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깊을수록 삶은 단순하다 - 세상에 실망할 때 나를 붙잡아 줄 선한 질문들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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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정보와 과잉선택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레베카 라인하르츠는 매순간 스크린 속에서 답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답'이 아니라 '질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스스로 사유하고 질문을 찾는 힘.

그것을 '철학'이라고 부른다.

철학은 사유의 깊이가 아니다. 철학은 실천의 방향이며 '삶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다.

흔히 철학이라고 한다면 복잡하고 어렵고 깊다고 생각한다. 다만 철학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다. 삶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보다는 무엇을 없애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정보가 넘치고 선택지가 많을수록 인간은 방향성을 잃기 쉽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은 놀랍게도 '깊은 사고'가 아니라 '명료한 기준'이다. 레베카 라인하르츠'는 철학은 바로 그 기준을 만들어주는 틀이라고 말한다.

디오게네스는 항아리 하나에 살면서도 '가장 부유한 사람은 아무것도 필요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라는 말을 했다. 이 둘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고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공통적으로 복잡함을 거절했다. 그 거절이야 말로 덜어냄과 단순함이 시작이자 철학의 실천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풍요'가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를 정기 구독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컨텐츠가 있으면 시청료를 지불한다는 느낌으로 한 번씩 구독을 신청했다가 취소하길 반복한다.

넷플릭스를 볼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도 이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넷플릭스가 주는 '풍요'가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렇다. 인간은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더 무기력해진다. 가령 3가지 맛의 잼을 제안받았을 때 보다 24가지 맛의 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잼의 구매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실험이 있다. 즉 풍요는 오히려 결정을 방해하고 과잉이 효율을 마비시킨다는 것을 말한다.

매일밤 침대에 누워 '오늘은 어떤 영화를 볼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잠에 드는 일을 반복하면서 풍요가 주는 피로을 직접 경험하곤 했다. 실제로 꽤 커다른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식사 메뉴를 아예 정해 놓는다거나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것으로 '결정피로'를 줄인다. 고로 삶을 어떻게 하면 단순화 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아이러니하게 다른 의미에 '풍요'로 다가온다.

'풍요'는 여러 종류가 있다. '금전적 풍요'나 '시간적 풍요', '정신적 풍요'처럼 우리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풍요'가 있는가 하면, '의미없는 말을 무지막지하게 하는 일'이나 아침에 '무슨 옷을 입을까',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저녁에는 무엇을 볼까' 등 꽤 소비적인 풍요도 있다.

모두가 전자의 것들을 얻고 싶어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즉각적이고 빠른 결과를 내놓는 '후자'의 것들을 선택하고 만다.

라인하르츠는 이런 맥락에서 현대인을 일종의 '선택 중독자'라고 진단한다. 우리는 수천 개의 선택지 앞에서 자유를 누리는 게 아니라, 선택의 피로에 시달리며산다.

세상은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을 뿐이고 거기서 우리가 요하는 것은 '사고'가 아니라 '행동'일 뿐이다. '이 제품은 다른 제품보다 더 저렴합니다.', '이 서비스는 당신을 더욱 즐겁게 해줄 것입니다'와 같이 다양한 홍보물들이 매순간 따라다니며 재잘거리지만 그 '말의 풍요'속에서 우리는 '소통'의 빈곤을 느끼곤 한다.

책의 어떤 부분에는 '정신적 피로'가 쌓인 현대인이 도움을 받기 위해 '명성 서비스'를 찾는다고 한다. 거기서 서비스는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자, 한달 결제 시 얼마, 1년 정기 결제시 몇 프로 할인'이라는 제안을 한다고 말했다. 맥락상 해당 구간이 내가 느낀 바를 전달하고자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

삶은 '병'과 '약'을 골고루 주며, 병이 나는 이유를 팔고, 약을 파는 이중 마케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은 총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철학자들의 답변과 현대적 해석을 엮는다. 가볍게 읽고 삶을 정리하길 독려한다.

철학이 깊을수록 삶은 단순해진다. 도서의 제목이 주는 통찰도 생각해 볼 거리가 많다.

'지금 내 삶에서 반드시 남겨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인가'

'지금 당장 덜어내야 할 첫 번째는 무엇인가'

다 사용한 치약뚜껑도 버리지 못하는 철학은 과연 무엇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볼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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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 상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틱낫한의 치유 수업
틱낫한 지음, 권선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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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정원과 같다. 땅속 깊은 곳에 다양한 씨앗들이 심어져 있다. 언제 심었는지도 모를 그런 것들이 땅속에 심어져 있다가 정원 주인이 양분을 넣어주면 그때서야 비로소 자라나기 시작한다.

