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놀거리 마스터 - 메타버스 시대의 새로운 인생관, 고독하면서도 우아하게, 제대로 노는 법
이종구 지음 / 모던스튜디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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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스타 마돈나가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하루 일과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머리 감으면서 소변을 볼 때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 인생은 고귀하고 대단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태어나버림과 죽어버림' 그 사이의 공백을 채워 넣는 일일 뿐이다. 인생의 목적은 사소한 찰라와 찰라의 순간을 즐기는 것 그 뿐이다. 예전 외국의 한 프로그램에서 돈다발 위에 손을 올리고 손만 떼지 않으면 10억을 주는 컨텐츠의 방송을 했던 적이 있다. 게임의 방식은 단순하다. 그저 돈다발 위에 손을 올리고 오랫동안 떼지 않으면 된다. 이 중 상금을 가지고 간 이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배가 고파서' 혹은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라는 사소한 이유로 10억의 상금 위에 손을 뗐다. 그렇다. 우리는 사실 대단한 것을 하고자 하는 듯 하지만, 사소한 것에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상금이 100억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시기 위해, 손을 뗄 것이고 누군가는 소변을 보기 위해 손을 뗄 것이다. 10억을 포기하고 방송국 화장실로 달려가 10억 짜리 소변을 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사실 그렇다. 대단한 일은 웬만해서는 잘 없다. 우리가 광활한 우주의 은하라도 하나 창조 하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진정한 행복은 거의 대부분 사소한 것에 있다. 우리는 대통령이 되거나, 재벌이 되거나 그저 시골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며 사는 농부의 삶을 살지라도 모두 별거 없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어느날 갑자기 심장마비가 생길 수도 있고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을 지도 모른다. 인생에 자체에 커다란 부담감을 느끼면 즐겨야 할 인생에 아무런 오락도 즐기지 못한다. '존 A. 쉐드'는 나에게 꽤 공감되는 명언을 남겼는데, "A ship in harbor is safe, but that i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라고 했다. 인생은 언제나 '골'과 '산'이 굽이치는 파도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언제나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다. 붓다 인간의 고통과 번뇌가 '인생의 골'에서 발생함을 알았다. 고로 그는 이를 없애기 위해, 해탈을 이야기 하곤 했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수행자의 삶을 통해 삶의 출렁임을 줄였다. 고통이 사라졌으나 이 방법은 인생의 쾌락도 함께 지워내야 했다. 인생은 언제나 즐거움을 추구해야한다. '고독한 놀거리 마스터'의 저자 이종구 작가의 철학이 나의 철학과 많이 닮아 있다. 책을 한 권 읽으면서 몇 번을 긍정적인 의미로 내려놓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실행하고 싶은 욕구가 머릿속으로 침투했다. 우리는 밋밋한 일상을 타개하기 위해, 돈을 내고 공포의 상황을 구매한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살해되거나 고통 받거나 슬픈 상황을 스크린을 통해 들여다본다. 있을 필요도 없는 부정적인 감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어 오락으로 즐긴다. 결국 번뇌와 고통도 일종의 놀이로 여길 수 있다. 누구나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상황을 즐길 수 있다. '안전장치'라는 것은 무엇일가. 깊게 따져들면, 그 조차 무의미 하다. 우리가 불안해 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생존'의 위협에 대한 공포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위협을 영생토록 이겨낸 이는 없었다. 어차피 맞아들여야 하는 것이 '죽음'이다. 피할 수 없는 소나기는 그냥 맞야야 한다. 어치파 젖을 걸 알면서 피하려고 허둥될 필요가 있나. 대부분은 모든 상황은 즐길 수 있다. 좋은 일이 있다고 기뻐할 필요도, 나쁜 일이 있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담담하게 인생의 파도에 몸을 맡기며 그 출렁임을 즐기면 된다. 개인 사무실 겸 서재로도 사용하고 있는 '학원에는 엄청나게 큰 '빈 강의실'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강의실 한 쪽 벽면을 비워 두었다. 그 벽 쪽으로 '빔 프로젝트'를 쏘고 웅장한 스피커를 갖다 놓으면, 코로나 시기에도 거대한 개인 영화관을 가질 수 있다. 학원 중앙에는 웬만한 소형 서점 규모의 책이 정리되 있다. 편의점에 파는 싸구려 수제 맥주를 갖다가 영화를 즐긴다. 화면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장면을 편안한 자세로 즐긴다.

