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혁명 - 산업과 투자의 지형을 뒤흔드는 인공지능의 진화
권기대 지음 / 베가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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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백신이 나오려면 연구 기간이 10년 이상 걸린다. 다만 2020년 1월, 미국의 제약사 모더나가 코로나 백신 개발을 착수하고 허가 받는데까지 걸린 시간은 11.4개월이다. 모더나는 어떻게 이처럼 빠르게 백신 개발을 할 수 있었을까? 모더나는 방대한 유전물질 데이터를 한 번에 분석하고 예측하는 AI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중소 규모 스타트업 제약사였던 모더나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AI는 인간의 다양한 데이터를 학습한다.췌장암과 같이 조기 진단이 필요한 질병 또한 AI는 빠르게 파악한다. 인공지능은 이를 전통적인 방식보다 3년이나 빠르게 진단한다. 또한 당뇨나 천식, 우울증 진단도 간단하게 진단한다. 중국의 스타트업 회사가 개발한 AI는 30초 정도의 음성만으로 우울증을 진단한다.그리고 그 정확도는 80%를 넘는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 넘는 특이점을 사회는 걱정한다. 다만, 어떤 분야에 있어서 분명 인공지능은 이미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인간보다 똑똑하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은 직원 해고를 위해 AI기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봤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과를 판단하고 그로 인해, 인사평가를 하는 것은 충분히 예측해볼만하다. 다만 인간을 고용하고 해고하는데, 이미 인공지능이 어느정도 관여하고 있다고 보면, 여간 찜찜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어떤 인간의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실제 Capterra라는 업무성과관리 플랫폼에서 인사 담당자 300명에게 물어본 결과, 정리 해고 대상자를 결정하는데 AI기반의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을 활용하겠다는 대답이 98%가 됐다.

인공지능은 현재와 미래에 분명 인간을 보조하고 도와주는 용도로 사용할 것이나, 반대로 말하면 인간은 필수적으로 누군가를 고용하고 해고하며, 보이지 않는 계급을 형성한다. 이런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보조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다른 어떤 인간보다 우월한 입장에서 인간을 보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질서를 의미하는 말로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라는 말이 있다. 기존 질서가 뒤집어지고 새로운 표준이 생기는 시대라는 말이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집필한 '야마구치 슈'는 '뉴타입의 시대'라는 책을 통해, 새로운 뉴노멀의 시대를 이야기 했다. 기계가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시대에서 인간은 기계에 앞서는 무언가를 무기로 나아갔다. 1811년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인간보다 생산적인 면에서 우위를 점하자, 이 경쟁에서 패배한 수공업자들은 빈곤해졌다. 이에 이들은 빈곤의 원인을 기계에서 찾고 기계를 파괴했다. 반자본주의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이다. 인간이 도구에게 지는 역사는 적잖게 많다. 인간은 꾸준하게 기계에게 패배해 왔다. 가령 인력거는 자동차에게 패배했고 조선후기에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주던 전기수라는 낭동가는 라디오에게 패배했다. 이후 승리한 기계는 더 나은 기계에게 패배했고, 라디오는 TV에게, TV는 스마트폰에게 패배했다. 다만 인간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에서 '생산자'는 '소비자'에 비해 구조적으로 수직적이다. 고로 누군가는 지시하고 누군가는 복종한다. 누군가는 고용하고 누군가는 고용당하며, 누군가는 해고하고 누군가는 해고당한다. 사회는 표면적으로 수평적이지만 그 내부적으로는 수직적이다. 고로 인공지능의 활용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사용되면, 누군가는 사용을 당하는 입장이 될지도 모른다.

