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 ‘유리멘탈’을 위한 공부 상담소
학학이 멘토단 지음 / 메리포핀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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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 따르면 사람의 단계는 3단계가 된다. 하나는 낙타 다른 하나는 사자, 마지막 단계는 어린이다. 쉽게 '낙타'는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실어 주고 걷기를 시키면 시키는대로 묵묵하게 따른다. 자신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부다을 아무리 지어주더라도 묵묵하게 그 일을 수행한다. '사자'는 그에 반항한다.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 저항하고 반항한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반항과 저항을 한다. 마지막은 '어린이'다. 어린이는 '놀이'로써 창조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새롭게 만든다. 즐기고 긍정하고 독립적이며 반항도 가능하다. '즐거움'을 추구하고 '놀이'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부차적 성과가 나오기 나따름이다. 위버멘쉬(übermensch)란 넘어서다(über)와 사람(mensch)의 합성어다. '초월한 사람', '초인'과 같은 말을 의미한다.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얼핏 도덕적인 지탄을 받기 쉽지만 그것은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적이며 자신의 이익에 최선을 다한다. '아름다운 이야기'로 포장되는 '이타적인 사람'은 동화 속에서 존재한다. 다만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즉각적인 성과와 보상이 스스로에게 있지 않다면 대부분의 것들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가령 월 200만원을 버는 사람이 월 190만원을 기부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이타적인 사람은 길게 수 개월 생활을 지속할지 모르지만 언젠가 이 일을 멈추게 될 것이다. 다만 200만원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과 기부를 하는 사람은 분명 지속성에서 차이가 생긴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고 재밌어하는 일에 지속성을 갖는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편안함'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가령 서 있는 사람과 누워 있는 사람 중 누가 오랫동안 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서 있는 사람은 앉고 싶어지고 앉아 있는 사람은 눕고 싶어한다. 밥을 먹고 배가 부르면 식곤증이 몰려와 잠을 자고 싶어진다.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내려와 땅에 있고 싶어하고 걷고 있는 사람은 쉬고 싶어하며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놓고 싶어한다.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쉬운 것'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처럼 모두가 쉬운 방향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반대를 거스르는 사람은 '희귀종'이 된다. 모두가 눕고 싶어할 때 운동을 하거나, 모두가 먹고 싶어 할 때 굶거나 모두가 자고 싶어 할 때, 일어나거나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기본적으로 DNA에 새겨진 편한 방향으로의 설계를 거슬러야 한다. 이런 비자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개인에게 이익이 있어야 한다. 공공이 이익을 나누는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사유재산을 인정했던 '자본주의'가 세상의 주류가 된 것도 지극한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앞서 말한 '비자연적인 현상'이다. 능동적으로 글에 쓰여진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달려드는 일 보다 생각없이 '멍'하게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자연스러운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왜 그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이기적인 명분'이 있어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는 '학력'에 대한 비정상적일 만큼의 '신임'을 가졌다. 학력 좋은 사람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과 평가가 분명하게 있었다. 사회는 그들에게 그만한 댓가를 주기도 했다. 다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대학'에 들어가기가 한결 수월해졌고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는 '성취하는 방법'에 대한 '단련'이다.

성장은 무한대로 커나가는 것이 아니다. 수축과 팽창이 주기적으로 반복하면서 내부적으로 단단하게 다지며 강도를 높여 커 나가는 것이다. 블록을 높게 쌓기 위해서는 블록을 윗쪽으로 쌓기만 해서는 안된다. 의미가 없어 보일지 모르는 하단부를 탄탄하게 할 수록 결국 더 높게 쌓을 수 있다. 그저 하늘 쪽으로 벽돌을 쌓아 올렸다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이처럼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국 성장과 별로 관련없어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성공'만이 쌓여 있어서는 안된다. '목표'와 관련 없어 보이는 '실패'라고 할지라도 피라미드의 하단부처럼 단단하게 하부를 지탱하는 것이다. 하단부가 넓어지면 피라미드의 높이는 더 높고 단단해진다. 문제를 풀고 틀린다는 것은, 문제를 단방에 맞추는 것보다 중요하다. 틀린 문제는 자신의 취약점을 발견하게 해주고 자신의 취약점을 보완할 여지를 만들어준다. '시험공부'는 '본질(개념)'을 단단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시험(문제)'해보며 '실패(틀린 문제)'를 고민하여 '보완(오답노트)'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공부법'이 아니라 '목표에 도달하는 법'이다. 공부, 요리, 운동을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앞서 말한, 본질파악, 시험, 실패, 보완의 과정을 겪어 성장한다. 학창시절 성적표는 '대학교 이름' 따위를 바꾸는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를 자기계발할 수 있는 좋은 훈련과정이다. 그까짓 대학교 이름이나 성적따위는 요즘 세상에 '그까지것' 쯤이다. 명문대학교를 입학한 학생들이 재학 도중 자퇴를 하고 창업하여 성공하는 경우는 적잖다. 미국이나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대학졸업장과 상관없이 명문대 출신 '부자순위' 상위에 이런 이들이 상당하게 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좋은 명분이나 이름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본인의 성장을 위한 이런 이기적인 욕심은 반드시 성장을 지속시킨다.