의식도 그렇다. 의식 깊은 곳에는 다양한 감정과 기억이 심어져 있다. 언제 심었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의식 깊이 숨어져 있다가 주인이 양분을 넣어주면 그때서야 자라나기 시작한다.

정원인든, 마음이든, 주인은 모든 씨앗에 양분을 줄 수 있다. 다만 양분의 양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적절하게 분배하여 씨앗을 키울 수 있다. 정원 처럼 마음도 마찬가지다. 의식 깊은 곳에 다양한 감정 중 일부에만 관심을 주어야 한다.

씨앗은 물을 주면 싹이 튼다. 의식도 그렇다. 씨앗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어떤 씨앗에만 물을 주어 키운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슬픔이나 고통 괴로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비탄과 절망, 희망 없음의 씨앗에 물을 주는 것이다. 씨앗을 심는 것은 선택할 수는 없지만 씨앗 중 긍정의 씨앗에만 물을 주는 것은 선택할 수 있다.

행복을 위해서는 긍정적 자양이 필요하다. 적당한 주의를 두고 한정된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러 부정의 씨앗은 말라들게 된다.

긍정과 부정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뜨거운 얼음이나, 차가운 불처럼 모순되는 감정이다. 한쪽 극단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면 당연히 다른 극단의 씨앗은 그 싹을 줄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부정적 감정을 '없애라'는 의미는 아니다. '긍정의 감정'을 더 키우라는 의미다. '부정적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의도와 상관없이 그곳에는 '양분'이 들어 가기 시작한다.

'백곰 효과'라고 있다. 사람들에게 '백곰'을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되려 '백곰'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저 자연스럽게 사고의 물길이 긍정으로 향하도록 아예 그편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틱낫한 스님은 1926년 베트남에서 태어난 승려다. 세계적으로 '마인드풀니스' 즉 마음챙김이라는 개념을 대중화시킨 인물이다. '명상'이나 '마음챙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모르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그가 말하는 마음챙김이라면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어 마음을 관리하는 것이다. 정원관리사가 정원을 관리하는 것처럼 스스로의 주체성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한 실험이 있다. 심리학자 바두라의 '자기효능감' 실험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무기력에 빠진다. 작은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스스로 주체성을 가질 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감정의 노예가 되어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다룰수 있는 주체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한 그의 조언은 '지금 이 순간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쉬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땅속의 씨앗은 한 번 심어지면 사라지지 않는다. 애써 외면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고통의 씨앗, 분노의 씨앗, 두려움의 씨앗은 언제나 우리의 정원에 심어져 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자꾸 신경을 쓰게 되면 그것은 양분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다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씨앗은 자연히 말라버린다.

우리는 '사랑'과 '연민', '감사'라는 씨앗에 물을 주어야 한다. 양분과 물은 한 곳에 넉넉히 주기도 빠듯하다.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하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며,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의 가장 첫 번째는 당연히 '알아차림'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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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인생 조언 - 하루 5분으로 내면을 다스리고 마음의 평화를 부르는
정운 지음 / 유노책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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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의 가장 오랜 질문 중 하나다. 다만 가장 오랜 질문임에도 명확한 답을 내린 이는 없다. 오랜 질문에 대해 오랜 생각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과 생각 자체가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일지 모른다.

질문에 골똘히 생각해 가다보면 각자 자신만의 대답이 나온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가'

고로 이 질문과 생각에 대해 깊게 사색하려면 '오래된 이들의 말'에서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최신 심리학이라던지, 자기계발서, 에세이 몇 권으로 인간의 욕망, 무의식, 삶에 대해 모두 꿰뚫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거기에는 '오랫도록 묵히고 숙성시킨, 푹 삶고 고아 진국을 우려낸듯한 맛은 없다.

다만 고전에는 그 맛이 있다. 특히 동양 고전이 그렇다.

'숫타니타파, 법구경, 아함경, 금강경, 유교경, 사십이장경, 유마경, 법화경.

이 정도면 고전 종합 세트나 다름없다. '불교'라는 어휘 자체가 '종교적이라고 보여질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다.

불교를 종교냐 철학이냐 나누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서구식 사고에 빠진 셈이다. 서양에선 종교에 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신의 계시가 있어야 한다. 믿음도 필요하다. 다만 철학은 이성을 통해 사유하는 체계다.

