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더 해볼게요
서림 지음 / 메리포핀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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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ning means being unafraid to lose." - Fran Tarkenton

(이기는 것은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는 '성공'과 '실패' 중 더 흔하게 '실패'가 산재돼 있다. 유독 나에게만 그것이 찾아왔다고 느끼는 이들 중 대부분은 '실패'를 온전하게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성공에 이른 이들을 바라보면, 그들에 비해 나에게만 찾아온 실패가 씁쓸할 때가 있다. 예전 한 기자가 이미 2만 5000번이나 실패한 사업가를 찾아가 물었다. "벌써 2만 5천번이나 실패를 하셨는데... 지금 하시는 실험을 계속하실 건가요?" 그라자 사업가는 대답했다. "실패라니요. 나는 실패를 한 게 아니라, 성공에 도달하지 않는 2만5천 가지의 방법을 알아낸 거에요." 그 사업가는 전기배터리 실험을 하던 에디슨이었다. 실패는 성공보다 흔하디, 흔한 현상이다. 확률적으로 더 자주 발생하고 더 넓은 곳에 포진돼 있으며, 누구를 따지지 않고 들이닥친다. 갑작스럽게 성공을 이루는 행운도 분명 좋지만, 실패를 맞이하는 자세는 그래서 중요하다. '실패'가 더 빈번하다는 사실은 대게 '성공'을 이르는데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성공과 실패는 그 성향이 매우 다르기에, 같은 부류라고 여겨지나, 성공은 '결과'이고 실패는 '과정'이다. 성공은 그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수많은 실패 뒤에는 다시 '성공'과 '실패'의 기로가 들어선다. 그거에 다시 '실패'를 맞닥드려도 다시 '성공'과 '실패'의 기로는 들어선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말없는 나의 입을 기다릴 때가 많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무언가 대단한 것을 감추고 있다고 여기는지, 나에게 종종 '고민'을 털어 놓곤한다. '남의 일'에 생각없이 한마디 '툭'하도 던지고 나면 내가 뱉은 생각없던 무의식의 말이 다시 나를 자극할 때가 있다.

"만약, 안되면 어쩌지?" 나보다 상급자가 나에게 물었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나는 대답했다. "될때까지 할텐데 안 될 때를 대비할 필요가 왜 있나요?" 사람은 적당한 순간에 포기해야하기도 한다. 미련을 두고 의미없는 도전을 하는 것또 굉장한 위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이 반드시 존재한다. 넘지 않고서는 아무런 진행이 되지 않는 상황들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럴 때 '안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은 불필요한 고민을 하게 한다. 실제 안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이 없다. '다시하거나', '그만하거나' 대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선택옵션을 물어보면, 말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경우들이 많다. '그만하세요.'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면...이래 저래서 안되는데요'. 그들에게 그럼 '다시하세요'라고 말한다. 그럼 그들은 다시 대답한다. '그러면.. 이래 저래서 안되는데요.'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인 상황에 '고민상담자'는 역할을 잃는다. 이런 고민은 '실패할까봐 두렵다'라는 가정이 들어가 있다. 여기에 가장 큰 문제는 그 두려움이 '가정'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가정이라는 것도 사실상 엄청나게 확률 높게 들어 맞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50%로 본다. 그러기에 두려움을 갖는다. 우리 누구는 그 누구라고 하더라도 로또복권을 사면서, 당첨되지 않을 확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첨되지 않을 너무나도 '당연한 확률'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당신의 실패에 '거봐 그럴 줄 알았다'라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원래 실패는 아주 흔한 일이며, 성공이 아주 극적인 일이다. 실패할 확률을 맞추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실패를 예상한 이들의 적중률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그의 선견지명에 놀랄 이유도, 나의 한계를 결정 지을 이유도 없다.