2천조 원의 글로벌 시장이 열린다. AI가 만든 새로운 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했지만, 이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환영을 받는 일이다. 인공지능을 도구로 사용할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이 존재한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한 대답을 내놓으면서 점차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에게 질문한다. 지금도 하루에 1000만명이 인공지능에게 묻는다. 실제로 논문의 경우에도 보통의 학생들보다 우수한 대답을 놓으며, '검색'은 되는데, '챗GPT'는 왜 안되는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인공지능을 번역기나, 검색엔진과 같은 도구로 활용한다면 실제로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의 업무라고 봐야 하는가. 점차 많은 사람들이 더 똑똑한 인공지능을 활용하면서 '아마구치 슈'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는 인간에 대한 효용성을 고민하게 될 지 모른다. 누구나 인공지능에 물어만 본다면 현명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시기에, 인공지능 보다 더 나은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은 '의심하고 질문하는 능력'이다. 뉴노멀 시대에는 대답 보다 질문이 중요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명제에서 생각은 의심과 바꿀 수 있다. 의심하고 비판하는 능력은 인간의 지능 중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이제는 질문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뛰어난 인재가 되는 세상이다. 자동차에 앉아 있다면, 70대 노인와 30대 젊은이가 같은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인간의 신체 능력을 보조하는 자동차 덕분에 인간은 이동하기 위해, 신체적 능력이 아닌 판단력과 운전 기술이 중요해 졌다. 고로 뭐든 묻는 질문에 척척하고 대답해 내는 인재보다는 의심하고 질문하는 인간들이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교육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내려 놓느냐를 기른다. 이런 것들은 대게 인공지능에게 쉽게 대체 가능하다. 이런 시대에서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무엇이 핵심인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답보다 질문이 더 고차원적인 사색이 필요한 작업이다. 인공지능에 의해 어떤 인간들은 덜 생각하게 되지만, 반대로 어떤 인간들은 더 고차원적인 질문을 생각해야 한다. 고로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억'하고 '분석'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생산량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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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빅 히스토리 - 세상은 어떻게 부유해지는가
마크 코야마.재러드 루빈 지음, 유강은 옮김 / 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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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동물들은 보수적이고 경계심이 많다. 배타적 존재다. 이들은 화합보다 경계를 우선한다. 자신이 설정한 영역에 침입자가 발생했을 때, 이들은 수용하지 않는다.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도 그랬다. 이들은 채집수렵을 할 때, 혈족 구성으로 10~20명의 소집단 생활을 했다. 이처럼 상대를 믿지 못하고 혈족으로 구성된 소집단으로만 공동체를 유지하던 기간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길었다. 수백 만년의 시간동안 그렇게 인간 또한 배타적이고 경계심이 많았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후, 인류가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공통의 관념'을 만들었다고 했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실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애니미즘이다. 이런 인지 혁명으로 인간은 혈족이 아닌 다른 구성원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게 된다. 믿을 수 없는 이들을 통합하고, 관련 없는 이들과 규범과 가치체계를 만든다. 이들은 그렇게 결속력을 갖는다. 같은 신을 믿는 이유로 통합하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로 통합하고, 같은 곳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결합한다. 공동체 결집을 키운다. 그렇게 종교는 많은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종교는 '신뢰'를 만들어 냈다. 이후 프로테스탄트 도시들은 의무 교육법을 시행하여 엘리트 수준의 인적 자본을 모은다. 이는 다시 교육이라는 신뢰의 명분을 만들고 공동체를 키웠다. 이처럼 문명 발전 키포인트는 '신뢰'라는 무형의 관념이다. 사회적 신뢰는 경제 거래를 수행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예전에는 같은 신을 믿는 이유로 결합했다면, 이후에는 생활 수준이나, 교육수준 등으로 상대를 신뢰한다. 과거부터 '법의 지배'가 탄탄한 사회일수록 더 부유한 경향이 있다. 법치는 투자와 경제 성장을 장려하고 재산보호를 중시했다. 법치주의는 경제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법을 잘 지키고 신뢰하는 사회일수록 경제 성장이 빨랐던 이유다.