화면이나 페이지에서 재생되는 내용은 잔혹하고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편안하게 맥주를 즐기며 여가를 갖는다. '명상'을 즐기는 이들은 이처럼, '영사기가 재생하는 고통' 현실의 나에게 미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닳으면 영화나 소설을 즐길 수 있다. 불교에서도 제3의 시선의 습관은 삶의 번뇌를 줄인다고 한다. 즉, 드라마의 주인공이야 죽던 말던 지켜보는 제3는 2시간 보장된 영화가 끝난 뒤, 자리를 정리한 하고 편안하게 침대 위에서 잠을 잔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객관화 하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번뇌를 벗어나는 방법이다. 모든 훈련은 사실상 '혼자 놀기'에서 터득하는 일종의 삶의 본질이다. 중요한 사업에서 실패를 하거나, 시험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저 그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즐김을 하면 그것으로 됐다. 고독하고 우아하게 노는 방법은 사실 여럿이 노는 것도 있겠지만, 혼자 노는 것이다. 혼자 놀기는 충분한 사색의 시간을 주고, 객관성을 만들도록 돕는다. 누구보다 자신을 관찰할 시간을 많이 만들어준다. 살다보면 화가 난 상사의 한숨 소리나 발자국 소리에 귀를 쫑긋하면서, 정작 자신이 내뱉고 들이 쉬는 들숨과 날숨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나는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은지 혹은 어떤 습관이 있고 어떤 것을 좋아하며,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제대로 파악도 못한 주제에, 남에 대한 신경을 곤두 세우기 마련이다. 혼자 놀기는 그 누구보다 자신을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만 스물이 되고 해외에서 근 10년을 혼자 살았다. 혼자 놀기의 달인으로 살다보니, 나혼자만의 문화가 만들어지곤 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 문화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나에게 적합하게 발달해져 간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군대 혹한기 훈련에서 일주일 간 씻지못해, 몸과 머리, 얼굴에서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 위장크림을 얼굴에 덕지 덕지 바르고 물티슈로 그것을 대충 닦아 냈을 때, 그 고통이 극한이 되고 찾아 온 혹한기 마지막날 샤워는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마찬가지로 극한의 운동을 하고 100번의 스쿼트를 하고 부들 부들 떨리는 다리의 힘을 풀어 바닥에 털썩 주져 앉았을 때도, 그렇다. 별거 아닌 아주 찰라의 순간도 우리는 그 무엇보다 값진 행복감을 느낀다. 결국 고통 뒤에 찾아오는 '별거 아님'에 행복을 느낀다는 점에서 사실, '고통'이 감춰 놓은 '행복'의 달콤함을 기대하는 것도 인생의 재미일 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아무래도 나와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한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으나, 느닺없이 철학과 인문학으로 가슴속 부터 후벼 들어가는 문장들로 앉은 자리에서 모두 완독해 버린 책이다. 그렇다. 삶은 생각보다 별거 없다. 그냥 하나의 놀이일 뿐이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생기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고 부여하지 않고 또한 하나의 놀이일 뿐이다. 싸구려 편의점 우동을 사먹어도 귓속에서 '일본풍' 음악이 흘러나오면 음식의 가치는 배로 올라간다. 이어폰은 주변이 어떻든 어떤 상황에서도 사방을 뮤직비디오로 만들어낸다. 이것은 혼자만 즐길 수 있는 감상이다. 너무 진중하게 세상 만사를 맞이하며 흰머리와 주름살을 늘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긍정적이게 모든 것은 일종의 게임이고 오락일 뿐이며, 이 인생이라는 놀이를 최대한 즐기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목적이자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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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고 CEO들의 경영철학 - 성공의 문을 여는 마스터키
다니엘 스미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에쎄이 출판 (SA Publishing Co.)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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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나무그늘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아주 오래 전 누군가가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1991년 워렌 버핏은 말했다. 세상에는 주관적일 수 있으나, 좋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을 했던 이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했을 때, 과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이 물음에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라고 본다. 탈무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배고픈 아이에게 물고기를 주지 말고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라." 물고기를 배고픈 아이의 입에 넣어주는 것 만이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은 아니다. 만약, 한 사업가가 굶주린 아이에게 다가가 '물고기 낚는 법을 알려줄테니, 10마리를 낚을 때마다, 한 마리씩만 주라로 해보자. 굶주린 아이는 풍요를 얻는다. 비즈니스는 남의 것을 빼앗는 탐욕의 상징이 아니라, 상대를 이롭게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이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세계사를 보면 아프리카, 아시아를 무섭게 식민지화 하던 서구열강들이 갑자기 모든 식민지를 해방시키고 자유무역을 시작하는 시기가 온다. 근대에서 현대로 오면서 '식민지'와 '제국'은 사라지고 '자유무역'의 세계가 도래했다. 남의 땅에서 원자재를 수탈하고 완제품을 팔아 이익을 챙기는 행위가 자유무역보다 수익성이 떨어졌음을 인식한 세계 비즈니스의 인식 변화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의 경제 활동은 사실상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토대 위에 짓는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다시 나또한 그 위에 무언가 하나를 더 얹고 사회에 재환원한다. 이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에는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필요도 없다.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이들을 위한 보상에 스스로 관대해져야 한다. 보상없는 선의가 조금 더 값어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옳지 못한 착각이다.

