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신 - 메가 히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알아야 할 유튜브 속성의 모든 것
직업의모든것(황해수) 지음 / 라이스메이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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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제자가 물은 적이 있다. 진로에 관한 질문이었다. 대답했다. 학교 선생님과 상의하는 편이 좋겠다고. 보통의 내 답변은 그렇다. 함부로 조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은 '선생님'에게 주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학생의 대답은 이어졌다.

"제가 선택한 진로가 별로라고 하셨어요."

대답은 길게 이어졌다. 선생님은 학생의 진로를 비관적으로 보고 계셨다. 비관을 넘어 해당 직업에 대해 편견과 무시가 느껴질 정도였다. 중간 전달에 문제가 없다면, 선생님의 태도는 무책임했다. '교사' 직업은 늘 존경해 마땅하지만, 마치 모든 직업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다는 태도가 영 불쾌했다. 조금 화가 나서 버럭하고 말이 나와버렸다.

"참나..어이가 없네, 선생님은 선생님 말고, 다른거 해 본 적 있으시데?"

감정이 앞선 말이었다. 다만 후회는 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조언하는 일은 꽤 조심스럽다. 특히 '진로'가 그렇다. 직업은 출발점에서 설정하는 '기울기값'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릇에 맞지 않는 큰 꿈을 부추기는 것도 문제지만, 그냥 넘겨 집는 일로 남의 꿈을 좌절 시키는 것도 문제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직업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미 편견을 갖고 있다. 어떤 직업을 가지면 행복할 것이고, 어떤 직업을 가지면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말이다. 예전에 비슷한 일화가 있다. 내가 해외에서 일하던 업무는 '매장 관리'였다. '리테일' 상품을 판매하는 곳에 관리자로 일했다. 주문을 하거나, 직원을 관리하는 일, 매출을 관리하는 일 등을 했지만, 매장 물품을 디스플레이하거나 청소기를 들쳐 업고 바닥을 청소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 함께 일하던 직원이 나를 보며 물었다.

"매니저 님, 영어도 꽤 되시고 유학도 했는데, 왜 이런 일 하세요?"

직원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무언가 '유학'을 했으면 근사한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웃으며 말했다.

"너, 내가 얼마 받는 줄은 알아?"

직업에 대한 편견은 해외보다 우리가 많은 편이다. 동아시아의 특성상 학교 이름, 직업 이름을 계급화 하는 경향이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 유지됐던 신분사회의 영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쉽게 말해 'SKY서성한중경외시'라는 용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학력, 직업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지 알 수 있다. 장담컨데 인구 구조가 이처럼 심각하게 무너져 내리는 시대에서 다음 세대는 '학력'과 '직업'의 격차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또한 미래의 직업에 대해 감히 예상할 수도 없다. 예전에는 진로 상담을 '학교 선생님' 혹은 '부모님' 등의 어른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다만 이제는 아니다. 지금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윗세대에게 물어 볼 것이 아니라 되려 아랫 세대에게 물어보는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유튜버 '직업의모든것'은 참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더이상 '윗세대'는 '아랫세대'에게 진로에 대한 조언을 해 줄 수 없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다. 빠르게 변하는 세대에 가장 늦어지고 있는 주제에 미래 세대에 진로에 '가타부타'하는 것은 오만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유튜브에서 '직업의모든것'이라는 채널이 추천영상을 뜰 때가 있다. 기획력이 좋고 인터뷰 진행을 참 잘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접할 때는 구독자수가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85만의 구독자를 가진 대형 채널이 됐다. 다수가 선택한 것은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때문일지 모른다. 황해수 작가의 책 '콘텐츠의 신'에서 그는 자신이 유튜브를 하며 깨우친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기록했다. 단순히 유튜브를 하는 사람에 대한 조언이 아니라 그가 다양한 직업인들을 만나면서 느낀 바들을 기록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직업, 다양한 생각들을 접하면서 인간 '황해수'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책을 보다보면 그가 얻은 것은 85만의 구독자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성장일 것이라고 확신이 든다. 단순히 구독자를 늘리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상대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하면서 새로운 깨우침을 얻는다.

