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규칙 - 돈은 당신의 명령을 기다린다
신민철(처리형) 지음 / 베가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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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는 '충남상회'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먹는테이프, 빼빼로, 칸초, 아폴로 등을 팔았다. 일주일 용돈 500원이 충분했던 이유는 먹는테이프 50원, 빼빼로 100원, 칸초 200원, 아폴로 100원이라서 그랬다. 애들 아빠가 된 지금, 아이들이 마트에서 빼빼로를 집어들면 심장이 '쿵' 내려 앉는다.

'이게 1,000원이야?'

돌이켜보니 내가 먹던 시절과 아이가 먹던 시절의 차이가 30년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30년이 지난 지금 10배가 됐다.

생각한다.

딱 하루만 어린시절로 갔다 올 수 있다면, 빼빼로를 한 1억원 쯤 사와야겠다.

그리고 팔겠다.

아! 아니다. 썪지만 않는다면 그 빼빼로를 30년 뒤에 팔아야겠다. 그때 쯤이면 빼빼로 하나가 1만원은 하고 있지 않을까.

누구나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지만 모두가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용 당하기만 한다. 실제로 시장은 돈을 항상 풀고 있으며 시장에 돈이 많아질수록 화폐가치는 떨어진다.

그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무조건' 이다.

나 어린 시절 먹었던 과자 중에 그때보다 값이 싸진 과자는 없다.

주식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식품주'는 주식 종목 중 가장 안정적 수익을 보장한다.

가장 보수적인 산업인데도 1000%라는 숫자가 붙는다.

30년 전에는 신라면이 200원, 자장면이 650원, 영화 입장료 3,500원이었다. 대형마트에가서 카트를 꽉 채우면 어머니는 초록색 지폐 한 장을 건내며 말씀하셨다.

"너무 많이 샀네."

즉,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화폐가치는 무조건 떨어진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은 무조건 비싸지며 앞으로의 인생에서 가장 저렴한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역사 관련 책을 읽다보면, 나름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다. 미술관련 책을 읽다보면 미술에 관한 시각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경제 관련 책을 읽다보니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다.

경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다. 고로 경제 책을 읽는 건 너무 즐겁다. '신민철' 작가의 '돈의 규칙'을 읽다. 그의 책을 읽고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내가 가진 철학을 만들었던 수 많은 이야기들을 한 번 상기시킨다.

감히 이 책에 점수를 매기자면 100점이다. 책은 초보들이 읽을 수 있도록 가독성있게 쓰였다. 평소 관심 많은 이들이 읽으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책이다.

요즘은 '빚투'라는 말이 있다. 빚내서 투자한다는 의미다. MZ세대에게 따끔한 훈계를 하는 윗세대의 조언이 메스컴에 잔뜩 등장했다. 다만, 나는 요즘 희화화되고 있는 MZ세대를 믿는다.

역사는 항상 후대가 맞았다. 1971년까지 스위스에는 '여성참정권'이 없었다. 심지어 프랑스도 여성 참정권이 생긴 것은 1946년 이후이며, 1995년까지 미국 미시시피주에서는 노예제도가 합법이었다.

당시에도 윗세대들은 아래세대의 세태를 못마땅해하고 있었으리라.

무리한 '빚투'는 물론 지양해야 할 부분이지만 자본주의는 '레버리지'를 통해 작동된다. 현금을 쥐고 있어야만 돈이라고 믿는다면 돈은 빠르게 굴러가지 않는다. 교환수단인 화폐는 단지 표면적인 물질일 뿐, 돈은 관념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의 가격은 1조 760억이란다. 그것은 그저 관념일 뿐이다. 만약 빌 게이츠가 2조에 사겠다고 말하고, 워렌버핏이 3조에 사겠다고 말하면, 모나리자의 가격은 3조가 된다.

그 누구도 돈을 찍지 않고 돈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다. 이렇게 만들어진 허상의 돈을 그가 출금하여 '현금화'한다면, 현실 시장에서 현금은 그만큼 줄어든다. 고로 자본주의는 현금을 가질수록 불리한 게임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은 세계 최대 채무국이며 세계 거대 기업이라는 곳도 전부 채무로 운영된다. 빚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경매를 보면 지극히 자본주의가 보인다. 수요와 공급이 오로지 그것의 가격을 결정한다. '원가'나 '노력'은 중요하지 않다. 윗세대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대부분 이렇다. '원가', '노력', '현금'. 다만 이것은 자본주의와 거리가 멀다.