참여정부 시절, 14대 노동부 차관을 지냈던 정병석 작가는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그의 저서 '대한민국은 왜 무너지는가'를 보면 우리 사회는 근본부터 허물어진다고 했다. 원인은 '잃어 버린 신뢰'다. '정치'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역사,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신뢰가 무너졌다고 그는 말했다. 2,000년 넘게 세계 과학기술을 선도하던 중국은 1850년에 이르면서 모든 분야에서 유럽에 뒤쳐지기 시작했다. 고대와 중세의 문명을 이끌던 중국은 왜 19세기부터 전락했는가.

세계 경제 패권의 이동에 대해, 누군가는 지리적를 근거로 설명하고 누군가는 종교를 근거로 설명했다. 누군가는 제도적를 근거로 설명한다. 그러나 부가 확대되는 원인은 한가지의 이유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 어느 지역이 부유해지고, 어느 지역이 빈곤해지는 가. 이는 복합적이다. 지리적으로도 설명을 할 수 있고, 제도적으로 설명을 할 수도 있고, 종교적으로 설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근간에는 '신뢰'라는 단어가 명확하게 있어야 했다. '신뢰할 수 있는 사회'는 반드시 그 사회를 융성하게 한다. 과거에는 모든 소비를 자급자족할 수는 없어도 대체적으로 자신의 옷감을 직접 만들거나 맥주를 직접 담가 먹었다. 그러다가 17~18세기에는 소매상점이 등장하고 생산자가 소비자가 되고,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는 일이 영국에서 일어난다. 이를 소비자 혁명이라고 부른다. 가계는 점차 시장지향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경제 성장의 유일한 키워드가 신뢰만 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신뢰' 뿐만 아니라, 전쟁과 여성 노동에 대한 문화적 태도, 높은 임금 등. 사회가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유가 필요했다. 유럽은 중국보다 전쟁을 많이 벌였다. 유럽의 농촌은 대게 전쟁을 치루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유럽의 전쟁에서 상대적으로 방어가 잘 되는 곳은 도시였다. 반면 중국의 전쟁의 경우, 도시와 농촌의 피해는 똑같았다. 이 결과로 유럽은 무역과 제조업이 도시에 몰릴 수 있었다. 여성 노동에 대한 태도 변화도 경제를 성장시켰다. 과거 옷감을 짜는 일은 여성이나 어린이들의 몫이었다. 이들의 생산력은 당시 경제력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의 생산력은 가족을 위해서만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면직물을 기반으로 산업혁명이 발생하지 이야기가 달라졌다. 면직물 생산 지역에 사는 여성의 경우 소득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때로 그들의 소득은 남성의 소득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 되기도 했다. 사회가 여성을 중요한 성원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지위가 상승하고 이는 경제 구성원수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여성의 경지 진출 뿐만 아니라, 비싸지는 임금도 산업혁명을 촉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세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이렇다. 영국은 당시 노동력을 절감하는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14세기 중반 흑사병이라는 전염병으로 노동 인구가 급격하게 줄었다. 어떤 이들은 이때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고 추산하기도 한다. 노동자가 줄어드니 임금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생산자는 노동 절감형 기술을 받아들이고, 자본 집약적 기술을 선택한다. 현대의 대한민국도 최저 임금이 높아지면서, 많은 사업주들은 '인간'보다는 '자동화 기계'를 도입하곤 한다. 가령 자동으로 찌개를 끓여주는 기계를 도입하거나 안내데스크에는 키오스크를 배치하고, 서빙 아르바이트 보다 서빙하는 로봇으로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지역이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조건과 이유가 원인이라고 하기 힘들다. 여러가지 사회, 문화, 기후 등 다양한 변수와 조건들이 잘 융합하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 사회가 부유해지는 것이다. 도서는 최근에 읽고 있는 '위어드'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 내용이 담고 있는 분량에 비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책은 아니다. 모쪼록 부의 모든 것을 '신뢰'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꼭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이 들었지만, 다 적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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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외로움 수업 - 온전한 나와 마주하는 시간에 대하여
김민식 지음 / 생각정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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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면 수월해 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독학을 고집한다. 외로움도 그렇다. 혼자 극복하는 타성에 젖어 그것이 비정상적이고 일시적이라는 착각을 한다. 외로움은 일시적인 현상도, 비정상적인 감정도 아니다. 인정하자. 누구나 외로워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한다. 고로 함께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불안해 한다.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이런 감정이 드나 싶다. '외롭다. 공허하다. 쓸쓸하다. 의지하고 싶다.' 등. 인간 감정의 디폴트값이 '외로움'이기 때문에 인간은 발전했다. 외로움은 누군가를 찾게 했다. 함께 하고자 했다. 문명의 탄생이 경이롭다면서 외로움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외롭다는 건 고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외로움이 없었다면 야생 동물들처럼 모든 성체가 온전히 자립하고 있을 것이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척척해 낼 것이다. 다른 동물들처럼 수렵괴 채집을 하며 오늘을 맞이 했을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갖고 있다.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 대상은 국가가 되거나, 종교가 되기도 했다. 외로움이 없다는 것은 믿고 싶은 이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믿고 싶어 한다. 상대의 이야기에 동화되고, 때로는 상대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결혼했다하여, 아이가 있다하여, 직장을 다니고 있다하여,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허한 마음은 채우면 사라질 것 같지만 다른 빈 공간을 늘리기도 한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극복'과 '해결'의 대상이 아니다. 인정하고 받아드리고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독서는 제 입을 닫고 상대의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 하는 일이다. 적게는 2~3시간, 많게는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지금 살펴보니 내 블로그도 쌓인 독후감이 800편 가까이 된다. 한 권 당 다섯 시간만 잡아도 5년간 4,000시간을 책 보는데 사용했다. 여기에 1,500편의 글을 적었다. 길게는 2~3시간, 짧게는 30분 시간을 내어 쓴다. 한 편 당, 한시간만 잡아도 1,500시간 사용했다. 햇수로 5년에 5,500시간을 읽고 쓰는데 썼다. '참 할 일 없나' 싶다. '유난히 외로움을 타나보네' 싶다. 1년 1000시간. 분명한 건, 이 긴 시간동안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주변은 조용했다.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말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상대했다. 그러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찌됐건 내 주변은 적막하고 조용했을 것이다. 조용하고 적막했지만, 수 백 명의 사람과 이야기했고 들었다.