오래 전에 잊고 지냈던 유튜브 채널에 구독자가 꽤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뒤로 꾸준하게 했다가, 포기했다가를 반복하다가 작년 12월부터 다시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제 800명이 조금 안되는 나의 채널에 도움이 될까 싶어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느낀점은 바로 이렇다.

'나는 포기해야겠구나'

여기서 포기는 '행위'에 대한 '포기'가 아니다. '기대'에 대한 '포기'다. 욕심을 갖다보면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가 폭투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내가 운영하는 다른 모든 채널들이 그렇다. 무언가 열심히 해보고자 하면 언제든 지친다. 그저 행위는 지속하되 기대를 놔버리면, 어느 순간 방향이 보이곤 했다. 어쩐지 메가 히트 콘텐츠를 제작한 '황해수 작가'의 여러 성공과 실패를 보며 느끼는 바가 있다. '성공'을 해야겠다는 목표의식보다는 때로는 그냥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꾸준히 하다가 반응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집중하는 것이다. 사실 성공과 실패의 경험은 많을 수록 좋다. 그런 의미에서 '황해수 작가'의 실패와 성공을 엿봄으로써 내 간접경험으로 녹여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다. 이 책은 단순히 직업에 대한 글이 아니다. 유튜브를 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도 아니다. 이 책은 인간 '황해수'라는 사람의 '직업'을 통해 다양한 '직업'을 보는 와중에 만나는 다양한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다. 예전 제자에게 자신의 직업적 편견을 일러줫던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선생의 한자는 먼저 선(先), 날 생(生)이다. 먼저 태어난 것이 분명 어느 부분에는 이점이기도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도 같다. 때로는 선생님보다 더 좋은 정보를 유튜브 채널이 주기도 한다. 앞으로 진로를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한 직업만 오래 고수했던 이들에게 진로를 물어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딪치고 깨지면서 진로를 찾아보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고 본다. 그 도움을 주는 최전선에는 '직업의모든것'과 같은 채널이 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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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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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하세요'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사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중요한 문제에서 '사법'의 도움을 받고자 할 때 쓰일 때도 있다. 다만, 반드시 그런 상황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법대로 하세요'라는 말은 되려, 법에는 저촉되지 않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쓸 때도 가능하다. 법률용어중에 '쌍벌죄'라는 것이 있다. 특정한 행위에 관련된 양쪽 당사자를 모두 처벌하는 범죄를 말한다. 대표적으로는 '뇌물죄'가 있다. 뇌물 쌍벌죄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모두 처벌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뇌물을 제공한 쪽에서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혐의를 부인하기 때문에 양 당사자가 모두 쉬쉬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주로 정치인과 경영인 사이에 자주 발생하는데, 압박에 의해 뇌물을 건내면 일단 공범죄가 성립된다. 즉 피해자와 가해자가 혼재된 상황이 생긴다. 비슷한 일은 '성매매' 문제에서도 일어난다. 성매매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런 문제의 경우에는 양지화 되지 못하고 점점 음지화된다. 최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가장 이슈가 된 내용이 하나 있다. 바로 '출근시간'에 대한 내용이다. 출근 시간이 9시라면 최소 10분 전에는 나와야 한다는 입장과 서류상 9시 출근이면 9시에 도착해도 된다는 입장이 대립했다. 이 이슈의 중심에는 '서류'가 있다. 서류상 출근 시간이 9시라면 8시 59분에 회사 출입문에 들어서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모든 것을 '법대로', '서류대로' 처리할 수만은 없다.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법치사회'이지만 그 기반에는 '종교', '도덕', '문화' 등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물론 그것에는 강제성이 없다.

