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 전략 - 경영을 예술하라
김효근 외 지음 / 가디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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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양식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 활동을 '예술'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어떤 것을 '예술'이라고 할 때, 경영을 예술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선에는 다섯 가지 신분이 있다. 왕족, 양반, 중인, 평민, 천민. 그 중 가장 하위 계급인 '천민'에는 '기생'이나 '광대', '무당', 백정'이다. 현대에는 이들을 다르게 평가한다. 이들은 예술가에 속하며 '백정'은 '서양적 외모'를 지닌 경우가 많았다. '고귀함'과 '천함'은 천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결정 되는 것이다. 천하다고 생각했던 '의술'은 지금은 '의학'으로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 산업시대를 지나 빠르게 서비스 시대에 돌입했다. 공급력을 늘려야 하던 '경영'은 '효율'에서 서비스로 초점이 이동했다. 경영자가 '판매하는 것'이 '상품'이 아니라 '감동'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업에서 '고객 감동'이 어떤 부분에서 '예술'과 닿아 있다. '넷플릭스'나 '페이스북', '애플' 역시 제품이 아니라 '사용자 만족'을 목표로 움직인다. 애플의 아이폰 이용자들에게 브랜드 선택 이유를 물어본 결과 제품의 성능 때문이라고 대답한 경우는 40.48%가 됐고 브랜드와 디자인 때문이라고 대답한 경우도 30.96%였다. 브랜드와 디자인이 결정적 구매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중요한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기업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은 더이상 '제품'의 성격을 벗어나 '브랜드'가 된다. 사업자가 자신의 상품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가치를 갖게 하는 '브랜드'라는 것은 결국 '이름'을 알린다 경영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우리는 '명작' 혹은 '명품'이라고 부른다. 세기를 넘어서는 명작이 있듯 기업 경영도 시대의 아이콘이 되며 '명작'으로 남을 수 있어야 한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세계 6위다. '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월마트'에 이은 순위다. 미국이 아닌 국가 중 1위인 셈이다. 삼성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다. 그들이 자신들의 제품에 'SAMSUNG'이라는 로고를 새겨 넣으며 '우리가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보장된 감동을 의미한다. 최근 ESG는 기업이 추구해야할 필수 경영 이념이 됐다. 이는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단순히 기업이 얼마만큼의 돈을 벌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벌었는지를 살피는 구조가 됐다. 얼마나 건전한 지배구조 속에서 환경과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는지가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 요소로 자리 잡은 것이다. 기업에게 '돈' 이상의 것들을 기대하면서 '기업'은 효율성 감소를 맞이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신뢰도 향상'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갖는다. 브랜드와 명작이 이름 만으로 파괴력을 갖는 이유는 '판매실적'과 '효율성'보다 '신뢰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CEO들은 이제 미학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어떻게 감동 시킬지 생각해야 한다. 배달어플의 경우 '맛' 만큼이나 서비스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다. 단순히 맛이 있는 음식만으로는 고객의 감동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더 다채로운 사고를 하고 시각을 확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감동이라는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이로서 경영자의 자질이 더욱 중요해지게 됐다. 언제부턴가 기업의 적정주가를 확인하는 PER의 역할에 대해 상기해야 했다. 사람들은 이미 고평가 된 기업의 주가를 이익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매입했다. 인간은 고차원적으로 문명을 발달할수록 '미학적 가치'를 우선시 했다. 최초에는 '생존'을 위해, 둘째는 번영을 위해, 세번째는 만족을 위해 진화해갔다. 요리는 날고기를 불에 그을려 먹는 수준에서 조리를 통해 더 맛잇는 음식을 먹는 수준으로, 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수준에서 보기도 좋은 시각적, 문화적 가치를 넣었다.

