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위의 집
TJ 클룬 지음, 송섬별 옮김 / 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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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를 위한 동화. 장난감 집이 커다랗게 표지에 자리 잡아있다. '벼랑 위의 집'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렸던 제목은 '벼랑 위의 포뇨'다. 아이와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은 동화의 제목과 표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첫 페이지를 열었다. 얼마를 읽었을 때는 어렵지 않은 문체에 시원 시원하게 넘어가는 글자는 580페이지나 되는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법이라는 소재로 시작하는 이 책이 '어린이'가 아니라'어른이'를 위한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생각했던 '벼랑 위의 포뇨'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나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것은 프랑스 작가 생택쥐페리의 동화 '어린왕자'였다. 생택쥐페리의 동화, 어린완자는 '분명'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읽기를 권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단순히 동화같고 단조롭다. 또한 짧다. 다만, 그 이야기를 잊고 지낼 언젠가 '어린왕자'의 대목 하나 하나가 어른이 된 나에게 불쑥하고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 읽게된 '어린왕자'는 사실, 어린이로 읽었던 동화와 분명히 다른 책이었다. 그 책은 어른이 되어 읽으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유치한 소재와 터무늬 없는 설정에도 어른들은 그 '어른이 동화'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벼랑 위의 집'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과연 '마법'을 소재로 한 판타지 동화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TJ 클룬이 누구인지 먼저 알았다면, 아마 이 책을 읽기 전 부터 마음에 준비를 하고 읽었을지도 모른다. 저자인 TJ클룬은 람다 문학상 수상 작가다. 그는 보험회사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평범한 남자로 보이지만, 스스로 괴짜라고 인정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는 보통 '동성애'에 관한 장르를 쓰곤 한다.

코로나19로 무언가 재밌는 것을 검색해 보기를 반복한다. 넷플릭스에서는 더이상 재밌는 영화를 기대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새로 개봉하는 영화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갇혀 사는 세계에 점차 익숙해지며 심심하고 우울하기를 반복한다. 그런 와중 이 책이 나에게 왔다. 꽤 두툼한 글자는 처음 펴들기 막막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속도감 있게 책장이 넘어갔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단순하게 흘러간다. 마법아동고아원을 감찰하는 조사요원인 라이너스 베이커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아원의 아이들을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는 와중 한 고아원을 조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들어선다. 소설은 생동감이 넘치고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기발함과 장난기가 가득 묻어난다. TJ클룬의 성격답게 긍정적임과 괴짜스러움이 잔뜩 묻어진 책이다. 마법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 세상과 떨어져 사는 온화하고 자상한 두 남자 사이의 로맨스,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살피지만 일반 대중의 눈에서 멀어지며 보여지는 관료주의와 편견, 두려움 그리고 그것에 맞서는 가족의 힘. 분명 단순히 신비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을 담은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제일 처음 '모던패밀리'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던 때가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드라마가 한참이나 진행되는 동안 왜 그 제목이 그런 제목이 됐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덧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취지를 알 수 있게 됐다. 이 드라마는 '현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 시트콤의 주인공들은 '게이커플'과 나이 많은 남편과 젊은 여성, 이민자 가족 등 우리가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이 아닌 이들이다. 그러나 현대 미국을 비롯해 대한민국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의 가족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이 소설과 시트콤이 같은 부분을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다보니, 매력적인 캐릭터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소설의 재미는 곱절이상으로 커저간다. 물론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모든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보여지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바라보는 작가의 성격이 시선으로 반영됐다. 분명 미국에서 조차 이 책에 대해 여러가지로 다른 관점들이 나오는 모양이다. 이 소설은 "The Sixties Scoop"이라는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된 책이다. 실제 1950년에서 80년대까지 캐나다의 원주민들이 백인 가정에 강제로 입양됐는데, 이 일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문화상실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곤 했다. 당시 고아원을 다니며 복지를 감독하는 이가 있었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가정에서부터 빠져나와 학교나 정부 보호 시설에 수용됐다. 그들은 캐나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입양됐는데 그 숫자가 2만명이 넘어가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2017년이 넘어서야, 캐나다 정부차원에서의 보상이 이루어졌다. 사실 중산층 백인 집으로 입양된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자칫 아름답게 포장될 수도 있겠으나. 사실상 그들은 고문이나 폭력에 시달리고 강제적인 문화적 변화에 트라우마를 겪곤 했다. 지금까지도 각자의 나라에서 2등 시민으로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해 사회는 8억 달러의 보상을 통해 문제가 해결 됐다고 믿는다. 우리가 알다시피, 미국은 비교적 최근까지 노예제도를 유지하던 선진국이다. 독일이나 근대 유럽에서나 있을 법한 '홀로코스트'나 '노예제도'가 북미에 사실상 더 큰 범위로 존재 했다는 사실은 미국인으로써 기분 나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가슴 아픈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고 판타지스러운 소재와 함께 섞어 출판된다는 것이 그닥 그들로써 기쁜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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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는 누구인가 - 팀 켈러와 앤디 스탠리 중심 92가지 설교 꿀팁
지혁철 지음 / 샘솟는기쁨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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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나는 살면서, '가라사대'라는 말을 일상에서 단연코 써 본 적이 없다. '가라사대'는 '가로되'를 높인 말로 '말씀하시다'라는 뜻이다. 이는 실제 더이상 모국에서 조차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사어(死語)'다. 굳이 찾아본다면, 제주 사투리 중에 '말하다'를 '고르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아'와 '오'의 중간 정도 소리가 나는 '아래 아'를 쓰고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을 제외하고 '가로다'라는 말은 사용하는 사람도 없고 들어도 어색하다. 대통령 할아버지가 온다 해도 '말하다'를 어떻게 하면 높여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다음은 '요한 복음 19장 28절~30절'의 내용이다.

