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그리는 여인
새파란 지음 / 하움출판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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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고통과 치유', '사랑과 상실'.

'바람을 그리는 여인'은 '새파란' 작가가 느끼고 탐구한 여섯 가지를 엮은 소설이다. 작품은 여섯가지 단편으로 만들어졌으나, 각 단편이 하나의 장편을 완성하는 옴니버스 구조다.

각 단편은 각 인물이 주인공이다. 그들이 겪는 사건들은 교묘하게 얽히며 하나의 서사를 가진다. 서사는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소설 전체는 그렇게 완성된다.

소설의 '핵심 메타포'는 '바람'이다. 바람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한다.

가수 '나얼'의 노래는 '바람'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한다. '바람기억'이나 '바람이 되어' 혹은 'My Story'에서도 어김없이 '바람'이 등장한다.

개인적인 추억에 가수 '나얼'이 있다. 예전 함께 일하던 동료는 수년 간 나얼의 노래만 듣곤 했다. 스치듯 그 음악을 들을 때면, 과거, 같은 노래를 듣던 순간이 기억난다. 음악이 스치고 간 자리에 '과거'의 향수가 남는다. 지나간 것이 '존재'했다는 착각이 들만큼 선명해진다. 그러나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일 뿐이다. 그렇지 않는가. '과거'라는 이름이 지어지면, 그것은 비록 '추상적인 명사'라고 하더라도, 인격을 부여하고 싶어진다.

야속한 '과거' 같으니라고...

'과거'라는 현상에 인격을 부여하고 서운함을 읊고나면 과거는 사라지고 간 뒤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My Story'의 가사에는 이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바람을 볼 순 없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어, 어디로 향하는지'

'마음을 볼 순 없지만 누구나 알 수가 있어, 무엇을 원하는지'

바람은 보이지 않는 '무존재'다. '존재'라기보다 '현상'이다. '바람'은 '현상'을 '명명'한 명사다. 그러나 그것을 명명하고 나면, 우리는 그것에 '존재'의 '상'을 짓는다.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착각이 아니라는 확신은 삶속에 종종 있다. 시간이 지나고, '아, 이러려고 그랬구나' 그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소설의 각 인물들은 외부에서 느껴지는 '바람'인지, 내부에서 느껴지는 '바람'인지를 완성하려는 욕망을 갖는다. 그 완성할 수 없는 그림은 '이상'이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바람'. 잡고자 해도 잡히지 않는 '바람'. 그 이상을 추구하는 것들...

소설의 매력은 깊이 있는 철학적 성찰이다. 바람이라는 불확실성과 한계가 명확해지는 경계점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갈망. 각 인물들이 겪는 이야기가 독자에게 여운의 바람을 남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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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시한부의 찬란한 인생 계절
서달 지음 / 온화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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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 돼야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더운 여름이 돼야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단다. 어디에 보느냐에 따라, 겨울은 따뜻하거나 추워지고, 여름은 시원하거나 더워진단다.

어디서 보건데, 겨울은 '겨우' 살아서 겨울이고 여름은 '열'이 많아져서 여름이란다. Wind가 많아 Winter가 되고, Sun이 가까워 Summer가 되듯, 조금더 '감정'을 빼고 직관적으로 이름을 지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어떤 것'은 '이름'이라는 그릇에 담겨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를 명명한다는 것을 꽤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대체로 '삶을 살아간다'라고 보면 우리의 삶은 '영속적인 오늘'을 부여 받는 착각을 받게 된다. 다만 너무나 많은 우리가 '영속적인 오늘'을 소모하며 결국 '한시적인 오늘'을 살아간다.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하던가. 과연 우리는 흘러가 버리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다시 그 자리에 발을 담그며 같은 강물에 몇번의 발을 적시고 있다고 착각한다.

'서달' 시인의 '자발적 시한부의 찬란한 인생 계절'에는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는 걸까요'라는 시가 있다.

*

우리는 무얼 향해 가는 걸까요

우리는 살아가는걸까요,

죽어가는 걸가요.

자발적 시한부의 삶은

죽어가는 것에 더 알맞을까요.

하도 닳고 닳아서

이제는 무뎌짐을 넘어서

이제는 초원해지네요.

질문에

자신 있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

시를 보건데, 나의 삶은 확실히 소모적이고 죽어간다. 나는 어제에 비해 하루만큼 더 죽어가고 있으며 하늘이 정해준 '생'의 일부를 매순간 갉아 먹어간다.