'미국의 기업이 유럽에게서 배워야 할 교훈'이라는 글을 쓴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의 경영사회학자 레온 C. 메긴슨은 자연선택설의 찰스 다윈의 가르침을 경영마인드로 설명했다. 세상에는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가 살아 남는다. 농사를 지으면 한 가지에 수 십 개의 열매가 열릴 때가 있다. 이 가지에 열린 모든 열매가 실하게 열리면 좋겠지만, 나무가 뿌리로 부터 빨아 올리는 수분과 영양소는 한정적이다. 또한 태양으로부터 광합성을 통해 얻게 되는 에너지 또한 한정적이다. 이런 한정적인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자연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수 십 개의 과실 중, 부실한 과일을 낙과시킨다. 가장 튼실하고 적합한 과실만 남긴다. 대부분의 자연은 이런 방식을 통해 생존해왔고 이렇게 생존한 이들은 자연환경에 크게 이질감이 없는 이들이다. '자연선택설'은 내가 사회, 문화, 경제를 포함하여 자주 예를드는 '논리'다. 이를 조금더 확대하다보면 '경영'에 대한 다른 방향의 해석도 가능하다. '강하거나 똑독한 이들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따지고보자면, 환경에 가장 적합한 이들이 살아님기도 한다. 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빠르게 변화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이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미술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칠판 앞에 올려 놓으신 과일 바구니를 그리는 수업시간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뒤, 얼마지나지 않아, 나는 대략적인 스케치를 마치고 붓에 물감을 묻혀 몇 번의 붓칠을 했다. 미술 선생님은 멀리서 내가 그린 그림을 지켜보시다가 다가오셔서 말씀하셨다.

"얘들아. 그림은 이렇게 그려야 돼. 니 그림이 기대가 되는구나."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뒤, 다시 살펴 본 나의 그림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잘 그려져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에 그 뒤로 미술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

환경은 그래서 중요하다. 선생님의 칭찬은 좋은 의도였을지 모르지만, 나는 어쨌건 그 칭찬 이후에 미완의 그림을 제출하고 결국 C를 받았다. 미국의 듀폰은 1802년 미국 델라웨어주에서 폭약 제조업체로 출발했다. 그리고 미 남북 전쟁 당시 북군이 보유한 화약의 약 60%를 공급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기가 찾아오자 회사는 전문 기술을 기반으로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고 합성고무, 섬유, 농산물, 의료기기 등을 생산하며 전세계 화학 제품 시장의 주류가 됐다. 지금의 그 누구도 듀폰을 생각하면서 폭약 제조업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진화해 나가는 것이 '자연선택'의 최전방에서 진화를 이뤄가는 것이다. 반대의 예로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다는 '제너럴 일렉트릭'이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로 손꼽히던 이 회사는 이제 삼성전자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또한, 무슨 업무를 하는 회사인지 그 정체성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이처럼 도태되기 마련이다.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주어지는 기회를 잘 잡아야한다. 사실의 기회가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우리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왠만한 기회와 질문에는 "YES"라고 대답하는 것이 좋아 보이기도 한다. 내가 영어공부를 할 때, '짐 캐리' 주연의 '예스맨'을 자주 시청하곤 했다. 성공에 대한 성공학을 담은 이 영화는 내용도 재밌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인생철학은 더할나위 없이 컸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놀라운 기회를 제시했지만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무조건 하겠다고 답하라. 그런 다음에 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이는 리처드 브랜슨이 했던 말이다. 셰릴 샌드 버그도 비슷한 말을 했다. "누군가가 우주선 자리를 준다고 하면, 어느 좌석이냐고 묻지 마세요. 그냥 올라타세요."