전화만 되면 되는 스마트폰은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 위치가 가로냐, 세로냐, 몇 개나 있는가 등으로 집중하게 됐다. 의복은 문화가 발전할수록 효율성과 정반대로 의미없는 '악세서리'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인간의 이런 본능이 사람을 다루고 제품을 다르고 돈을 다루는 경영이라는 기술에 적용되지 않을리 없다. 동인도 회사는 상업적 이윤을 위한 회사로 출발했으나 더 큰 교역을 위해 용병과 무기를 배에 함께 실었고 타국가와 민족의 땅에 들어가 노동력과 원자재를 제공받고 완제품을 팔아 이득을 취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컸던 이런 거대 기업은 지금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강제적으로 물품을 팔아 넘기던 행위가 아니라 감동을 통해 마음을 여는 어떤 모습을 보자면 예전 동화에서 자켓을 벗기려던 바람과 햇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강한 바람을 불면 더 자켓의 단추를 여미는 반면 은은하게 데워주면 저절로 단추를 풀어 재끼는 동화 말이다. 이제 유형의 가치를 넘어 무형의 가치가 훨씬더 중요한 시대다. 기업은 '제품'을 넘어' 꿈, 감성, 디자인, 이야기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 낸다. 단순히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도출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니라 창의성과 감성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교양교육이 필수적인 시대가 그것이다. 이런 문화와 교육은 올바르게 선 '철학'을 기반으로 시작한다.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의 전공이 철학이 었던 이유는 어떻게 하면 본질을 간파하고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예술은 인간 최고의 목적인 행복을 성취하는데 기여한다. 예술은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야기할 뿌만 아니라, 즐거움과 오락도 제공한다. 예술은 도덕적 완전함에 기여한다." 앞으로 머리가 아닌 감성으로 기업과 시장을 움직이는 시대가 왔다. K팝과 한류 열풍을 기반으로 기업은 제품을 더불어 문화를 함께 수출하고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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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 - 50년간 우주를 올려다본 물리학자의 30가지 대답
폴 데이비스 지음, 박초월 옮김 / 반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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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을 던지고 앞면만 연달아 100만 번 나올 확률은? 이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0'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주를 기준으로 수학적 확률은 0이 아니다. 수학에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값이 한없이 가까워지는 상황을 '극한'이라고 한다. 연산을 진행할수록 값이 무한대로 가까워질 뿐 절대로 닿지 않다. 이런 상황을 보고 '수렴한다'고 한다. 100만 번이나 동전앞면이 연속적으로 나올 확률은 완전한 '0'이 아니다. 0으로 한없이 가까워지는 것은 무수하게 작지만 '존재'와 '무존재'에서 '존재'로 분류된다. 그 시행횟수를 무한대로 넓히면 확률은 반드시 늘어난다. 동전 던지기의 횟수를 무한대에 가깝게 한다고 해보자. 시행횟수를 수 조 번, 수 천 조 번 이상 시행한다고 해보자. 이것은 시간을 넘어 공간도 넓힌다는 의미다. 수 조, 수 천 조가 넘어가는 시간의 값과 공간의 값은 서로 곱해지고 그 확률은 '존재'에 가까워진다. 무한에 비해 비하면 100만이라는 숫자는 1과 다름없다. 우주의 크기는 관측가능한 수준을 기준으로 465억 광년이다. 빛의 속도로는 930억 광년이다. '무한'이나 다름없는 '빛'의 속도로 날아도 930억 년을 날아가야 한다. 이 또한 관측가능한 범위다. 우주의 나이는 130억 년은 된다. 시간과 공간을 곱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문과적 상상력은 더이상 과학적인 물음에 대해 답하지 못하고 멈춘다. 다만 의문점이 있다. '확률'에 따르면 우리와 같은 존재가 분명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 확률은 '0'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우리 밖 누군가를 찾아다니기 위해 노력한다. 어린시절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만 존재할 가능성도 '0'에 수렴하지만, '0'은 아니지 않을까. 마치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는 방패와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을 팔던 '모순'의 모습 또한 '우주'라는 무한의 앞에서 둘 다 일리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한 것은 '무한'이 만들어낸 착각이자, 진실이다.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하다라는 말은 다시 말해서 '양자역학'이다.