모든 사람은 '시간'을 '치사량'만큼 투여 받고 죽음으로 나아간다. 그 '약'이 때로는 고통을 잊게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게 하지만 부여된 투여량을 다 맞고 나면 모두가 사라지고 만다.

약효는 피부를 늘어지게 하고 망각을 자유롭게 하며, 내장지방을 쌓고 자산을 늘린다.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관절을 갉아 먹으며, 조금은 지혜롭게 하고 조금은 나약하게 만든다.

그 투약의 과정을 마흔 정도 받다보니, 약효가 꽤 적절하다. 가끔 나는 스스로 닳아가고 있는지, 무뎌짐을 느낀다.

20대에는 머리 손질 없이 외출을 하지 않던 것이, 지금은 늘어진 트레이닝복과 목늘어나고 구멍난 티셔츠를 입고 아이 학교길을 마중한다. 씻지 않은 얼굴에 새집을 지은 머리는 더이상 부끄러움이 없다.

투여된 시간이 얼굴을 두껍게 하여 스스로를 둔감하게 만들었으나, 가끔은 그런 스스로를 보고 거울 앞에서 세월의 무상함도 느낀다.

'자발적 시한부'라는 말은 '시인'이 직접 만들어 사용한 명사다. '스스로 삶'에 끝을 정하고 삶을 살아간단다. 모두가 망각했을 뿐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한번은 취미 생활을 위해 '자전거'를 알아보다가, 누군가의 후기 영상을 보았다. 그는 실제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환자 였는데, 그 시간이라는 것이 기껏해봐야 한달이라고 했다.

그의 채널을 보건데, 꽤 많은 영상이 찍혀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공포나 아쉬움은 없었다.

한달도 채 살지 못할 그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고 기뻐했고, 그러게 자전거를 구매했다. 영상이 촬영된 날짜를 봤더니 이미 2년이나 지나있다.

채널은 2년 전 언제부터 올라오지 않았다. 꽤 건강한 남성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는 한달이라는 시한부를 선고 받았으나, 스스로의 취미를 위해 새자전거를 구매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리뷰를 남기고 남은 삶을 즐기기 위해 여러가지 도전을 했다.

한달 간 그는 어떤 즐거운 삶을 살았을까. 그는 방학을 마치는 아이처럼 덤덤했다. 치료를 통해 삶을 연장시킬지, 그렇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일은 그냥저냥 여행하는 나라에서 비자 연장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러다 생각이 깊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준비도 없이 삶을 마감하곤 하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의 삶의 마감일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의 즐거움을 가지고 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시한부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어찌보면 꼭 나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죽음을 부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죽음'을 떼어 놓고는 결고 현명해 질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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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육아 - 엄마가 만드는 최초의 학군지
임가은 지음 / 멀리깊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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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거실 규칙.

  1. 침실에는 '책' 이외에는 그 무엇도 반입할 수 없다.

-간식거리, 전자기기는 무조건 반입 금지다. '잠'을 줄이면 '예민'해지고 '둔'해진다. 너무 당연한 일이다. '멜리토닌'은 활동 주기를 조절하는 호르몬이다. 모든 동물은 '빛'에 의해 화학 작용을 한다. 인간도 동물이다. 어둡고 밝고는 단순히 눈에 뭐가 보이냐, 보이지 않느냐,가 아니라 사람의 '수면', '지능', '체력', '성격', '인성',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2. 간식 창고는 무조건 '책'과 함께 개봉된다.

-집에는 '간식창고'가 있다. 거기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렛', '사탕', '감자칩' 등이 잔뜩 있다. 말그대로 '잔뜩' 있다. 쿠팡에서 박스 단위로 오는 간식을 주문하고 아이들에게 '직접' 간식창고에 정리하라고 한다. 아이들은 박스를 열고 과자를 정리하면서 간식창고 속에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 확인한다.

그러나 간식창고가 개방되는 시기는 오로지 '책'과 함께 할때만 이다.

동물을 길들일 때, '음식'을 가지고 길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원초적 본능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지만 '유년기의 인간'은 '원초적 본능'과 가장 닿아 있다. 고로 '달콤함'과 '책'을 연결시키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독서에 좋은 기억이 생긴다.

유대인들은 책에 꿀을 떨어뜨려 그것을 아이에게 핥아 먹게 하는 의식을 어릴 때 치룬다. 책이 달콤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3. 해야 할 일은 무조건 '아침'에 한다.