최초 버블랩(뾱뾱이)는 원래는 건축자재였다. 다만 이를 건축 자재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원래 목적과 다르게 이 재료를 배송 시, 파손 방지를 위해 사용함으로써 이 발명품은 대박이 나기도 했다. 세상에는 의도와 다르게 벌어지는 기회가 많다. 심지어 파산 직전가지 몰렸던 페덱스 또한, 남은 회사 잔고를 가지고 라스베가스의 도박에 배팅하여 회사를 키워 내기도 했다. 인생과 성공의 대부분은 그처럼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하다. 우리의 대부분은 이를 예측가능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체스왕 보비피셔를 이길 수 있을가? 여기에 워렌버핏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체스말고 다른 게임을 하면 된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키우고, 자신이 잘 못하는 분야에 미련을 버리고, 비즈니스는 참으로 복잡하기도 하면서 단순하기도 하다. 이 책은 사업을 일구고 성공한 많은 기업가의 명언과 글을 담은 매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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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영어1등급으로 만들어주마 (최신개정판) - 당신도 늦지 않았다! 수능 50일 전 내가 발견한 비밀 너를 OO1등급으로
서림 지음 / 메리포핀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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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터, '아사다마오'는 여자 싱글 최초로 올림픽에서 '트리플 악셀'을 3회 성공 시켰다. '트리플 악셀'은 공중에서 착지하기까지 3회전 반을 도는 기술이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다가 힘차게 도약하여 몸을 비틀고 회전하는 동작이다. 이 때, 팔은 공중으로 솟구치자마자 가슴으로 모아 오므려야 한다. 또한 착지 시에는 팔을 벌려 빙판 위로 착지하면 된다. 회전 수는 3회전 반이다. 어떤가? 간단하지 않은가? 사실 '트리플 악셀'은 피겨 선수들이 최고로 치는 기술이다. 이처럼 지식은 간단하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 적용하는 것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 영어는 '학문'이 아니라, '수단'이며, '관습'이고 '상호의 약속'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다른 과목과는 다르게 영어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트레이닝'하는 것이다. 몸에 익고 훈련되야 한다. '코치'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서 얼마나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며 습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누구나 '트리플악셀'에 대해 '성공 방식'을 말 할 수 있다. 다만, 이는 매일 똑같은 양의 훈련을 반복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고난이도의 기술이다. 어떤 요령이나 쉽게 할 수 있는 '과외'를 받았다고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일도 아니다. 긴 영어 문장을 이해시키기 위해, 학생들은 고액과외를 받기도 하고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영어를 굉장히 잘한다는 '강사'들은 깔끔한 복장을 입고 나와, 멋지게 '독해해 나간다.' 그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기에 너무나 쉬워 보인다. 다만, 혼자서 긴 영어 문장과 만나면 앞이 깜깜하다. 자괴감이든다.

그렇다. 누군가가 성공했던 '트리플악셀'을 구경한다고 해서 내가 어느날 갑자기 '트리플악셀'을 성공할 리가 없다. 그런게 가능하다면, 전 세계 유명한 스포츠 선수들은 모두 연습장이 아니라 TV 앞에 모여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학생들은 '강사들의 트리플악셀' 시범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고 돌아온다. 영어는 '능동적인 훈련을 통해 학습되는 '의사소통 수단'이다. 간단한 율동이나 동작과 같이 신체를 이용하는 활동이며, '몸'이 기억해야하는 '과목'이다. '어느 학생이, 어느 학원에가니 몇 점이 올랐다.'는 것은 오르고 내리는 수많은 학생들의 점수 중, 일부의 경우를 '마케팅'한 홍보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은 노력없이 얻을 수 있다는 정보에 '얼씨구나', 지갑을 열고 달려든다. 다시 말하자면, 언어는 '트레이닝'하는 것이지,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몸과 감각으로 익숙'해지는 것이지, '지식과 지능'과는 별개의 것이다. 어려운 영어 독해 방법을 설명하는 강의를 보다보면 피할 수 없는 '독해법'이 있다. 바로 '끊어 읽기'다. 끊어 읽는 법은 분명 효과적으로 문장을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해외 유학 시, Assignment(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접했던 영어 문장에서 '끊어 읽기'의 흔적이 없었다. 나는 눈동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며 이해를 했다. 이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당신이 여기까지의 글을 읽었는데, 어떻게 이해하며 읽었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비슷하다. '내가 읽어보니 그렇더라. 너도 읽어봐라.'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는 '토익', '토플', '수능' 영어를 비롯해 '영문 독해'가 굉장히 중요하다. 대부분의 이런 영문독해 강의는 '끊어읽기'로 설명한다. 다만, 본질을 들여다 보자면 끊어읽던 붙여읽던, 덩어리 단위의 명사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며 '무의식' 속에서 넣다가 뺐다 쓰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방법을 묻는다면, 단연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명사'입니다. '수능 영어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장 잘 이해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단연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명사를 이해하세요."