"이 후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에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한 복음 19장 28절~30절

모자람이 많은 나는 읽는 내내 불편함이 느껴졌다.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돌아가시니라'. 무지한 나에게는 이 글들은 어렵다. 이 것은 과연 번역의 문제일까.

"Later, knowing that everything had now been finished, and so that Scripture would be fullfilled, Jesus said, "I am thirsty." A jar of wine vinegar was there, so they soaked a sponge in it, put the sponge on a stalk of the hyssop plant, and lifted it to Jesus' lips. When he had received the drink, Jesus said, "It is finished." With that, he bowed his head and give up his spirit."

물론 이는 일부에서 '가짜영어성경'이라고 여기기도 하는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이다. 그러나, '킹 제임스(King James Version)'에서도 '1599제네바 성경'에서도 모두 '가라사대'에 해당되는 부분은 'said'라고 표현되어 있다. 굳이 said를 '이르되', '가로되', '가라사대'로 바꾸는 이유는 무엇일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원어인 '히브리어'의 경우는 다를까. 그렇지 않다. 글이 어렵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한다는 목적이라면,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하는 '종교적 언어'는 사실상 '종교적 언어'가 아니라 '사어(死語)'가 많다. 이미 익숙해진 이들끼리 내부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사회적 방언'이라고 한다.

'복음전파'가 목적이라면 그 용어는 최대한 쉬워야 한다. 설교자는 누구인가. 설교자는 교단에 서서 대중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이다. '복음'이라는 말조차, 사실상 비종교인들에게 어색할 수 있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복음'이란 '복된 이야기'를 이야기한다. 들으면 '이로운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면, 최대한 쉽고 재밌게 전달해야 한다. 이것은 '종교적' 색채와 무관한다. 효과적인 전달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설교자'는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다. 복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성경(가르침)'을 전달하는 전달자다. 성경복음은 마법이나 요술을 담고 있는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복된 이야기를 통해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이들을 고통과 어려움에서 구해주는 '출처'다. 여기에 전달자의 역할은 중간자 역할이다. 간혹, '원출처'를 잘못해석하여 '신의 이름'을 빌려 그의 말의 힘을 자신의 권력으로 사용하거나, 잘못된 해석으로 다른 이들을 잘못된 생각으로 이끌기도 한다. 중간자는 원출처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넘겨 주는 것이 본질이다. 이런 본질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충만한 성령'보다 '원출처'의 글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문해력'과 상대에게 좋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전달력'이 필요하다. 종교는 이 '복음(이로운 이야기)'가 전달 과정에서 변질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 한다. 그러다보니 본의아니게 이야기가 왜곡되거나 지나치게 어렵게 보존되기도 한다. '락'을 하셨던 목사 님의 책이기에, 음악에 빗대에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복음전파는 소리를 저장할 방법이 없어 음악기호를 통해 악보를 만들어 음악을 전달하던 시기와 같다. 여기서 '설교자'는 연주자에 해당한다. 작곡가가 멋지게 지은 노래를 연주하여 대중에게 멋진 음악을 선물하는 것이다. 즉, 악보에 상관없이 내 멋대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작곡가'와 '청중'을 기만하는 것이다. 다만, 시대가 지나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더 잘 보존하기 위해, 우리는 '음악'이라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악보를 더욱 소중하게 보관하는 것에 목숨을 건다.

