핏 양자역학에 의하면 대강대강 들어 맞을 수 있는 몇 가지와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과학자들의 논문과 주장을 근거로 들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지적권위자들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것이다.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우리를 설득하는데 양자역학을 드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과학자'라기 보다, '종교인', '기자', '작가'와 같은 분류가 더 많다. 양자역학을 수 십 년을 공부해도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말이다. 양자역학은 얼핏 비현실적인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이미 기술로 존재한다. 우리가 자석이 왜 끌어당기는 성질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더이상 신기함 없이 자석을 사용하는 것 처럼말이다. 이것을 믿을 수 있건, 믿을 수 없건 이미 양자역학은 세상에 실재하고 있다.

이 책은 절반의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머지 절반을 '양자 컴퓨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책의 첫 문장을 읽어보면 난데없이 소설이 시작한다. 분명 소설로 분류된 책은 아닌데 소설로 시작하는데, 소설은 알송달송하게 전개된다. 이 짧은 소설 뒤에 양자역학과 양자 컴퓨터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다시 소설은 이어진 뒤 짧게 마무리한다. 도통 무슨 소리를 할 수 없는지 알 지 못할 것 같은 양자 역학을 쉽게 풀어주는데 고작 300페이지 밖에 들어가지 않으니 분명 읽어 둘 필요는 있다. 내가 존경하는 법륜스님은 통찰력을 갖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자기로 부터 나오는 궁금증과 호기심, 집중하여 탐구하는 자세, 셋째는 전모를 깨닫을 지혜는 통찰력이 커저가는 과정이다.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독서를 많이 해야한다. 과학과 관련 없는 일에 종사하는 이가 왜 과학책을 읽어야하며, 역사와 무관한 삶을 사는 이가 왜 역사를 읽어야 할까. 여기에 법륜 스님은 말했다. 통찰력은 지혜이며 지혜와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다 섯 가지에 대한 독서가 필요하다. 첫 째, 우주 물리학(우주 질서와 운행원리), 둘째 물질세계에 대한 구성원리(미시세계, 양자역학), 셋째, 생명의 원리(생명공학), 넷째 인간의 심리학(무의식과 심리), 다섯째 인류문명사(역사) 이 다섯가지는 당신이 어떤 일을 하던과 관련 없이 당신이 혜안과 통찰력을 줄 방법이다. 이 책은 과학과 물리에 관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독서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책에 나온 매우 공감되는 예시를 들자면, 세상은 컬러 평면 TV를 쓰고 있는데, 혼자 산속에 들어가 흑백 브라운관 TV를 발명하는 노력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뇌를 읽다, 마음을 읽다 - 뇌과학과 정신의학으로 치유하는 고장 난 마음의 문제들 서가명강 시리즈 21
권준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밤 하늘을 보면 가끔 걱정과 스트레스가 해소될 때가 있다. 이 우주에서 내가 하고 있는 걱정들이 얼마나 티끌 같은 지를 생각해보면 사실 나를 짓누르던 어마어마한 중압감들이 먼지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런 생각은 부정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나 자신의 존재가 티끌보다 작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삶의 가치마저 작게 느껴질 때도 있다. 행복한 감정과 우울한 감정, 고민과 기쁨은 실재하는 것들일까. 우리는 번쩍거리는 시계와 자동차로 주변을 둘러싸고 깔끔한 복장과 악세사리를 갖추고 있지만, 주변에 있는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물고 있는 입 속에는 무색의 끈기있는 액체가 항상 촉촉하게 혀와 구강을 적셔야 한다. 입을 다물고 누구나 흐르지 않게 조심하고 있지만, 그것이 밖으로 나오는 일을 더럽다고 여긴다. 구강으로 들어간 음식은 PH농도 7이상과 이하의 산성과 염기성의 액체들에 의해 녹고 분해된다. 산성의 성질로 녹이고 염기성 물질로 중화하고를 반복한다. 식도와 위장, 소장, 대장, 직장, 항문으로 분류된 모호한 소화기간을 통과하여 밖으로 배출된다. 음식물은 시속 2~4m로 소장을 지나고 대장에서 시속 10cm로 이동한다. 구강으로 들어간 음식물과 수분은 적절히 섞이고 흡수하여 체내에서 여러 화학작용을 거쳐 새로운 물질이 된다. 이 화학 물질들은 우리 구강이 건조하지 않게 항상 입속에서 섞이고 흐르는 침과 소화액처럼 존재한다. 이곳과 저곳에는 언제나 촉촉한 상태를 유지한다. 고로 생명의 속에는 그 어느하나 완전 건조한 곳이 없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구별하기 힘든 액체들이 묻어 있다. 이 세포와 세포에 묻어 있는 미세한 액체는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 그중 하나의 신경세포는 수천, 수만 개의 신경 세포와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 받는다. 