자본주의는 이렇다. 크리스마스날 가수에게 노래를 부탁한다

'가수가 부른 노래에 대한 값을 지불하시오.'

A: 나는 500원이 적당하겠어.

B: 나는 2만원이 적당하겠어.

C: 나는 800만원 정도가 적당하겠어.

가수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그것이 가격이다. 시작은 '가수의 노력'과 '원금'을 구매하지 않는다. 가치에 대한 기대치를 구매한다.

빼빼로의 원가나 직원의 노고는 가격에 들어가지 않는다. 시장에서 가격은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나 인간에는 종류가 워낙 많기에, 가치에 투자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고로 현명한 사람은 가치에 투자한다.

빼빼로는 실제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30년 후에 10배가 뛰었다. 빼빼로의 미래가치는 인플레이션에 의해 자동으로 생겨난다. 투자는 미래가치에 투자하는 일이며, 빼빼로보다 열심히 일할 곳에 찾는 일이다.

자주 언급하는 종목이 있다. '강원랜드'와 '존 디어'다. 이 두 종목의 가치를 나는 높게 평가한다. 안정적이며 최소한 화폐가치 이상의 수익을 만들어낼 것이라 확신한다. 단기 투자가 아니라, 장기 투자자에게 불경기는 절호의 바겐세일 기간이다.

누군가는 30% 할인하는 물건에 지갑을 열고, 누군가는 30% 할인하는 자산에 지갑을 연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같지만, 전자는 미래에 비싸게 되팔 수 없고, 후자는 미래에 비싸게 되팔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은 책이다. 책을 읽던 도 중 '신민철' 작가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인스타그램을 팔로워 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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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싶은 아이 - 2021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 죽이고 싶은 아이 (무선) 1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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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미투, 빚투, 고발 용어가 사회를 휩쓸다가 최근에는 '학폭'이라는 용어가 돌아 다닌다. 굉장히 좋은 현상이다. '학폭'은 절대 미화돼서는 안된다. 공소시효도 짧아서는 안 된다. '학폭'은 정말 극악하다. 여기는 당연히 폭행, 추행, 절도, 사기, 모욕 등을 함께 동반한다. 학폭은 범죄 의식이 결여된 미완성 인간을 사회로 양성하여 내보내는 시작점이다. 선량한 이를 괴롭히는 것이 힘의 논리라고 믿게 한다.

'위세과시'를 다른 능력으로 할 자신이 없는 이들이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위세과시'를 하는 방식이다. 이런 인식을 학창시절에 만들고 사회로 내보내면, 그 사회는 원시사회가 된다. 국어, 수학, 영어를 완성하는 것보다 사회성을 완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교육학 용어로 교육은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다. 그깟 국, 영, 수 등급이나 구분하는 과정이 아니다.

학폭이 악질인 이유는 '죄의식 결여' 때문이다. 졸업을 끝으로 가해자 스스로 자체 공소시효를 소멸한다. 적당히 '낄낄' 거리며 즐기다가, 졸업하면 혼자만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한다. 약간의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이미 과거라고 생각한다. 교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단순히 '서열', '인간관계', '교우관계' 정도로 정의해 버린다. 당연하게 미친 증상이며 '범죄'다.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 범죄의 대부분은 '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식 결여'라는 무지에서 시작한다. 사이코패스와 다르게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소시오패스'는 후천적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하는 이들은 역시나 '교육'된다.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물론 애들은 그럴수도 있다. 6살 아이가 5살 아이의 장난감을 빼앗을 수도 있고, 7살 아이가 6살 아이를 때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것을 보자마자 형사소송법을 들이밀며 입건 수사할 수는 없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은 인간을 영아기부터 노년기까지 8단계로 나눠 발달한다고 봤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7살에는 죄의식을 갖게 되며 12살 까지는 열등감을 갖고 청소년기에는 역할과 정체성을 확립한다.

교육을 철저하게 시키면 7살인 어린 아이는 마트의 장난감을 호주머니에 넣어가지 않고 12살된 아이는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애들이 그럴 수 있지'는 지극히 부모 생각이다.