10대 청소년이 5, 60대 노인에게 반말을 한다고 해보자.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실제로 10대 청소년이 노약자 석에 앉아도 법적으로 처벌되지 않는다. 여성 전용주차장에 남성이 주차를 하더라도 처벌조항은 없다. 쓰레기를 버리는 재활용 시설 앞에 주차를 하더라도 불법이 아니다. 10kg의 과일 상자에 과일이 10kg을 넣든, 상자무게를 포함하여 10kg을 맞추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상당하게 많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해도 괜찮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 우리 사회는 '법'만으로 지탱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암묵적으로 만들어낸 '도덕'과 '규범'이 존재한다. 법이 없으면 '무법지대'가 될 거라로 생각하지만, 인간은 의외로 법이 규정하지 않은 다양한 규범들을 지키며 살아간다. 최근 다시 읽고 있는 논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정령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형으로 쳐내 가지런히 하면 백성은 처벌을 면할 생각만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예로 가지런히 하면 백성은 부끄러움도 알고 또 선함에 나아갈 것이다."

2000년이 지난 공자의 논어가 현대 사회에 반드시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법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실제로 '법'은 규정에 따라, 또 다시 재범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인물들을 사회로 내보낸다. 죄를 지은 것으로 보여지는 인물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하고, 억울하게 법에 저촉된 인물들을 심판하기도 한다. 인간의 죄와 벌에는 '법'이라고 하는 명확한 잣대가 필요하지만 그 잣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모호한 '철학'과 '이데올로기'로 만든다.

1984년 금융업자 살해 사건이 벌어진다. 용의자는 유치장에서 자살해 버린다.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2017년 불법 주차된 차안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정의로운 국선 변호사인 시라이시 켄스케다. 이 두 사건의 진범이 모두 자신이라고 밝히는 인물이 등장한다. 두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등한 뒤 소설은 피해자와 가해자 자녀들이 해당 사건에 의문을 품으며 새로운 내용으로 전개된다. 소설의 내용은 이쯤 해둔다. 출판사가 소개한 정도의 내용 이외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다음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책의 제목은 '백조와 박쥐'다. 이름이 주고 있는 이질감은 읽고 나서 더 크게 다가온다. '선과 악', '흑과 백', '정의와 불의' 등 전혀 상반된 것의 나열이다. 살면서 비슷한 상황을 자주 보곤 한다. 우리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갈구한다.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원하는 '정의'다. '법'은 이 '정의'를 향하고 있다. 다만 우리의 사법은 '권선징악'을 담고 있는가. 그것은 따지고 볼 문제다. 소설에는 교묘하게 죄를 피하는 질 나쁜 인물이 등장한다. 무례하고 인정머리 없으며 비상식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친다. 다만 그 행동은 교묘하게 법을 피하고 있다. 법이 정한 테두리의 죄를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또다른 인물은 선하다. 그는 사회적으로 '정의'에 해당되는 일을 행한다. 그러나 앞 선 이와는 다르게 사회가 정한 법률의 테두리를 크게 넘어간다. 이 두 인물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과연 어떻게 내려져야 하는가. 인간의 죄와 벌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사회비판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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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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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예전부터 광활한 사막과 위험한 질병, 곤충들의 대륙이지만 언제나 유럽보다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14세기, 아시아에서 시작한 '흑사병'이 유럽으로 번졌다. 그때 아프리카는 비교적 유럽보다 안전한 대륙이었다. 페스트는 유럽의 인구 3분의 1을 죽었다. 비위생적인 양식과 들쥐는 유럽을 죽음의 대륙으로 만들었다. 유럽 사람들은 대륙을 떠나고 싶어 했다. 그들은 더 나은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15세기 중엽, 포르투갈 사람들이 아프리카 서해안에 도착했을 때, 어떤 점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이 되려 평온해 보였을지 모른다. 페스트의 발병으로 유럽의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든 반면, 아프리카는 비교적 그 위험에서 안전했다. 아프리카에는 그 전에도 노예가 있었으나, 그들은 각 가족의 일부였고 다시 해방될 여지도 충분히 있었다. 아프리카 문명은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고 문화적 발전할 수 있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오기 전에 중국 사람들은 아프리카 대륙에 먼저 방문했다. 그들은 아프리카 동해안에 상륙해서 물건을 교환하고 돌아갔다. 중국이 대양을 넘어와 아프리카 대륙인들을 거래 파트너로 여겼을 만큼, 아프리카는 꽤 문화를 발전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아프리카 내륙으로 진입을 시도하진 않았다. 다만 문제는 유럽쪽이었다. 뒤늦게 유럽에서 온 상인과 선교사들은 군인과 함께 내륙으로 진입했다. 흑사병으로 유럽의 노동 인구가 급격하게 줄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 있는 '노예'를 매매해 갔다. 노예들은 아랍 혹은 아프리카의 상인들에 의해 거래 됐다. 또한 아프리카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에 협조하므로써 꽤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경쟁은 유럽 내에서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독일 총리였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1884년에 유럽 열강 지도자들을 베를린으로 소집한다. 이들은 아프리카에 대한 경쟁이 카오스적으로 치열해지자ㅡ 대륙 분할에 대한 협상을 제안했다. 당연히 여기에는 유럽 지도자만 초대 됐으며, 아프리카의 대표자는 제외됐다.