이 화학물질을 '신경전달물질'이라고 부른다. 애초에 이런 신경전달 물질의 역할을 알지 못하던 시기, 우리는 세포 간에는 미세한 전깃줄처럼 연결된 통로로 정보가 전달됐다고 믿었다. 하지만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에는 일정한 틈이 존재하고 이 곳과 이곳에는 아주 미약한 화학물질이 분비되고 흡수되고를 반복한다. 이런 화학물질들이 그 성질에 따라 구분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이름들(엔돌핀, 도파민, 세로토닌)등의 물질 또한 우리 체내에서 생성되고 전달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건강한 성인이라면 하루 1.5L의 침이 생선된다. 말했던 것 처럼, 사람에 따라 다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체내에서 생성되는 화학물질들은 개인차가 존재한다. 누군가는 필요이상으로 과다하게 생성되고 누군가는 필요보다 적게 생성된다. 우울증은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감소하여 발생한다. 이 세로토닌이라는 화학물질이 과다하게 발생하는 누군가는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도파민 또한 그렇다. 도파민이 결핍하면, 우울증이나, 조현증, 파킨슨 병이 발생할 수 있고 약한 증상으로는 근육 경련이 일어나거나, 변비, 수면장애, 피로감 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 고로 우울증과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은 '마음가짐'이나 '신앙의 힘'으로 견뎌내기 힘들다. 과학적으로는 분명 약물의 힘이 필요하다. 대략 50여 종의 신경 물질은 누군가를 사랑하도록 만들기도하고, 누군가를 우울하게 만들기도하며, 누군가를 흥분시키거나 때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다.

옛날 중국의 진시황제는 만리장성을 짓기 위해 커다란 물통을 들였다. 이 물통에 황하강의 물인 (하수)를 채워 넣었다. 이 물통이 어찌나 크던지 아무리 사용해도 물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느꼈다. 우리는 이를 "화수분"이라고 하여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다. 인체의 화학물질은 써도 써도 줄지 않고 저절로 채워지는 신비한 마법이 아니다. 일종에 알고리즘처럼 Input이 존재해야 Output이 생성된다. 우리의 삶의 행복과 성공은 고로 밖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안에서 생성되어 진다 어떤 Input을 넣더라도 Output의 값이 달라질 함수 f(x)다. 사물함, 보물함, 사서함과 같이 함수의 '함'은 상자를 의미한다. 어떤 상자에 1을 넣으면 0이 되기도 하고, 어떤 상자에는 1을 넣어도 100이 되기도 한다. 이는 f(x)=x*0 혹은 f(x)=x*100처럼 표현이 가능하다. 뇌는 우리의 행복, 사랑 등의 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사회에도 밀접한 연관을 준다. 패스트푸드 피자, 햄버거, 감자튀김 등 현대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에는 트랜스지방이 많이 있다. 세포막은 영양분을 흡수하고 선택적 투과를 할 수 있는 기능을 하고 있는데, 트랜스지방이 자리하게 되면 세포막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뇌세포 또한 신경자극전달물질을 제대로 전달 받지 못한다. 앞서 말한대로, 신경전달물질의 부족은 뇌기능저하를 일으켜 우울증일 일으키거나 두통과 주의력결핍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자살률이 사회적 문제이던가. 우리는 신체 건강을 신경쓴다며 비타민 D와 콜라겐, 오메가3, 아연 등 보조 영양제를 섭취하고 몸에 좋다는 홍삼과 보약을 지어먹는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목숨을 앗아가는 다른 모든 질환들보다 '자살'이 가장 크다. '자살'의 원인은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뇌'에서 기인하며 어떤 Input을 넣더라도 '-'를 만들어내는 '함'을 갖는 이들에게 발병한다. 뇌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조금 더 높아진다면 정신건강의학 분야는 그 어느 분야보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1년 평균 대한민국 자살 사망자 1만3천명, 남성의 경우에는 여성보다 2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목숨을 끊는다.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한 무지와 사회적 인식에 의한 안타까운 죽음들이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고 우울하고, 이유없이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것은 그들의 성격으로 여겨진다. 우리를 우리로 만든 것은 '신체'만큼이나 '정신'에 있다. '팔이 한쪽 없는 사람은 여전이 그 본인이나, 알츠하이머처럼 뇌건강은 '자아'의 근본을 흔들어 놓는다. 이는 배우자와 자녀의 행복과 사회 전체에도 좋지 못하다. 이 책은 얇지만 매우 친절하고 많은 정보를 쉽게 담아냈다. 평소 '뇌'에 관심이 많은 내가 읽기 굉장히 좋았으며,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혀져 '뇌건강'에 대한 국민 인식이 더 긍정적 방향으로 이어질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평등한 선진국 -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보다