"Marisela Gomez, a doctoral student in pharmacology at Johns Hopkins, is a part Mayan who was raised in a culture that taught the value of waiting for others to speak first."

이러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보통의 영어 강사들은 '동사를 찾으세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다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순차적으로 읽으며 이해 해야 하는 '언어'의 특성에서 '동사'를 찾는다는게 어불성설이다. 사실 앞선 글에서 한 단어로 보여지는 것은 "Marisela Gomez, a doctoral student in pharmacology at Johns Hopkins" 다. "존스 홉킨스 약리학 박사 학위 학생인 마리세라 고메즈"라는 하나의 명사다. 굳이 어려운 말로 하자면, 이는 '명사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명사구를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뇌는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덩어리가 많아봐야 3~4개 뿐이다. 쉽게 말해서, 인간의 뇌에는 4개의 방이 있고 4개까지를 한 번에 받아 들일 수 있는 셈이다. 만약, 'Marisela Gomez, a doctoral student in pharmacology at Johns Hopkins' 이것을 단어마다, 하나의 방을 사용한다면, 벌써 10개의 방을 사용하게 된다. 다만, 이 명사구를 이용해 단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면, 우리가 문법에서 말하는 S(주어), V(동사) O(목적어) C(보어)로 구성하는 5형식의 모든 문장이 한번에 인식된다.

The boy(그 소년)과 The boy that I know(내가 아는 소년)은 모두 한 덩어리다. 아무리 그 뒤에 다른 지저분한 단어가 붙는다고 하더라도 모두 한단어다. The boy that I have known since 2008(내가 2008년부터 알아오고 있는 그 소년)과 같이 사실 모두 하나의 명사구다. 결국 the boy is kind.(그 소년은 착하다)와 The boy that I have known since 2008 is kind.(내가 2008년부터 알아오고 있는 그 소년은 착하다)는 사실상 구조가 같다.

그렇다면 명사를 어떻게 바라보면 쉽게 볼 수 있을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없다. 뭐든 '쉽게' 얻고자 하는 욕심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으나 아사다 마오가 모든 문제에 쉬운 해답이 있었더라면, '아사다마오'는 왜 그처럼 연습장에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을까. 결국 직접 해보고 부딪쳐보고 틀려보고 써보고 말해보고 생각해보고가 정답이다. '메리포핀스' 출판사의 '서림' 작가 님은 이 책에서 '영혼독해'라는 독해법을 언급했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워낙 추상적인 관념이라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다만,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이해했다. 그녀는 영어문자를 읽고 한국어로 번역하여 이해하려는 습관을 벗어나, 영어 자체로 이해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바로 하나의 문장을 받아들이면 그것을 소화하고 거기에 맞는 리액션을 통해서 문장 자체를 체감하라는 의미다. 이에 심하게 공감한다. '월드스타'로 유명한 가수 '비'는 영어 공부를 할 때, 한국어의 모든 발음을 영어처럼하거나 한국어의 어순을 영어 어순으로 바꿔 말했다고 했다. 이것은 '괜찮은 훈련'이다. '나는 학교에 갔어'의 문장을 '나는 갔어, 학교에'라고 바꾸는 간단한 훈련으로 우리는 영어 어순대로 이해하는 습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실 책 한 권 읽었다고 영어가 능숙해질 순 없다. 다만, 그 태도에 대해 어느정도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해당 책을 읽고 커다란 변화가 있을 수도 있고,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만약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더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훈련'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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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제목에 '특종', '단독'이라는 단어에 흘깃하여 이 페이지를 열어 봤다면, 우리는 언론을 '욕'할 이유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자본주의에서 선택받지 못한 상품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어렵게 말할 것도 없다. 자연에서 선택받지 못한 생물 또한 사라진다. 이것은 우리를 있도록 한 '진화론'의 '자연선택설'이다. 자본주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택받지 못한 상품과 서비스는 사라진다. 환경에 선택받는 것은 고로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은 것들이야 말로 '우성인자'다. 우성인자는 유전된다. 