불교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南無阿彌陀佛觀世音菩薩)이 그렇다. 글이 없던 시기에 어떻게든 소리로 내용을 전달하던 당시에는 일단, 내용 전달보다 정보가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 중요했다. 앞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은 한자로 적혀 있으나 원래는 '산스크리트어'다. '나무'는 '나마스'라는 뜻이다. 우리가 인도나 네팔에서 사용하는 '안녕하세요'의 번역인 '나마스 떼'의 '나마스'다. '떼'가 you(당신)을 의미다., 나마스는 '귀의하다'라는 뜻으로, '쫒아 따른다'라는 의미다. '아미타불' 또한 산스크리트어다. 이는 '아밋따 붓따(amita budda)'라는 뜻으로 아밋따는 '무한하다'라는 뜻이고 붓따는 '부처는 깨어있는 자'를 말한다. 즉, 나무아미타불은 '부처를 무한하게 따릅니다'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관세음보살'은 '아바로킷따 이슈와라'아는 산스크리트어로 '모든 것을 훤하게 내려다보는 자'를 의미한다. 즉, 산스크리트어로 된 '복음(이로운 이야기)'이 전달자가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한자어로 번역하면서 우리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훤하게 꿰뚫어보는 자를 무한히 따르겠습니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단순히 해리포터의 마법 주문인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처럼 일종의 주문이라고 여기는 상당수의 것들은 사실상 본질을 잃어버린 일종의 기록일 뿐이다. 설교자는 누구인가. 설교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그것은 진짜 이야기를 전달하는 설교자의 역할이 누구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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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만나고 이야기하라 - 내 삶에 변화를 끌어내는 핵심 전략
배정환 지음 / 미디어숲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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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 좌우명이나 철학이라곤 할 수 없지만, 오래 전부터 사용하던 수첩 첫 장에는 꼭 다음과 같은 세 문장을 적었었다.

'앞으로는 더 잘 될 것 같다는 기대감!'

'생각이 많으면 행동은 늦어져!!'

'덜 바쁘면 잡생각이 많아져!!!'

깊은 고민을 하고 적었던 글 같지는 않다. 그저 살면서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일종의 '요령'이었다. 항상 무의식 중에 뇌리 속 깊게 박혔으면 했던 글들은 걸러지고 남겨지길 반복하다가 저 세문장만 남았다. 이중 '생각이 많으면 행동이 늦어진다'가 이 책과 닮아 있다. 그렇다. 행동은 거추장스러운 '생각'을 달고 달려야 한다. 마치 공기처럼 아무런 중량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은 사실상 엄청나게 엉덩이가 무거워 달려나가는 말이 주저앉게 만든다. 어린시절부터 책을 읽으면 작가에게 감사의 메일과 감상문을 적어 보내곤 했다. 그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법한 세계적인 부자나 유명 연예인 등의 명사도 있다. 이런 명사들은 무척 바빠서 이런 메일에 대답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들의 상당수는 나의 메일에 답장을 보내주곤 했다. 만 스물에 첫 해외 유학을 갔을 때, 나는 현지 대학교의 한국어과 부교수를 찾아갔다. 그리고 수 차례 메일도 보냈다. 내용은 청강하는 학생들에게 '한국어 과외'를 무료로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나는 해당 학과에서 공부하는 현지대학생들 무료 과외를 했다. 이 친구들은 '무료과외'를 하는 나에게 감사함을 갖고 있었지만, 그렇게 나는 쉽게 현지 친구를 얻었고 영어 실력을 늘렸다.

