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비밀
문주용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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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대에서 대대장실 청소를 한 적 있다. 사무책상 위에 올려 진 'The secret'. 선뜻 열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얼마 뒤, 부대 도서관에서 그 책을 대여했다. 그 뒤로 같은 책을 여러 번 봤다. 가장 많이 산 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다. 이를 제외하고 '더 시크릿'이 가장 많다. 언제나 바이블처럼 가지고 다녔다. 믿음은 깊어졌다. '상상만 하면 이루어진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을 끌어 당겼다. 초대박 베스트셀러가 됐다. 거기에 미쳐 있던 기간, 놀라울 만큼 이루고 싶던 것들을 이뤘다. 그럴수록 믿음은 더 커졌다. 다만 사색의 시간이 길어지며 근본적 의심이 생겼다. 지금은 더 이상 이를 믿지 않는다. 시크릿을 더이상 믿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론다 번', 그는 1951년은 호주 출생이다. 직업은 방송국 프로듀서다. 기본적 직업 자체가 '기획'하고 '제작'하는 사람이다. '기획'은 '계획'을 짜고 스토리텔링을 입힌다. 프로듀서는 평범한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전개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예전에 박사논문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적나라하게 목격한 적 있다. 실험의 기본은 '타겟팅 설정'이다. 다시 말하자면, '마늘'이 암에 좋다는 실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마늘'이라는 타겟을 설정해야 한다. '마늘'이라는 타겟은 어떻게 설정하는가. 실험하는 사람 마음이다. 배양된 암세포 배지 위에 '마늘', '레몬', '커피' 등 실험자가 임의로 설정한 샘플을 뿌린다. 유리막대로 'Z'를 긋고 잘 섞는다. 다시 배지를 배양기에 넣고 세포를 증식 시킨다. 이것을 스포이드로 뽑고 격자 유리막 위에 떨어뜨린다. 현미경으로 살핀다. 세포가 얼마나 줄었는지 계수기로 '짤깍, 짤깍'하며 하나씩 센다. 이것이 실험이다. 대부분의 실험에는 모순이 생긴다. 지금 당장 인터넷에 '마늘 발암물질'이라는 검색어를 넣어보자. 다시 '마늘 항암성분'이라는 검색어를 넣어보자.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검색된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식재료에 '항암성분'이라는 키워드를 넣어보자. 거의 검색된다. 다시 '발암성분'이라는 키워드를 넣어본다. 거의 검색된다. 다만 '발암'보다 '항암'의 키워드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대부분의 논문은 '상업성'을 띄면 유리하다. '발암'을 연구하는 것보다 '항암'을 연구하는 편이 석,박사 실험의 조건에 상당히 유리하다. 대부분 실험실은 연구비 보조가 필수적이기에 실험에는 실험자나 '투자자'의 타겟팅이 필수적이다. 자신의 연구 성과는 '눈문'이란 형식으로 발행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구와 논문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연구와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론다 번'의 '시크릿'은 '타겟팅'이 먼저 이뤄졌다. 몇가지 실례를 통해 법칙으로 이야기를 일반화한다. 이는 물리학에서 '가설' 단계다. 가설은 실험을 통해 입증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그것은 다수가 합의하는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유사과학으로 분류되어 '다수의 합의'를 이끌지 못한다.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법칙'은 다시 말하면, '끌어당김의 가설', '끌어당김의 이론'로 정정해야 할 것이다. '리먼가설', '초끈이론'도 상당히 괜찮은 가설과 이론이지만, 아직 '법칙'이란 이름을 쓰지 못한다. 시크릿은 '양자역학'과 '뉴턴의 만유인력', '상대성 이론'을 거론한다. 꽤 영향력있는 인물들을 거론한다. 게중에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처럼 물리학자도 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과학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과학의 영역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야 할 것이다. 법칙은 물리학 법칙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논리의 빈틈이 생기면 '철학'으로 전개하고 다시 심리학과 종교로 이어진다. 이처럼 과학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과학이 아닌 분야를 '유사과학'이라 한다.