그러나 불교에는 신이 없다. 신을 거부한다. 창조주도 없고 절대적 구세주도 없다. '부처' 스스로도 자신을 믿지말고, 숭배하지말라'고 말했다. 되려 '스스로 공부하고 법을 따르라'라고만 했을 뿐이다.

실제 많은 서구 학자들은 불교를 '무신론적 종교'로 분류한다. 근대의 일본 학자들은 불교를 '철학'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특히 다이쇼 시대의 일본 불교는 서양철학을 능가하는 '실존철학'으로써 불교를 포장하고자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교를 철학으로만 분류하기에는 또 문제가 있다. 불교는 이성을 통해 사유하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을 요하기 때문이다. 불교 초기 경전인 숫타니타파나 법구경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에는 개념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하게 담겨져 있다. '관념'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을 뿌리째 뽑는 삶의 기술'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고로 불교는 '삶의 기술, 고통의 경영학, 존재의 해체학'처럼 완전히 다른 분류의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실제로 미국 MIT의 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불교를 '심리학'으로 해석한다. 불교의 핵심이 '인간 마음의 구조를 해체'하기 때문이다. 신이 아니라 욕망과 집착을 다루고 그것을 치유해 내는 과정이라 그렇다. 결국 불교는 철학도 종교도, 심리학도 아니다. 금강경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것은 인간이 정의하는 '개념의 덫'에 걸린 셈이다. 그것을 무엇으로 분류하건 그것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파리를 새라고 분류하건, 곤충이라고 분류하건, 파리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부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뗏목일 뿐이다. 강을 건너면 버려라'

그렇다. 쓸모를 다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짊어지고 끝까지 이동할 것이 아니다.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두고 가야지 그것을 끌고 가면 되려 짐이 될 뿐이다. 불교는 그것이 철학이든 종교든 중요치 않다. 오직 깨달음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숫타니타파는 초기 불교 경전 주엥서 가장 투박하고 원시적이다. 이는 부처의 목소리를 거의 생생하게 담고 있다. 학자들은 이 책이 가장 늦게 펴닙되고 적거 윤색되었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날것'을 담고 있는 글이다. 과거 동네 서점에서 아이와 책을 고르다가 '숫타니타파'를 구한다고 했더니, 서점 아주머니께서, '그냥 넣어 드릴께요'하고 주신 기억이 있다.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시간이 되면 읽어볼 생각이다.

아무튼 우리를 자극하는 문구들은 대체로 인스타그램 명언처럼 짧고 강렬하게 스치고 잊혀 지지만 숫타니파타의 문장은 짧고 단단하여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법구경은 조금더 대중적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 구절 하나만으로 법구경의 반은 이해한 셈이다. 짧고 강력한 이 말은 진리를 담고 있지만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 짜증나는 일이나 슬픈일이 일어나면 줄곧 그 상황에 매몰되어 그것의 좋은 면을 보지 못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여러번 곱씹지만 잠시후 망각해 버린다. 고로 가장 중요한 것이 '실천'이라는 것을 상기시켜본다.

아함경은 초기 불교의 교리적 뼈대를 제공한다. 불교가 말하는 법의 구조와 논리를 담고 있다. 금강경은 결코 변하지 않는 단단한 것을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즉 금강경이 말하는 바는 '모든 것은 변한다.' 그리고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역설을 갖는다.

서로 다른 결의 텍스트들이 이렇게 모여 삶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이질적이면서 결국 하나로 수렴하는 아이러니가 어디 이 불교와 동양 철학에서만 그럴까 싶다. 문제는 책 몇권 읽었다고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은 거울이기 때문이다. 책은 결국 자신이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만 보여준다. 고로 책은 자신을 비출 뿐 그것 자체로 무언가를 바꿔낼 수 없다. 거울에 선 우리는 거울이 비춰주는 모습을 통해 스스로 매무새를 정리한다. 머릿칼을 넘기고 표정도 바로 잡는다. 다시말해서 책은 우리를 변화시켜주지 못한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직접 행동하기 실천하는 뿐이다.

고로 어떤 거울을 사용했는지가 아니라, 거기에 비친 자신을 보고 어떻게 가꿔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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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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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는 '윌라 오디오북' 첫 메인 페이지에 '항상' 올라가 있어도 결코 보지 않으려고 했다. 표지가 워낙 '소녀소녀'한지라 당연히 내 스타일은 아닐 것이라 여겼다. 아마 어린 여성 청소년들이 보는 소설이겠거니 가볍게 넘어가곤 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인지, 음원을 재생했다. 처음, 끌린다는 느낌 없었다. 그러다 계속 시간이 지나면서 배우들의 연기력에 집중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나중에 보니, 꽤 유명한 배우들이 참여한 프로젝트였다.