'김민식 PD'의 책을 들었다. 벌써 다섯 권의 저서가 생긴 나는, 누군가의 책을 읽을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작가도 이 글을 쓸 때, 온전히 혼자였겠구나. 몇 권의 책을 집필하다보니 알게 됐다. 집필하기 위해서 작가는 온전히 혼자여야 한다. 글을 쓸 떼, 입은 다물어야 하고 주변은 적막해야 한다. 작가는 대게 많이 읽는다. 이들은 역시 입을 다물고 주변을 적막하게 둔다. 그런 농도 100%의 적막의 정수가 1인치 책에 쌓인다. 외로움과 적막의 극치가 바로 책이다. 나의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은 그들의 그것과 합하게 된다. 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상황, 환경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를 가진다. 어떤 사람이라도, 어떤 자리에서 만나느냐, 어떤 위치에서 만나느냐, 어느 시간에 만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사회적 페르소나를 완전히 내려놓고. 오롯하게 스스로가 되는 시간은 유일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다. 글은 그것을 담는다. 평소 나는 농담을 좋아한다. 가볍고 어리숙한 사람이다. 다만 글에서 나를 만나면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소비성 나'를 소모하고 혼자 에너지를 충전하면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전부 진짜 나와 다르다고 생각할 때가 생긴다.

글로 첫인상을 알게 되면, 실물에서 느낌이 다른 경우가 있다. 아마 나도 그런 부류의 인간이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은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잘 정돈된 글에 비해 긴장해 있거나, 부담을 느끼고 있거나, 어딘가에 신경을 쓰고 있다. 여러 방해되는 감정은 페르소나 뒤에 숨게 한다. 사람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 고로 만남은 적절한 방식이 아니다. 그가 남긴 글과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모습을 읽는다. 책 좋아 하는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이해가 많은 이유가 어쩌면 겉에서 보여지는 행동이 극일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온전한 나와 마주하는 시간에 대해 '김민식 PD'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어딘가 내 이야기를 읽는 것 같다. 나이와 체면, 지위 모든 것을 제외하고 오롯하게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닮았다. 이것은 사실 반가운 부분이다. 서로 착용하고 있는 페르소나를 벗어 보면 같은 민낮을 하고 있다는 의미니까.