둘 째, 종교적인 성격이 굉장히 강하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애둘러 말하지만 '맹신(盲信)'을 강요한다. 분명하게 맹신(盲信)을 강요한다. 맹신이란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덮어두고 믿는 일을 가리킨다. '의심하지 말라'. 그것은 어느 종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처럼 들린다. 시크릿은 다시 말한다. '이미 이루어진 것 처럼 행동하고 말하라.' 이 말 덕분에 시크릿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이루어진 사람이 많아졌다. 이 아이러니한 말을 다시 풀어 말하자면 이렇다. 시크릿이 이미 이루어진 것 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이루어진다. 고로 사람들은 자신이 '시크릿'을 통해 얻는 것이 있다고 대외적으로 말하고 다닌다. 고로 '시크릿'은 굉장히 높은 확률로 성취한 이들을 생성해낸다. '에잇! 이거 거짓말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줄어든다. 시크릿은 '불신지옥'처럼 믿지 않거나 의심하면 부정적인 것들이 끌려온다고 말한다. 어느 누가 자신의 미래와 인생을 걸고 '그거 거짓입니다'라고 소리쳐 말할 수 있을까. '론다 번'은 이 모든 것을 기획의 단계에서 계획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만 그것은 그런 효과를 낳았다. 그렇다고 시크릿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어쨌건 시크릿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렇다고 믿으면 그 방면의 것들에 더 기민해지는 '망상활성계'가 성취를 이루는데 도움을 줄 것이고, 긍정적인 생각은 성공을 앞당기는데 한몫할 것이다. 고로 지금도 시크릿은 내가 애장하는 책 중 하나다.

