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카오스 에브리웨어 - 기후변화, 금융위기, 인간을 이해하는 불확실성의 과학
팀 파머 지음, 박병철 옮김 / 디플롯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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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은 인생의 본질이다. 우리의 삶은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불확실성은 자연의 기본 단위인 입자의 기본 속성이기도 하다.'

아이작 뉴턴의 고전 역학에 따르면 속도와 뱡향을 알면 물체의 운동 상태를 예측할 수 있다. 특히 제2법칙인 F=ma에 기반하여 힘이 물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면 미래의 위치와 속도를 알게 된다.

이처럼 고전 역학은 천체의 궤도를 계산하거나, 물체의 충돌과 같은 다양한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얼마나 쉽고 간단한가.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지금을 명확하게 알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인 일이다. 고전역학에 관해 하나를 더 이야기 하자면 '라플라스의 악마'가 있다.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고전 역학에 기반한 철학적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우주의 모든 입자의 운동과 운동량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이 존재는 과거와 미래의 모든 사건을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라플라스의 악마'다.

라팔라스의 악마는 결정론적 세계관의 상징이다. 모든 초기 조건이 완벽하게 주어진다면 우주의 모든 움직임은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현대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 즉 하이젠베르크의 원리처럼 복잡계 이론이 등장하면서 이 개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고 진다. 실제로 매우 빠르거나 아주 작은 미시 세계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과 같은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현대 과학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가 고전 역학과 양자 역학을 통합하는 하나의 통합이론이라는 말처럼, 실제 고전역학의 정확성과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은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세계에 이미 존재한다. 즉 둘은 완전히 반대적 개념이지만 우리는 이 둘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세계를 살고 있다.

얼마 전, 구글이 양자컴퓨터라는 개념을 꽤 성공적으로 구현해 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구글은 '양자 우월성'이라는 획기적인 성과를 발표했는데 기존 컴퓨터로는 수만 년이 걸릴 계산을 단 몇 분 만에 해결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는 양자역학의 특성일 이용한 일 중 하나다. 양자 컴퓨터는 전통적인 이진법(0과 1)을 사용하는 대신 '중첩'과 '얽힘'이라는 양자역학적 특성을 활용한다.

양자역학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중첩'과 '얽힘'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된다. 이 개념은 단순히 '활자'로 존재를 이해할 뿐 그것이 구현된다는 것은 당췌 이해하기 어렵다. 그저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의 '리그'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다만 이 원리를 이용한 양자 컴퓨터가 0도 1도 아닌 중첩과 얽힘의 현상으로 여러 상태를 동시에 계산해냈다. 기존 컴퓨터의 한계를 극복한 이 기계는 '불확실성의 원리'가 실존하고 꽤 우리에게 가까운 미래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인간의 심리는 본래 '불확실함'을 견디지 못한다. 오죽하면 어떤 회사의 주식은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악재'가 '기사화'되면서 폭등하기도 한다. '불확실성 해소'가 실제 '악재'를 넘어서면 일어나는 일이다.

이처럼 불확실성은 우리 삶에 꽤 깊은 부분에 침투해 있다. 당장 10년 전 오늘과 가장 비슷한 기후를 찾아 내일의 일기를 예측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확정된 과거'를 통해 '불확정된 미래'를 알고자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기 예보가 그렇듯, 그것은 확률로만 존재할 뿐이다.

요즘의 일기 예보에는 '비가 옵니다' 혹은 '눈이 내립니다'를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강우 확률 70%'라는 숫자로 말한다. 이 확률은 꽤나 양자역학과 같다. 강우 확률 70%는 비가 오지 않을 확률인 30%와 동시에 존재한다. 이처럼 중첩 상황이 동시에 등장하는 것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이미 익숙해져 있다. 상자를 열어 볼 때까지, 고양이는 죽어 있음과 살아 있음의 중첩 상태에 있다가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결정되는 이론 말이다.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처럼 '양자역학'을 닮은 이유는 자연의 기본 단위인 입자 기본 속성이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확률적으로만 존재'한다는 이 이론 때문에 우리는 아이리하게도 크게는 고전역학에 기대고 작게는 양자역하게 기대는 모순적인 상황에 맞이하게 된다. 꽤 그렇다. 우리는 뉴턴이 정의한 고전물리학의 거시세계를 살면서, 닐스 보어가 말하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간접 경험한다. 심리적으로 혹은 일기예보를 통해서.

결국 우리는 공존할 수 없는 이 둘이 내부적, 외부적으로, 미시적, 거시적으로 공존하면서 결국은 코스모스와 카오스가 적절히 섞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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