-인간의 에너지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같은 '배터리'를 공유한다. 즉, 정신적인 체력이 떨어지면 신체적인 체력도 고갈되고, 신체적인 체력이 떨어지면 정신적인 체력도 떨어진다. 이를 '자원보존이론'이라고 한다. 인간은 에너지나 자원을 한정적으로 가지고 있고 정신과 신체는 그런 자원을 서로 쉐어하여 사용한다. 고로 한쪽이 고갈되면 다른 쪽도 영향을 받는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중에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하는 이유는 그러지 않으면 일과를 마치고 노곤해진 체력에 '정신적의 의지'가 많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밤에는 쉬는게 좋고, 쉴 때 하고 싶은 일을 느긋하게 하는 편이 맞다.

4. 영상은 무조건 '영어'로 '앉아서' 시청한다.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영상 시청'에 진입장벽을 만들기 위해서다. 결코 '금지'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바른 자세로 '영상 시청'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단, 영어로만 봐야한다. 반대로 책은 '침실'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으며 누워서 자유롭게 편한 자세로 할 수 있다.

보통의 가정은 이와 반대로 일상생활을 한다. 책은 항상 '바른자세', TV나 스마트기기는 '편한자세'로 본다. 부모도 그렇지 않은가.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소파에 누워 TV를 시청한다. 인간은 '편한 자세'로 하는 행위를 휴식으로 인식한다. 참고로 '스마트기기'를 하는 것은 '쉼'이 아니다. 이는 독서하는 것 만큼 뇌를 가동시킨다. 즉 휴식이 아니라 과부화에 노출된다. 참고로 뇌의 활동은 스마트기기나 독서나 비슷하게 하지만 '휴식'면에서는 '독서'가 더 '릴렉스'되도록 한다. 그럴거면 독서하는 편이 낫다.

5. TV와 전자기기는 없앤다.

-간혹 의지력을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의지력은 소모품이다. 굳이 시험받을 필요가 없다. '마시멜로'를 눈앞에 두고 참아내는 아이와, 마시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는 아이 중, 마시멜로를 먹지 않을 확률은 후자가 훨씬 높다. 절제력이나 의지력은 항상 노출되는 '위험'으로 시험할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는 편이 낫다.

6. 부모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모르면 유혹 당하지 않는다. 부모가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할 수는 없다. 부모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최소한은 '하지 않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고, 가장 좋은 것은 부모가 '책'을 좋아하는 게 가장 좋다.

7. 외출시에는 반드시 책을 챙긴다.

-아이와 기분좋게 외출을 한 적이 있다. 한 시간 거리를 가야 하는 곳이었다. 아이의 가방에는 항상 '책'을 놓도록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가 책을 몰래 신발장에 놓고 나왔다.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다음에 잘하라고 주의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날 나는 다시 한 시간을 돌아가서 신발장에 있는 책을 가지고 오도록 했다.

책 없이 외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8. 아이에게 칭찬한다.

-가장 많이하는 칭찬은 '하율이가 재밌는 책을 잘골라, 역시'와 '다율이가 책 읽을 때, 동화속 공주 님하고 비슷해 보이네.'이다. 실제로 하율이가 고른 책을 읽을 때마다 같은 말을 한다. '이거 혹시 하율이가 골랐어? 어쩐지.. 재밌더라...'라고 말해준다. 공주 혹은 예쁜 것들을 좋아하는 다율이에게는 '책을 읽고 있는 예쁜 공주 사진이나 아이돌 사진 등'을 보여준다. '다율이가 읽을 때도 이렇게 보여'라고 항상 말해준다.

9. 일부러 정보를 틀린다.

-가령 '피노키오'라는 책을 읽을 때, 실수인 척, '오키노피'라고 이름을 말한다. 그러면 아이가 '아빠! 피노키오거든?'이라고 반응한다. '아. 그렇네. 아빠가 잘못봤네'라고 하고 '피노키오'라고 다시 언급한다. 이름 뿐만 아니라 '호랑이'를 보고 '사자'라고 말하거나, 내용을 일부러 틀리게 말한다. 그러면 아이가 다시 바로 잡는다. 바로 잡을 뿐만 아니라 관련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긴다.

10. 틀린 문제를 보면 '보석이다.'라고 말해준다.

-수학을 풀다가 틀린 문제가 있으면 '보석발견!'이라고 말해준다. '틀렸다'라는 사실에 '수치심'이 생기면, 아이는 틀린 것을 감추고자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 '틀리지 않는 무결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풀지 않는 것이다.' 풀지 않으면 틀리지 않는다. 고로 문제가 틀렸을 때, 혼내거나 가르치려 들지 말고, 그냥 '어? 보석 발견했네'라고 한다. 틀려도 괜찮다는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공부'가 아니라 '인생'에서 중요하다.