당신이 도전하는 일에 실패할 확률은 99%다. 당신이 맞이 할 미래에서 얻고자 한 댓가를 얻지 못할 확률이 99%라는 것이다. 이 말이 저주라고 느껴진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가 세운 목표가 굉장히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수능 점수를 1등급 올리거나, 건강하고 보기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해 5kg을 감량한다거나, 원하는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 조금 더, 조금더 성장하거나. 하지만 사실상, '현재'의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이미 최선을 도달한 상태다.' 이 최선을 넘어가는 1g의 목적도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당신이 만들어낸 목표에 도달할 확률이 더 극하게 말하자면 99.99% 쯤은 된다. 이제 우리가 실패할 여지가 당연해졌다. 그럼 다시 도전해보자. 그리고 실패해보자.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0.001%의 확률에 들어서려고 하기 때문이다. 1만 분의 1의 확률이 성공의 확률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도전을 2회하기만 해도 그 확률은 5천 분의 1로 줄어든다. 다시 3회를 하게 되면, 3333분의 1로, 4회를 하게되면 2000분의 1로 줄어든다. 실패에 '도전'이라는 대응을, '장군', '멍군' 식으로 무감정 대입하기만 하더라도 성공의 확률은 '복리'로 늘어난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는 결국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다. 실패를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그리고 그 실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문제를 바라 볼 때, 감정을 배제시킨다. 실패도 즐겁게 맞이한다. 소설가 김영하 님은 글을 쓰기 위해 '중국'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간단한 서류상의 문제로 다시 돌아 온 적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화가 날 법한 상황에 김영하 작가 님은 '글쓰기 좋은 소재가 됐다'고 여기고 말았다. '내가 두 번 다시 중국을 들어가나 봐라'보다 편안하게 다음에 중국행 비행기를 끊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람이 그곳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림 작가 님은 입시의 실패를 맞이하고 '반수' 생활을 시작한다. 대학을 입학하고서 다시 대입을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꾸준한 실패를 맞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한다. 물론 실패에 괴로워하고 힘들어 했다는 것 쯤은 여전히 알 수 있다. 다만, '나는 해도 안돼'가 아니라 현명하게 어느정도는 현실과 타협해가면서 원하는 목표를 이뤄낸다. 우리는 아주 사소하게 정해 놓은 목표를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어제의 나와 달라지는 아주 작은 성취라도 결코 당연한 것은 없다. 그녀는 대학생활 중 과외와 대학생활과 수험생활을 하며 적당히 타협하고 아주 조금씩 자신을 성장시켰다. 실패할 여지도 충분히 둔다. 그녀는 결국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을 통해 '교대'를 입학하 수 있었고 지금은 다시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젊은 이들에게 굉장히 고민이 될 법한 이야기다. 주변 어디서나 있는 이야기고 실제로 모두가 수험생활을 하며 일정한 '패배자'를 양산해내는 대한민국 '입시'와 '고시'에서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녀의 프로필을 살펴보다보니 '너를 영어 1등급으로 만들어주마'라는 도서가 보였다. 단순히 태어나서 부터 영어가 능통했다는 '원어민'의 영어 공부법이 아니라, 불완전하여 실패를 거듭했던 이에게 축척된 성공과 실패 데이터가 축척된 새로운 책에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녀는 스스로 '이과적'이라고 했으나, 그녀의 문체는 깔끔하고 보기 편하고 따뜻하다. 그녀가 '이과적'인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출판업에 종사하는, 그리고 글을 쓰는 '문과적' 인간 이라는 사실은 여실하게 글에서 들어난다. 대한민국 많은 수험생들이 읽기를 희망하는 글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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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디즈니 애니메이션 70주년 특별 에디션 고급 벨벳 양장본)
루이스 캐럴 지음, 디즈니 그림, 공민희 옮김, 양윤정 해설 / 아르누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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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 소설을 읽고 난해함을 느꼈다면 당연할 것이다. 제정신으로 글을 읽고 있는지, 글을 쓴 사람은 과연 제정신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아리송한 책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덴마크의 동화가 생각난다. 욕심많은 임금님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만들어 오라'하고 명령을 하자, 거짓말쟁이 재봉사가 '어릭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을 지어 올렸다는 동화 말이다. 모든 어른들이 입을 꾹 닫고, 마치 임금님이 입고 있는 옷을 찬양하였으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 아이가 외쳤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유명한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숨기고자, 우리는 자막없는 외화영화에서 옆사람의 웃음소리에 따라 웃는다. 그렇다. 그저 '뭔가 대단한게 있는가 보다'하고 넘어가면 '보통'은 된다. 나의 부족함이 최소한 들키진 않는다. 다만, 읽으면서 내내,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한 글을 읽으며 철썩같이 이해한 척을 하고 싶진 않다. 당신이 눈동자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의 글을 훑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공중에서 휘발되는 이유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이 소설은 '언어유희'가 재미의 핵심 포인트 중 하나다. 미국 시트콤 '프랜즈'를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나는 지금도 틈틈히 '프랜즈'를 보곤 한다. 이처럼 재밌는 시트콤 '프랜즈'를 주변인들에게 소개하면,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식 유머가 나랑 안맞는 것 같다.' 정말 미국식 유머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함께 같은 장면을 보면서 나는 웃고 상대가 웃지 않는 이유에는 '번역'이 한 몫을 하고 있기도 했다.