다음 환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살아남은 우성인자 중, 더 특화된 종이 살아남는다. 그렇게 환경에 따라, 진화는 일반향으로 흘러가는 것 처럼 보인다. 공룡이 지구를 점령했던 중생대는 대략 18억6000만년이다. 그중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다고 보여지는 기간은 1억 5천만 년이다. 인류 탄생은 지금으로부터 2~400만년이다. 그 많던 공룡들은 다 사라지고 지금은 털없는 원숭이로 보여지는 '사피엔스' 종이 지구를 바글 바글 뒤덮고 있다. 어째서 그때는 공룡이 맞고, 지금은 인류가 맞는가. 지구의 산소 농도는 주기적으로 변한다. 낮을 때는 12%이고 높을 때는 35%다. 쉽게 산소는 0.5%의 변화만 생기더라도 숨쉬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꾸준하게 환경을 변화시키며 대기중의 산소 농도를 바꿔왔다. 여기서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과 적응하지 못하는 생물이 나눠졌다. 고생대 캄브리아에는 산소농도가 12%까지 줄어든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대부분의 생물종은 멸종했고 곤충과 같은 생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시 데본기에는 산소가 급증하며 해양 동식물이 바다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러다 공룡이 살던 중생대의 산소의 농도는 다시 15%로 추락한다. 이렇게 대기와 해양 속의 산소의 농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몸집이 큰 동식물이 유리하다가, 다시 몸집이 작은 동식물이 유리하게 되다.

한국 기자를 비꼬는 말로 '기레기'라는 용어가 인터넷에 등장했다. '기레기'는 '특종', '단독'과 같은 자극적인 기사를 만들어내고 제목과 상관없는 주제를 뽑아, 클릭수를 높이기도 했다. 중립적이지 않은 내용을 통해, 정치와 경제에 간접적인 간섭을 하기도 하고 모호한 용어 사용을 통해서 본질을 흐리기도 했다. 이것은 과연 그들의 잘못인가. CNN과 CBS에서 많은 탐사보도를 하고 여러 수상 경력을 가진 미국의 언론인 '셰릴 앳키슨'는 '내러티브 뉴스(책)'에서 '뉴스'의 문제를 꼬집는다. 특별히 '한국언론의 문제점'이라고 찝어내지 않았음에도 한국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것이다. 우리가 '기레기'라고 비웃고 조롱하던 언론의 문제는 '한국 언론'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언론이 가진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다. 환경에 의해 생존을 받아야 생존하는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언론'은 환경에 적합하게 잘 성장해왔다. 여기에는 언제나 문제가 발생한다. 어째서, '공룡이 멸종했는가.'에 '공룡의 문제'를 끄집어 낸다는 것의 상당희 의미가 없다. 일반적으로 대기 중 산소의 농도는 21%다. 1.5%의 산소 농가 줄어 19.5%가 되면, 흔히 말하는 '산소부족' 상태가 된다. 집중력이 저하되고, 구토와 두통등의 저산소증세가 나타난다. 우리와 공룡이 같은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알 수 있다.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인류와 공룡이 함께 생존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야한다. 둘 중 하나는 21%의 농도에, 다른 하나는 35%의 산소 농도에 숨을 쉬는데, 어떻게 공존 할 수 있는가. 환경은 그토록 무섭다.

흔히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라는 말을 한다. 보수언론이라면 보통 분류하기를 '조중동', 즉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일컫고, 진보 언론이라면,한겨례, 경향신문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언론의 정치편향성은 사실 어느나라에나 존재한다. 이는 언론사 창업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구독자의 성향의 문제다. 얼마 전 읽었던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언론사가 일방적인 정치 편향 보도를 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으나, 구독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진화되어 왔다는 시각이다. 즉, 언론 독자적인 문제를 꼬집기에 그 것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문제일 수도 있다. 환경은 그렇다. '내러티브(narrative)'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사용하는 '나래이션'과 어원을 함께 하고 있는 단어다. 언론은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 단어 선정을 한다. 여기에는 의도치 않던, 의도를 했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용어가 섞여 쓰인다. 진실된 정보와 사실을 전달함에 있어서도 글쓴이의 의도는 분명하게 들어간다. 즉, '기독교 국가의 1인당 gdp가 상대적으로 높다'라는 황당한 기사를 어린 시절 접했던 적이 있다. 이 기사에는 거짓은 없다. 실제 1인당 gdp로 봤을 때, 기독교국가의 gdp가 높긴 하다. 팩트를 전제로 한 기사에는 쉽게 생각해보면 '의도'를 유추해 볼만한 '내러티브'가 숨겨져 있다. 선진국일수록 식배 비중이 낮고, 고소득일수록 '식비 비중'이 높다는 엥겔의 법칙도 팩트임에도 불구하고 쓰기에 따라 그 의도가 불순하게 쓰여지기도 한다.