무한의 확률은 '존재'와 '무존재'를 동시에 가능하게 만든다. 지끈지끈 골치가 아파지는 이런 질문들 또한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일까. 어떻게 우리는 현재를 살 수 있는가. 이 무한대에 가까운 우주에서 하필 이 공간에, 이 시간에 존재하게 되는 것은 기적에 가깝지 않을까. 단군 할아버지가 사시던 기원전 2333년과 오늘 2022년은 우주의 무한대 앞에 한 점에 가깝기도 하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13,775,245,658년에 살고 있다. 공간적으로 말하자면 930,015,684,236,258,461,035,150km 중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뒷자리는 무의미하여 임의적으로 만듬) 여기에 오늘 존재하는 기적은 엄청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우주는 팽창하고 있단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성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이미 무한이라고 생각되는 시간과 공간도 언젠가 완성할지도 모를 우주의 입장에서 '도입'일지도 모른다. 우주가 팽창하고 확대하면 할수록 단군 할아버지와 나의 간격은 더 줄어든다. 의미는 의미기기도 하고 무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없이 0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가장 작은 입자 최소 입자를 분자라고 한단다. 분자는 원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졌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다. 쪼개고 쪼개고 쪼개고 들어가기를 반복하다 '쿼크'라는 기본 입자를 만난다. '쿼크'는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데 알고 모르고 크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쿼크'라는 놈들이 무수하게 만들어서 원자가 되고 그것들이 결합하여 분자가 되고 그것들이 또 결합하여 어떤 결합체가 되도, 그것들은 한낱 '부스러기' 정도 역할이겠지 싶다. 이것이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력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쿼크'라는 놈의 기준으로 무한대로 확장해서 '몽둥이' 정도까지는 커져야 하지 않을까. 사실상 무한대로 크거나 무한대로 작다는 것은 '무존재'나 다름 없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그것은 그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진 않는다. 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무수히 하는 것과 거의 모르는 것도 따지고보면 한점의 반지름도 되지 않는 차이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우주가 존재한는가. 우주는 어떤 모양인가. 밤은 왜 어두운가. 시간 여행은 가능한가. 꽤 그럴싸한 정답을 내린 사람들을 동경하는 세계에서 사실상 그들의 존재를 다시 살펴보자니 모두가 질문하는 사람이다. 내가 어린시절, 사촌의 집은 '비디오가게'를 했었다. 망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하셨다. 대한민국 문화수준이 높아지면서 가정마다 모두 비디오기기 한 대 씩, 혹은 DVD 기기 한대씩 가지고 올 날이 머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말은 꽤 그럴듯 했다. 다만 모두가 비디오 기기를 가지고 있자, 인간들은 '포화'된 시장을 뚫을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장의 판도가 완전하게 달라지고 결국은 '비디오 대여점'이 뭐하는 곳인지 모르는 세대가 태어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무 많은 해답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포화에 이르면 누군가는 새로운 질문을 제시해야 한다. 결국 새롭게 제시된 질문이 새 시대를 열어간다. '아마구치 슈'는 현대를 이르러 '문제는 적고 해결 능력이 과잉인 시대'라고 정의했다. 결국 우주는 '철학'을 만나게 되는지 국적과 언어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의 저자 '폴 데이비스'와 '뉴타입의 시대'의 저자 '아마구치 슈'가 만난다. 무한대로 확장을 하면 결국 모든게 0이거나 1이다. 단군 할아버지와 '나' 따위도 한 점으로 뭉쳐지는데 철학과 과학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은 '무(無)'에서 탄생했다. +1과 -1은 모두 0에서 탄생했다. 고로 이 둘은 만나면 0이 된다. 물질이 생겨남과 동시에 반물질도 생겨난다. 이 둘은 서로 상쇄하며 우주 전체의 값은 여전히 0이다. +1000이라도 결국 -1000의 값으로 상쇄되고 +25억도 -25억으로 상쇄한다. 우주가 이러한데 질문과 해답은 따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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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떻게 살래 - 인공지능에 그리는 인간의 무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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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서머스카운티 탤컷에는 한 남자가 서있다. 