유학시절 아르바이트는 주 20시간만 가능하다. 다만, 이런 법을 이용하여 현지에는 '세금신고 안하는 시급 저렴한 알바'가 넘쳐 난다. 조금 악의적인 현지 고용주들은 유학생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법적 시급에도 못미치는 돈을 지급하곤 했다. 다만, 생각을 조금 바꾸면 돈을 꼭 노동을 통해 벌 이유가 없었다. 우연히 귀국세일을 하는 이들이 헐값에 자신이 사용하던 물품을 한인 커뮤니티에 올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헐 값이 현지 커뮤니티와 시세 차이가 크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나는 귀국하는 이들의 물건 중 '밥통'을 5불 내외로 구매하고 현지 커뮤니티에 50불 이상에 팔았다. 일주일에 10개의 거래만 성사해도 450불이었다. 이것은 현지에서 알바를 하는 것보다 큰 용돈이 됐다. 우리돈으로 200만원에 가까운 용돈 벌이는 "혹시 오늘 구매 가능한가요?"라는 문자 메시지 보내기 부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내 인생의 방향 중 큰 변화는 이런 행동력에서 비롯됐다. '유학', '여행'을 떠날지 말지가 고민이 될까 싶다면 나는 환불이 되지 않는 비행기 티켓을 먼저 구매해 버렸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저절로 환하게 보여졌다.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수많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장담컨데, 생각이 길어질수록 결론은 '그래, 다음에 하자', '아직은 제대로 된 기회가 아니야' 쪽으로 결론난다. 설령 아침에 결심을 하더라도, 점심 식사를 하면서, '그런데 진짜 제대로 판단한 거겠지?'하고 의심이 들어선다. 이것은 누구나 생기는 일이다.

감귤판로가 줄어들고 제주에서의 감귤값이 헐값이 되자, 나는 '영국, 사우디, 러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홍콩' 등의 회사들에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오인환입니다. 2010년 부터 제주에서 농업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농산물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회사와 사업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Dear Sir, My name is Inhwan Oh from Korea. I have run an Agricultural Corporation in Jeju Island, Korea since 2010. We are an exporter of Agricultural Products. and now desirous of establishing business connections with the most reliable firms in your country...)

메일주소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냥 구글링이다. 이처럼 단순한 몇 번의 타이핑과 클릭으로 꽤 규모있는 수출을 성사시켰다. 덕분에 싱가포르 여행도 하고 말이다. 이런 행동력은 실행까지 참 망설여진다. 그것은 장담컨데 누구나 마찬가지다. 2012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JYP 엔터테이먼트 에서 개최한 오디션에서 인기상을 받았던 내역도 비슷하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나는 명령하는 자아와 실행하는 자아를 구분짓는다. 그러나 이처럼 명령자아와 실행자아를 구분하는 것은 명확하기 힘들다. 고로 나는 '명령자아'로써 '웬만한 명령'을 일주일 중 하루에 다 내려버린다. 그리고 나머지 6일을 실행만 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스케줄관리법'이자 이번에 신간으로 출간된 '유대인의 하루는 저녁 6시에 시작된다'이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 메일 보내기, 읽고 싶었던 책 구매하기, 우연히 인연이 된 사람과 커피 한잔하기' 등. 모두 주말 간, 명령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맞이하는 '실행자아'의 기간 6일 간, 그것이 맞고 틀리고의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냥 실행한다.