세상 공짜 좋은 정보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 공부법이나 좋은 강연은 인터넷에 키워드 몇 자 적어 얼마든지 검색 가능하다. 그런 '기술(스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대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공부는 왜 해야하는지도 납득이 되지 않는 이들에게 공부하지 않냐고 잔소리하는 것은 난데없이 지금 당장 '지금 도로로 나가서 만세 3창 하고 오세요'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만약 난데없이 도로로 나가서 만세 3창을 하라고 한다면 되물을 것이다. "왜요?" '왜'가 해결되지 않은 행동은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 '왜'가 해결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 본질이 없는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는 '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고로 당연한 일이다. 부모나 친구, 주변 선생님이 시킨다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위보멘쉬에서 '낙타'와 다름없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자신의 철학이나 의지없이 무거운 짐을 얼마든지 날라주는 것과 다름없다.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을 깨닫는다면 드디어 공부가 하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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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논어를 읽다 - 삶의 변곡점에서 시작하는 마지막 논어 공부
조형권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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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다리에 장애가 있던 70세의 노인 '공흘'은 15살의 '안징재'라는 한 소녀를 만난다. 70세 노인의 청혼을 받아드린 15세 소녀는 그렇게 아들 하나를 낳는다. 지금에서는 패륜적인 이야기지만 어쨌던 그랬다. 아들을 낳기 전에 그녀는 높은 언덕을 힘들게 올라가는 태몽을 꿨는데, 그 의미에서 아들의 이름을 '언덕'으로 칭하기로 했다. 이런 이유로 '구(丘)'라고 지었고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다. 공자의 어머니는 남편과는 55세의 나이 차이가 있고 아들과는 16살의 나이 차이가 있다. 쉽게 공자의 철학을 이야기 하자면 '정리', '질서'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그것이 공자가 말했던 정치 철학이다. 2천 년이 넘어 그의 이야기 중에는 고리타분한 내용도 물론 간혹 있다. 다만, 2천 년 넘게 우리에게 공감이 되는 철학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춘추전국시대라 국가가 혼란한 시기 공자는 세상의 '도'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면 '칼세이건'은 '질서정연한 우주'로 정의했다. 무량대수급의 우연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질서는 우주가 존재하도록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은하계를 태양이 돌고 지구가 태양을 돌고 달이 지구를 도는 것처럼 마구자비로 떠다니는 별들도 상호작용을 하며 아름답게 질서있게 움직인다. 다만 공자가 바라 본 '인간'의 세계는 그와 거리가 있었다. 하극상은 일반적이고 봉건제는 파괴되었으며 질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인간이 우주를 닮았다면 분명 우리가 사는 세상도 '질서정연한 코스모스'여야 한다. 공자는 인간 세계도 적당한 질서와 규칙이 있어야 아름답게 돌아간다고 봤다.