남자는 묵직한 해머를 들고 있는데, 근육질의 몸을 가졌다. 그의 이름은 '존 헨리'. 그는 1872년 탤컷의 빅벤드 터널 공사 노동자다. 터널 공사에 사람이 아니라 '증기드릴'이 사용되자,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헨리는 기계보다 인간이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증기드릴'과 대결을 펼친다. 이 대결은 하루를 넘어 지속했고 결국 인간은 승리했다. 인간이 기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준 '헨리'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결국 무리한 대결 탓으로 결국 사망한다. 한 삽, 한 삽을 퍼낸 구덩이와 굴착기가 단숨에 퍼낸 구덩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인간의 우월성과 존엄성을 이야기하겠지만, 우리는 '젓가락'으로 밥먹는 일에 대해 '손가락의 우월성'이 침해 받았다고 하지 않는다.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문명의 발전을 이야기 한다. 심지어 '뗀석기', '간석기', '청동기', '철기' 등. 시대를 구분하는 잣대는 '지능 수준'이 아니라 '도구 사용 수준'이다. 진일보한 문명을 사용한 것은 더 많은 생산량을 만들어 내고 인간을 더 풍족하게 살도록 했다. 구석기 누군가는 한끼 식사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종일의 시간을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의 지금은 그 위험을 줄였고 시간도 줄였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높은 생산성을 대신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주먹도끼로 찍어 내어 빻은 밀가루와 분쇄기로 갈아낸 밀가루에는 '인간의 우월성'이 아니라 '고운 입자'라는 가치를 매겨야 한다. 기계가 인간의 우월성을 침해한 사건은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기 훨씬 이전부터 꾸준하게 이겨왔다. 인간은 분쇄기에도 졌지만, 자동차에게도 졌고 타자기에도 졌다. 단지 이번에 '인공지능'에게 졌을 뿐이다. 인공지능에게 지면서 인간이 우월성을 침해 받았다 충격이 현대인들에게 만연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더 좋은 도구를 사용한 진일보한 문명 상태를 유지했다.

'지능'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안이 더 위험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기계의 지능이 인간을 뛰어 넘었다거나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낀다. 다만. 나는 이 생각에 나는 반대한다. 알파고가 아무리 뛰어나도 알파고는 알파고를 만들지 못한다. 신은 인간을 만들기 위해 200만년이 걸렸다. 원숭이를 인간으로 진화시키는데 걸린 시간을 보면, 우리가 고작 십 수 년 개발 뒤에 '신'의 업적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과만이다. 혹여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인간의 승리다. 알파고에게 패배를 하고 '이세돌'은 은퇴를 했다. 우사인볼트는 100m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기아 K9 자동차 안에서는 나와 우사인볼트는 모두 평등해진다. 증기드릴을 이긴 '존 헨리'처럼 그 시대에 잠시 기계를 이긴다고 하더라도 기계는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인간의 능력을 앞지른다. 인간은 더 효율적인 방식을 생산해 냈기 때문에 당연히 기계는 인간보다 우월해야만 했다. 자동차가 탄생한 이유는 자동차가 인간보다 우월한 속도와 지구력을 가졌기 때문이고 드릴이 탄생한 이유도 인간보다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이 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 만년 전 누군가는 주먹도끼에 의해서 인간의 영역이 침범 당했다고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어떤 부분을 충분하게 돕는데 사용될 것이고 더 편하게 만들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인공지능과 기계가 인간의 직업을 앗아갈 것이라고 공포에 떨곤 했다. 경제적으로 따졌을 때, 인공지능이 엄청난 생산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소비력이 없다면 곧바로 과잉생산으로 인한 경제 위기가 찾아올 수 밖에 없다. 인공지능의 효율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인간이 가난해진다는 위험은 공상 영화에서도 갖기 힘든 설정이다. 인류가 달나라를 갈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해서 대부분의 인간이 달탐사를 가진 않는다. 기술은 경제를 앞질러 혼자 독보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조선 태종 12년에 코끼리가 조선으로 들어왔다. 일본에서 온 사신이 태종에게 코끼리 한마리를 바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공조전서를 지내던 '이우'라는 사람이 코끼리를 찾아왔다. '이우'는 코끼를 보며 말했다.