안타깝지만, '론다 번'의 가정은 틀렸다. 거인들은 우리가 모르는 '비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튜브를 찾아보자. 워렌 버핏과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버락 오바마, 마윈, 일론 머스크 등 성취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비밀'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비밀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쏟아낸다. 그것도 무료로 쏟아낸다. 그들은 특별한 비밀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이 뱉는 말들이 너무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더 특별한 무언가를 찾을 뿐이다. 그들은 대부분 가장 멍청하고 미련하고 바보같은 방법으로 성공을 성취한다. 워렌버핏의 투자 방식은 '언제 올라갈지 모르니, 오래 들고 있자'이다. 또한 리처드 번스타인은 '무엇이 올라갈지 모르니, 전부 사라'고 했다.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는 그냥 일만 했으며 '비전노트'를 만들어 '최고 부자'라는 꿈을 적어 넣지 않았다. 전교 1등의 공부법은 실제로 단순하다. '많이 공부하기'다. 다만 대부분의 학생은 전교 1등에게는 특별한 공부법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만 알아낸다면 자신도 언제든 그 위치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마법'이 있다는 '환상'은 세상을 재밌게 만들기도 한다. 간혹 앞과 뒤로 떨어지는 동전을 두고 '앞'이라는 고정된 정답을 외치고 있으면 절반은 무조건 맞는다. 절반이 맞는다는 소름끼치게 높은 확률은 삶을 즐겁게 하기도 한다. 실제로 인간의 사행성은 낮은 확률에서 달성했을 때 극에 달한다. 고로 더 많이 실패하다가 성공할수록 더 큰 희열을 느낀다. '거인들의 비밀'이라는 책은 12년 간 시크릿에 대한 문주용 작가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오랜 기간 시크릿을 믿음에도 특별하게 성과가 없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누군가는 '임금님이 벌거벗엇어요!'라고 용감하게 외치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그는 시크릿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나 또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시크릿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믿어도 나쁠 건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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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세상을 바꾼다 - 홍사훈의 경제 브리핑
홍사훈 지음 / 베가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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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는 스포츠 용품 브랜드다. 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승리의 여신으로 알려진 니케(Nike)의 미국식 이름이다. 니케가 '승리'를 상징하는 것처럼 그 형제들도 각자 의미하는 바가 있다. '젤로스'는 질투, 비아는 '폭력' 마지막으로 크라토스는 '권력'을 상징한다. 이들은 제우스가 티탄 신족과 전쟁을 벌였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제우스를 도왔다. 재밌는 신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제는 영어 이야기다. 영어는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권력'을 상징하는 '크라토스'는 '-cracy'의 어원이다. '지배, 힘, 통치, 국가, 정치를 의미한다. theocracy는 신정정치, aristocracy 귀족정치, mobocracy 우민정치, ochlocracy 폭민정치, monarchy 왕정제다. 이들은 모두 '-cracy'에 어원을 두고 있다. 단독적으로 정치하는 것을 monocracy 독재정치라고 부른다. (mono-는 단일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 반대를 의미하는 접두사 디(de-)가 붙으면서 democracy(민주주의)가 만들어진다. 국가의 주권이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이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말하면 소유주가 한 명이 아니라 수 백, 수 천 만이다. 사장님 밖에 없는 대기업이다. 수 천만이 동업을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누군가는 오른쪽으로 가길 원하고, 누군가는 왼쪽으로 가길 원할 것이다. 어느쪽이 맞는지는 없다. 각자 자신이 타고 있는 배가 훌륭한 목적지로 가길 원할 것이다. 모든 주인이 노를 들젓다보면 결국 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다만 민주주의에는 문제가 있다. 같은 목적의 사람들이 많아지면 민주주의라는 배는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다만 다수가 바라는 목적지가 반드시 올바르다는 법은 없다. 목적지는 누구도 가 본 적이 없다. 다수가 거짓 정보에 선동되어 같은 방향으로만 질주할 때, 배는 난파되거나 좌초되기 쉽다. 가는 길은 어떤 길인지 암초를 살피고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기타 여러가지에 대해 질문하고 의심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엔진을 가진 자동차도 무조건 '브레이크 장치'가 있기 마련이다. 달려가기만 했다고 빨리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빠르고 안전한 도착을 위해 적절한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돕는 브레이크는 '견제'라고 부른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싸움', '의심'이 필수적이다. 고로 시끌벅적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카오스로 움직인다. 이것은 자연을 닮았다. 자연은 풀을 아무데나 자라게 하고 돌을 아무 곳에나 배치했지만, 그것은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 민주주의는 자연처럼 질주만하지는 않는다. 봄이오면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온다. 같은 자리를 순환하는 것 같으면서 점차 앞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비효율적인 정치 방식이 민주주의다.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비효율적인 민주주의는 아이러니하게 가장 완전한 체제다. 이는 카오스지만 결국 코스모스인 우주를 닮았다. 올바른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참여'와 '다양성'이 필수적이다.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역할은 민주주의에서 '언론'이 담당한다. 언론의 역할은 응원하고 축하하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의 역할은 다수가 가는 방향에 대한 의심을 가지는 것이다. 키를 가진 이가 올바르게 운전을 하고 있는지, 도착지에 대한 정보는 분명한 것인지, 배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따져 들어야 한다. 각자가 생업에 집중하느라 우리는 대리인을 통해 통치하게 한다. 그들을 잘 감시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언론은 고로 뭐든 의심하고 불편한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의혹이 있으면 취재를 하고 확인이 되면 보도 해야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가 '의심'이다보니 그들에게 필요한 기술은 '분노'다. 물론 그 분노 또한 주권자를 대리한다. 사법판단이 완전히 나오기 전까지 사실 언급하기 꺼려지는 주제들은 있다. 어쨌건 판단된 내용에 대해서만 취재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 아니기에 문제가 있다면 제기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이야기는 대통령 영부인과 도이치모터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해당 이야기는 '정치'에 관한 글이기에 별로 언급하고 싶진 않다. 어쨌건 첫 이야기는 '견제'를 한다. 두 번째는 제7광구다. '한중일'의 관할권 분쟁으로 얽혀 있는 이 곳은 가만히 있을 때, 일본에게 넘어갈 위험이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채산성 있는 다량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정보 제공'을 한다. 세번째는 부동산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는 의심을 한다.