프랜즈의 한 대목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이별의 상심 중인 챈들러(Chandler)를 위로하는 친구들과의 대화 중 하나다. 챈들러는 말한다. "So, I'm not gonna lose her?(그럼, 그녀를 잃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에 레이첼(Rachel)은 대답한다. "Oh honey, you're not a total loser.(넌 완전 찌질이가 아니야.)" 이 대목에 영어권 사람들은 웃었고 비영어권 사람들은 '미국식 유머와 맞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이 대목의 웃음 포인트는 lose her(루스허: 그녀를 잃는다)와 loser(루저: 찌질이)의 발음이 비슷하면서다. 비슷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도 계속 나온다. 프랜즈 5화에는 모니카(Monica)에게 국자를 빌리러 방문한 대니(Danny)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국자를 빌리고 돌아가며 말한다. "See you later.(이따봐)". 여기에 옆에 있던 피비(Phoebe)가 웃는다. "See you ladle.(국자봐!)" 이 부분에서 자막을 읽는 왜 웃긴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것 또한 언어유희다. later(이따)와 ladle(국자)의 발음이 비슷하면서 생겨난 유머다. 뿐만아니라, 프랜즈 곳곳에는 이런 유머가 숨어져 있다. 이런 유머코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녀를 잃는 건 아닐까"하는 질문에 "넌 완전 찌질이가 아니야"라고 답하는 아리송함과 "이따봐"라고 했더니 "국자봐"라고 답하는 도통 난해한 유머코드에 머리만 아플 뿐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저 단순히 '그래서 뭘 말하고자 하는데?'를 따지고 들면 당연히 이해하기 힘들고 난해하다. 도통 스토리가 제대로 흘러가는 것이 없다.

제대로 흘러가는게 하나도 없는 괴상망측한 스토리텔링과 번역이 의미를 상실한 유머코드는 이미 난해한 작품을 더 난해하게 만든다. 실제로 작가 '루이스 캐롤'은 희귀한 신경장애로 고통받았다. 그가 가졌던 신경 장애는 시각적인 물체의 크기가 훨씬 크게 보이기도 하고, 작게 보이기도하는 질병이다. 1955녕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토드'가 이 질병을 발견하고 여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병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후 이 질병은 '토드 증후군'으로 알려졌다. 독특한 세계관은 실제 작가의 질환에 기반을 하고 있다. 토끼굴을 들어간다.(영어 표현의 Down the rabbit hole 표현으로 사용됨) 그리고 크기가 줄어들고 커지고를 반복한다. 난해한 설정은 사실 작가가 가진 질환에서 시작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여왕'이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당시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의 시대였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 독특한 소설에 매력을 느낀다. 작가인 '캐롤'에게 집필한 다음 책을 바치라고 제안한다. 이에 캐롤이 가지고 왔던 다음 책의 제목은 "동시 선형 방정식과 대수 방정식의 적용에 대한 결정요인에 관한 기초 논문"이었다. '루이스 캐롤'은 '동화작가'로 알고 있지만 사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수학자다. 심지어 수학교수였음으로 그가 여왕의 제안에 응하며 받쳤던 다음 작품들은 온통 수학 논문들이었다. 해당 소설은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를 관통한다기 보다, 담고 보여주고자 하는 철학과 유머가 혼돈스럽게 뒤섞여 있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 가 있는 '앨리스'가 유일한 '정상'이라고 여길테지만, 실제 그 나라에서 유일하게 이상한 이는 바로 '앨리스'였으니 말이다. 책을 읽는 이들이 '난해한' 문장 앞에서 '마치 모두 이해한 것 마냥'하는 그 난해함마저 사실 정상적인 듯 하며 이상하고, 이상한 듯하며 정상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유명한 영화나 게임 등에서 자주 소스로 사용된다. 