공자의 인생은 '위대'하지만 '행복'하다고 하기 힘들다. 그는 3000명의 제자를 거두었으나 그의 뜻에 따라 성공적인 깨달음을 얻은 제자는 10명 쯤이었고 가장 아끼는 제자가 먼저 죽자 정신을 잃고 통곡하기도 했다.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가 기대치 않은 행동을 보이자, '너는 더이상 내 제자가 아니다!'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하급 무사였고 집안은 몰락한 귀족이었다. 세살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가난하게 살았던 그는 젊은 시절에는 가축을 돌보는 일을 하기도 하고 정원관리사로 일하기도 한다. 젊은 시절부터 일과 공부를 병행하던 그는 18살에 과부가 된 어머니를 모시느라 꽤 어린 나이부터 고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나이 24살에 어머니는 마흔이 채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공자를 떠올리면 '성인'이라는 말이 먼저 떠올라 '출세욕'과 거리가 먼 것 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는 '출세욕'이 있던 사람으로 '노자'에게 따끔한 소리를 듣기도 하고 자신이 이루고저 했던 일을 본인 생에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하는 '질서'는 세상이 혼란스럽다 느껴질 때마다 제 몫을 한다. 태양은 태양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지구는 태양의 주변을 돌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항상 달이 지키고 있는 '질서'는 앞서 말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와 같다. 의사의 본질이 '치료'에 있지 않고 '돈'에 있거나, '정치'의 본질이 '개인의 사적 출세'에 있거나 '가수'의 본질이 '인기'에 있는 것과 같이 느껴지는 본질 잃은 세상에 대한 '제자리'를 공자는 말하곤 했다. 10대에는 배움에 뜻을 두고, 서른에는 지립하며, 마흔에는 흔들리지 않고, 쉰에는 천명을 알며, 예순에는 귀가 순해지고 일흔에는 마음가는대로 법도를 넘지 않는다.

'세상' 뿐만아니라 개인에게도 그 나이에 맞는 질서와 순서, 시기가 있다고 봤다. 위정 편 4장 주주에는 '불가렵등이진(不可躐等而進)이라 하여 '등급을 뛰어 넘어 나아갈 수는 없다'고 하기도 한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성급한 마음만 갖는 것은 항상 모든 것을 그르치게 한다. 간혹 사람을 만나다보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이상만 높은 경우가 종종있다. 기본 체력도 없는 축구선수가 멋있는 개인기나 드리블만 연습하거나 노래 실력이 형편없는 가수가 '싸인 연습에 매진'하는 것도 같은 경우다. 요즘 시대에는 가혹한 말일 수 있으나, 공자에게는 각 시기와 때가 있고 위치와 자리가 있다. 일본에도 '쇼토쿠 태자'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일본에도 와(和) 사상이 있다. 일본 역시 어지러운 세상에 대한 질서를 위해 '와(和)사상'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와(和)는 각자의 자리를 찾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무라이, 귀족, 쇼군, 덴노 등 일왕을 중심으로 각자가 자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질서정연한 사회를 만드는 것의 희망하는 사상이다. 지금도 이 와(和) 사상은 '장인정신' 등 일본을 나타내는 중요한 가치관이 되기도 했다. 이야기가 조금 샜지만 공자의 철학은 '질서'다. 요즘 시대에 고리타분할 수도 있지만, 규칙과 질서가 많이 허물어져 가는 시기에 다시 한번 우리를 일깨우기도 한다. 가끔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할 때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말로 공자가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다만 공자가 그런 이야기 만 한 것은 아니다. 공자의 말씀은 가끔은 냉철하고 가끔은 현실적이다.다만 이런 말도 있다.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지만,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가난을 몸소 겪었던 그는 '가난'이 '원망'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관대했다. 그는 세상에 대한 철학 뿐만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남겼다. 2000년이 넘은 그의 글을 보고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우리가 결국 우주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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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없는 원숭이 (50주년 기념판)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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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머리에 수북하게 털이 나있다. 그 밑으로 마치 탈모증에 걸린 침팬지 마냥 맨 피부를 들어낸다. 누군가는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부르겠지만 우리 털이 원숭이에 비해 '적다'고 하긴 힘들다. 우리의 털이 조금 더 가늘고 연약할 뿐이다. 이에 흥미로운 진화론적인 주장이 있다. 우리의 잔털 방향이 다른 원숭이와 다르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해변가나 강가에 모여 물속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물밖으로 빼꼼하게 얼굴을 내밀던 원숭이는 자신들의 정수리를 태양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머리털을 길렸을 것이다. 흥미롭다.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우리 조상들이 털을 벗어 던졌을리는 없다. 낮에 물속에서 '해산물'을 채집하여 생존을 유지한다. 이는 '산'과 '들'에서 다른 포식자과 경쟁하고 위협 당하며 생존하는 것보다 수월했다. 물가에서 살아가는 생활양식은 '식수'를 구하기도 쉽다. 인간이 '불'을 발견함으로써 밤에도 따뜻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털'이 가늘어지게 하는데 큰 몫이 됐다. 우리 손가락에 물갈퀴처럼 얇은 피부막이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유인원에 비해 넙데데한 발또한 수영하기 적합하다. 스스로를 '털 없는 원숭이'라고 칭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수도 있지만 자신을 객관화하는 시각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통해 이미 너무 흥미롭게 느꼈던 바다.