사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식민지 국가들이 해방되는 과정을 보며 사람들은 '인류'가 '문화적인 방식'으로 진화해오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다. 식민지가 해방된 것은 '인류애'와 '인권'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인도적인 어떤 이유나 문명의 발전에 대한 흐름이 없다. 오로지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 형성과 수지타산만 존재할 뿐이다. 간혹 유럽인들이 인도적인 이유로 식민지를 해방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유럽인들이 식민지를 해방한 것은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인도적인 미안함이나 '문명인의 시선'이 아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있는 식민통치를 포기한 것은 오로지 경제적 가치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무렵, 유럽 열강들은 고민이 생겼다. 산업혁명이 일어나, 인간의 노동력 일부를 기계가 대체하기 시작했고 기계는 인간보다 더 큰 생산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유럽 인구도 어느 정도 회복했으며 유럽에 저항하는 아프리카인들로 식민정부를 유지하는데 드는 경비가 늘어났다. 이제 유럽의 문제는 '공급'이 아니라 '수요'의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에서 포드를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면서 세계는 석유의 시대를 맞는다. 자동차와 석유의 시대의 핵심은 '컨베이어 벨트 노동'이다. 이로써 생산력은 극도로 높아진다. 미국에서는 기계는 쉼 없이 돌아가며 창고에는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더이상, 노동자를 통한 '공급력 확대'는 불필요하게 됐다. 언제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던 공급이, 산업혁명을 발판으로 폭발하면서 급기야 수요는 공급을 따라가지 못했다. 생산된 물품이 쌓이자, 물품의 가격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품의 가격이 떨어지자 대략 해고가 일어나 실업률이 급증했다. 이 문제는 '미국'에서 먼저 일어났는데, 이를 '세계대공황'이라고 부른다. 유럽과 미국은 경제에서 '수요'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많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많이 '소비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후 서구 열강들은 자국내에서 만들어낸 생산물을 자유무역으로 거래하는 쪽의 이익이 크다고 계산했다. 그들은 종족적 연관성이나 문화, 언어를 염두하지 않고 국경선을 놓고 빠져 나갔다. 그 바람에 아프리카 대륙은 한 세기 가깝게 내전과 빈곤 등의 여러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이로써 한 사람과 한 사람은 인간적일 수 있으나,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은 '인간성'과 얼마나 별개의 문제가 되는지 알 수 있다.