심지어 '매트릭스'와 같은 명작의 영감이 되기도 한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일단 유명해져라, 똥을 싸도 박수 받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밈(meme)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유전자처럼 개체의 기억에 저장되어 있다가 느닷없이 번식하여 타인에게 복제, 복제 된다. 15년 전에 개봉한 타짜의 대사가 느닷없이 유행하면서 대규모로 다시 퍼져나가거나, 당시 별 의미를 알 수 없던 상황과 대사가 재생산되면서 확산되기도 한다. 인간은 평범한 기억보다 '이상한' 기억이 더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꽤 감동적이었던 클리셰 가득한 짜임세 있는 영화보다, 도통 난해한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의 '일본 고어물'이 더 기억에 잘 남는다. 인용하고 인용하고, 다시 누군가가 인용하고 권위자가 선정하고 인용하길 반복하다 보면, '이상한' 이야기는 다시 '명작'으로 거듭난다. 다들 좋다하니 좋은건가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분명 난해하고 어렵고 이상하지만,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으며, 이 책과 함께하는 시대, 문화, 인물을 함께 볼 때, 작품이 다시 보일 수 있는 굉장히 다변적인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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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파는 소년 - 청소년 성장소설 십대들의 힐링캠프, 소망 십대들의 힐링캠프 39
김수정 지음 / 행복한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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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감정을 매입하고, 다시 누군가에게 그 감정을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하는 소년의 이야기. 골목에 위치한 간판 없는 허름한 가게에 주인과 종업원은 사람들에게 감정을 판매하고 매입한다. 그로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사고 판다. 사랑, 증오, 열등감, 행복,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사려하고, 팔려고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비슷한 소재의 책들이 최근들어 많이 발견된다. 가령, 최근에 읽었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시간을 판느 상점'이 그렇다. 꿈과 기억, 감정을 사고 파는 일들은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그런 세계가 어딘가에는 존재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나에게 생겨난 감정은 쓸데없는 방해꾼인 것 처럼 여긴다. 누군가가 돈을 주고 사간다면 '얼씨구나'하고 팔고 싶은 감정들을 잔뜩 지니고 있다. 좋고 나쁜 감정들은 널뛰기처럼 우리에게 들락날락 거리지만, 불편한 불청객처럼 우리는 그들을 좋은 마음으로 맞이하지 않는다. 특히, 부정적이라고 여겨지는 감정일수록 모든이들에게 불필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지 않다. 소설은 중간 중간마다, 같은 대사가 나온다. '쓸모없는 감정은 없어'. 가게에는 슬픔을 구매하러 온 손님과 증오감을 비싸게 구매하는 손님이 등장한다. 심지어 열등감을 얻갔던 이도 있다. 이들의 감정은 적재적소마다 적절하게 사용된다.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간 이는 결국 '사랑'을 잃고 만다. 삶을 살다보면,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은 번걸아가며 일어난다. '인생지마 새옹지마'라는 변방에 사는 늙은 이의 말을 예를 들지 않덜다도 이는 우리 인생에 누구도 겪는다.