"고놈 참 추하게 생겼구나, 에이 퉤!" 이우가 코끼리를 놀리고 침을 뱉자. 코끼리는 이우를 쓰러뜨리고 발로 밟아 죽여버렸다. 이 일로 코끼리는 '살인죄'에 대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살인'에 대한 죄값을 두고 법리를 따지던 상황에서 결국 태종은 코끼리를 순천의 '장도'라는 섬에 귀향을 보내기로 했다. 귀향을 갔던 코끼리는 섬에 물과 식량을 축내다가 결국 야위어 갔다. 이 일로 코끼리는 다시 육지로 이송이 됐고 세종 2년에는 코끼리가 공주로 이송됐다. 코끼리는 노비에게 돌봄을 받으면서 자라고 있었는데, 세종 3년 3월 코끼리는 다시 또 자신을 돌보는 노비를 발로 차 죽여버렸다. 코끼리는 매년 쌀 48섬에 콩 24섬을 먹어 치웠고 성질이 나빠서 사람을 죽이니 다시 또 귀향을 가야 한다고 결정됐다. 이렇게 코끼리는 다시 귀향을 떠난다. 실제 코끼리는 지능이 매우 높은 편이다. 지능지수가 80정도니 전 동물을 통틀어 4번째 정도 된다. 코끼리는 성격이 온순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포악하지도 않다.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코끼리를 포악한 범죄자로 만들었다. 어떻게 다룰지 아는 이와 그렇지 못하는 이에 따라 이는 무기가 되거나 흉기가 되기도 한다. 기계가 대체한 인류의 능력은 많다. 덕분에 인간은 치명적이던 '신체능력'을 더 퇴화 시켰다. 기계의 능력이 인간을 대체 할수록 인간은 체력이 낮아지고 근육이 약화되기도 했다. 다만 이번에는 인간의 신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지적 능력'을 돕는다. 실제로 스마트폰에 뺏긴 지적 능력으로 사람람들은 뇌의 일부분을 퇴화시켰다. 스마트폰의 강한 자극에 오랫동안 노출된 뇌는 현실감각에 무뎌진다. 주의력이 약해지고 감정이나 현실 변화에 무감각해진다. 이를 팝콘 브레인 이라고 부르는데 현대인들이 디지털 치매, 불면증 ADHD에 취약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인간이 덜 걷고 덜 움직이기 때문에 조금 더 단단한 몸을 가진 이들이 희소한 사람이 됐고 이에 따라 가치있게 됐다. 이제 인공지능과 스마트폰이 인간의 뇌 영역을 도우면서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희소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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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같은 걱정 한입씩 먹어치우자 - 인생의 단계마다 찾아오는 불안한 마음 분석과 감정 치유법
장신웨 지음, 고보혜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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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은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쳐해다 싶으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간다. 자신의 꼬리를 미끼로 천적에게 주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이런 생존법은 사실상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잘린 꼬리를 재생시키는데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기도 하고 한 번 자른 꼬리는 다시 끊어지지 않는다. 즉, 평생 단 한번의 사용만 가능하다. 도마뱀은 꼬리에 지방을 저장하곤 한다. 지방은 실제로 가장 큰 잠재적 에너지원이다. 많은 양의 지방을 저장하면 갑자기 찾아온 기아의 상태나 혹독한 환경에서 생존률을 높여준다. 꾸준하게 쌓아둔 지방을 끊어내고 도망을 가는 것은 결국 목숨을 부지했지만 새로운 위협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벌은 침을 쏘고 나면 죽는다. 벌은 놀라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침을 쏜다. 다만 이 생존법 또한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침을 쏘면서 침에 벌의 내장이 함께 뽑혀 나오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자기보호를 하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인 생존 전략이다. 전기뱀장어는 860V까지 전기를 생성해 낼 수 있다. 다만 이또한 굉장히 비효율적인 생존 전략이다. 전기를 배출해 내면 금세 지친다.생산 이후에 방전된 체력 때문에 원주민들에 의해 쉽게 잡히기도 한다. 외부의 적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전기'라는 보호막은 자신에게도 위협이 된다. 자신 역시 발생된 전기 감전에 안전하지 않다. 생존을 위해 어떤 동식물은 독을 만들어 낸다. 복어또한 외부의 위협에 대해 내부에 독성을 만들어낸다. 뿐만아니라 대부분의 동물체는 죽은 뒤에 자신이 맛없는 고기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사후경직'을 한다. 동물체가 죽고 나면 내부에 화학변화가 일어나고 근육이 굳어지는데, 소는 24시간, 돼지는 12시간, 닭은 2시간 정도로 사후 강직된다. 이때, 고기는 질겨지고 맛이 없어지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풀어진다. 천적으로 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살아 있을 때부터 죽었을 때까지 꾸준하게 이어지며 대부분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치명적인 독성을 만들어낸다.