외로움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어딘가 좀 모자른 듯 해도, 따지고 보면 세상은 다 외로운 사람들에 의해 굴러갔다. 보와 댐을 짓고 토목공사를 하려면 많은 인간이 힘을 합하고 사회적인 활동을 해야 했지만, 상대성 이론을 쓰거나, 프린키피아를 쓰거나, 훈민정음을 쓰거나 할 때, 이들은 모두 아주 고요하고 적막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 이제 외로운 것이 조금 모자라거나 불쌍한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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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근대인물 기행 - 한일 근대사 속살 이야기
박경민 지음 / 밥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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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 10월 7일, '김낙순'은 태어났다. 그의 고조부는 부친에 이어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으로 집안은 대대로 명문가였다. 그 역시 스물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 이조판서 등의 관직 생활을 한다. 그는 외모와 능력이 출중하고 왕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장이 뛰어나고 죽화도 잘 그렸다. 공평하고 정직한 성품을 가진 탓에 서인과 남인 양쪽에 신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어느날 정조는 신하들과 대화를 하다가 '김낙순'의 훌륭함을 알게 된다. 정조는 김낙순도 선조들같이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하나 하사한다. 그렇게 낙순은 '낙순'이 아니라 '조순'으로 개명된다. 김조순은 이후로도 정조와 돈독한 관계를 갖게 된다.

1800년, 정조는 세자빈을 간택하기 위해 후보자 명단을 받았다. 그 때, 명단 안에 김조순의 딸이 없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김조순'에게 말하여, 딸의 이름 또한 써서 올리도록 제안한다. 그렇게 김조순의 딸은 세자빈 후보자 명단에 올라가게 된다.

정조가 죽기 전, 그는 세자와 김조순을 불렀다. 그리고 세자에게 말했다.

'김조순의 보필을 받으면 결코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 김조순은 항상 낮은 자세로 처신하곤 했다. 정조가 죽은 뒤에도 다르지 않았다. 김조순의 사람들 보고, 정순왕후는 김조순의 딸을 왕비로 간택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그의 딸이 조선의 왕비가 된다. 그로써 김조순도 '부원군'의 작호를 받게 됐다.

이 때, 왕의 나이 11살, 순조의 장인이 된 김조순은 정순왕후가 죽고 실권자가 된다. 그러나 1832년 66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고도로 절제된 처신을 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관직을 모두 사직하고, 설령 관직에 임명된다 하더라도, 그날로 사직 상소를 올려 곧 사직 하곤 했다. 이처럼 자신을 낮추고 철저하게 명예욕을 절제했던 김조순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멸망의 시작점이라 보여지기도 한다.

그의 가문은 이후로 승승장구한다. 그의 장남인 김유근은 이후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지낸다. 여동생인 왕비에게 정치적 지원을 했고 인사권을 가졌다. 그가 가진 인사권으로 그는 집안 사람들을 주요 관직에 등용하기 시작했다. 왕비의 남동생인 김좌근은 늦은 나이인 마흔 두 살에나 문과에 급제한다. 그러나 4년 만에 이조판서까지 초고속 승진한다. 이는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왕비를 중심으로 오빠와 남동생은 이처럼 조선의 실권자가 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키웠는데, 그 가문이 '안동 김씨'다. 안동 김씨는 11살 순조, 8살 헌종, 18살 철종, 12살 고종 등. 어린 왕들을 재위 시키며 세도정치를 이어간다. 그 가문의 성장이 곧, 조선 멸망의 초입이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조순'은 왕의 총애를 받던 충신이자 공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도정치의 문을 연 인물로써 언급되기도 한다. 한 인물의 성품은 그 인물을 출세케한다. 한 인물이 출세하면 그 가문은 성장한다.한 가문이 성장하면 되려 때로는 망국의 씨앗이 된다. '좋다'와 '나쁘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역사에서 언제나 등장한다.