고민시, 김도훈, 염정아, 박지율, 주인영, 김의성, 박준면, 배성우, 박정민, 류현경, 김준환, 임성재, 김소윤, 이승아, 김달걀, 김은우, 최양락, 유정우.

소설을 듣는 내내 그들의 능청 맞은 연기력 덕분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맛깔나는 사투리와 능청스러운 배우들 간의 호흡이 워낙 자연스러워, 도대체 원작에는 어떤 문장이 적혀 있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 '손열매'는 성우로 일하던 중, 절친한 언니인 '고수미'에게 사기를 당한다. 또한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면서 삶의 균형마저 잃는다. 그녀는 결국 수미의 고향인 '완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수미의 어머니와 다양한 인물을 만난다. 그리고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완주에서의 시간은 열매에게 상처를 치유해주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준다.

그렇다. 얼핏 주제라고 특별할 것이 없다. 단순한 플롯이지만 그래도 확실히 재미있다. 소설 원작이 본래 맛깔나게 쓰여 졌는지, 작가와 성우가 그렇게 작품을 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말 오랫만에 재밌게 들은 오디오북이다.

소설이 끝나고 '박정민 배우'가 소설에 대해 짧게 이야기한다. 알고보니 이 작품은 '박정민 배우'가 대표로 있는 출판사 '무제'의 '듣는 소설' 프로젝트 첫 번째 책이다.

박정민 배우는 개인적으로 매우 호감을 갖는 배우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단 나와 나이가 같다. 어린 시절부터 나이가 같은 연예인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희안한 동질감이 느껴지곤 했다.

꽤 재미있게 봤던 영화에서 '저 사람은 대체 누구지?'할만큼 '연기력이 미친 배우'도 그였다. 항상 영화가 끝나고 배우를 찾아보는 것은 아니였지만 나중에 그를 알게 되고, 내가 봤던 그 '미친(?) 배우'가 모두 한사람이라는 것에서 경탄했다.

본업에서 재능과 노력이 탁월한 그에게 배울 점도 많다. 본업을 중심으로 관심사와 부업을 확장해 나가는 모습에서도 꽤 여려모로 귀감이 된다. 내가 그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 '책'이다. '밀리의 서재'나 '윌라' 같은 도서 어플리케이션에서 모델로 쓰거나 협업하는 이들을 보면 '어?' 하고 한 번 더 보게 된다. 그리고 '박정민 배우'는 적잖은 빈도로 그렇게 나와 마주쳤다.

아마 앞으로 나올 모든 프로젝트를 다 챙겨 들을 것 같다. 고민시, 염정아, 배성우 등의 유명 배우들이 참여한 이 소설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배려'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기획 의도와 기획력, 연기력, 뭐하나 빠뜨릴 수가 없다.

소설 원본을 보지 못하여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소설은 '김금희 작가'가 희곡처럼 대사와 지문을 구성하여 쓴 작품이라고 한다. 분명 오디오북이 이렇게 재밌다면 본 책도 그러할 것이다. 나중에 종이책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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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부머리 독서법 : 영유아, 초등 저학년 편 공부머리 독서법
최승필 지음 / 책구루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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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작가의 '공부머리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었었다. 대략 5~6년 전에 읽었으니,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읽은 셈이다.

당시, '음..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던 책이다. 아이가 '공부'와 큰 상관이 없는 나이였고 나 역시 '학부모'라는 이름은 너무 낯선 시기였다. 그 시기에 책을 읽고 꽤 공감과 깨달음이 있었다.

얼마 간, 책은 내 서재 책장에 꽂혀 있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는데 서재에는 수 천권의 책이 꽂혀 있다. 그러니 실제로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인테리어마냥 '스르륵'하고 훑다가 몇권을 뽑아가 버린다.

이게 참... 씁쓸한 것이.. 아무리 책이 많아도 슬쩍하고 뽑아 버리면 몇년 째, 그 구멍이 매워지지 않는다. 물론 기껏해봐야 1~2만원 짜리이니, '새로 책을 사면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책'은 집고 읽고 페이지를 넘기던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한 흔적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책을 사다가 꽂아 놓는다고 하도, 내가 읽었던 흔적 없는 책일 뿐이다.