처음 노예 제도는 이처럼 야만적이지 않았다. 노예제도는 이미 아프리카에서 부터 존재했다. 이들은 빠르게 가족 안으로 통합되었고 시민권도 가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재산권을 가졌고 개중에는 해방되는 방식이 많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기도 했다. 다만 유럽인들이 남북 아메리카에 플랜테이션 농업을 도입하면서 문제가 달라졌다. 이들은 새롭게 얻은 신대륙에 거대한 농장을 가졌다. 목화나 담배, 사탕수수를 재배하면서 기계가 할 수 없는 노동력의 필요를 느꼈다. 이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낮은 지위와 권리의 노예들을 반입하기 시작한다. 이런 이유로 아이러니하게 가장 오랫동안 노예제도를 유지하던 국가는 '미국'이 된다. 따뜻한 남부의 농업은 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으나 북부 지역은 아니었다. 북부지역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같이 수요보다 공급력이 높았다. 고로 만들어내는 사람보다 구매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미국의 북부는 노예를 해방하여 높은 구매력을 갖길 원했고, 미국의 남부는 노예를 통해 높은 공급력을 갖길 원했다. 이렇게 미국의 남부와 북부는 이해관계의 갈등이 발생하고 이어서 남북전쟁이 발발한다. 따지고 보자면 링컨이 '노예를 해방했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그가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인도적인 정치인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 많은 사업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노예 제도의 종말은 아프리카에서 능동적인 쟁취를 한 것은 아니다. 이는 유럽과 미국의 경제적 혹은 정치적 상황에 의해 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현대 우리에게 꽤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인간은 '문명'과 '비문명'을 나누어 비교적 현대인들이 '문명인'이라 자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이 비인간성에 근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정치', '경제' 시스템의 논리가 언제든 '비인간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이익을 만들어 내도록 움직인다. 누군가는 인간의 비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제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 관련 없는 '시스템'의 특성을 따른다.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에는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다. 그런 이유로 인간의 역사에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비극과 야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지금의 우리도 전혀 다르지 않다. 법치주의는 다수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법'을 따른다. 법에는 예외가 없다. 가령 100m도 되지 않는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술을 먹고 자동차를 탔다고 해보자. 이것을 발견한 경찰은 상대가 적당히 아는 지인이거나 몸이 불편한 노인,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조사를 해야 한다. 그것은 법이 만들어낸 시스템에 따르는 일이다. 이것은 작은 사회에서는 분명 융통성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규모가 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예외도 용인해서는 안된다. 이런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비인간적인 역사를 만들어내곤 한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정교해진다. 고로 다시 비인간적인 역사는 지금도 언제든 다시 반복할 수 있다. 역사를 살피면 백인들의 만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을 보곤 한다. 이는 또다른 의미의 인종차별이기도 하다. '백인'이 사악하다는 의미로 역사를 접근하면 이 양날의 칼은 반드시 다시 돌아와 다른 인종에게도 적용된다. 고로 그 죄는 시스템에 있고 인간에게 있을 수 없다. 인간은 개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시스템을 개조하는 것은 가능하다. 언제나 가능성이 열리기 위해선, 가능한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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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혁명의 미래 - 반도체를 넘어 인공지능으로
정인성.최홍섭 지음 / 이레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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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를 숫자 1이라고 해보자. B를 숫자 2라고 해보자. C는 숫자 3이라고 해보자. 이렇게 알파벳과 숫자를 대응시키는 방법으로 진행해 보면, 개(DOG)는 4, 15, 7이고 고양이(CAT)은 3, 1, 20이다. 문자가 숫자로 변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색의 3원색이 있다. 흔히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이라고 하는 RGB다. 컴퓨터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은 이 삼원색이 만들어내는 수백만개의 픽셀로 되어 있다. 아주 작은 픽셀 점이 여럿 모이며 배합하여 다양한 색상을 만들어 낸다. 극단적으로 진한 빨간색은 R=255, G=0, B=0일 것이다. 무채색이라면 R=0, G=0, B=0이다. 이 말은 무엇일까. 앞서 문자를 숫자화 했던 것 처럼, 색깔을 숫자로 변환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제 고양이와 개의 사진을 살펴보자. 고양이와 개의 사진을 보면, 사진을 좌표라고 표시했을 때, 어떤 좌표지점에 극단적으로 '검정색'이 몰려 있는 구간이 있을 것이다. 검은색 픽셀이 몇 십 개 뭉쳐 있는 그 구간을 '눈'이라고 설정한다면 인공지능은 고양이와 개 사진에서 눈을 찾아 낼 수 있다. 이렇게 검은 픽셀이 모여있는 두 개의 좌표의 거리를 측정하면 고양이와 개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알고리즘의 대표 주자인 SVM에 대해 이해해 볼 수 있다. SVM이란 Support Vector Machine의 약자로 두 개의 집단을 나누는 적절한 구간을 찾아내는 알고리즘이다. 눈동자를 좌표 평면의 X축에 두고 코의 길이를 좌표평면 Y축에 두면 각자의 데이터는 좌표평면 내의 한 구간에 위치하게 된다. 여기에 개와 고양이의 데이터를 집어 넣는다. 그런 경우에 각 집단을 경계로 하는 평균 직선이 생겨난다. 이 직선은 새로운 데이터가 추가될 때마다 그 기울기 값이 변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학습'이라고 한다. 이 정도 원리로 개와 고양이를 구별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공지능'에 대해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수의 대중은 이 정도의 정보만으로도 '인공지능'에 대해 어느정도의 불안감은 해소된다.

