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평정심 공부 - 마음을 다스리는 다산의 6가지 철학
진규동 지음 / 베가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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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죽고 노론이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내린 왕명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져 있다. '코를 베어서 죽이고 씨가 남지 않도록 하라.' 이 일로 주변사람들이 능지처참을 당하고 친구들이 죽고, 자신과 둘째 형이 유배를 가게 됐다. 국가를 위해 정치를 한다는 일념 중의 패배는 이처럼 멸문지화와 폐족으로 번졌다. 이런 일 중에도 다산은 두 아들에게 가르침의 편지를 보내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했다. 현재의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 젊은 이들에게 다산이 보내는 편지와도 같다. 삶은 꼭 밝은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담담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나아가다보면 꽃길 뿐만 아니라 진흙길도 만나는 법이다. 이 모든 길은 지나가는 길에 불과하다. 꽃길을 만났다가 좋아할 필요도, 진흙길을 만났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이 길은 우리의 목적지가 아니며 단순히 지나가는 과정에 비춰지는 배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담담하게 맞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확신에 차게 만들어 주었을까. 불확실하고 어두컴컴한 미지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의 앞길을 비춰 줬던 건 다름 아닌, 독서였다. 그는 자신과 두 아들에게 '독서'가 어두운 미래를 비추는 등불과 같다고 항상 말했다. 어느 길로 가던 원하는 목적에 도달한다면 내가 지나 온 길 따위는 그저 스치는 작은 기억에 불과하다. 이미 꽤 과거가 된 군대 행군의 길은 그것이 오르막이었건, 내리막길이었건 지금 내 인생에 크게 중요치 않다. 당시 숨을 헐덕이며 오르막이 나오지 않기를 바랬던 간절한 소망은 인생 전체에서 작디 작은 흔적일 뿐이며, 내가 겪었던 간절한 소망과 바램 또한 지금 느끼는 선선한 바람의 촉감보다 작디 작은 먼지같은 자극일 뿐이다. 유배의 기억을 '여가'의 기억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은 현재를 통해 과거를 언제든 긍정할 수 있는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과거는 현재가 하고 있는 재해석에 불과하고 미래란 현재가 만들어낸 망상일 뿐이다. 불행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 모든 것은 현재의 해석하고 망상하기에 따라 '긍정'과 '부정'으로 나타나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간절하게 과거와 미래가 불행하길 바란다면, 현재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극도로 이 양극을 불행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해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양극을 언제든 '긍정'적으로 해석해 낼 수 있으며 굳이 긍정일 수 있는 걸, 부정으로 해석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치아'가 사라진 스스로를 바라보며 '치통이 사라졌네'라고 긍정의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태원' 님의 이야기가 다산의 일화와 오버랩 된다. '시력을 잃으니, 큰 병을 고쳤다'는 그는 아주 사소한 먼지에도 신경이 쓰이는 결벽증 환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두 침침해지는 눈 때문에 그는 그를 괴롭히던 '결벽증'이라는 신경증이 저절로 치유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신에게 닥친 일에는 '어두운 면'만 가득할 거라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좋을 게 없는 당신이 처한 바로 '그. 상. 황.'에도 분명히 좋은 일은 존재한다. 예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고 한다. 한 쪽 면에는 그 일로 얻게 된 나쁜 일을 적어두고, 다른 쪽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을 찾아 적었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면과 나쁜 면의 균형을 정확하게 맞추고 나면 현상과 사물의 본질이 뚜렷해진다. 어린 시절 제주 남쪽에 있던 중학교 교가에는 '북쪽의 한라산...'이라는 가사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제주 북쪽으로 입학하니, '남쪽의 한라산...'으로 바뀌었다.

두 학교는 한라산을 두고 '남산'이냐, '북산'이냐를 따질 수 없다. 우리가 어디 곳에 서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그것은 '남산'이기도, '북산'이기도 하다. 바라보기에 그 모양도 충분하게 다르다. 남쪽에서 보는 산과 북쪽에서 보는 산의 모습은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완전하게 다른 산이며, 공통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단 한군데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럼 모든 상황과 사물은 단 하나이지만, 어느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위치는 바뀐다.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단, 하나도 절대적인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은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라산이 북쪽에 있기를 바란다면 몸집만한 커다란 삽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꼭대기로 향할 것이 아니라, 산을 둘레로 한걸음 한걸음 나가아가면 된다. 남산을 북산으로 바꾸는 작업은 이처럼 간단하고 쉬운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면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은 본질을 파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다산의 일처리에서도 알 수 있듯, 기존의 편협한 사고와 악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상황과 사물을 보는 것을 익숙하게 했다. 다산이 갖고 있던 여러가지 의미와 업적에 그의 '긍정적인 성격'은 몹시 축소됐다. 이미 시간이 지나 의미가 사라진 그의 여러 업적과 행동들이 많다. 그 중 우리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그가 갖고 있는 본질을 파악해내는 능력이다.

그는 상황과 역사의 본질을 꽤뚫는 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과 삶을 꽤뚫는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분명하게 책을 좋아하고 자신의 얻은 철학을 나누고자 503권의 책을 남겼다. 그의 인생은 곧, '책'이었다. 그것이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웠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 책은 책 좋아하는 선비의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배우는 책이다. 몹시 가볍고 읽기 좋다. 다산이 적어둔 시들은 벌써 20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렵고 골치 아픈 이야기나 할 것 같은 '정치인'이자 '학자'인 글에서 인간미와 삶의 철학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목민심서'를 읽어 볼 것이 아니라, 이처럼 가벼운 '그의 삶과 생각'을 먼저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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