스무살, 오래된 잡화점에서 PD수첩이라고 적혀있는 메모장을 구매했다. 거기에는 자질구레한 모든 내용을 기록했다. 당시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내용들부터 너무 기뻐서 잠에 들지 못했던 모든 순간이 기록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펼쳐든 수첩에 '감정'은 증발되어 사라져 없었다. 그저 당시 그랬다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어느날, 들쳐본 수첩은 내가 들쳐 본 날의 기분에 따라, 모든 기록이 기쁜 일이 되기도 했도 내가 들쳐본 날의 기분에 따라 모든 기록이 나쁜 일이 되기도 했다. 사람의 감정이란 오락가락하며 출렁이는 파도와 같다. 그것이 멈춰지는 일은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10리 밖에서 바라본 바다는 고요하고 넓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씩 그 바다에 가깝게 갈수록 파도는 출렁이는 '골'과 '산'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찰리 체플린은 이에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 그렇다. 한 없이 아름다워 보이는 바도는 가깝게 보기에 언제나 출렁 거린다. 서핑을 즐기는 서퍼에게 좋은 바다란 출렁이는 파고가 높은 바다다. 바닷가에서 조용히 발을 담구고 싶은 이에게 좋은 바다는 잔잔하게 발끝을 조심히 적시는 바다다. 결국 좋은 바다와 좋지 않는 바다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나의 첫 번 째 저서인 '앞으로 더 잘될거야'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남긴 내용이 있다.

'좋은 일이 있다고 기뻐할 필요도, 나쁜 일이 있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인생의 파도에 몸을 맡기며 그 출렁임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눠져 있지만, 도서 전반적으로 짧은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이 소재들은 앞사람과 뒷사람이 연결되며 이야기를 하나의 덩어리로 이어준다. 자신에게 불필요한 감정을 팔러 온 사람과 그 사람이 판 감정을 비싼 돈으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우리는 필요한 감정과 불필요한 감정이 과연 사람마다 다른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에게 다시 생겨난다. 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진다. 필요와 불필요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모두는 저절로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실제 감정에서 불필요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팔았던 감정이라도 다시금 내가 사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비극이라 불려지는 일들이 존재했다. 당연히 '희극'이라고 불려지는 일들도 존재한다. 그 상황은 그 상황에 머물고 있을 뿐, 현재의 나를 괴롭히지 않아야 한다. 나는 그 상황과 시간을 거기에 두고 시간을 따라 멀리 멀리 나아간다. 소설은 각 주인공들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사연있는 주인공들은 각자 슬프거나, 기쁘거나, 사랑스럽거나, 열등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또한 스치는 감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술된 이야기를 조금 더 뒤로, 조금 더 더 뒤로 끌어낸다면 아마 주인공은 감정을 팔아야 할 이유도, 사야할 이유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10대들을 위한 짧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책은 성인에게도 굉장히 좋은 독후감을 느끼게 한다. 큼지막한 글씨에 짧은 구성의 소설이지만 쉽게 몰입하고 우리 주변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로 이뤄져 있다. 학생이 아니라, 성인들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들이 서술된다. 사람의 감정은 '청소년'이라고 무디고, 성인이라고 기민한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각자에 맞는 크기의 기쁨과 슬픔이 존재한다. 이에대한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역시나 '독서'다. 연예인 지망생의 이야기, 공시생과 수험생의 이야기, 오래된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 미혼모의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우리는 짐작할 필요도 이유도 없이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급하게 변해가는 나와 주변인들이 언제라도 겪을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이미 한차례 공감의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사람과 난데없이 상황을 맞이한 사람은 문제를 대변하는 자세가 다르다. 김수정 작가님은 바이크를 타고 대한민국의 여기저기를 여행했다. 우리의 대부분이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봤을 것이고, 또한 그를 통해 더 많은 생각을 얻었을 것이다. 소설 중 생각치 못했던 가상인물들의 삶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감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는 점에서 얇지만 유익한 시간을 갖게 됐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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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로우, 진동의 법칙
벡스 킹 지음, 정미나 옮김 / 에쎄이 출판 (SA Publishing Co.)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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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감사', '균형'