막연하게 공포심을 갖는 것은 그것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잘 모르는 것에 공포심을 갖는다. 인간이 모르는 분야는 처음에는 자연과 현상이었다. 이것들이 인간의 이해 범주로 들어오면 인간은 그것에 대한 공포감을 상대적으로 덜 갖는다. 날씨나 천체, 질병 등이 그렇다. 그저 '신의 영역'으로 치부하여 이해를 거부하던 시기가 지나가면, 인간은 그것을 되려 안정적으로 이용하고 편안함을 갖는다. 미지(未知)나 무지(無知)는 그렇게 인간의 공포와 맞닿아 있다.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 온 것들은 이제 '안정'의 대상이 됐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과학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제는 인간을 편안하게 만들었던 '영역'이 되려 미지의 영역이 됐다. 다수의 인간은 날씨나 천체, 질병을 슬기롭게 바라보고 때로는 이용하기도 하지만 되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에 대해 공포심을 갖게 됐다. 이제는 인간의 영역 중에서도 미지(未知)나 무지(無知)의 영역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그 대표적인 예다. 전기선을 꼽으면 작동하는 전자장치가 인간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하고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사물을 인지하면서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공포심을 갖는다. 그것들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때로는 인간 위에 군림할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를 갖는다. 날씨가 그랬고, 질병이 그랬고, 천체가 그랬던 것처럼 모르는 것에 막연한 공포심을 갖는 이들 이면에는 그것에 대한 이해를 먼저하고 '안정감'을 통해 그것을 '활용'하는 이들이 있었다. 남들이 공포스러워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용기는 알고 있다는 안정감에서 나온다.

'나보다 똑똑한 누군가가 어떻게든 했겠지.'

막연한 생각은 이해를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어떤 원리로 인공지능 스피커는 정보를 찾고 말하는지, 어떤 원리로 기계는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는지, 어떤 원리로 기계는 사람을 구별하고 인식하는지. 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사용은 하되, 대략적인 원리를 모르며 막연히 그것을 두려워 한다.