소설 '죽이고 싶은 아이'는 아이를 잠재우고 조용한 밤에 '밀리의 서재'로 읽었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는데, 나름 재밌게 읽었다. 굳이 '청소년 책'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같은 소재의 드라마 '더 글로리'가 19세인 것을 보면 충분히 성인도 즐길만한 컨텐츠다. 가만히 누워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소설은 쉽게 읽히지만 점차 반전의 반전을 준다.

과연 '선과 악'은 무엇이며, 죄와 벌'은 무엇이고, 진실과 믿음은 무엇인지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진다. 잠에 들기 전에는 가벼운 소설을 읽고 싶다. 너무 무겁고 긴 소설은 자기 전에 읽기 부적합하다. 시작을 하면 늦게까지 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잠들기 전에 읽기 시작하고 아침에 눈을 뜨고 완독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두 친구의 관계에 대한 의심. 친구라고 믿었던 친구와의 관계. 어른과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의 차이. 미디어와 학교의 관점. 단순히 학교 폭력 정도를 담은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소설과는 다른 이야기인데, 마지막 국민학교 시대를 다녔던 나로써 학교는 야생과 닮아 보였다. 당연히 교육과 사회화가 덜 된 어린 아이들이 집합이기에 '성인'들의 정돈된 사회와는 달랐다. 다만 나에게 인상 깊었던 모습은 '학교'의 모습이다. 그 시대는 지금 돌이켜 보면 굉장히 특이했고 야만적이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양말에 나무 가시가 박히는 마룻바닥이었는데 학교가 끝나면 책상을 모두 뒤로 밀고 앉아서 8살, 9살 되는 아이들이 양초와 마른 걸레로 왁스질을 했다.

한참하고나면 무릎이 반들 반들해지고 손 끝이 빨갛게 됐는데, 이 시간에 놀다가 걸리면 성인 남성의 선생님이 가차없이 손바닥으로 뺨을 후려치셨다. 쓰레기를 버리러 소각장을 가면 학교 수위 아저씨는 쓰레기통에서 플라스틱 병이 나왔다며, 뒷통수를 때리거나 뺨을 후려 갈겼다. 얼핏 잘 기억은 안나지만 의자를 집어 던지시던 선생님도 계셨고 뺨을 맞는 건 그닥 불평할 사항도 아니었다. 한번은 놀림을 받던 친구가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께 이야기하자, 선생님은 '고자질도 나쁜 거다.'라며 크게 혼내시던 모습도 생각이 난다.

지금은 되려 교권이 바닥이라, 선생님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에 사회가 공감하는 분위기지만, 그때의 어른들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당연히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따돌림'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하다 싶은 상황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침묵을 택했다. 불필요한 위험을 스스로 떠안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나를 포함하여 당시 침묵하던 친구들도 그때를 돌이키면, 자신들의 모습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 정의롭게 나서지 못했을까.

학교폭력은 고로, 가해자를 제외한 모든 이에게 트라우마를 만들고, 혼자 즐거운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지극히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이기적인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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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반짝 에디션)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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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던 1년 뒤에 죽기로 결심한 사람의 이야기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 하는 것도 없는 작가가 어느날 갑자기 라스베이거스에서 죽기로 작정한다. 작가 하야마 아마리는 파견 사원으로 계약직 일을 하고 있었다. 이뤄 놓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몸무게 70kg에 3평짜리 조그만 방. 29살 여성은 서른이 되는 생일날을 죽기로 작정한다. 그녀의 삶의 목표는 '죽음'이다. 낮에는 평범한 파견직 회사원이고 밤에는 호스티스로 일한다. 주말에는 누드모델을 한다. 그 와중에 얻게 되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책에 담겼다.

삶이 무한하다는 착각은 누구나 갖는다. 고로 해야 할 말을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기도 한다. 삶의 유한성을 정하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사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조금의 부끄러움만 감수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든지 많다. 예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국'기자들에게 질문의 기회를 주었다. 그 행사의 개최국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재차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에게 질문 발언권을 주려고 해도 아무도 거기에 질문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간단한 질문도 하지 않고 모르는 것도 잘 묻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질문을 하거나, 조금 큰 소리를 내는 등 '튀는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이 이런 면에서 비슷한 정서가 있다. 사소한 것에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는 꽤 정신적 피로를 갖는다. 아마리는 실제로 전형인 일본 여성이었으며 내성적인 편이었다. 그런 그는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겪으며 '죽음'에서 멀어진다.