인간이 위협이라고 느끼는 상황이 되면 우리 또한 내부에서 일종의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우리가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예전 자연습성에서 천적으로 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 쳐해졌을 때의 현상이다. 인간은 뛰어난 송곳니나 두꺼운 살가죽이 없다. 털도 없는 연약한 피부에 지구력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동물보다 우수한 게 없다. 다만, 인간이 위협에 노출됐을 때, 우리는 뉴로트로핀(neurotrophin)이라는 뇌 화학물질은 분비한다. 이것은 뇌 신경세포간의 연결을 강화한다.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 단백질은 말 그대로 우리를 '생각의 바다'에 노출시킨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고민이나 걱정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황제내경'에 따르면 사자기결(思者氣結)이라고 해서 '생각이 많으면 기가 엉킨다'라고 했다. 생각의 끝은 대부분 부정적인 이야기로 귀결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만들어낸 부정적인 상황이 우리를 천적으로 부터 경계심을 갖게 만들고 이것이 집단과 개인의 생존력을 높히기 때문이다.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자르는 것처럼, 꿀벌이 자신의 내장을 침과 함께 내놓는 것처럼, 전기뱀장어가 자신의 체력을 방전할 만큼 전기를 내뿜어 내는 것처럼 이는 인류를 키워온 생존 전력이지만 결국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100세가 넘은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대부분이 '스트레스가 없는 즐거운 삶'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영양가 있는 식사나 꾸준한 운동이 아니라 위협에 노출되지 않는 편안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술과 담배를 즐기는 이들도 있었고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우리의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내는 내부적인 작용들이 우리를 더 빠르게 죽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걱정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코끼리의 크기로 불어난다. 이런 걱정은 앞서 말한대로 생각 중독 현상의 결과다. 생각을 많이 할수록 우리는 불필요한 미래와 과거를 떠올리는 '에너지'를 사용하고 이 에너지들은 결국 우리의 지능과 상상력을 발달 시켰으나 곧 불안과 걱정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극도로 발전된 생각의 범주는 가만 두게 되면 다시 불필요한 걱정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종이 위에 덜어내는 것은 '걱정'을 줄이는 동시에 엄청난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인생은 쉽게 말하면 '망나니'에 가깝다. 그는 30대에 도박으로 부모의 유산을 모두 날렸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빚을 많이지고 성욕과 도박의 유혹에 쉽게 현혹됐다. 쾌락 뒤에 찾아오는 환멸감의 윤회를 반복하던 삶을 유지하던 그는 질투심 많고 남들의 존경과 찬사를 즐겼다. 쾌락과 좌절은 아이러니하게 같은 뇌파를 만들어 낸다. 결국 우리 뇌는 쾌락과 좌절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그는 불연듯 깨달음을 얻는 성인 처럼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탐구한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대문호 '톨스토이'는 그렇게 극도로 노출된 스트레스에서 탄생했다. 