초식동물이던 원숭이가 '육식'을 시작한 것은 진화의 중첩점이다. 과일을 주워 먹던 원숭이가 육식을 하면서 숫컷 원숭이들이 사냥을 나가야 했다. 암컷 원숭이는 육아를 전담했다. 역할분담이 시작됐다. 비교적 유약한 어린 원숭이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일처를 하며 '혼인'이라는 '약속'을 하고 불필요한 '종족 간의 유혈사태'를 제도적으로 방지했다. '단독 생존'이 어려웠던 무능한 '사냥꾼' 원숭이는 상호 믿음 통해 종족을 번영시켰고 그러기 위해서 '신뢰'는 필수적이었다. 눈에 흰자위가 보이지 않던 원숭이는 상대에게 자신이 바라보는 방향을 분명하여 믿음을 주어야 했다. 믿음을 주기 위해 인간은 '흰자위'를 키워 나갔다. 눈 위로 길다란 눈썹을 만들어 표정을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진화해 갔다. 숫컷은 암컷의 신뢰를 전적으로 필요로 했다.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외모를 통해 호감과 신뢰를 얻는 생물학적인 변화도 일어났다. 나무 위에서 주로 생활하던 원숭이가 땅 위로 급하게 내려오면서 오감 중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기능은 발달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는 '늑대'와 '살쾡이'를 키우는 방식으로 보조했다. 외부의 적에 대해 후각이 뛰어난 '가축화 된 늑대'를 이용했다. 그들을 통해 경계를 세웠다. 비위행적인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죽자 내부적으로 남은 식재료를 보관하고 처리하는데도 고민해야 했다.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데도 '가축화 된 늑대'가 필수적이었다. 그들의 후각을 도움 받아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가축화 된 살쾡이'는 인간의 거주지 내부에 존재하는 '쥐'와 '벌레'를 퇴치시켰다. 이처럼 사축화 된 늑대와 사축화된 살쾡이는 인간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진화하며 야생동물에게는 없는 '흰자위'를 갖게 됐다. 가축화 된 늑대는 '개', 가축화된 살쾡이는 '고양이'가 되어 인간과 정서적 교감을 함께하며 진화해 갔다.

인간은 왜 옷을 입기 시작했을까. 기후변화를 겪은 원숭이는 밀림에서 초원으로 거주지가 바뀌었다. 나무에서 내려온 원숭이는 대략 무한대로 펼처진 초원을 걸어야 했다. 굽어진 허리가 점차 곧게 펴지면서 인간은 두 팔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지만 생식기가 밖으로 노출됐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육아'에 굉장한 에너지를 쓰는 동물이다. 거대해진 지능이 다 자라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실제 막 태어난 신생아는 자연계에 유례없을 정도로 무능하다. 아기 인간은은 태어나서 자그마치 4~5주가 지나서도 제 스스로 턱도 들지 못한다. 심지어 뒤집어진 상태에서는 스스로 다시 뒤집지도 못해 질식하고 만다. 무지막지하게 자다가 두 시간에 한 번 씩 일어나 밥을 달라고 칭얼거려, 부모의 생산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태어남과 동시에 굉장히 오랜기간 동안 '생산활동'없이 무자비한 소비만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그 어떤 생산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무자비하게 먹고 입고 쓴다. 또한 교육비 지출도 무지하게 들어가며 가족 구성원 중 '육아'를 담당하는 한 쪽을 경제적으로 무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출산의 1년 간은 또한 여성에게 활동의 제약을 심각하게 준다. 고로 '성적인 자극'을 최소화하는 것은 사실상 경제적인 전략이다. 인간이 옷을 어떤 이유로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여러 이유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만이 가진 '직립보행'은 분명 숨겨져 있어야 할 복부와 앞면을 적나라게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털 없는 원숭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진화적으로는 털을 벗어버리고 문화적으로 만든 털을 기워 입은 톡특한 종이다.