반대쪽에서는 비슷하지만 다른 일이 있었다. 1837년 일본 에도에서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태어났다. 12세기부터 일본은 막부체제에 의해 운영됐다. 쇼군이라고 불리는 무인들이 통치권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600년이나 지속된 막부 정치는 19세기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1867년,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천황에게 통치권을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요시노부는 사직하게 된다. 그리고 막부는 폐지된다. 일본의 정치는 이후 '메이지 신 정부'로 넘어간다. 메이지 정부는 과거 국가모델을 폐지하고 근대국가를 모델로 개혁한다.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선택이 막부를 폐지하고 신체제를 시작하는 시작점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에야스는 일본을 통치하기 위해 막부를 열었고, 나는 막부를 없애기 위해 쇼군이 되었다."

'39인의 치열한 삶은 어떻게 양국의 운명을 갈랐나'. 박경민 작가의 '한일 근대 인물 기행'의 표지에 이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절묘하게 이 책을 설명할 문구가 떠오르지 않는다. 흔히 역사는 흐름이라고 말한다. '흐름'이라는 단어에 빠져 들면, 그 속에 담긴 '개인'의 이야기는 가려지곤 한다. 역사는 형태없이 흐름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무수하게 많은 개인의 흥망성쇠가 담겨져 있다. 때로는 누군가의 흥이 결과적으로 망이 되고 누군가의 성이 결과적으로 쇠가 되기도 한다. 이것을 들여다 볼 때, '새옹지마'는 인생사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 같다.

어떤 개인이 성공하고 어떤 개인이 실패를 했느냐, 어떤 집안이 성공을 하고, 어떤 집안이 실패를 했느냐. 문명 발전 단계의 격차는 이처럼 작은 선택과 결과들로 만들어졌다. 조금씩 쌓이고 모여 역사가 됐다.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이 아니라 연속되는 사건과 현상의 결과들이다. 이 책은 역사를 흐름이 아니라, 서른 아홉의 개인의 이야기로 서술한다. 갑신정변의 실패는 그 집안의 비극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정변 실패로 연결된 수많은 개인들이 자살하거나 죽는다. 이런 개인의 비극과 개인의 희극은 때로 역사가 된다. 다만 그 곁가지로 설명되는 개인의 희비들을 모두 쳐내고 나니, 흐름이라는 형태만 남는다. 강이 흐르기 때문에 물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물이 움직이니 강이 흐르는 것이다. 역사는 어떻게 흐르는가. 가만히 살펴보니 개인의 운명이 국가의 운명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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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로 삶의 지혜를 얻다 - 그림책 읽는 시간
김수민 외 지음 / 프로방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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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 중 하나는, 당근을 먹는 일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이렇다. 어린 시절 나는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었다. 숟가락에 흰 쌀밥을 떠올리면 어느샌가 흰밥 위에는 고기나 햄이 얹어 있었다. 부모님이 잽싸게 밥 위에 소시지 반찬을 올리셨다. 당근이나 양파 같은 야채가 올라가는 경우는 없었다. 먹지 않는 나에게 '고기'를 올리는 것이 그나마 회유였던 것 같다. 어느새 아이의 숟가락에 고기를 얹고 나면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은 '당근'과 '양파'다. 부모님은 야채를 많이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했는데, 마흔에 가까워져서야 야채를 먹게 됐다. 따지고보면 부모님이 숟가락에 얹어도 넣지 않던 야채를 아이는 너무 쉽게 넣게 하는 샘이다. 그거 말고 무엇이 있을까.

아침이 되면 어머니의 목소리는 알람보다 먼저였다. 어머니는 알람을 맞췄음에도 항상 그 보다 먼저 나를 깨웠다. '1분만 더'를 몇 번하다가 투덜대며 식사 자리에 앉는 일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지지 않으면 나보다 아이가 늦는다는 생각에 머리끝이 쭈뼛하고 선다.