개인적으로 '일본문화'가 조금 낮설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자신이 하지 못할 일을 해냈다는 용기를 얻는 과정과 직업이 '호스티스'와 '누드모델'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낮에는 '파견직 여사원'에서 밤에는 '호스티스'로 일한다.

'호스티스?'

일본에는 '호스티스'라는 접대문화가 발달됐다. 최저임금을 훨씬 웃도는 급여를 조금 더 쉽고 빠르게 벌 수 있다. 일본 소설을 보면 이 '호스티스'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우리나라 보다는 보편화되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혔다고 한다.

'호스티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나 또한 예전 일화가 하나 생각이 났다. 해외에서 학생비자로 체류하던 기간, 주 40시간을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학비는 고사하고 생활비이나 벌어 볼 요량으로 인터넷 카페를 뒤적거렸다. 일자리는 많지 않았는데, 낮에는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밤에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흔히 말하는 '꿀알바'가 있었다. 시급은 적지만 자신의 능력에 따라 하루에 2~300불까지 벌수 있다는 구인공고였다. 연락을 드리고 그곳을 찾았다. 만 스물 정도였는데, 도로변에 있는 건물 뒷편으로 또다른 형태의 건물이 나왔다. 그곳 3층으로 갔다. 거기에는 내 또래 젊은 남성과 여성이 보였다. 사장이 안내하는 곳에 도착하자, '노래방 기계'가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면접을 봤다.

사장은 물었다.

"학생, 여기 뭐하는 곳인지 알고 지원했어요?"

사장은 나에 대해서 묻지 않고, 업무에 관해서만 장황하게 설명했다. 업무는 간단하다. 손님이 오면 신나게 같이 놀아주면 된다. 기본급은 7불인데, 잘 하는 친구는 하루 300불까지 가져간다고 말했다.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난생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고 느낀 날이다. 당연히 그 일은 하지 않았고 '현지 바'에서 '유리잔 닦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만 그때, 그곳의 상호와 분위기. 그것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죽기로 작정하면 무슨 일을 못할까. 작가 아마리의 생각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하지 못했다. 그녀는 호스티스에서 일한다. 죽는 날의 '라스베이거스'를 떠올리며 주말에는 누드모델로 일한다. 그녀의 그런 이중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때로는 통쾌하지만 그 목표가 결국 '죽음'이라는 점에서 씁쓸하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이 없던 이를 비로소 움직이게 했던 최종 목표가 '죽음'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누드모델이나 호스티스는 하나의 직업이고 법의 테두리에서 일하는 합법적인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뜻 선택하기 힘들다. 생각해보면 삶에는 죽음보다 힘든 것이 있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는 삶보다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다만 따지고 보면 '죽음'보다 힘든 것 조차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벌써 선택할 이유가 없어지기도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수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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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잉 - 미래가 이끄는 삶, 보장된 성공으로 가는 길
안도 미후유 지음, 송현정 옮김 / 오월구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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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홀리데이'는 '조지아 버드'라는 소심한 백화점 점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연히 자신의 삶이 시한부라는 것을 알게 된 뒤, 남은 인생을 원없이 즐기기 위해 모아둔 돈을 갖고 유럽으로 초호화 여행을 간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는 언제나 과감했다. 조금의 후회도 하지 않을 탁월한 선택들을 한다. 무미건조했던 그녀는 삶은 그 뒤로 바뀐다. 주변인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주변인들은 그녀를 성공한 사업가나 거물이라 오해한다. 참 재밌게도 주변인들이 다르게 보자, 다른 결과들이 나온다. 이를 교육심리학에서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 부른다. 타인의 기대나 예측이 현실로 실현되는 경우다. 다른 영화를 한 번 예를 들어보자. 영화 '아이 필 프리티'는 '르네 바넷'이라는 자존감 낮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녀는 외모에 대해 자존감이 았고 불안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우연한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다. 그 뒤로 그녀는 자신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믿는다. 실제 외모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녀의 자신감과 자존감은 끝없이 올라간다. 이는 타인의 시선을 바꾼다. 론다 번의 책 '더 시크릿'에는 확언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이루어 질 것이다.'라고 미래형의 주문할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졌다'라고 현재형 주문을 하는 것이다. 믿는데로 이루어지는 현상은 단순히 '피그말리온 효과'나 '더 시크릿'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현상 중에는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 있다. 이는 미래에 대한 자신의 기대나 예언이 현실화 되는 것을 말한다. 뇌는 미래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행동을 수반한다. 그리고 현실을 바꿔 나간다. 고명환 작가의 책,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확언에 이야기가 나온다. 이미 충족됐다는 확언을 통해 미래를 먼저 결정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굉장히 독특한 특질이 하나 있는데, '무지(無知)'를 '지(知)'로 바꾸는 것만으로 차원 다른 실행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1957년 인류 최초로 '스푸트니크 1호'가 우주로 발사됐다. 그전에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우주탐사'를 '가능의 영역'으로 바꾸자, 후발 주자인 미국은 10년 만에 달착륙까지 성공한다. 챗GPT란 오픈AI가 공개되자 구글을 포함한 대기업들이 챗봇서비스를 무더기로 내놓기 시작했다. 전기차 상용화가 성공하겠냐는 질문에 '테슬라'가 답을 내놓자, 전세계에서는 무더기로 전기차를 만들어 냈다.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에 도전하는 것과 가능여부를 알 수 없는 것에 도전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눈과 뇌는 의외로 잘 속는다. 실제 이성과 공포영화를 보면 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이는 뇌가 공포와 사랑의 두근거림을 같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자주 웃으라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뇌는 거짓 웃음과 진짜 웃음을 구별하지 못한다. 자신을 속여 그렇지 않은 것을 '이미 이루어졌다'라고 믿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의미있다.