내가 인생에 대해 가지는 철학은 이 세 가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매사에 감사하며 균형적으로 바라보자. 더 멋진 말들도 많겠지만, 이 세가지면 나에게는 충분하다. 책을 읽다보니 나의 인생관을 정확하게 간파하는 내용들이 이어져 나왔다. 남태평양에 날씨 좋은 나라에서 10년을 공부했다. 어찌나 날씨가 좋던지 처음 한 달 간, 햇볕이 강하다 못해 눈과 피부를 때렸다. 그렇다. 말 그대로 태양광은 나의 눈과 피부를 때리고 있었다. 어찌나 햇볕이 강렬한지 해가 지고나면 눈이 피로하고 피부는 따가웠다. 사람들은 오존이 파괴된 남반구의 특징이라고 했다. 일부의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날씨 이야기를 하며 불평으로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짧은 어학연수 기간 내내 불평을 하다가 돌아갔다. 그곳의 사람들에게 선크림과 선글라스는 필수품이다. 내리쬐는 햇볕을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외출 시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챙기고 다녔다. 선글라스를 끼면 눈이 편안하다. 이미 뚫려 있는 오존을 막을 수는 없다. 혹은 지구로 내리쬐는 태양볕을 조절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목숨을 걸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태양의 밝기를 줄이는 방법을 택하는 것 보다 콧등으로 검정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편이 수월하다. 그것은 훨씬 경제적이고 쉬운 방법이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제어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태양볕과 같은 외부적인 장애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해결 방식은 같다.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으려면 우리 가능할 지언정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해결책은 가깝고도 쉬운 '나'에게 대부분 존재한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내리쬐는 햇볕을 그대로 두고서 내 눈에 검은 안경을 씌우는 일이다. 검은 안경을 쓰고 나자, 내리쬐던 햇볕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었다. 보기 편한 눈에서 반짝 거리는 바다와 자연이 한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좋은 날이 많아 외출하는 날이 많아졌다. 100명이 눈이 부신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검은 안경을 쓴 사람의 눈에는 아름다움만 보일 뿐이다. 다른 키워드는 '감사'다. 감사는 가진 것을 깨닫는 일이다. 몇 해 전, 엄청나게 많이 내린 눈 때문에 비행기가 지연된 적이 있다. 그때 같은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은 수 시간이 지연된 비행기를 타면서 욕을 했다. 비행기 지연 때문에 일정이 꼬였다느니,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했다느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쏟았다. 이후 알게 됐다. 그 비행기는 그 날의 마지막 비행기였다. 계속되는 폭설로인해 그 비행기는 지연이 됐으나, 비슷한 시간을 공항에서 기다렸던 다음 비행기 탑승 예정자들은 전광판에 '결항'이라고 된 표시를 보게 됐다. 그 비행기는 행운의 비행기였다. 매상황은 절대적이지 않고 항상 상대적이며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우리는 마구자비로 주어지는 '상황'에 이름표를 가져다 붙인다. 이거는 '좋음', 이거는 '나쁨'.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좋음' 이름표보다 '나쁨' 이름표 찾기를 더 잘한다. 결국 내가 가지고 가는 '상황'에는 온통 '나쁨' 스티커가 붙어 있다. '좋음'과 '나쁨'의 비율이 정확히 50%가 아니라, 20대 80이라면 이름표를 붙이는 행위를 지속할 때마다 '나쁨'을 꾸준하게 갖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다. 그냥 '좋던', '나쁘던' 스티커를 붙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우리는 '부끄러움'을 알게 됐다. 선과 악을 구별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고통을 시작하는 셈이다. 나의 원죄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좋음과 나쁨을 구별하지 않는 것은 꽤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그저 어떤 상황이라도 '감사'하게 느끼면 된다. '균형'도 그러하다. 공짜로 얻어지는 것 같은 모든 것은 사실 빚이거나, 빌려준 것을 돌려 받는 행위다. 즉, 그저 주어지는 것이란 것은 없다. 밥 한끼 먹으면 나도 한 번은 사주고,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표현해야한다. 뭐든 치우지치 않아야 한다. 불교에 관한 책을 읽으면, 기독교나 이슬람에 관한 책을 읽는다. 보수정치인의 책을 읽으면 진보정치인의 책을 읽고, 친일의 책을 읽으면 반일의 책도 함께 읽는다. 균형을 맞춘다. 이 모든 철학은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진동'과 연관되어 있다. 진동(vive)는 다른 말로 하면 '파장'이다. 즉,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은 '파장'이다. 빛도 파장이고, 소리도 파장이며, 물체도 파장이고 모든 것을 떨고 있다. 만약 두 사람이 줄넘기 줄을 잡고 있다고 해보자. 한 사람이 잡고 있는 줄을 위에서 아래로 세차게 흔들면 줄넘기는 이 에너지를 전달하여 반대쪽 사람에게 넘긴다. 반대쪽 사람의 팔이 움직인다. 이번에는 반대쪽 사람이 줄넘기를 세차게 흔든다. 즉, 두 사람이 줄넘기를 동시에 흔든다. 파장은 양쪽에서 진행하여 가운데에서 만난다. 이때, 두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하나는 '보강'이고 다른 하나는 '상쇄'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한쪽에서 내리친 힘의 정확하게 같은 힘을 반대쪽에서 내리쳤을 때, 만들어지는 골과 산 모양이 반대면, 가운데 진폭이 더 커지거나, 사라져 버린다.