적당히 지저분해도 좋았던 방도, 아이의 장난감과 간식, 옷가지가 섞여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것 치우기도 벅찬 생활 습관은, 더러 아이의 것까지 치우며 말끔히 고쳐졌다. 원래 책을 좋아했지만, 아이와 함께 살면서 엄청난 다독가가 됐다. 아이에게 책 읽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더 지독한 책벌레가 되게 했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꺼버리고 아이와 누워서 책 보는 습관은 아이게만 좋은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고보니 사람은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아이에게서 길러지는 모양이다.

아이와 누워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함께 본다. 아이를 위한다는 행동이 꼭 아이만을 위하고 있지 않을 때가 있다. 어릴 때 분명 들어봤던 이야기였는데, 아이와 함께 읽었더니 생소한 이야기도 있다. 어떤 이야기는 순수하게만 읽혀지지 않는 책도 있고, 어떤 이야기는 짜임이 탄탄함에 감탄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읽어주느라 연기력과 발성 연습, 발음 교정이 모두 되기도 한다. 최근에 아이와 읽었던 책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책이다. 분명 이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도무지 기억에 나질 않았다. 차근 차근 아이와 이야기를 하며 동화를 진행하자, 이야기는 아이가 아니더라도 빠져 들어가는 이야기었다. 아이와 함께 동거하면 이처럼 아이가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이 나조차 교육시키는 경우가 많아진다. 아이는 '겨울왕국'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최소 30번은 넘게 봤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겨울왕국의 주요 대사는 이제 완벽하게 외웠다. 주요대사 뿐만 아니라, 주요하지 않은 대사도 거의 암기하다시피 했을 정도다.

아이와 이처럼 동화나 그림책, 만화를 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워킹데드', '수리남', '프리즌브레이크',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보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좀비가 되어 사람을 죽이고, 마약을 하거나, 감옥을 탈옥하고,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채워 놓고 살았을 나의 30대는 아이로 하여금 깨끗하게 리프레쉬 됐다. 오늘의 나는 왕자님이 공주님을 구하는 동화와 공주님이 왕자님을 구하는 만화를 보고, 오누이가 엄마를 구하거나, 엄마가 아이들을 구하는 영화를 본다. 거기에는 흉측한 좀비나 마약이 아니라, 호랑이나 늑대 정도가 나올 뿐이다.

'작은 이야기로 삶의 지혜를 얻다'는 '김수민, 송진설, 차은주, 최서원' 작가의 수필이 돌아가며 쓰여진 글이다. 이 책은 동화를 읽는 초보 엄마의 사연부터 시작해서 부모와의 이야기 자녀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한 그림책에 대한 애정도 적잖게 담겼다. 어린시절 재밌게 읽었던 '좋은 생각', '연탄길'이라는 잡지와 책에서 처럼 훈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극적이고 반전이 있고 통쾌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잔잔하고 일상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사람들은 가끔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더 큰 위로를 줄 것이라고 여길 때가 많다. 다만 성인들도 그림으로 하여금 더 큰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우리를 감상적이게 하는 것은 '백과사전'이 아니라 나무 끝에 달린 빨간 낙엽이다. 그 낙엽은 너무나 단순하고 스스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하게 한다. 아이들과 함께 보는 동화에는 어른들의 책처럼 생각해 볼 거리가 많다. 아이들과 읽어주고 있지 않다면, 잽싸게 메모하고 싶은 아이디어도 적잖게 떠오른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따지고 보면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리석게도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여기지만, 아이는 나의 입에 당근을 넣게 하고, 게을러지지 않게 하기도 하며, 모범적인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 예전 햇님과 바람의 동화가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이야기였는데, 이 이야기에서 바람이 벗기지 못한 옷을 햇님은 은은한 볕으로 벗겨냈다. 모양은 다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아이에게로 넘겨짐으로써 또다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한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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