사람들은 '빌려가는 책'에 꽤 무신경한 편인데... '이거 나 잠깐 빌려줘'하고 가져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연히 그 집에 가면 내가 빌려줬던 그 책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거나 너무 당연스럽게 그 집 책꽂이에 꽂혀 있다.

'말을하고 가지고 와야 하나, 그냥 슬쩍 가지고 올까.'

하다가, '선물로 준 셈'치고 그냥 나온다. 그러나 역시 내가 준 선물의 가치가 '상대'에게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책이 워낙 많으니, 몇권 정도는 없어져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5년이지나고 때로는 10년이 지난 책들도 마치 '내 자식' 떠내 보낸 것처럼 마음이 그렇다.

대략 15년 정도 전에, '정글만리'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지인에게 '그 뒷편을 제가 빌려드릴까요?'했다. 인기가 있어서 대출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였다. 역시,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그 책은 돌아오지 않았다.

뭐.. 책을 잃어버린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앞서 말한 '최승필 작가'의 '공부머리 독서법'이라는 책도 내 서재에 꽂혀 있었던 책이다. 그렇다. 꽂혀 있었다는 말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최승필'이란 사람을 보면 왜 그 책을 빌려간 '그' 사람이 떠오르는지 알 길이 없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차치하고 어쨌건 최승필 작가가 '저학년'을 위한 책을 출간한듯하다. 워낙 현재 읽고 있는 책이 많아서 '윌라'에서 '청소'할 때 이 책을 읽었다. 요즘 꽤 시간을 보내는 취미라면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대청소하기다. 집도 깨끗해지고 책도 듣고 '취미없는 나'에게 꽤 의미있는 취미가 됐다.

듣고 있노라면 '최승필' 작가가 '독서'라는 개념에 '타협'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정도는 학부모가 듣기 좋아 할 만한 이야기도 해주면 좋으려면..

'학습만화는 책이 아닙니다.'

'오디오북은 책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수적으로 '독서'에 대한 개념을 구분한다. 그 까칠까칠함이 어쩐지 더 믿음직스럽다. 그렇지 않은가. 본래 정도는 우리 입맛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으니까...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살이 빠질 수 있다는 희망,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 만화책을 보면서 '문해력'을 기를 수 있다는 희망.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면 대체로 '정도'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경우, 그런 까칠한 정도를 택하는 대신에 '그래도 무언가가 있을까야'하는 기대감을 택한다. 그러나 '사필귀정'.. 결국은 다시 돌고돌아 정도를 찾게 된다. 결국 더 빠른 길을 택하다가 더 멀리 갔다 돌아오는 셈이다.

아무튼 이 책은 흔히 말하는 '뼈'때리는 책이다. 물론 책 좋아하는 1인으로써, 그의 말에 100번 공감한다. 그리고 그의 말에서도 타협점은 분명히 있다. 개인적인 생각에 '만화책'과 '오디오북'은 '책'과 '책이 아님' 사이를 오간다고 본다.

책을 좋아하면 '오디오북'도 좋아할 것 같지만, 사실 '오디오북'은 책을 읽는 것보다 진행 속도가 조금 느린 편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답답하기도 하다. 메모도 할 수 없고 지나간 부분을 몇번이나 다시 들을 수도 없다. 읽다가 몇 장 뒤에 있는 챕터의 어느 부분을 다시 훑을 수도 없고 읽자마자 휘발되어 '느낌'정도만 남고 모두 사라지는 느낌도 그렇다.

그렇다고 완전 책이 아닌 것도 아니다. 나와 같이 청소하면서 듣기 좋고, 분명 문어체를 띄고 있어 비슷한 다른 책을 읽을 때, 상당히 도움이 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 아이는 '오디오북'을 매우 좋아한다. 오디오북을 매취침시간마다 듣고 하교 후에 간식 먹으면서 듣는 아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하교한 뒤에 무얼하는지 관찰해 봤더니, 대개, '오디오북', '책', '만화책', '간식', '만들기 놀이', '인형놀이' 정도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이들은 또래에 비해 꽤 책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아직 초등학교 2학년이면 읽는 책의 수준도 낮고 '만화'책인지 '줄'책인지 그 알 수 없는 경계의 책을 읽는다. 그러니 '정말 책을 좋아하는 아이'인지 알려면 초등 고학년까지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뭐 어찌됐건, 부모로써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일은 반길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와 함께 책을 즐길 수 있을지, 이번에도 '최승필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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