제주에 '황준연' 작가 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메일로 알게 됐다. 그를 알고 싶은 마음에 네이버에 기재된 정보를 가지고 무작정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3일 내로 작가 님을 뵀다. 실행은 몹시 중요하다. 로또 복권 번호를 누군가 종이에 적어 두었다면, 그것을 읽는 노력이나, 외우는 노력이나, 받아쓰는 노력보다 상위 되어야 하는 일은 '로또를 구매하고 번호를 적는 노력'이다. 책을 읽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로또 복권 번호를 받아 읽고 한주를 그냥 넘기는 것과 같다. 책을 읽으면서 꽤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누구나 웬만한 방법은 다 알고 있다. 살을 빼는 방법은 안먹고 운동하는 것이고,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앉아서 오래 보는 것이며,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은 화내지 않고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다. 우리는 모르고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바와 다르지 않을 뿐이다. 머리속의 정보는 CPU이고, 행동은 '프린터기'나 다름없다. 중앙은행에 있는 '화폐 도안'은 100억이라도 출력되지 않으면 값어치가 0이다. '출력'버튼을 누르고 그것을 출력해서 뽑아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그냥 '누른다'가 전부다. 삶을 사는 것은 '머리속'이 아니라, 실제 만지고 느껴지는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직접 몸을 움직여 무형의 어떤 것들을 유형의 어떤 것으로 출력해 내야 할 것이다. 꽤 공감되는 책을 읽어 뿌듯하다. 책은 가볍고 쉬워 간단하게 읽을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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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역사산책 : 한국사편 골목길 역사산책
최석호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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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흔히 역사는 종이 위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것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는 3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 째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 둘째는 과거의 기록과 흔적, 셋째는 그것들을 재구성한 시선이다.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역사는 종교와 더불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굉장히 좋은 명분이 된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에스파냐 여왕인 이사벨의 후원을 받고 인도를 찾아 항해를 떠난다. 그중 만난 쿠바와 아이티 등을 마주하며 북아메리카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미국의 역사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슷한 종류의 다른 오류를 마주하게 된다.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기 이미 수 천 년 전 부터, 원주민들이 거주하던 땅이다. 이 곳에 유럽인들이 들어왔고 침입자들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것은 그것은 누구의 역사일까. 북아메리카를 지배하던 국가는 영국을 비롯하여 프랑스와 네덜란드까지 다양하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의 역사일까, 프랑스, 네덜란드의 역사일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미대륙을 마치 자신의 것인냥 취급하는 유럽인들의 야만적인 사상에 대해 비웃을지도 모른다.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기 88년 전인 1404년까지 제주도도 사실상 독립국이었다.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이 섬에는 구석기시대부터 독립국이었다. 그곳의 원주민들을 복속시키고 자국으로 합병시킨 역사를 비난하게 되면 우리의 역사 또한 미궁에 빠진다. 일본인이 근대 개항을 했던 인천, 부산, 원산항. 우리가 '일제 강제 점령기'라고 부르는 기간은 사실상 일본통치시대다. 1910년 8월 16일 총리대신인 이완용은 데라우치와 조약을 맞는다. 이 조약 원문에는 '병합조약'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한반도가 일본에 통치권을 양여하고 일본제국에 병합한다고 되어 있다. 물론 이 조약이 불법이자 무효의 것이라고는 하나, 당시 국제 사회에서는 이 조약에 효력을 인정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구글'이나 '네이버' 등에 '제2차세계대전 일본영토'라고 검색하면 여기에는 우리 한반도의 지도 위에 일장기가 붙어 있다. 이것에 굉장한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같은 시기, 동남아시아와 중국 동부 위에도 일장기가 붙어 있다. 이러한 '강제점령시기'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국사 교과서에서 언급하는 '고구려 최대영토'를 설명하기 까다로워진다. 13세기 몽골제국이 세계의 80%를 지배할 때, 조차 우리는 '원 간섭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간섭기', '강제점령기' 등의 용어에 대해 우리는 깊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유럽의 아프리카 강제점령기', '독일 나치의 프랑스 간섭기' 어디서도 찾기 힘든 용어들은 왜 필요한 것일까. 즉, 역사의 3가지 해석 중, 우리는 세 번 째인, '재구성한 시선'을 이용하여 일종의 목적을 갖진 않았을까 의심해 본다. 대한민국 정치가 지금에 와선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볼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로 그 절반 이상인 50%이상이 독재 정권이 들어섰던 국가였다. 독재정권은 역사를 정치에 어떻게 이용하는가. 이것은 현재 중국과 러시아를 보면 알 수 있다. 독재정권이 역사를 이용하는 일은 그다지 찾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치가 유럽의 여러 국가를 침공하는 첫 번 째, 명분은 '아리안족'이었다. 아리안안이라는 민족명은 '나치독일'의 히틀러가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명분이 됐다. 아리아는 현재 인도의 조상쯤 되는 민족이다. 이들은 이란과도 연관이 있다.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조차, 러시아 민족이라는 명분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역사는 정치에 쉽게 이용된다. 그러기에 이처럼 '해석'으로의 역사가 아닌 역사의 그 첫번째와 두번째인, 과거에 있던 사실과 기록과 흔적을 통해 역사를 생각해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굉장히 모호한 '민족'이라는 개념과 '영토'라는 개념은 애초 존재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떤 장소와 그 장소에서 살았던 인물들의 기록과 흔적은 언제나 '학문'으로서 흥미롭다. 종이에 뭐라고 기록을 했건, 기록하지 않았건 오늘 내가 밟고 지나간 땅 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다. 그 위로는 사람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이 나고 죽었으며 그사이에 슬픔과 기쁨이 존재했을 것이다. 즉, 생과 사 사이에 노와 병이 있고, 희노애락이 쉴세없이 수레바퀴처럼 굴러 지나갔을 것이다. 그 위로 나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나 또한 흔적을 남긴다. 종이 위가 아니라, 가장 많은 역사의 흔적을 담은 곳은 바로 발 아래다. 우리 한반도 이곳 저곳을 지나다니다 보면 굉장히 다양한 유적과 흔적, 공간을 만나게 된다. 같은 공간에서도 수 백 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인물들이 공간을 공유한다. 실제 책은 수백 년 전의 사건을 이야기하다가, 근 현대의 이야기로 넘어와서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역사책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신라, 백제, 고구려'의 이야기와 이제는 이해하기 어려운 '도교'나 '불교'와 같은 이땅의 인간들을 사상을 지배하던 철학과 종교까지, 아주 이국으로 나갈 것 없이 새롭고도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열된다.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율곡 이이'에 관한 내용이다. 최근에 '조선천재열전'이나, '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등의 역사 책에서 심심찮게 '율곡이이'를 만나게 됐다. 사실, 율곡이이 하면, 심사임당의 아들, 10만 양병설, 5,000원짜리 지폐 밖에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렇다. 다만, 율곡이이에 대한 내용은 알면 알수록 호기심이 강렬하게 든다. 소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을 보며 '천재'를 떠올리듯, 우리의 역사에서도 이 인물에 대해 더 잘 알려져야 할 것처럼 보여진다.