아이를 안고 우유를 줄 때,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이의 머리가 왼쪽으로 가도록 향한다. 오른손으로 젓병을 잡기 편해서 일수도 있지만 어쨌건 이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아이는 부모의 심장에 귀가 가까이 된다. 원인과 결과의 순서 중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왼손과 오른 손 중, 어떠한 교육 없이도 오른손잡이가 된다. 여성들은 무의식적으로 꾸러미를 안을 때 왼쪽으로 안는다. 심장 박동과 비슷한 템포에 안정감을 느낀다. 우리는 동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그들과 닮아 있다. 고래는 육지에서 생활하던 포유류였다. 그들이 바닷속에 들어가 어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전에 입던 옷을 완전하게 갈아 입지 못했다. 인간의 존엄으 의심하도록 하는 불편한 시각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쉽게 쓰여 있지만 생각할거리가 너무나도 많은 좋은 책이다. 두고 다시 한번 정독해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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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체력이 능력 - 마음, 태도, 관계가 단단한 내가 되기 위해
최수희 지음 / 빌리버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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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상에서 가장 지구력이 뛰어난 동물은 무엇일까.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구력이 뛰어난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은 적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시간 정도 체력을 사용하고 지속하지 못한다. 다만 인간은 수 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수 백 km를 이동 할 수 있다. 인간이 지구력이 뛰어난 이유는 몸에 '털'이 없기 때문이다. 털이 없기 때문에 땀은 기화되면서 내부의 열을 빼앗아간다. 체온이 너무 빨리 올라가는 털 달린 동물들과 다르게 인간은 털이 없어 체온 조절이 쉽고 오래 움직일 수 있다. 진화론적으로 그렇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무지막지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 반면 수분 증발이 다른 동물보다 빠르게 일어나며 탈수가 쉽게 일어난다. 멋들어진 현대의학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물을 많이 먹고 꾸준한 운동을 해야하는 진화과정을 겪었다. 신체 기관 중에서,' 뇌'는 열에 매우 취약한 기관이다. 뇌는 체온이 섭씨 40도만 넘어가도 열로 변성되거나 파괴되기 시작한다. 체온을 쉽게 식힐 수 있게 됐자,  인간의 뇌는 브레이크 없이 진화했다. 뇌는 높아진 체력을 통해 꾸준하게 칼로리를 소비했다. 인간의 뇌는 포도당의 형태로 하루에 350~450kcal를 소비한다. 이는 기초대사량의 25%나된다. 즉 '건신건신(健身健神):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표현은 정말 적합하다. 진화를 역행하듯 신체활동을 멈추면 우리 '신체'는 물론 '정신'적인 문제도 함께 일으킨다. 우울증에 걸리게 되면 '악력'이 약해진다. 실제 악력이 약한 그룹과 강한 그룹 간의 자살 사고와 우울증 위험도를 조사한 결과에서 차이가 대략 30~46%까지 난다고 한다. 체력은 능력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운동량이 부족해지자 체력이 약해진다. 체력이 약해지자 운동량이 부족해진다. 운동량이 부족해지자 다시 체력이 약해진다. 이런 악순환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책은 '마흔'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심폐지구력은 서른 이후 부터 10년마다 15%씩 감소한다. 그리고 70세에는 50%감소한다. 근력의 경우에는 50세 이후 10년마다 20%씩 감소한다. 이처럼 근력과 심폐지구력이 약해지면 당연히 운동량은 줄어든다. 운동량이 줄어드니 체력은 다시 약해진다. 몸의 표면을 모두 두루고 있는 근육이 줄어들면 근육간에 잡아당기는 힘의 차이가 발생한다. 골격을 잡아주던 근육이 줄어들면 관절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평행성이나 자세에 문제가 생긴다. 자세가 곧지 못하면 호흡에 문제가 생기고 각종 감염질환에 치명적이게 된다. 체력은 마음과 태도, 관계에 영향을 끼치고 이것은 인생의 질을 변화시킨다. 이처럼 인생이 달라져서 방향이 결정되면 그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체력을 기르는 것은 운명을 기르는 것과 같다. 일을 마치면 고된 몸을 녹이기 위해 '맥주'를 들이키고 '맥주'를 들이키면 노곤해져서 잠에 든다. 잠에 들면 깊게 숙면을 취하는 듯 하지만 깊은 수면을 놓치기 쉽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이런 무한 반복은 실제로 모두 '운동부족'에서 일어난다. 체력이 정신력을 이긴다. 몸은 마음을 이긴다. 