제7광구는 나도 관심이 많은 분야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러시아 가채매장량보다 더 많은 매장량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제7광구는 실패한 영화의 제목과 닮았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말이 관용어처럼 쓰여지던 곳에서 이곳은 '독도'만큼이나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이기도 하다.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2차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 중지는 패전을 안겼다. 일본은 석유 운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차이나 반도를 침공했고 미국은 이에 석유 수출 중지를 하면서 진주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했다. 현대는 '에너지 전쟁'이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들어가는 천연가스를 차단하고 사할린으로 들어가는 가스도 쥐고 있다. 중국은 이미 전기차 최대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셰일혁명을 통해 '중동 에너지'로부터 독립한 미국과 소련, 중국이 3강 시대라고 볼 수도 있다. 쉽게 자유무역시대가 종료되고 보호무역의 시대로 이동하면서 우리 또한 '에너지 확보 및 독립'이 필수적이다. 안타깝지만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이들이 제7광구에 대한 관심이 적다. 한국이 2028년 안에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해양법재판소에 분쟁 사건으로 제소하여 승리하지 않는다면 제 7광구는 일본과 중국이 나누어 가져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 편에 취재 다큐멘터리를 보듯 도서는 흥미롭고 속도감 있다. '속도'가 생명인 '언론'의 생태적 특징을 보완한 언론인의 책이다. 흥미롭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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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 잇 올 -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존 아사라프 지음, 박선주 옮김 / 부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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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덱스' 로고에는 화살표가 숨겨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철자 'E'와 'X' 사이의 공간을 살피면 우측을 향하고 있는 화살표를 볼수 있다. 그 화살표를 알아채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언제나 그 화살표를 보고 있었다. 화살표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이 글의 첫 문장을 보게 됨으로써, 화살표의 존재를 알게 됐다. 앞으로 '페덱스' 로고를 보면 화살표가 보일 것이다. '존재'란 그렇다.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는지, 어떤 것을 인지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 시대의 현재들은 언제나 '사랑'과 '감사', '긍정'을 말했다. 평소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어떤 것을 인식하는 순간, 그것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가장 좋아하는 철학은 '음양설'이다. '음양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무조건 반대가 존재한다'라는 자연의 규칙이 불편하기도 했다. 다만 알면 알수록 '음양설'은 포용하는 분야가 많다. 철학과 물리학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현상을 볼 수 있게 한다. 어째서 시대의 현자들은 '감사'와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집중했나. 이것은 어쩌면 흔히 말하는 망상활성계(Reticular Activationg System, RAS) 때문일 것이다. 쌍둥이 녀석이 태어나기 전까지, '쌍둥이'라는 키워드는 내게 중요한 키워드가 아니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쌍둥이가 없었고 내 주변에서 쌍둥이를 만나볼 일은 거의 없었다. 2017년 쌍둥이가 태어났다. 그 뒤로부터 세상은 나에게 거짓말 같은 현상을 보여줬다. 살펴보니, 살고 있는 동네에 '쌍둥이네'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사업장을 보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쌍둥이가 있었으며, 어디를 가면 쉽게 쌍둥이들이 눈에 보였다. 이는 실제 쌍둥이가 늘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앞서 말한 망상활성계 때문이다.