11. 자기 전에는 '소리책', 쉬는 날에는 '책방'에 간다.

-서점이라고 하지 않고, '책방'이라고 부른다. '오디오북'이라고 하지 않고, '소리책'이라고 부른다. '책'이라는 명사를 의도적으로 자주 사용하여 항상 일상에 '책'이 함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참고로 '명상어플 코끼리'에 '엄마의 인형동화'가 있는데, 그것을 항상 잘 때마다 틀어준다. 같은 컨텐츠가 유튜브에도 있으나 무조건 '코끼리'로만 틀어준다. 그것도 무조건 틀어주는 것은 아니고 자기 전에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한 경우에만 틀어준다.

책방에 가면, 도서관에 가면 '책읽는 또래'와 '어른'이 잔뜩 있다. 평소에는 스마트폰만 보던 사람들이 거기서는 종이책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한참을 들여다보며 서로에게 '이 책 재밌어'라고 은연중에 말한다. 그리고 구매하고 나온다. 그것을 어린시절 겪어야 한다.

12. 같은 책을 여러번 읽도록 둔다.

-간혹 읽은 책을 뒤집어 놓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같은 책을 여러번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부를 할 때도 일회독만 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처럼 한권의 책을 여러번 보는 습관이 중요하다. 익숙해질만하면 바뀌는 환경은 적응을 어렵게 한다. 또한 사람마다, 아이마다 애착하는 책이 다른데, 계속 다른 이야기가 온다면 금방 실증이 난다.

13. 한자는 필수다.

-한자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하루에 한글자만이라도 반드시 한다. 1년이면 365자, 2년이면 700자, 3년이면 1000자이다. 이게 6년이면 2000자인데, 수능에서 사용되는 필수 어휘 한자는 일반적으로 1800자이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

또한 암기한 한자를 시험보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그냥 모든 글이 '한자'랑 '영어'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만 계속한다. 그러면 아이가 알아서 한자를 추측하고 배우려고 한다. 또한 오늘하고 내일 까먹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지, 공부했던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잊지 않고 모두 기억하려는 것만큼 스트레스가 없다.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고 싶다면 지금부터 '희랍어 어휘'를 아이와 함께 공부해 보면 안다. 바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중요한 것은 그냥 밥먹듯 하는 것이지,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잊는다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잊을 수 있다.

14. 식탁에서 공부한다.

-부모가 식탁에서 책을 읽으면 보통 아이가 뭔가를 할 때, 식탁으로 가져온다. 학교 숙제나 책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대개 치우지 않고 놔두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그대로 둔다.

식탁은 어떤 곳인가. 하루에 세번은 반드시 앉아야 하는 곳이다. 앉아서 밥이 나오길 기다리는 곳이고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짓는 곳이다. 아이는 규칙적으로 아침, 점심, 저녁에 식탁에 앉게 되는데, 그때 펼쳐진 내용을 저절로 보게 된다. 보지 않는다면 슬며시 관련 내용을 언급한다. '아까 14쪽에 반쪽이가 사라졌었어?'

15.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학교 알림장을 스스로 읽도록 하고 옆에 체크하도록 한다. 아이가 풀어야 할 학습지는 직접 고르게 하고 함께 살핀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을 같이 정하고 함께 한다. '자기 할일은 자기가 하는 것이다'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고, '역시 알아서 잘하네'라고 주도적인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16. 스스로 결정하도록 기다려라.

-주말에 유튜브 허가 시간에 유튜브를 볼 때, 직접 끄라고 말한다. 뺏거나 꺼버리지 않는다. 하나만 더 본다고 한다면 하나를 다보면 직접 끄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끄면 그 절제심에 대해 칭찬한다. 놀이를 할 때도 놀던 거 마무리하고 직접 정리하고 나오도록 한다. 아이가 현장학습을 갈 때는 '김밥 키트'를 사서 직접 김밥을 싸보도록 하고 다음날 학교 갈 때 입을 옷은 미리 직접 꺼내 놓도록 한다. 설령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겠다고 하더라도 그냥 입도록 둔다. 직접하지 않으면 반드시 반항심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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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김남우 김동식 소설집 3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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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작가 님'이 좋아하실지, 불쾌해 하실지 모르겠다. 다만 '엽편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이기에 내멋대로 좋아하실 거라고 믿고 말한다.