회전문이 있다고 해보자. 두 사람이 회전문을 민다. 둘다 같은 힘으로 민다.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두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둘이 서로를 바라보고 밀었을 때는 회전문은 움직이지 않고 정지된다. 즉 들인 에너지는 있을 지언정 어떠한 변화도 없는다. 다시 둘이 같은 힘으로 밀고 있을 때, 같은 방향을 향하여 밀면 어떻게 될까. 혼자 밀때보다 회전문이 회잔하는 속도는 높아진다. 그렇다. 상쇄와 보강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는 얼마나 에너지를 사용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여긴다. 아니다. 같은 거리인데도 갈 때와 올 때, 비행 시간은 다르다. 그 이유는 편서풍이라고 부르는 제트기류 때문인데, 같은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한 쪽에서는 바람을 등을 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바람을 타고 간다. 둘 다 같은 거리를 이동하지만, 들어가는 에너지와 도달하는 시간의 차이는 발생한다. 사람은 파동이다. 생각도 파동이다. 흔히 뇌파를 감지하고 사용하는 단위에 헤르츠(Hz)를 사용한다. 이는 1초당 진동하는 진동수를 말한다. 즉, 우리의 파장과 크기와 방향이 같은 대상과 다른 대상이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상쇄'와 '보강'작용이 들어간다. 엄청나게 커다란 진동에 미세한 진동은 종적을 감춘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는지는 명확하게 나에게도 영향을 준다. 긍정적인 사람을 곁에 둬야 하는 이유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람들과 함께 하며 긍정적인 결과물을 이끌어낸다. 생각에도 진폭과 진동수가 존재한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사람에게 반응하는 상대가 결정된다.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면 왜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지 본질을 고민해보라. 대부분 별거 아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뇌파는 다시 정상범주로 돌아온다.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것은 나를 변화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상호작용된다. 나에게 선글라스를 씌우는 행위는 나를 변화시킨 행위이지만, 세상 전체가 변화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 중에서 꽤 나의 철학과 닮아 있는 책이라 반갑게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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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4막, 은퇴란 없다
윤병철 지음 / 가디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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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자연에 없는 두 가지 시기가 존재한다. 하나는 소년 시기, 다른 하나는 노년 시기다. 분자 생물학자 벤저민 메인(Benjamin Mayne)과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대 연구진에 따르면 자연에 의해 규정된 인간의 수명은 '38세'다. DNA 서열을 분석한 결과, 인간은 40세면 생을 마감해야 한다. 인간의 사촌 격인 침팬지의 자연수명은 39.7년,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수명은 둘 다 37.8년이다. 호모사피엔스라고 다를까. 아이러니하게도 행정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호모사피엔스 종의 기대수명은 '83.5세'다. 인류가 영양과 의료 환경이 개선으로 자연이 설정한 수명의 2배를 초과하게 만든 것이다. 심지어 2030년 대한민국 여성 기대수명은 90.82세로 세계 1위가 될 예정이다. 인간은 참 독특한 생물종이다. 다른 동물들은 출산의 고통이 아예 없거나 적다. 반면, 인간의 경우 출산의 고통이 극심하게 크다. 출산 이후에 양육의 고통도 인간만이 극심하다. 이유는 자연이 설정한 변화 속도를 사회, 문화가 보조하며 넘어섰기 때문이다.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발달하는 인간은 태어나고 난 뒤, 스스로 목도 가누지 못한다. 다른 포유류들이 대게 태어나자 마자 걸어다니는 것과는 상반된다. 송아지의 경우를 보면 태어나자마자 몇 분 내로(길어도 한 시간 내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다.