우리 뇌에 들어 온 정보는 망상활성계에서 처음 받아들여진다. 이 곳에 들어 온 정보는 중요도에 따라 나눠져 이곳 저곳으로 전송된다. 어떤 정보에 우선권을 주고, 어떤 정보에는 우선을 주지 말아야 하는지 결정한다. 망상활성계는 실제로 감각 정보가 들어오면 특정 정보에 대해 각성시키고 기민하게 만든다. 마치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에 기민하게 된다. 쌍둥이가 태어나기 전, 다른 쌍둥이들은 이미 그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을 때, 마치 세상은 쌍둥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다만 쌍둥이가 태어나자, 세상은 쌍둥이들이 넘쳐나는 것 처럼 보인다. 한 정보에 의식이 깨어 있고 각성해 있게 된다. 이것은 몹시 중요하다. 특정 정보에 갈망을 가지만, 이들의 뇌는 같은 방향으로 기민하게 반응한다. 이들의 뇌는 그 정보에 각성하고 기민 반응을 한다. 이런 상태는 의식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도 작용하며 심지어 자고 있는 동안에도 작동된다. 이런 증상은 '미친 증상'과 닮았다.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면 그는 반드시 꿈에 나타난다. 뇌가 바라는 갈망이 무의식 속에 들어와 박혔기 때문이다. 닮은 목소리, 표정, 말투는 다시 그를 상기시킨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그것을 마법처럼 이루어준다는 '시크릿'은 사실 물리학적 '우주'가 아닐지 모른다. 결코 눈에 보이지 않던 '쌍둥이'들이 세상에 넘쳐나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다중우주'의 접속일지 모른다. 다시 '페덱스'의 로고로 돌아와보자. 다시 바라본 페덱스의 로고에서 화살표는 너무나도 잘 보인다. 그 화살표를 집중해서 보고, 오래 바라보기를 한다면 그 뒤로 부터는 화살표만 보인다. 성공한 이들의 특징은 흔히 '목표의식'이라고 말한다. 원하는 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열정'을 이야기한다. 다만 '열정'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정보에 과다 노출되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쓰면 이루어지고, 말하면 이루어진다. 생각하면 이루어지고, 상상하면 이루어진다. 쉽게 이룬다고 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사실 온 우주가 나를 위해 작동되는 것 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목표를 기민하게 해주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은 먹을 때마다, 입을 때마다, 걸을 때마다 심지어는 잘때마다 목표가 떠오를 것이다. 그것이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파고 들면 잊혀져야 할 목표는 이따금씩 상기되며 지속성을 만들어 낸다. 한 번만 검색하면 관련 키워드를 자꾸 추천하는 알고리즘처럼 우리가 비슷한 정보를 만날 확률을 높혀준다. 의식적으로 해야 할 뇌의 작용은 자는 8시간동안, 운전하는 시간, 씻는 시간도 꾸준하게 이뤄진다. 간절히 바라고 그것을 실행하면 자아가 삭제되는 상황에 이르는 상황까지 무아지경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것은 '몰입'이 된다. 열정, 몰입, 실천. 이것은 성공에 이르게 한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법칙을 발견하게 됐냐고 말이다. 이에 뉴턴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내내 그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그 말은 당연하다. 영어를 간절히 하고 싶었던 만 스물의 나는 꿈에서도 영어를 공부했다. 노래를 듣다가 영어가 나오면 '기민'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들의 자꾸 보인다. 이것은 분명 '열정'은 아니지만, '열정'보다 더 '열정'스럽다. 끊임없이 같은 방향으로 회귀하는 회귀장치를 심어 놓은 듯하다. 우주라는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 부터 존재한 물리학적 시공간이 아니라 어쩌면 '내 머리'가 만들어낸 다차원 시공간일지 모른다. 그렇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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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회사 재무제표 - 좋은 투자와 돈의 흐름을 읽는 가장 쉬운 방법
이대훈 지음 / 베가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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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그릇에 된장찌개가 담겨 있다.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국그릇에 코를 박고 먹는다. 그렇다고 내가 국그릇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국그릇은 도구이지, 컨텐츠가 아니다. '책'도 그렇다. 책을 좋아한다는 말은 잘못됐다. 돌이켜 보니 그렇다. 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담고 있는 컨텐츠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컨텐츠는 '경제'다. 경제는 반드시 책이 아니라도 좋다. 영상이나 사진도 좋다. 대학에서 '경제'를 공부했다. 경제는 매력있다.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을 닮았고 때로는 인생을 닮았다. 역사를 닮기도 했다. 경제는 그것들을 닮았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담기도 했다. 모든 것을 '경제'로 설명하는 것은 비판받기도 한다. 다만 환경에 더 적합한 종이 살아 남는다는 의미에서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와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농장에서 '적과 작업'을 한 적 있다. 한 가지에 너무 많은 과일이 달렸을 때, 부실한 과일은 저절로 낙과한다. 그것은 자연선택이다. 다만, 농부는 인위적으로 가장 실한 과일을 제외한 나머지를 뜯어 버린다. 농부가 개입하여 과일을 뜯어버리는 것은 케인즈주의를 닮았다. '자연 선택'을 돕는 '인위적 개입'. 농부는 가지에 달린 과일 중, 실한 것과 실하지 않은 것을 골라 내야 한다. 초짜 농부는 달린 과실 중 실수로 실한 걸 뜯고 부실한 걸 남기기도 한다. 여지 없이 부실한 과일은 크게 성장하지 못한다. 농부의 능력은 '농장'의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것이 실한 과일인지, 부실한 과일인지를 아는 것은 몹시 중요하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는 대규모 양적완화를 불러 일으켰다. 더 근본적으로 가자면 2008년 리먼사태부터 이미 세계 경제는 엉망이었다. 일단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밟아야 하는 자본주의가 회복을 더디게 하고 급한 불을 끄며 진행하게 했다. 이대로 갔다가는 자산가치가 지나치게 상승하고 화폐가치가 엉망이 될테다. 화폐가치란 다시말하면 '달러 지위'와 '패권'을 의미한다. 농부는 한 가지에 달린 여러 과일 중, 더 크고 실한 과일을 키워 내기 위해 멀쩡한 과실을 뜯어내야 한다. 그 출혈을 감내하지 않으면 그 가지에 달린 모든 과일은 '꼬마과'가 된다. 아까워 뜯지 못한 농부의 최후는 '상품성 없는 과일'을 생산할 뿐이다. 미국 중앙 은행은 마구자비로 성장하는 과일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명분은 '인플레이션'이고 방식은 금리인상이다. 앞으로 '우수수'하고 부실한 과일들이 떨어져 나갈 차례다. 그간 농부의 두려움과 게으름으로 달려 있던 과일들이 와르르 떨어질 것이다. 필사적으로 가지 중 실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 안목을 길러야 한다. 과일이 많이 달린다는 소문이 나자, 초등학생은 물론 전업주부와 중고등학생, 대학생 할 것 없이, 너도 나도 투자를 시작했다. 뭐든 잡고 있으면 성장한다는 확고한 믿음은 '그래도 미국주식은 안 망해, 그래프를 봐바!'다. 그렇다. 성장은 반드시 우상향 한다. 과일을 여는 나무가 다시 새싹으로 복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와중 와르르하고 부실한 과실을 떨구고 나아갈 것이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들고 있는 과일은 대게 부실하다. 그들은 농사 한 번 지어보지 않고 '적과'를 시작한 초보 농부와 다름없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프'나 허무맹랑한 '미래 비전' 따위가 아니다. 현실적인 '재무제표'를 들여다 보는 일이다.