'김동식 작가 님의 소설은 개인적으로 전자책으로 보기 참 좋았다.'

최근 '오닉스 팔마'를 구입했다. 언제 꺼내 보는가 하면, 대체로 길을 걷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잠들기 전 불을 끄고 나서, 정도 보는 것 같다.

내가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유는, 내가 '맥주'를 좋아하는 이유와 꽤 결이 비슷하다.

나는 입맛이 '초딩입맛'이라 아직까지는 '술보다 콜라'가 맛있다. 그러나 그 말이 거짓말인 것처럼 '맥주를 자주 마신다. 내가 맥주를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프랜즈'라는 시트콤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 '프랜즈'는 내가 해외에서 최소 50번은 돌려 본 프로그램이다. 추측하건데 해외문화나 영어를 '현지 유학생활'에서 배운 것보다 드라마 '프랜즈'에서 배운 부분이 더 많다고 느껴질 지경이다.

덕분에 드라마상 캐릭터들이 마치 현실 친구인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인데, '챈들러'와 '조이'라는 인물이 종종 '안락소파'에 앉아 병맥주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즉, '맥주'라는 술보다는 '맥주'가 가져다주는 '휴식'이라는 '감성'을 좋아하여 '맥주'를 마신다.

'맥주'를 까서 들이킨다는 것은 '이제 일과 끝이다.', 혹은 '이제 릴렉스 타임이다.'라는 의미를 가져다 준다. 고로 맥주를 감당할 수 없을 수준으로 꿀떡꿀떨 삼키는 그 모습을 3인칭 시선으로 느낀다.

종이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렇다. 종이책을 들고 조명의 조도를 낮춘 다음 안락의자로 다리를 들어 올리면, '자, 나 이제 휴식 들어간다.' 하고 '릴렉스'하는 감성이 3인칭 시선으로 느껴진다.

종이책은 그런 의미에서 '각잡고 보는 매체'다. 그러나 단순히 일회성으로 즐기고 싶은 글감도 있다. 이때는 '감성따위는 개나 주고 그냥 무감성 전자책'을 선택한다. 집중할 필요없이 가볍게 소비하는 컨텐츠를 전자책에 담아두면 머리를 비우고 그냥 즐길 수 있다.

그때, 김동식 작가 님의 엽편소설만한 게 사실 없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순간, 그냥 가볍게 걸어가는 동안에 빠르게 몰입하고 빠르게 소비하고 또 빠르게 잊게 된다.

그렇게 '김동식 작가 님'의 소설을 전자책으로 다시 보게 됐다. 그의 소설은 그런 가벼운 컨텐츠를 주로 하지만 그의 소설은 '쇼츠'나 '릴스'에서 잠시 떨어뜨려 '긴글 컨텐츠'로 가게하는 중간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한번 시작하면 멈춰지지 않는 짧은 영상 컨텐츠를 보다보면 긴글을 읽기가 쉽지 않다. 그때, 김동식 작가의 짧은 소설을 몇편 보게 되면 순식간에 분위기는 '글읽는 분위기'로 바뀐다.

나의 아이폰은 '윌라'나 '밀리의서재'와 같은 어플리케이션을 켜면 자동으로 '독서모드'로 변경된다. 독서모드로 변경되면 모든 알림은 정지가 되고 연락도 오지 않고 모든 어플리케이션도 숨겨진다.

김동식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은 나의 뇌를 '독서모드'로 순식간에 바꾸는 매력이 있다. 거의 소설은 분명 비슷비슷하면서 기발하고 읽을때는 참 기가찬데, 읽고나서는 잘 기억에 나질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글은 꽤 쉽게 읽히는 편이라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는 우리 딸이 조금만 더 커도 바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책 몇권이 종이책으로 서재에 꽂혀 있는 것이 나쁘지 않다.

기발한 소재에 가끔은 엉뚱하게 전개가 되고, 어떤 경우에는 메시지를 담고자 하는 글도 있다. 읽다보면 다음 내용이 유추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짧은 구성에서도 그것을 반전 시키는 매력도 종종 있다.

단편집 제목인 '13일의 김남우'는 역시 여러 소설의 모음집이지만 그중 13일의 김남우는 꽤 흥미로운 소재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사랑의 블랙홀'이라고 명명된 영화, 'Groundhog Day'와 비슷하다. 그 소재에서 시작하지만 진행방식이 약간 달라진다. 이런 일상 공상적인 내용의 소재는 신선하고 재밌는데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가 왜 더 나오지 않는지, 리메이크가 왜 안되는지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김동식 작가'의 소설에서 비슷한 소재를 만났다. 어떤 소설은 조금 중장편으로 이어져도 좋을 것 같다.