유독 인간 만이 태어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의 상태로 태어난다. 눈도 뜨지 못하고 목도 가누지 못한다. 인류가 진화 중 두개골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인간은 어미의 뱃속에서 생물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태어나 버린다. 심지어 충분하지 못한 임신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비대해진 머리 덕분에 새끼 호모사피엔스는 어미에게 출산의 고통을 준다. 동물의 경우, 새끼의 머리가 어미의 산도(출산 통로)보다 작다. 인류 만이 불균형적인 진화로 머리가 지나치게 커졌다. 반면 여성의 골반은 작아졌다. 이에 생존에 필수적인 상태로 완성도 되기 전에 세상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이다. 다른 생물종에 비해 인간은 생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한다. 즉, 또한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를 얻는데에 최소 20년의 시간이 걸린다. 인간 사회가 설정한 '완성된 인간형'으로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다. 그리고 완전한 성년이 된 인간은 그 이후부터 '생존활동'을 시작한다. 그 전까지는 무조건 사회적 보호를 받는다. '소년'는 즉, 자연에 없는 시기다. 기본적으로 유아시기를 지나면 곧바로 청년시기가 이어지는 다른 동물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또다른 자연에 없는 시기는 앞서 말한 대로 '노년시기'다.

생후 40년이면 자연적인 수명을 다해야 할 인간은 그 뒤로도 40년을 더 생존한다. 20~40년 고점을 찍은 인류의 생존능력은 이후로 점차 내리막을 걸어야 한다. 약육강식에 의하면 젊은 이들은 '나이 많은 이'보다 더 '자연'에서 유리하다. 드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나약하게 태어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존을 잇지 못하고 죽는다. 이런 사회 시스템의 가장 꼭대기에는 '노년'의 지혜가 필수적이었다. 즉, 호랑이나 사자의 날카로운 송곳니나, 늑대나 곰의 날카로운 발톱이 아니라, '지혜'라는 무기가 더 중요해진 셈이다. 자연에는 '노인공경'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자'가 만들고 키웠을 것 같은 '유교사상'이라는 것들도 사실 인간 세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나이 많은 사람'의 지혜는 사회에 가장 큰 무기였다. 젊은 사회인들은 '노인들'에게 '방어'와 '노동력'을 충분히 제공하는 대신 '지혜'를 얻었다. 헌법67조 4항에는 대통령 출마 자격으로 40세 이상을 적시했다. 인간의 지혜가 일정 이상에서 더 성숙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셈이다.

사회가 소년층과 노년층을 보호하면서 인류는 더 큰 번영을 누렸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소년층과 노년층에 대한 복지에 힘을 쓴다. 사회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국가 경쟁력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령화는 생물종에게 치명적이나, 고도의 산업화가 진행된 사회에서는 법제도의 수정을 통해 더 성숙해질 여지도 있을 수 있다. '고령화'라는 현상을 통해 '노인'에 대해 '불필요한 '부양인력'으로 설정하는 것은 그닥 '선진적인 접근'은 아니다. 1930년 생 워렌 버핏은 작년에 배당 수익만으로 3조였다. 연소득 3천 만원의 청년 10만 명과 같은 소득이다. 벤저민 그레아엄은 94세로 장수했고 워렌버핏은 93세다. 이들에게 이처럼 큰 '부'을 얻을 수 있는 투자비법을 묻자. 그는 대답했다. '장수'라고 말이다. 나이와 생산성의 비교 그래프를 대조해 보자면 충분히 생산성에 차이는 존재할 수도 있다. 다만, 앞으로 생산성은 기계와 AI에 의해 대체될 예정이다. 급격한 고령화는 분명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노년을 맞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전하고 깨닫는다면, 고령층은 사회에 더 큰 '부'와 '득'이 될 존재들이다. 자연은 신체를 '노쇠'하게 만들며 무기를 퇴화시키지만, 인간의 무기는 나이를 더 먹을수록 날카롭게 진화한다. 노년을 맞이하는 많은 사람들이 더 멋지고 빛나게 살 수 있도록 준비한다면, 개인과 사회에 커다란 풍요가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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