글 이라는 것은 '생각의 흔적'이다.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생각의 흔적들의 속도를 낮추지 않으면 끊임없는 생각이 꼬리를 만들어 낸다. '수능 금지곡'이라는 중독성 있는 노래들이 있다. 어떤 날은 노래 가사가 멈추지 않고 머릿속을 돌아다닐 때가 있다. 이때는 가까이에 있는 물건의 숫자를 세거나 종이 위에 구구단을 적는 등 어떤 일에 몰입을 하면 일순간 머릿속에 잡생각이 들어갈 틈이 사라진다. 그리고 머리는 고요하게 된다. 생각의 흔적은 우리의 뇌를 정화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결국 '문학'이라는 결과물도 만들어낸다. 예전부터 예술가들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천재적인 영감을 얻어내곤 했다. 어찌된 일인지, 미술가와 음악가의 작품은 극도로 아름답고 그들의 인생은 그렇지 못했다. 젊은 시절 가난과 빚 사이에 요절한 '모차르트'나 조기교육으로 인한 불행의 삶을 연속한 베토벤, 반 고흐나 톨스토이. 끝도 없는 천재들은 결국 생각 중독자들이고 글과 음악은 그것을 덜어내는 효과적인 해결책이었다. 아인슈타인 또한 바이올린을 몹시 좋아했다. 걱정이 코끼리처럼 몰려오면 결국 글을 쓴다. 생존을 위해 나에게 독을 만들어 내면, 이 독은 나를 죽이지만 역으로 다시 이용하면 이것은 나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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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라이프 -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지음, 지웅배 옮김 / 까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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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개미 사회는 여왕개미, 일개미, 숫개미로 되어 있다. 즉, 일개미도 암컷이다. 일개미의 특징은 새끼를 낳지 못한다. 일개미 중에서 선택 받은 개미만 여왕개미가 된다. 일개미가 여왕개미가 되는 과정에서 굉장히 독특한 현상을 보게 된다. 일개미가 여왕개미가 되는 순간 뇌용량은 20~25%가 줄어든다. 뇌로 가는 에너지를 돌려 난소로 보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난소는 5배로 커진다. 뇌가 환경과 경험에 따라 구조와 기능이 달라지는 것이다. 실제로 런던 택시 운전사들은 고도의 기억력 시험을 치룬다. 이들은 320개의 경로, 2만 5천개의 개별 거리, 호텔, 극장, 대사관, 경찰서 등 2만 가지의 목적지 위치를 외워야 한다. 런던대학교 신경과학자들은 이런 택시 운전사의 뇌를 스캔했다. 그 결과 '해마'라고 하는 부위의 뒷부분이 비대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운전 경력이 긴 운전사일 수록 해마의 크기는 더 컸는데, 이것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 인간의 뇌도 변화를 갖고 온다는 것이다. 운동을 하면 신체 근육이 커지고 생각을 하면 뇌 근육이 커진다. 일개미에서 여왕개미로 바뀌자, 뇌 용량을 25%나 줄이고 난소를 5배로 키운 개미처럼 말이다. 20대 초반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임원으로 진급됐다. 그때 내가 들었던 말은 이랬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그렇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물도 100도 씨 위에서는 수증기고 냉동고에서는 얼음이다. 사람은 '물'과 같다. 유연하다. 언제든 환경에 따라 자유롭게 변한다. '퀀텀 라이프'의 저자, '하킴 울루세이'는 본명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지혜롭다'의 북아프리카 표현인 '하킴'과 '신이 행하신 일이다' 라는 '울루세이'이다. '마약중독'에 빈민가 갱스터와 같은 삶이었다. 다만 그를 담는 그릇을 바꿈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자아를 갖게 됐다.