근래 투자를 시작한 이들은 마치 자신이 투자이 신이라도 된 듯, 경제에 관해선 자기 철학을 갖고 있다. '국부론' 한 권 읽어보지 않은 이들 혹은 '벤저민 그레이엄'이 누군지 모르 이들은 '워렌버핏의 투자철학'을 들먹거린다. 재무제표는 확인하지 않고 17세기 일본인들이 쌀가격을 표시하기 위해 만들어낸 '캔들차트'로 미래 가격을 재단한다. 넓게 그려진 차트 위에 멋지게 선을 긋고 '매집구간', '개미털기', '매수신호', '매도신호'를 언급한다. 단연컨데 내일 쌀값은 어제 쌀값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쌀값을 형성하는 것은 '기온', '생산량', '인구변화', '식습관', '문화' 등 다양하다. 빨갛고 파란 그래프들 들여다 본다고 내일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보기 위해선, 최소한 '천문학', '심리학', '철학', '지리학', '수학' 등의 지식이 필요하다. 워렌버핏은 '워렌버핏의 투자철학'이란 책을 읽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차트를 살피고 투자하지도 않는다. 그가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재무제표'다. 공시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혹은 '재무제표'를 확인하지도 않고 투자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워렌버핏은 말했다.

'물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드디어 물이 빠진다. 워렌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거래를 앞두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많지 않던 '물 빠지는 기간'에 적극 투자를 준비하는 것이다. 오랜 기간 책을 읽으면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경제에 관심을 가진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다만 이들은 '경제'가 아니라, 오로지 '돈'과 '자산'에만 관심을 가진다. 낙과 시기에 떨어진 과일은 안타깝지만 농장은 더 과감하게 부실 과일을 떨어뜨릴수록 성장한다. 그것이 세계 경제가 성장해 왔던 방식이다.