우리나라 지폐를 보면 신기한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율곡 이이를 기준으로 두고 그 시기의 인물들이 모두 사용된다는 점이다. 100원에 이순신은 율곡 이이와 덕수 이씨 집안의 19촌 숙질 사이다. 5만원 권의 신사임당은 율곡이이의 어머니이고, 1000원 권의 퇴계이황과 율곡이이는 사제 지간이다. 즉, 세종대왕을 제외하면 나머지 인물은 모두 율곡 이이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고 같은 시기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율곡 이이에 대해 이처럼 모르는 것은 왜그럴까 생각해보게 됐다. 책에서는 류성용과 율곡이이에 대한 인연이 잠시 설명된다. 이 내용은 아주 짧게 언급되고 지나갔다. 율곡이이의 10만 양병설을 비판한다. 그러나 왜란이 발발하고 이이의 천재성에 감탄하고 후회한다. 이 대목에서는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의 천재성에 열등감을 가졌던 천재 '주유'와 오버랩됐다. 우리의 역사도 조금만 흥미의 요소가 가미되고 각색되면 '삼국지'와 같이 인기있는 소재가 참 많다. 주어진 '사료'와 '자료'를 가지고 많은 작가들이 우리 역사 또한 재밌게 재구성하고 스스로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사진과 그림이 많이 있어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러 시선으로 사건과 이야기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역사의 시선을 다양하게 넓혀주는 좋은 책들이 많아지길 고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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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 않은 사랑 - 사랑을 선택하면 가난해진다는 편견
주서윤 지음 / 모모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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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붙어 있는 보호필름을 떼어버렸다. 상처가 나지 않도록 잘 보호하는 필름을 떼어버린 이유는 상처가 너무 잘 나서이다. 스크린에 지문이 많이 묻어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었다. 해결책을 물으니, 스크린에 지문 방지 보호필름을 붙이라고 하셨다. 다만, 보호필름을 붙이고 나니, 지문은 잘 보이지 않게 됐지만, 스크린도 흐릿하니 잘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의 액정 보호 필름은 상처가 잘 나지 않도록 보호한다고 했다. 역시나 생활을 하다보니, 보호필름은 스크린에 나는 자그마한 상처를 잘 보호해 주고 있었다. 스크린은 역시나 보호되고 있었으나 나는 언제나 상처난 스크린을 볼 수밖에 없었다. '본질'이 무엇일까. 애초에 스마트폰 제조 회사는 '강화유리'를 사용한다. 생활상처가 잘 나지 않는 스크린 위로 상처가 잘 나는 PET 제질을 붙인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지금 사용하는 스마트폰 이전의 스마트폰의 화면도 구매와 동시에 보호필름이 붙어 있었다. 나는 지저분한 보호필름을 붙이고 다니다가, 이 핸드폰을 처분할 때 쯤에야, 그 보호필름을 뗀 깨끗한 화면을 볼 수 있었다. 상처주지 않기 위해, 혹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우리가 조심 해야 하는 것들에는 이런 본질없는 부작용들이 있다. 결국 그것의 생명이 끝난 뒤에서야 우리는 진짜를 열어보게 된다. 진짜는 깨끗하게 보존된 채로 남아 있겠으나, 그것은 더이상 내것이 아닌 것으로 끝이난다. 무엇을 위해 조심해야하고, 무엇을 위해 상처를 덜 줘야할까.