건강한 에너지는 자신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그밖의 주변에까지 미친다. 실제로 몸이 지친 날에는 금방 마음이 부정적으로 바뀐다. 운동이 부족하여 뇌에 혈액 공급이 정체되면 두통을 비롯해 각종 문제가 생긴다. 운동 부족은 그렇게 스트레스에 취약해진다. 뇌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혈액 순환이 활발해져야 하고 유산소 호흡을 통해 혈액에 공급된 산소는 뇌까지 도달하여 신선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구력이 뛰어난 동물은 무엇일까.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구력이 뛰어난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은 적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시간 정도 체력을 사용하고 지속하지 못한다. 다만 인간은 수 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수 백 km를 이동 할 수 있다. 인간이 지구력이 뛰어난 이유는 몸에 '털'이 없기 때문이다. 털이 없기 때문에 땀은 기화되면서 내부의 열을 빼앗아간다. 체온이 너무 빨리 올라가는 털 달린 동물들과 다르게 인간은 털이 없어 체온 조절이 쉽고 오래 움직일 수 있다. 진화론적으로 그렇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무지막지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 반면 수분 증발이 다른 동물보다 빠르게 일어나며 탈수가 쉽게 일어난다. 멋들어진 현대의학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물을 많이 먹고 꾸준한 운동을 해야하는 진화과정을 겪었다. 신체 기관 중에서,' 뇌'는 열에 매우 취약한 기관이다. 뇌는 체온이 섭씨 40도만 넘어가도 열로 변성되거나 파괴되기 시작한다. 체온을 쉽게 식힐 수 있게 됐자, 인간의 뇌는 브레이크 없이 진화했다. 뇌는 높아진 체력을 통해 꾸준하게 칼로리를 소비했다. 인간의 뇌는 포도당의 형태로 하루에 350~450kcal를 소비한다. 이는 기초대사량의 25%나된다. 즉 '건신건신(健身健神):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표현은 정말 적합하다. 진화를 역행하듯 신체활동을 멈추면 우리 '신체'는 물론 '정신'적인 문제도 함께 일으킨다. 우울증에 걸리게 되면 '악력'이 약해진다. 실제 악력이 약한 그룹과 강한 그룹 간의 자살 사고와 우울증 위험도를 조사한 결과에서 차이가 대략 30~46%까지 난다고 한다. 체력은 능력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운동량이 부족해지자 체력이 약해진다. 체력이 약해지자 운동량이 부족해진다. 운동량이 부족해지자 다시 체력이 약해진다. 이런 악순환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책은 '마흔'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심폐지구력은 서른 이후 부터 10년마다 15%씩 감소한다. 그리고 70세에는 50%감소한다. 근력의 경우에는 50세 이후 10년마다 20%씩 감소한다. 이처럼 근력과 심폐지구력이 약해지면 당연히 운동량은 줄어든다. 운동량이 줄어드니 체력은 다시 약해진다. 몸의 표면을 모두 두루고 있는 근육이 줄어들면 근육간에 잡아당기는 힘의 차이가 발생한다. 골격을 잡아주던 근육이 줄어들면 관절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평행성이나 자세에 문제가 생긴다. 자세가 곧지 못하면 호흡에 문제가 생기고 각종 감염질환에 치명적이게 된다. 체력은 마음과 태도, 관계에 영향을 끼치고 이것은 인생의 질을 변화시킨다. 이처럼 인생이 달라져서 방향이 결정되면 그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체력을 기르는 것은 운명을 기르는 것과 같다. 일을 마치면 고된 몸을 녹이기 위해 '맥주'를 들이키고 '맥주'를 들이키면 노곤해져서 잠에 든다. 잠에 들면 깊게 숙면을 취하는 듯 하지만 깊은 수면을 놓치기 쉽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이런 무한 반복은 실제로 모두 '운동부족'에서 일어난다. 체력이 정신력을 이긴다. 몸은 마음을 이긴다. 건강한 에너지는 자신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그밖의 주변에까지 미친다. 실제로 몸이 지친 날에는 금방 마음이 부정적으로 바뀐다. 운동이 부족하여 뇌에 혈액 공급이 정체되면 두통을 비롯해 각종 문제가 생긴다. 운동 부족은 그렇게 스트레스에 취약해진다. 뇌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혈액 순환이 활발해져야 하고 유산소 호흡을 통해 혈액에 공급된 산소는 뇌까지 도달하여 신선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최수희' 작가 님의 '마흔, 체력이 능력'은 대단한 전문지식이나 '심리학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사용하고 있는 '자기계발'에 대한 노하우와 기록을 담고 있다. 어려운 용어의 이론보다 실제 누군가가 겪은 이야기다. 명상, 운동, 육아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으며 지금까지 활발하게 계발을 이어가고 있다. 긍정적인 기운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고로 나는 긍정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긍정적인 기운이 있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이고 싶은 이들'이 끌려간다. 