우리 딸이 성인이 되면, 가장 권장하는 아르바이트로 '경리 업무'를 시키고 싶다. 가만히 앉아서 영수증을 붙이고 오른 손으로 '더존 프로그램'에 숫자키를 누르는 '사무직 노가다'라는 경리직은 실제로 매우 바람직한 경제 공부이기도 하다. 회계를 공부하면 '차변'과 '대변'의 개념을 배운다. 돈을 지출했다고 마이너스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회계는 한쪽에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다른 쪽에 플러스를 기록한다. 경제에서 그냥 사라지는 돈은 없다. 어떤 경제 활동도 자본이 재화로 변경되지 증발되지는 않는다. 100만원짜리 자전거를 구매하면 100만원이 사라졌을 뿐만아니라 100만원짜리 자전거가 생겨난다. 한쪽에는 사라지고 한쪽에는 생성되니 사실은 그 균형이 맞는다. 경리직원이 입력하는 단순한 차변과 대변은 감사를 통해 재무제표가 되어 그 회사를 평가하는 수단으로 자리잡는다. 제주에는 '부끄다'라는 표현이 있다. 표준어로 검색하면 '용솟음치다'로 나온다. 이 표현은 감귤에도 사용된다. 크기가 커다란 과일은 껍질이 '부끈 상태'일 때도 있다. 즉, 알맹이는 부실한데 물을 많이 먹으면 껍질만 '부꺼서' 크기만 키운 것이다. 이것은 상품이 되지 못한다. 어떤 회사가 인위적으로 규모만 키우기 위해 '부끈 상태'로 성장하고 있는지, 당도는 시원찮으면서 산도만 높은지, 어떤 비료를 사용하고 물은 얼마나 주는지, 햇볕은 얼마나 쐐고 있는지의 기록을 살필 수 있다. 아버지의 '영농일지'를 살피면 그해 농사를 예측할 수 있다. 그것이 거의 유일한 좋은 회사 찾는 법이다. 농사는 오늘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일이 아니다. 경제도 그렇다. 투자는 오늘하고 내일 수확하는 것이 아니다. 시기에 따라 언젠가는 꽃이피고, 언제는 과한 과일이 열려 있기도 하고, 언제는 '적과 작업'으로 괜찮은 회사를 골라 낼 때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투자자는 '박영옥' 님이다. 개인적으로 죽기 전에 꼭 만나 뵙고 싶은 분이기도 하다. 그분의 별명이 '주식농부'다. 농장을 예로들자면 지금은 적과 시기다. 우수수 부실한 것들이떨어지고, 실한 과일 위주로 한참을 더 투자하면 그때서야 수확할 시기가 온다. 앞으로 10년, 적과 작업을 한 뒤 5년 성장을 하고 다음 5년에는 수확할 시기가 올 것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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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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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악이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피끓는 증오심을 갖는다. 나는 절대 선이오. 증오하는 사람에 대한 들끓는 연민을 갖는다. 대체로 어떤 부분에 있어서 '선'이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 '악'이다. '악'은 '선'이고 '선'은 '악'이다. 정확히 이분할 수 없는 모호한 개념들이 에테르(ether) 상태로 존재하다가 상(相)을 짓는 순간, 그것은 그것으로 정의된다.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와 같다. 모든 것은 파동으로 존재하나, 그것을 관찰하는 순간 물질로 바뀐다. 고대 인도에서는 인간이 짓는 4가지 상(相)을 주의하라고 했다. 산스크리트어로 말하면, '아트마 삼즈나', '사트바 삼즈나', '지바 삼즈나', '뿓갈라 삼즈마'다. 이것을 한자로 음차 한 것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자신'을 불변한 존재로 보는 '아상'

'자신'과 남를 나누어 보는 '인상'

'쾌락'과 '호감'만 취하는 '중생상'

'영생'에 대한 욕심을 가지는 '수자상'

종교에 상관없다. 애초에 불교는 '철학'으로 볼 때,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다양한 종교가 섞여 혼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색'으로 덮어질 철학을 다시 끄집어 내본다. '자아'를 불변한 존재로 규정하거나 자신과 자신과 남을 구분하거나, 쾌락과 호감만 취한다거나, 영원히 살 것이라는 욕심을 갖는 것은 분명 곡해된 시선이다. 이처럼 왜곡된 시선으로 사물의 성질을 '정의'하는 것을 상(相)을 짓는다라고 금강경은 말했다. 누구나 그렇다. 오은영 박사는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에 대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도덕이 정한 '선'이 규정은 태초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다. 태초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았다. 구약에 따르면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금단(禁斷)하신 열매인 '선악과'를 먹는다. 선악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과일이다. 이것을 먹으므로 인간은 '선'과 '악'을 구분 짓는다. 태초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하나님(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상(相)을 짓게 됨으로 고통을 알게 된다.

불순종의 결과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고 또 고통과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창2:15-3:24).