'반도체 제국의 미래'를 쓴 '정인성 작가'의 책이다. '반도체 제국의 미래'는 정말 손 꼽히는 명작 중 하나다. 누군가는 '외계인의 기술'이라고 이해의 시도를 포기하는 '반도체'라는 분야다. '반도체 제국의 미래'는 이를 '이해'의 범위로 넘겨 주었다. 그의 다음 저서인 'AI 혁명의 미래'는 역시 걸작이다. 묵직했던 '반도체 제국의 미래'에 비해 가볍고 얇다. 그 탓에 조금 더 분량이 많아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복잡한 AI에 대해 일반인이 쉽게 입문할 수 있는 책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원리를 모르고 사용하는 것들이 많다. '전기'나 '스마트폰', '반도체'들이 그렇다. 인류의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가 사용하는 것들은 우리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 말은 '기술'의 수요자는 거대하고 '공급자'는 한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고도화 될수록, 앞으로 수요자는 더 거대해지고 공급자는 더 한정적이게 변한다. 즉, 아예 이해를 시도하는 것 조차 두려운 이들이 많아 질수록 수요 공급 곡선은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한다는 의미다. 인공지능에 대한 내용을 알면 알수록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수학'에 관한 생각이다. 흔히 교육에서 '영어'는 쓸 일이라도 있는데, '수학'은 졸업하면 쓸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만 느낀 것이라면 '수학'의 중요성이다. 우주는 수학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을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인공지능에 '수'는 엎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과목이라는 생각이든다. 수학으로 이뤄진 인공지능이 어쩐지 우주와 닮았다. 고로 최초에 인간이 자연과 현상을 두려워하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현재 해외에서는 'ChatGPT(챗지피티)'라는 오픈에이아이가 이슈다. 2022년 12월 1일에 공개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으로 꽤 수준 높은 질문과 답변이 가능한 프로그램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알파고'가 우리에게 주었던 공포와 비슷한 무게의 공포를 갖는다. 원리는 모르겠으나 무섭게 발전해가는 기술에 다수의 사람들이 이해를 포기한다.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단순한 빅데이터의 평균치라는 허접한 수준의 정보만 갖고 있던 나에게 'AI 혁명의 미래'는 새로운 이해의 폭을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정인성 작가' 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로봇 전문업체 '(주)맨드언맨드의 최홍섭 대표가 공동 저자다.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기술을 다루는 이들이 설명하는 '쉽게 설명하는 AI의 이야기다. 고동진 전 삼성전자 대표가 강력추천 할 만큼 책은 훌륭하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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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
노재승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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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신라 시대 대표 향가다. 이름만봐도 머리가 지끈지끈 거린다. 이유는 이렇다. '제목'만 들었을 때, 현대인이 사용하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배경지식 없이 '제목'만으로 이 시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다. 고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황상태에 빠진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아이유의 '좋은 날'은 '제목'을 봐도 대략 무엇에 대한 노래일지 유추 가능하다. 다만 '찬기파랑가'는 익숙치 않다. 멜로망스의 'Happy Song'은 행복에 관한 노래일것 같다. Happy가 행복이고 Song이 노래이기 때문이다. '찬기파랑가'를 현대적으로 해석해보자. '찬기파랑가'의 '가(歌)'는 노래를 의미한다. 즉, '찬기파랑 song'이다. 제일 첫 단어인 찬(讚)은 찬양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기파랑을 찬양하는 song'이라는 제목이다. '랑(郞)'은 무엇일까. '랑(郞)'은 '남자'를 부르는 호칭이다. 흔히 말하는 '낭군(郎君)', '신랑(新郞)'에서도 쓰이는 말로 '~씨', '~군', '~옹'처럼 이름을 부를 때 쓴다. 영어로 굳이 바꾸면 '미스터(Mr)' 정도로 할 수 있다. 즉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를 현대식으로 굳이 바꾸면, 'Mr.기파를 찬양하는 노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가 무엇을 노래할지 감이 온다. 제목과 전반적인 분위기만 파악하더라도 시는 유용하게 해석이 가능하다. 분위기가 파악이 되면, '어조'가 느껴진다. '어조'가 느껴지면 어떤 표현 방식을 사용했는지 보인다. 교육청이나 평가원은 예전부터 고전시가에서 깊이 있는 문제를 출제하지 않는다. 꼬불거리는 고어와 한자로 3등급 이하의 학생들이 겁을 먹고 포기하기 때문이다. 굳이 문제를 어렵게 내지 않더라도 변별력을 만들 수 있다. 고로 '고전시가'는 의외로 쉽다. 수능에서 '고전시가'는 그래서 중요하다. '비문학'과 같이 끊임없이 '지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형이 아니라, 이미 '출제 되는 지문'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전시가'나 '고전소설', '문법'은 고로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수능 언어 영역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유형의 문제다. 영어영역에서도 비슷한 유형이 있다. 내용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내용일치' 문제와 '도표', '분위기'와 '주제찾기' 등이다. 또한 '듣기' 영역이 그렇다. 이 문제들은 '단순 반복 훈련'만으로 단기간에 고득점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유형의 문제만 모두 맞춘다는 전략으로 접근하면 3등급까지는 무난하게 올릴 수 있다. '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는 그런 의미에서 중고등학생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으로 보인다. 단순히 '고전시가'에 대한 문학적 설명을 하고 있지 않고 B급 감성의 만화를 통해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노재승' 작가는 2006년부터 창신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쳐 오던 국어교사다. 그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하면 이야기를 재밌게 담아볼까 고민을 했다. 그 5년의 결과는 이처럼 만화책으로 나왔다. 이 책은 학생들에게 고전시가를 설명한다. 책의 제목은 '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이지만, 흥미의 물고를 틀어주기는 충분하다. 다양한 책을 읽다보면 처음 들어보는 주제를 접할 때가 있다. 간혹,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역사' 혹은 '양자역학', '유럽의 음악사나 미술사' 등이 그렇다. 처음 그것을 처음 접하면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관련된 유튜브 영상이나 영화, 다큐멘터리를 찾아본다. 그것들을 하나라도 보면 이후에는 책이 술술 읽힌다. 첫책이 술술 읽히면, 두 번째 책에서는 아는 내용이 조금씩 나온다. 책은 속독이 가능해진다. 세 번 째 책에서는 사색이 가능해진다. 내 생각을 붙여 볼 수 있다. 네번 째 책에서는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나 다른 관점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흥미'다. 대충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대략적인 내용을 알아야 흥미가 생긴다.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읽어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준에 맞게 흥미를 먼저 유발 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는 꽤 접근성 좋다.