고로 긍정적인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 또한 관계를 개선하고 서로 좋은 영향을 준다. 정의 하기 어려운 내 철학 중 하나는 '부정적인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사람은 심지어 '가족' 일지라도 멀리하는 것이 좋다. '흙탕물'에 빠진 이를 건지기 위해 '흙탕물' 함께 들어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실제 사람의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평소 자주 짓는 표정에 따라 사람은 인상과 주름의 모양이 결정된다. 주사기로 반듯하게 펴버린 얼굴이 아니라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새겨진 모습을 우리는 '인상'이나 '관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략 마흔이 된 누군가의 얼굴에서는 그 사람의 인생이 흐릿하게 보이기도 한다. 책을 읽고 감사일기를 쓰고,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는 이의 표정은 좋은 의미의 선입견이 생긴다. 그리고 그것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대략의 확신도 생긴다. 사실 얼마 전부터 체력이 많이 약해져서 운동부족이라고 여겨지던 터에 좋은 책을 만나게 됐다. 수면 시간과 식사시간이 불규칙하여 아침 샤워마다 종종 코피가 쏟아지곤 했는데 좋은 시기, 좋은 책을 만난 듯해서 기쁘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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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질문 - 기술 선진국의 조건
이정동 지음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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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온, 오프라인에 쌓은 수많은 흔적들은 데이터가 된다. 인공지능은 이런 수많은 흔적을 빅데이터로 모으고 학습한다. 어제 누군가 라면을 먹었다면 내일 라면을 먹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에 인간과 인공지능은 둘 다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다만, 어제라면을 먹은 그가 그제도, 지난주에도, 지난 달에도 꾸준하게 라면을 먹어다면 내일 그가 라면을 먹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인간과 인공지능은 둘다 그 물음에 대답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지나간 데이터의 양은 미래와 현재를 예측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된다. 시간이 쌓이면서 수많은 인간이 쌓고 있는 데이터의 양은 우리 뇌가 감당하기 버거운 양이다. 즉 어느 순간부터 외부저장장치가 인간의 뇌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게 된다. 더 많은 정보는 더 많은 해답을 내릴 수 있다. 이제 해답을 내리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다. Input(입력값)을 통해 Output(출력값)을 만들어 내는 것은 계산(Compute)이 필요하다. 이처럼 계산해야 할 모든 값을 다 집어 넣는다는 의미에서 접두사 com(모두)+put(넣다)의 의미인 컴퓨터(computer) 탄생했다. 컴퓨터의 최초 어원은 계산하는 기계라는 의미다. 17세기 프랑스의 한 수학자가 기계식 계산기를 발명했다. 아라비아 숫자가 바퀴에 붙어 한 칸 씩 돌아가며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는 단순한 아날로그식 계산기었다. 다만 이 계산기는 덧셈과 뺄셈을 돕는 '기계'였을 뿐, 현대에서 말하는 컴퓨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영국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배비지는 오늘날 컴퓨터의 원형을 만듬으로써 더 빠른 연산을 돕게 했다. 컴퓨터 즉, 계산기는 인간의 보조 도구였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잊기 쉬운 기념일이나 메모를 남겼다. 과거에는 종이가 하던 일을 컴퓨터로 넘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인공지능이나 기계를 두려워한다는 느낌이 든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거나 인간을 해치고 지배하는 공상 영화나 소설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이것은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인간의 반응과 비슷했다. '종이'에 기록하는 기록물은 최초 인간의 '뇌'를 보조하는 수단이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된 기록물들의 수가 많아지고 수많은 인간들의 기록들이 쌓이면서 감히 한 개인이 그 모든 정보를 처리하기 힘든 순간이 도래했다. 