그렇다. 창세기에 따르면 세상 만물은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그것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선'과 '악'으로 구별하여 상(相)을 짓는다. 언어가 다르고, 표현 방법이 다르고 해석이 다르지만, 사실 동서의 현자들은 이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거나,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거나, 인간이 돼지를 구워 먹는 것은 '선', '악'의 개념이 아니다. 어떤 것에 '선'과 '악'을 대입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내린 '고통'을 알게 된다. 불교에서 이것을 '번뇌'라고 부른다. 구약에 따르면 그 뒤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게 된다. 부끄러움은 '두려움'과 '죄의식'으로 연결된다. 선과 악을 구분 짓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가 생겼다는 의미다. 그 어떤 것에도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으며 상(相)을 짓지 않는 것을 고대 인도에서는 '모크샤'라고 불렀다. 이는 산스크리트어로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해탈(堅固)'이라 한자로 사용했다. 상(相)을 짓지 않는 속박에 해방된 최고의 경지를 '니르바니'라고 한다. 이를 한자로 음차하는 과정에서 '열반(涅槃)'이라고 부른다.

로마서 11장 36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성경에서 말하는 최종 진리와 목적은 '주께 이르는 일'이다. 즉, 최초의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이르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을 '선'으로 규정하지 않고, '악'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서 예수는 말한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옵나이다."

자신을 십자가 위에 못 박고 죽이는 자들을 위한 기도는 그들을 바라봄에 있어 '선'도 '악'도 없이 바라본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보면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는 순수한 무지렁이 상태에서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며 '선과 '악'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분명한 '악'이 생겨나자 더 또렷한 막스 데미안이 '선'으로 등장한다. 선과 악을 구별한 순간부터 '에밀 싱클레어'의 삶은 '번뇌'와 '고통' 부끄러움이 따른다. 이는 성경이 말하고 불경이 말한 인간의 죄에 해당한다. 나태하고 속이고 훔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다시 어떤 면에서는 극명한 선이 등장하여 우리를 구원한다. 스스로 자신이 누군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인간의 고뇌가 고스라니 느껴진다. 헤르만 헤세는 이 소설을 발표할 때, 이미 유명한 자신의 이름이 아닌 '싱클레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독자들이 그의 문체에 의혹을 제기한 뒤, 4쇄 출간부터 본명을 사용한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을 쓸 때, 구스타프 칼 융을 만난다. 소설 철학적 배경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이 둘은 모두 불교인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불교적 철학을 종교가 아닌 '심리학'과 '철학'적 도구로 이용한다. 이 둘에 관한 내용은 '북유럽 출판'의 '헤세와 융'을 보고 더 알 수 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다. 어느 전쟁에서 누군가는 많은 사람을 죽인 댓가로 '선'을 부여 받고, 누군가는 죽이지 못한 댓가로 '악'을 부여 받기도 한다. 인류 역사를 포함해 우주창조 이래로 선과 악은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없다. 바라보는 이가 어떻게 그것을 규정하는지에 따라 모든 것은 결정된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가 아무런 상을 짓지 않고 온전하게 세계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주께 이르는 끊임 없는 기도' 혹은 '불경한 마음을 갈고 닭는 수행'이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모든 것은 스스로 완전하며 거기에는 선과 악도, 좋음과 나쁨도 없다. 그저 그 자체로 완전하다. 그것은 이미 우주와 신이 만든 완벽함이며 그것을 곡해되게 해석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두려움을 만들어낼 뿐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상대나 나, 현상, 사건 모든 것을...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것은 사실 '선과 악'으로 자신을 구별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자신을 만들어오는 과정들일 뿐이다. 이또한 완전한 조물주의 완벽함이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다. 간혹 불교 사상과 비교되는 니체의 사상에 따르면 그 모든 것은 망상이며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환영들일 뿐이다. 데미안은 이미 몇 차례 읽은 도서다. 분량은 짧지만 그 묵직함은 코스모스와 사피엔스, 성경, 불경을 포함해 다수의 심리학, 철학 책의 무게감을 갖는다. 개인적으로 '민음사'의 고전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이유는 오롯이 내용에 집중하여 저렴한 비용으로 꽤 많은 도서를 소개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꾸준히 고전에 관한 개인적 서평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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