아무튼 당분간 그의 소설을 계속해서 읽을 것 같다. 최근 짧은 영상을 자주 보게 되는데, 역시 그의 엽편 소설로 '독서모드'를 가동 시켜야 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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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 살인
혼다 데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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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현실성있게 잔인해야지...'

라고 했다가,

'어? 이게 실화였어?'

라고 했다가,

'뭐? 오히려 수위를 낮춘 거라고?'

했다.

소설은 '기타큐슈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기타큐슈 살인 사건'은 사건 자체가 자극적이다. 사건의 배경지식이 전혀 없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나'로써는 애당초 설정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쓰면 당연히 소설은 재미가 있지.'

재밌게 쓰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가져왔다고 생각한 터였다. 그것이 실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실상 소설에 더 깊게 몰입했다.

'세뇌살인'은 '짐승의 성'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출간됐던 소설이다. 잔인하다면 항상 언급되는 소설, '살육에 이르는 병'처럼 아주 잔인하다. 다만 '살육에 이르는 병'과는 결이 다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잔인함'을 넘어선다. 잔인하기 위해 잔인한 글이 아니라,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비현실'을 '납득해 보고자'하는 탐구(?)도 함께 벌어진다.

물론 '이런 당연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지 않은가.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을 계속 생각해 보게 된다.

소설의 초반에는 일본 소설 특유의 쉽고 직관적인 문체로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살인'과 '식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살육에 이르는 병'과 비견된다는 이야기가 무색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다 독자에게 배경과 설정, 흐름에 대한 설득이 어느정도 끝난 이후에는 그 잔혹함이 몰아친다. '피와 살'이 난무하고 흔적과 과정에 대한 묘사가 역겨울 정도다.

이런 소설을 볼 때는 '시간'이 중요하다. 모두가 잠든 시간 조명을 최대한 어둡게 하고, 책을 읽기 전에 '심심함'이라는 감정을 한스푼 넣기 위해 정적인 시간을 5분정도 갖는다. 그리고 책장을 '딱' 넘긴다.

'후딱, 후딱, 후딱' 착장을 넘기며, 한참을 몰입하여 읽고 있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아빠, 무서운 거 봐?'

화들짝 놀라 페이지를 덥었다. 다시 아이를 재우고 몰래 거실로 나와 책장을 폈다. 한참 몰입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시 소리가 난다.

'아빠, 세뇌가 뭔데?'

'어허! 어서자!'

아이가 도서관에서 '무서운 책'을 빌려 올 때면 '그거 많이 보면 밤에 무서운 꿈꾼다.'라고 일러주는데, 그날은 아이가 아빠에게 한 소리를 했다.

'아빠, 무서운거 보면 밤에 무서운 꿈꾼다!'

'그래 그래'

하고 다시 침실에 누워 자는 척하다가 다시 읽는다.

몰입감이 얼마나 강한지,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택배발송'으로 갑자기 켜지는 '인터폰 화면'에 깜짝 놀란다.

'스포'가 될까봐 말하지 못했던 대략의 이야기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사건 가해자는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다. 피해자 또한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소설의 핵심은 인간이 어떻게 서서히 세뇌되고 비인간적이게 되는가이다.

사체를 훼손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어떻게 사람을 고문하고 과정에서 생긴 대소변을 먹이고 혹은 사체를 처리하는지, 간혹 뉴스에서 보게 되는 알고 싶지 않은 어떤 것들도 떠오르게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들의 정신을 점차 장악하고 조종한다. 피해자는 자신의 가족을 피해자로 만드는 가해자가 되고,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 심리적 지배를 통해 '살인'까지, 심지어 부모, 부부까지 죽일 수 있도록 하는 그 비인간적인 사건이 실제 사건이라는 것을 보며 '살인'이란 과연 '행위'로만 이루어 질 수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꽤 많은 유명인들 또한 다양한 '댓글'에 고통을 받다가 생을 달리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지배하고자 하는 일은 '살인'과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 '현실'은 간혹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현실'이 있다는 것이다.

참 재밌네, 하고 보면 실화인 경우가 참 많은데... 이 경우에는 참 씁쓸하고 안타까운 케이스라고 보여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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