스티브잡스, JK롤링, 무라카미 하루키, 폴 매카트니, 미켈란젤로, 모차르트 등은 이미 자신의 성공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워렌버핏은 자신이 부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 의심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꽤 오컬트적인 내용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심리학이나 뇌과학도 이를 증명한다. 손정의 회장도 자신을 '허풍쟁이'라고 밝혔다. 불가능 할 것 같은 일에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과거, 현재,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간다는 것은은 관념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뇌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별하지 못한다. 고로 미래의 모습을 확언하는 습관은 그것을 현실 세계에서 이루게 할 가능성이 높다. 나이가 많거나, 책을 많이 읽은 사람, 경험이 많은 사람의 선택을 신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래를 알게 되는 일. 그것은 '지식'의 영역이 아니다. 논리, 판단, 추론의 과정이 명확하지 않지만, 상황과 대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를 '직관력'이라 부른다. '여자의 직감은 무섭다', '불길한 예감을 틀린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곤 한다. 이는 언어로 설명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는 꽤 정확하다. 언어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모호한 것이 되려 정확할 때가 있다. 만물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이 정확히 떨어지지 않고 모호한 것도 그렇다. 자신의 직관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 머릿속의 경험과 기억이 잘 융합할 수 있도록 머릿속이 비워져 있어야 한다. 깨끗한 유리병이 그 속을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듯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명상과 기도를 즐겨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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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완성시켜드립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마인드셋까지, 원고를 끝내는 21가지 과학적 방법
도나 바커 지음, 이한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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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30일부터 햇수로 4년간 매일 포스팅을 했다. 어떤 날은 2개, 어떤 날은 3개, 못해도 하나는 무조건 했다. 글자는 2,000자에서 3,000자 정도. 2020년 10월 2일 잠들어 포스팅을 하지 못한 하루를 제외하면 하루도 빠진 적 없다. 스스로 독하다는 생각을 했던 건, 5권의 책 집필 도중에도 멈추지 않았다는 거다. 원고를 완성하고 잠들기 전에 다시 3,000자를 쓰고 잠 들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쁜 기간에는 밤 11시 59분 59초에 포스팅을 올리기도 했다. 주간 스케줄 일정이 꽉차면 '예약 발행'을 했다. 스스로 대단한 작가가 되기 위해 들인 습관은 아니다. 그냥 쓰다보니 쓰게 됐다.