스마트폰 액정은 대게 스마트폰에서 가장 비싼 소재 중 하나다. 이것을 재판매하거나 재활용할 때, 스크린의 상태는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깨끗한 상태를 물려주기 위해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마음껏 사용하고 내 흔적이 묻는 것에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깨끗한 스마트폰을 보존하는 일은 다음 사용자를 위한 일이지, 나를 위한 일은 아니다. 사랑과 행복은 그렇다. 깨끗하게 보존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이해된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영원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틀림없이 나를 떠날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나를 떠날 그것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흔적을 묻히는 일을 두려워한다. 과연 그게 맞는 일일까 생각하게 된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구매하면 제조사는 스마트폰에 깨끗한 필름을 붙여준다. 소비자를 위한 일처럼 보이는 이 일이 사실은 제조사와 유통사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후 재구매 사용자를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렴풋 잊는다. '가난하지 않은 사랑'은 과연 그렇다. 사랑을 선택하면 가난해진다는 편견과 다르게, 사랑은 풍요를 상징한다. 아낌없이 주고, 아낌없이 받기에 사랑의 유동성은 거침없이 빨라진다. 식당을 들어서면 '길게 줄이 들어선 식당'에 대한 믿음이 있다. 갓 들어온 재료가 금방 나가 신선한 재료로 교체되기에 언제나 식품의 신선도가 높을 거라는 믿음 말이다. 주기만 하는 사랑도, 받기만 하는 사랑도, 언제나 그 안에서 고여버린다. 고여버린 것은 썩어버린다. 사랑은 시원시원하게 줘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듬뿍 듬뿍 채워야한다.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존재하기에 사랑이 드나드는 유동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신선한 사랑을 채우는 '풍요로움'이 된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주서윤 작가 님이 '사랑은 뭘까'하고 고민하는 대목에서다. 그녀는 사랑이 뭔지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엘리베이터 문에 붙여진 문구를 바라봤다.