그때부터 인간은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을 '선구자'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인간들을 선도했다. 책은 일종의 '인간 메모리 보조 도구'다. 누군가의 데이터가 아날로그 상으로 반 영구적으로 저장되는 일이다. 꽤 성공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도서관'이 자신을 키운 '팔할'이라며 책과 도서관에 대한 무궁한 영광을 찬양하곤 한다. 그 말은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누군가는 다른 이들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가장 선도에 있고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알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보가 '뇌'에서 시작했으나, '책'으로 넘어갔고 이제는 '데이터신호'로 넘어간다. 이미 엄청나게 방대한 '종이 기록물'이 데이터 기록물로 바뀌었으며 이 또한 데이터가 되었다. 더군다나 인간은 이런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분석하여 더 빠르고 정확한 대답을 내리는 기계를 발명했다. 인공지능이다. 우리는 기계가 더 빠르고 정확한 대답을 내려주는 시대에 살았다. 과거에는 '책' 속에 정답이 있었으나 이제는 '데이터' 속에 정답이 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 책속에 해답이 있었다. 더 빠르게 문명을 선도하는 이들은 그런 이유로 '찾는 능력'이 중요했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최대한 빠르게 찾기 위해 긴 내용을 빠르고 쉽게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우리의 대입 시험을 보면 엄청나게 긴 지문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내는 능력이 중요했다. 다만 이제는 세대가 바뀌었다. 더 빠르고 정확한 것을 찾아내는 능력보다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의 시대가 된 것이다. 컴퓨터는 해답을 찾는데는 천재적이지만 문제를 제기하는데는 영 시원찮다. '야마구치 슈'의 '뉴타입의시대'를 보면 비슷한 내용이 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리가 되는가'의 저자답게, 그의 글에도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에는 '철학'이 있음을 알게 한다. 세상에는 '올드타입'과 '뉴타입'이 있으며, 해답을 내리던 올드타입의 시대가 지나가고 질문을 하는 '뉴타입'의 시대가 도래해다고 '야마구치 슈'는 말했다. 문제는 적고 해결 능력이 과잉인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기계에 의해 질문의 해답을 언제나 찾을 수 있게 됐다. 무엇을 궁금해야 하는지 어떤 불편한 점이 있고 어떤 생각을 해야하는지 우리는 조금 더 창의적인 물음을 필요로하게 됐다.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과 제도에는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다. 다른이들을 빠르게 따라가기 위해 기민한 이해력이 필요했던 시대를 지나 우리는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는 시대를 맞이 했다. 전 세계는 기술을 앞서 이끌 수 있는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치루고 있다. '최초의 질문'에 이정동 저자는 '인재란 산업화 시대에 통하던 표준화된 인력이 아니라 창의적인 역량을 갖춘 사람, 최초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경쟁력 강화 정책의 핵심으로 STEM, 자연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에 사활을 거록 있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은 그 어느 선진국들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기술 주도국으로써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단순한 규제 철폐가 아니라 적정한 규제의 업데이트를 통해 더 많은 문제를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의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 또한 이 시대의 흐름에서 나쁘지 않은 영향을 받고 성장했다. 대한민국은 기술 선진국으로의 도약에서 어느정도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 깊이를 보자면 부족한 점이 한참은 많아 보인다. 요즘 적잖이 대한민국의 문화와 경제 부분에서의 도약을 과대포장하여 평가하는 언론이 많아 보인다. 다만 아직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기술', '제도', '교육'면에서 부족하고 타국가들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 선진국의 조건이 되기 위해 우리가 세상에 '최초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많은 인재를 양성할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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