박재용 지음 / 북루덴스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도 '선진국'이라는 말을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언제부턴가 어색하지 않게 '선진국'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는 듯 하다. 한류로 인해 문화적 위상이 높아지고 경제에 관한 자부심이 높아지면서, 특히나 젊은 층 사이에서는 거부감 없이 사용되는 단어다. 또, 이미 어느정도 경제적 업적을 이룬 나이 많은 세대에게도 '이제는 선진국'이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2000년 대 초에 한창 유행하던 말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우스께 소리로 TV에서 나오던 말이다. '이렇게 해서 선진국이 될 수 있겠어?' 아마 이 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을 빌려 유행된 유행어 인듯 하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이러니까 우리가 선진국이 안되는 거야'로도 사용된다. 90년 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런 대사들이 꽤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일부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드는 표현이 되기도 했다. 내가 첫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곳은 '뉴질랜드'다. 그곳에서는 각종 알바부터 관리직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흔히 'Flyer'라고 불리는 길거리 사람들에게 '전단지' 돌리는 알바, 'Glassie'라고 불리는 'Bar/Club'에서 빨간 헝급으로 컵 닦는 알바, 현지 학교와 아파트를 청소하는 알바, 면장갑 하나 들고가서 정원을 다듬어 주는 알바, 주차장 안내원, 마트 캐셔, 주방 설거지까지... 얼핏 생각하기에도 이 정도지만, 말도 안통하는 해외로 나가서 했던 알바와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길고 많다.

인생이라는게 참 알 수 없는게, 이런 다양한 해외 현지 경험을 하고서 한국에서도 특별한 경험들을 했다. 중견기업 인사담당자, 경리회계 사무직, 구매대행업체 클레임 담당, 독일외제차 서비스 인사, 수출업, 농사, 교육업 그리고 도서 출판 등. 나이가 많다고 할 수 없지만 국내취업, 해외취업, 정규직, 비정규직, 국내외 알바, 농사, 강사 등 별의 별 경험을 국내외에서 겪다보니 분명하게 보여지는 차이가 있다. 어린시절부터 나는 통계화된 자료를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서도 'Developed countries', 'Advanced countries', Developing countries' 등의 단어를 구글에 검색하곤 했다. 또한 국가나 사회에 대한 통계와 자료를 한 동안 들여다 보며 자료를 모아두는게 취미였을 정도다.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관련 온라인 카페에서 활동하며 나름 많은 자료를 보고 모으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가 '한국은 선진국이다'를 '참의 명제'로 받아들이는 날이 왔다는 사실이 격세지감이다. 20대 초반 해외로 나가 30대까지 젊은 시절을 보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는 이 기간동안 생각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이 꽤 많이 달라졌다. 일하면서 사용하는 단어는 '한국어'보다 '영어'로 먼저 접하게 되는 단어가 많았고, 지금도 '영어'로 먼저 접했던 단어는 한국어로 쉽게 떠오르진 않는다. 당시 4년 간 해외에서 동양인도 흔치 않은 환경에서 살다가 처음 한국으로 휴가를 받고 서울에 거주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 당시 나의 시선은 해외 외국인들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의 첫인상은 '무례하다. 바쁘다. 무표정하다'였다. 그리고 하나 또 하나의 생각은 독특하게도 2가지가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장애인, 쓰레기통' 물론 여러가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비교해보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당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이것이었다. 해외에서 알바와 일을 할 때, 생각보다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은 '외국인, 장애인, 노인'과 같은 당양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한국에서는 일을하면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고 같은 사람들 뿐이었다. 특히나 현지에서는 학교, 직장, 도서관 등 어딜 가도 장애인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쉽지가 않았다. 