'주의, 기대면 추락위험', '주의 손대지 마세요'

그녀는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며 그 글을 읽었다. 문이 닫히며 그곳에 타고 있던 사랑의 얼굴이 가려졌다. 닫힌 사랑에는 역시나 주의가 필요하다. 마치 엘리베이터의 문처럼, 꽉. 닫혀 있는 그곳에는 기대서도, 손을 대서도 안된다. 이것은 위험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그것의 문이 열렸음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어리석음도 문제다. 엘리베이터는 언제나 닫혀있지 않고, 항상 새로운 얼굴을 보이며 문이 열린다. 열리고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문에 들어서서, 우리는 때로 벽에 기대고 원하는 곳을 함께 가고자 손을 대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는 높은 곳으로 우리를 쉽게 이끌어주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살아가다보면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을 맞이한다. 그것이 항상 나의 곁에 머물고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은 매번 속으면서, 속지말아야지 생각하고, 다시 속는 일이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을때,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하셨던 적이 있다. 어머니는 첫 아이를 낳으시고 두 번 다시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3년 터울로 내 동생이 태어났다. 우리는 금방 잊어버리고 같은 일을 반복한다. 말썽을 부리는 아이에게 버럭하고 화를 낸 뒤에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다시 뒤돌아서 야단을 칠 때가 있다. 언제나 우리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뒤늦게서라도 항상 본심을 이야기 해야한다.

그녀는 적지 않게 MBTI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녀의 성향은 INFJ라고 한다. '삶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사랑은 무엇인가' 등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부류다. 인생에 생산적인 고민보다 본질적인 고민을 많이하기에 불필요한 걱정과 생각을 하고 사는 부류다. 그녀에 대한 성향을 이처럼 잘 아는 이유는 나또한 INFJ 성향이기 때문이다. 수 년 전, 지인으로부터 우연하게 듣게된 MBTI 성향테스트는 처음 한 뒤로, 수 번을 더 했다. 나는 단 한번도 INFJ가 아닌 적이 없었다. 주어진 문제에 대답을 할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이거 누구나 그러는거 어냐?'

그런 혼잣말 뒤에 내린 결과은 INFJ. 1%도 안되는 희귀한 유형으로 실제 현실세계에서 만나기 어려운 부류라고 한다. 내가 독특할 것이라고는 막연하게 생각했으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 것이라고 여겼던 것은 참 바보같다. 이런 부류를 만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우나,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비롯하여 내 주변에는 수많은 INFJ가 있다. 인터넷을 봐도 만나기 힘든 INFJ가 왜 이렇게 많이 보이냐는 질문도 많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이들은 그런이들이 다닐만한 곳에 있는 부류들이기 때문 일것이다.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선별된 정보에만 알고리즘에 의해 둘러쌓이게 되는 현상을 '필터버블'이라고 한다. 나의 유튜브첫 화면에는 추천영상으로 '백색소음', '콩순이', '깊은 잠 자는 음악' 등이 나온다. 사용자의 성향에 맞춰 추천하고 있다는 의식을 하지 않았을 때, 다른 이들의 첫 페이지에도 비슷한 영상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책스타그램 #책그램 #북스타그램 #북그램 #독서스타그램 #독서그램' 내가 자주 사용하는 해쉬태그는 인스타그램에서 비슷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나도 그런 류의 글을 찾아 좋아요를 누른다. 그러다보니 세상 찾기 힘들다는 INFJ가 모두 조그마한 버블 속에 몰려 살고 있다. 해외에서 오랜 사회생활을 할 때였다. 더 큰 행복을 위해 고통을 삼키는 일을 수 년이나 반복했다. 내가 이 것을 이겨낼 수 있던 이유는 옆에서 함께 인내하는 '동료 형' 덕분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그와 이야기를 하게 되며 진실을 깨달았다. 옆에서 인내하던 '동료 형'은 실제로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를 바라보며 그 또한 나와 같이 인내하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은 말 그대로 착각이었다. 그는 그저 하루 하루 벌어지는 일을 즐기고 심심한 하루 역시 그 자체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통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그와 나의 행복도의 차이가 꽤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 뒤에, 나는 그 회사를 퇴사했다. 삶에 대한 고민이나, 사랑에 대한 고민은 사실 현실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했던 고민들이 이처럼 글로 기록되면 누군가는 '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하는 일종의 자극제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하는 비현실적인 고민들이 문학이 되어 누군가에게 힘이 되거나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작가 주서윤 님이 그러는 것 처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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