중학생이던 시절, 국어 선생님은 '창작시' 숙제를 주셨다. 집필했던 창작시를 선생님께 드렸다. 그때 학교에는 OHP라는 기계가 있었다. 칠판 옆에서 빛을 뿜는 기계였다. Overhead Projector라고 투명 필름 위에 네임펜으로 글을 적으면 위로 향하는 빛이 거울에 굴절되어 칠판에 투사되는 형식이다.

국어 선생님은 이 기계에 'A+' 과제물들을 올려 놓으셨다. 친구들의 창작시가 하나 둘 소개됐다. 이어 마지막에 내 시가 소개됐다.

제목은 '시계바늘'.

시계바늘을 인연에 빗댔다. 앞서나가고 뒷쳐지고 있지만, 때가되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초, 분, 시침'의 관계를 인연에 빗댔다. 선생님은 '참 생각할 거리가 많은 시구나' 하셨다. 이어 "이 시에 왜 A+를 주었냐면..."하고 말을 하셨다. 다만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반 친구들이 말했다.

"선생님, 저기 C-라고 적혀 있는데요?"

그랬다. 선생님이 투사하신 내 창작시에는 'C-'가 적혀 있었다. 아마 'A+' 사이에 실수로 내 시가 들어갔던 모양이다. 얼굴이 붉어졌다. 선생님은 무안함과 미안함을 숨기려고 하셨다.

"얘들아, 이거 A+ 줄까?" 아이들은 "아니요!"라고 답했다. 그닥 자랑할 만한 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냥 조용히 잊혀져도 좋았다. 선생님의 실수와 아이들의 반응으로 이 시는 2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시가 됐다.

짧은 순간이 뇌리에 밖혔다. 그해, 내 창작시는 C-를 받고 마무리됐다. 그 시가 'A+'였건 'C-'였건, 성적과 점수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진 않았을 것이다. 연 소득 10원의 차이도 만들지 못하는 작은 수행평가다. 다만 그 순간이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글'에 대한 칭찬을 들을 때가 있다. 유명한 이들이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남길 때도 있다. 그 때마다 잊혀졌던 중학교 시절이 번뜩 지나간다. 특별히 충격적이거나 트라우마도 아니다. 그냥 불현듯 그 장면이 떠오른다.

어쩐지 A+들 사이에 실수로 올려진 C- 같은 느낌.

점수가 투사되지 않았더라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A+의 감동을 했을까. 운좋게 A의 사이에 속한 가짜의 부끄러움이 불쑥 들때가 있다.

읽고 쓰다보니, '진짜'들을 만날 때가 있다. 오랜기간 글쓰는 일을 동경하고 재능이 있던 이들을 우연히 만난다. 부끄럽게 그들의 글과 한데 섞일 때가 있다. 지금도 서점에는 잘난 사람들의 저서 중 내 글이 섞여 있다. 아주 짧은 순간, 중학교 시절 그 감정이 되살아난다.

언젠가는 '글쓰기' 강연을 부탁 받는 경우도 있다. C-의 강연이지만 나름의 노하우를 전달한다. 크게 대단한 것 없이, '그냥 쓴다. 쓰고 읽고 고친다.' 이것이 전부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오른발을 아래로 밀면서 왼발에 힘을 풀라고 하는 조언처럼, 이론적 조언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냥 습관이다. 그냥 매일 쓰면 되고, 형편없고 형편있고를 판단하지 않고 쓰면된다. 대단한 영감도 필요없고 엄청난 자기관리도 필요없다. 꽤 체계적인 시간관리나 글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도 필요없다. 그냥 쓰면 된다.

끓는 물에 면사리를 놓고 스프를 털어 넣고, 봉지는 쓰레기통에 던져 놓듯. 거기에는 철학도 이유도 없다. 그냥 '라면 먹어야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설거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언제 해야 하는가. 왜 해야하는가도 필요없다. 라면 먹을 때, 냄비가 없을 것 같다면 하면 그만이다.

C-의 조언이 가끔 꽤 괜찮은 A+의 조언과 일치할 때가 있다. 그때는 잊혀진 국어 선생님께 얄미운 복수를 했다는 통쾌함을 갖는다. '도나 바커'의 '어떻게든 완성시켜드립니다'는 투박하지만 현실적인 글쓰기를 말한다. 이 A+작가의 생각이 C-와 닮은 구석이 있다는데서 다시 한 번 통쾌함을 갖는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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