내가 일했던 Bar에서 아예 말을 하지 못하고 '소리' 정도만 내는 '마오리 언어 장애인'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이 나지만, 그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결코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신체의 장애는 있지만 사회적인 장애가 없었기에, 같이 일하는 이들도 그를 특별하게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 불편할 수 있는 농담을 서로 주고 받으며 웃는 모습이 특이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차별적 발언'이라는 수위 높을 수 있는 농담이 통용되기 위해서 그 사회는 얼마나 '장애'라는 인식에 '불편함'이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유학하던 당시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싱가포르인'이었다. 그는 한국의 문화에 굉장한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우연히 당시 한국의 최저임금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은 4,000원이었다. 친구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이를 믿지 않았다. 1시간을 일하고도 햄버거 하나 못사먹는게 말이되냐는 식이었다.

그게 왜 이상한지 이해를 못하는 나와 그게 왜 당연한지 이해를 못하는 그와의 생각의 차이는 엄청나게 깊었다. 간국의 경제력에 비하면 터무늬 없다고 했다. 당시 호주의 최저임금은 2~30불인 경우도 많았고 뉴질랜드도 11~14불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지 교포와도 관계가 꽤 있었는데, 그들이 한국으로 여행을 가면 하는 얘기는 분명하게 있었다. "왜 쓰레기 통이 없어?" 한국의 길거리에 쓰레기통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불편한 일이다. 한국에 쓰레기통이 없는 이유는 시민들이 생활 쓰레기를 자꾸 버림으로 관리가 없어진 탓이다. 간혹 지하철 화장실에 가면 종종 화장실에서 발생하기 힘든 쓰레기들이 보이기도 하는데, 변기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온갖 쓰레기를 버리는 이유도 있는 듯 했다. 도서관이나 지하철에는 빈번하게 '화장지'를 훔쳐가는 경우도 많아서 화장지를 열쇠로 잠궈 놓는 경우도 많고 때에 따라서는 화장지가 비치가 안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지금도 한국의 경제력에 관해서는 어느 나라에가서도 자부심이 느껴진다. 또한 일부 사회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알고 지내던 기타 선진국들과도 비슷하다. 다시 또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올라와서 보니,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동경하던 국가들도 비슷한 양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등 선진국이라고 여겨오던 이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을 보다보면 '선진국' 별게 있나. 싶기도 하다.

'선진국'이라는 말은 굉장히 모호하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부분에서는 좋은 사람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아닐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직원으로써의 평가는 어떻고, 가족 구성원으로써는 어떠하며, 친구로써는 어떤지, 모든 분야를 따지고 봐서 하나로 정의 할 수 없다. 우리는 복지에 관해서는 북유럽과 비교하고 경제에 관해서는 서유럽과 비교한다. 군사력에 대해서는 '미, 중, 일'과 비교한다. 세계 최강의 국가와 비교하기에 언제나 우리는 선진국이 아니다. 이는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솔직한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두자면, '대한민국은 아직 개발도상국다'가 내 생각이다. 이 말에 기분이 나쁠 수는 있으나, 개발도상국에서 '도상'이라는 말은 '어떤 일이 진행되는 과정이나 도중'을 의미한다. 한국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며, 아직도 개선해야 할 많은 사회, 경제, 정치적 부분이 존재한다. 우리가 '선진국'이라면 '완성형'이어야 한다. 아직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책은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통해 한국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보여준다. 여성에 대한, 장애인에 대한, 노인에 대한, 농어촌에 대한 아직까지의 대한민국의 현상과 민낮에 대해 시원하게 까발리고 정리해 뒀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고 볼거리가 많다. 현재의 우리를 알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에게 한 번 쯤 우리 위치를 확인하기 좋은 책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