구지가, 공무도하가, 청산별곡, 관동별곡.. 이런 시들은 '시험 문제'를 위해 만들어진 시가 아니다. 이것은 '학생'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성인'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문학이다. '고전'은 생각의 폭을 넓게 한다. '시' 또한 사고의 폭을 넓게 한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함축성'은 '여백'이 되어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쥘 르나르'의 시 뱀은 몹시 짧다. 시는 이렇다. '뱀 너무 길다' 여기에 독자는 '뱀'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붙는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던 간에, 비어 있는 여백은 이처럼 수 만가지 생각할 거리를 독자에게 던져 놓음으로써 사고의 폭을 넓힌다. '고전시가'는 시간을 초월한 문학이다. 고로 우리가 생각할 거리는 더 할 나위없이 크다. 만화는 '좀비'가 튀어나오고, 각종 만화와 영화를 오마주한 재밌는 스토리를 배경으로 한다. 한 할아버지가 교육과 유머를 번갈아가면서 등장하기 때문에, 쉽고 빠르게 읽고 교육된다. 완독하는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고로 몇 회독도 가능하다. 고전시가가 어렵다면 이 책을 가장 먼저 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찬기파랑가

열치매

나토얀 ᄃᆞ리

ᄒᆡᆫ 구룸 조추 ᄠᅥ가ᄂᆞᆫ 안디하

새파란 나리여ᄒᆡ

耆郞의 즈ᅀᅵ 이슈라

일로 나릿 ᄌᆡᄫᅧᆨᄒᆡ

郞ᄋᆡ 디니다샤온

ᄆᆞᅀᆞᄆᆡ ᄀᆞᆺᄒᆞᆯ 좃누아져

아으 잣가지 노파

서리 몯누올 花判이여

열어 젖히매

나타난 달이

흰 구름 좇아 떠 가는 것 아닌가

새파란 냇물에

耆郞의 모습이 있어라

이에 냇 조약돌에

郞이 지니시던

마음의 가를 좇으련다

아아 잣나무 가지 높아

서리 모를 花判이여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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