도서는 실제 미국 현대 정치의 기본 배경 지식이 없으면 자칫 어려울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밖에 미투 운동 등 미국 현대 사회의 이슈들을 언론이 어떻게 해석하고 보도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지난 트럼프 힐러리의 미국 대선과 이후 트럼프를 향한 언론의 내러티브에 대한 서술이 많다. 언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환경이란 바로 그 글을 읽고 접하는 독자들을 의미한다. 지금도 댓글하나 달리지 않는 좋은 기사는 얼마든지 있다. 다만, '기레기'라는 욕이 달리는 인기 '기사'에는 어김없이 엄청난 조회수가 따른다. 우리는 그런 안좋은 기사를 욕하지만 결국 그 제목에 이끌려 그것들을 선택한다. 환경에 적합한 우성인자들은 더 환경에 맞게 성장하는 법이다. 의사의 소명은 '돈'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이다. 그러나 어떤 의사도 '돈을 받지 않고 진료하겠다'고 개업하는 경우는 없다. 의사에게 일정의 의료비용을 지급하면서 의사의 가치관에 대한 '신뢰'는 의사에게 맡긴다. 이것은 '언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할 때, 그들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고,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며, 인종, 종교, 국적, 정파, 사회적지위를 초월하기로 한다. 또한 자신의 위협에서도 그 지식을 인도적으로 사용하기로 선언한다. 다만, 이는 현실적으로 적정 타협점에서 가치관과 현실성의 중간을 택하도록한다. 더 좋은 언론이 되기 위해선, 그들에게 채찍질을 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그들에게 제공해야한다. 그리고 이 우리 모두는 그 환경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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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초계 변씨의 삼천지교 윤동한의 역사경영에세이 3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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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중국 고대에는 '상(商)나라'가 있었다. 기원 전 1600~1046년 경, '상(商)나라'는 '은(殷)'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당시 중국은 넓은 지역을 한 명의 군주가 통치하기 어려워 황제의 형제나 친척에게 그 땅을 나눠 통치하게 했다. 즉, 봉건제도를 택하고 있었다. '상(商)나라' 역시 황제의 친족에게 일부 지역을 나눠 통치했다. 그 지역 중 한 곳이, '주(周)'다. '주(周)'에는 성이 희(姬), 이름이 단보(亶父)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의 장남이 바로 '오태백(吳太伯)이다. 그는 나라를 일으키고 이를 '오(吳)나라'로 칭했다. 나의 성씨는 여기 양쯔강 근처에서 시작했다. '천자'로 부터 성을 하사받은 '오(吳)나라'의 왕이 뿌리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뿌리가 천자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1,000년도 넘으면서 '혈통'이라는 것은 의미가 사실상 없다. 16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조선 전체의 인구 중 '성씨'를 가진 이들은 10% 남짓한 수준이다. 즉, 대한민국에 있는 성씨 중 대부분은 '가짜 성씨'일 가능성이 높다. 조선 후기가 되면서 성을 가진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다. 17세기에는 20%가 넘는 이들이 성을 갖게 됐고, 19세기 초에는 50%가 성씨를 가졌다. 19세기 후반에는 70%가 성을 갖게 됐는데, 20세기에 일제가 '민적법'을 시행하면서, 일본 순사들은 '성씨'을 원하는 대로 신청받았다. 즉, 집안 어른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지만, '혈통'을 의미하는 '성'에 대해, 나는 큰 의미를 부여 하지 않는다. 황족이나 왕족의 성씨를 자랑하는 성씨는 많다. 고구려하면 '고', 신라하면 '박', '석', '김', 고려하면 '왕', 조선하면 '이'를 비롯하여 그 밖에 왕족의 성씨로 혈통을 따지자면, '해, 부여, 진' 등 따질 수도 없이 많다. 즉, '의미없다'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보면 독특한 이름들이 많다. '스테파니, 제니, 마이클, 존 등'. 일부의 사람들은 '미국'이나 '영국'에서 공부하거나, 교포로 생활하다 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시대마다 다르다. 더 큰 문명에 연이 닿아 있다는 것은 '명문'에 닿아 있는 것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차별감은 우월감과 소속감을 만들어낸다. 