마약에 미쳐 누군가의 이마 위로 총구를 들이대던 그다.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지만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다른 백인들과 경쟁하는 삶을 산다. 얼핏 '포레스트 검프'와 '굿윌헌팅'을 떠올리게 한다. '퀀텀'이라는 말은 양자를 이야기한다. 흔히 '퀀텀 점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서서히 수위를 높여가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한 단계 불쑥하고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역시나 '양자들'의 집합체이던가. 인간의 성장도 계단식 성장이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전까지 같은 학교의 여학생들은 언제나 내 정수리보다 위에 있었다. 겨울방학을 마치고 다시 교실에서 만났을 때, 여자아이들의 키가 내 코밑 부근 쯤 됐다. 물리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정신적 성장도 마찬가지다.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제자리를 돌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한다. 다만 우리는 다음 퀀텀점프를 위해서 잠시 계단의 평지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이다. 언제 다음 세계로 화끈하게 넘어갈지는 알 수 없다. 해외에서 영어를 공부하면 3, 6, 9 법칙이 있다. 마치 시간과 돈을 남의 나라에 쏟아 붓고 있다고 느껴질 때, 3개월, 6개월, 9개월이면 갑자기 한 단계씩 성큼 성큼 성장한다. 유학시절 내 공부법은 단순했다. 누군가는 머리가 좋아 공부하는데로 바로 암기했으나, 나는 달랐다. 봐야하는 책의 표지를 편다. 저자 소개와 목차를 포함해 모든 범위를 훑는다. 무슨 말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그런 글들을 마지막까지 읽으면 "내가 무엇을 했나" 싶다. 앞서 했던 방법을 다시 한 번 한다. 이렇게 읽고, 또 읽고 또 읽다보면 어두운 방에 촛불 하나, 둘, 셋을 켜듯 서서히 환해짐을 느낀다. 글을 읽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어느 순간에는 '정독'이지만 '속독'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어느 순간에는 '키워드'를 위주로 이해를 하고 있게 된다. 이렇게 완성된 전체 그림을 마인드 맵을 통해 그려보면 전체의 그림을 훤하게 불 밝힌듯 켜진다. 처음에는 어둡고 다음에는 덜 어둡고, 그 다음에는 조금 덜 어둡다. 밝혀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 놓고 하나씩 초를 켜기를 한 회, 두 회, 세 회를 하며 ㅇ, ㅗ, ㅇ, ㅣ, ㄴ, ㅎ, ㅗ ,ㅏ, ㄴ' 총 9획을 완성하면 '내 이름'과 함께 전체의 암기는 완성된다.

어둠을 맞이하는 태도는 그렇다. 어둠은 아직 불을 켜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 그것이 그저 '어둠'이라는 완전한 상태가 아니다. 조금씩 밝힐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인간은 조금씩 진화한다. 되지 않는 어떤 것을 붙잡고 짜증을 낼 때 쯤, '하킴 울루세이'의 인생을 만났다. 이미 몇 개의 초가 밝혀진 내 방과 다르게 그의 방은 칠흑같은 어둠에서 '성냥'을 찾는 일 부터 시작한다. 내 방이 어둡다고 말하기에 더 뒤에 시작하여 태양처럼 방을 밝힌 누군가가 존재했다. 삶을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하는지, 정답은 없겠지만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끊고 책임감 없는 어머니와 마약으로 삶이 망가진 아버지, 마음 놓고 돌아 다닐 수 없는 유혹의 거리에서 시작해도 언제든 밝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회독으로 책 한 권을 암기할 수 없다. 누군가는 새까맣게 깜지를 쓰기도 한다. 불완전한 첫 번 째와 어설픈 두 번 째와 그리고 세번 째를 하고 나면 결국에는 저도 모르게 완성된다. 지구는 최초에 불타오르는 암석 덩어리였다. 이 모든데 하루 아침에 완성 된 것이 아니다. 수 많은 하루와 하루가 쌓여 완성된 완성체다. 양자를 뜻하는 퀀텀의 역학을 우리는 양자역학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의 역학 작용으로는 전혀 닮지 않은 이 세계는 빛처럼 파동이자 입자의 이중성을 띈다. 즉 중첩된 상태로 존재하다가 관찰자가 개입할 때만 입자로 존재한다. 퀀텀 라이프의 저자의 삶도 중첩된 상태로 굉장히 오래 존재 한다. 다만 그 모두가 진실이며 우리가 그를 바라보면 그는 어떠한 완전한 형태로 존재한다. 신도 오늘을 만드는데 이처럼 오랜 시간과 정성을 쌓았는데 단 한 번으로 어제와 오늘을 다르게 하겠다는 것은 '오만'이자 욕심이다. 근 3일 간, 책을 놓지 못하고 꾸준하게 읽었던 책이다. 이처럼 재밌는 책은 꼭 많은 사람들이 보길 바란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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