즉, 저마다 자신들의 성들은 모두 대단하다고 여길 것이고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유교의 체계 하에 중국 문명을 숭상하는 소중화 사상을 가졌다. 나의 조상의 뿌리가 '중국'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자부심이 었을지도 모른다. 이순신 장군은 가난하고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커다란 위인이 됐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금수저 집안 출신이다. 이순신은 덕수 이씨의 집안으로 약 300년 이상, 조선에 엄청난 인재를 배출시켰던 명문 집안이다. 또한 그의 어머니는 '초계 변씨'로 이 또한 굉장한 인재들을 배출한 명문 집안이다. 이순신의 어머니의 정확한 이름을 확인하기 힘드나, 그녀의 성씨가 '초계 변씨'라는 점에서 당시 또한 굉장한 집안에서 자랐음을 알 수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혈통'은 지배계급에게 '명분'이 되곤 했다. 고로 당시의 성씨에 대한 해석은 과할 수도 있지만, 분명 해당 지배계급으로써의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남긴, '일기'에 따르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힘드나, 어머니인 '초계 변씨'에 대한 이야기는 꽤 많이 등장한다. 어머니와 자주 교류가 있었으며, 그 성향을 고대로 물려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 '위인'하면 꼽히는 인물 중, 이순신 장군과 함께 '세종대왕'도 있다. 세종대왕의 어머니는 '원경황후 민씨'로 남편인 이방원이 권력을 획득하는데 엄청난 공을 세운 인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녀는 '정도전'이 왕자들의 권력을 견제하려 들자, 집 안에 '무기'를 숨겨 놓기도 했고, 2차 왕자의 난에는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여 창을 들고 나가서 싸우고 죽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던 일도 있다고 한다. 그녀의 성격은 대장부스럽다고 평가 받는다. 조선의 왕비 중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의 영향이 아들에게 전이되지 않았을리가 없다. 이순신이라는 신격화 된 인물을 알기 위해선, '초계변씨'를 알아야하고, '초계 변씨'를 알기 위해선 '이순신'을 알아야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오직 모계로 부터 유전된다고 알려졌다. 즉, 외할머니, 어머니, 딸과 같이 모개로 전달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포 속에는 미토콘트리아가 있는데, 이는 우리가 취식한 음식과 산소를 통해 생명활동을 하는 에너지를 생성한다. 우리가 취식한 음식과 산소는 화학에너지다. 이것이 열 에너지가 되고, 그것이 운동에너지가 되고 다시 전기에너지로 바뀐다. 이 역할을 하게 하는 발전소가 바로 미토콘드리아다. 이런 생명활동의 필수적인 에너지 발전소에 '아버지'가 끼어들 틈은 없다. 이것은 오직 어머니에게서만 받으며 아이의 건강과 에너지에 큰 역할을 한다. 즉, '초계 변씨'가 아니라면, 이순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도서는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초계 변씨'의 행적을 찾아 떠난다. 이름도 모르고 기록도 찾기 힘든 그녀를 찾아가는 과정은 참 흥미롭다. 물론 도서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지진 않는다. 임진왜란 당시, 초계 변씨가, 아들 이순신을 위해 물밑에서 노력했음직한 일들에 대해 '합리적 추론'을 해보기도 한다. 가령,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중에 '변씨의 가문'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물론 읽다보면, 너무 부족한 근거 탓에, 빈약한 근거라고 여겨지는 추론도 있지만 분명 합리적이고 흥미로운 추론들이다. 이처럼 접근이 색다르고 흥미로운 책들이 앞으로도 꾸준하게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특히 이 책이 더 애정이 가는 이유는 저자인 '윤동한 작가' 님의 이력 때문이다. 윤동한 작가님은 현재 한국콜마홀딩스 회장으로 '역사'에 관한 학자가 아니다. 역대 부커상 수상자 중 최초의 흑인 여성이었던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세상에 내가 원하는 그런 작품이 없으니 내가 쓰겠다"라고 했다. 역시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자신이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지는 책이 없을 때, 그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직접 그 지적호기심을 충족시켜 버린다고 생각한다. 멋진 작가와 멋질 글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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