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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제레미아스 아담스 프라슬 지음, 이영주 옮김 / 숨쉬는책공장 / 2020년 6월
평점 :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사람이 책의 가운데 위치해 있다.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에 귀여운 헬멧을 쓰고 있는 사람의 사진은 애초 이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 했다. '들어가며'를 읽고 다시 마음을 고쳐 들었다. 책은 생각보다 가벼운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다. 또한 내용도 가볍지 않다. 책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익숙치 않은 용어들도 많이 등장한다. 이 책은 새로운 세대를 접하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내용이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알아야할 내용이 이토록 어렵다는 얘기는 우리의 무관심을 이야기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작과 동시에 '투르크인'에 관한 예시가 불쑥하고 나온다. 투르크인은 1770년 오스트리아 빈에 있던 세계 최초의 완전 자동 체스로봇을 말한다. 1770년이면 대략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였던 그 즈음이 되는 듯하다. '우리나라가 노론과 소론으로 나눠 신나게 싸우고 있을 때, 오스트리아에서는 인공지능을 이미 개발했다.'라고 탄식을 하기에는 너무나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세상에 빛을 받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던 시기, 오스트리아에서도 비슷한 행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투르크인의 체스판 안쪽에는 숨겨진 칸이 있었는데, 그 안에 사람이 웅크리고 앉아 체스 말을 움직이는 것으로 작동 되는 원리였다. 사람들이 체스라는 보드게임을 즐기기 위해, 누군가는 뒤주 같은 작은 공간에서 희생하는 일이 필요했다. 오스트리아의 국모인 테레지아 여왕 궁정에 소속되어 있는 일종에 이 노동자는 사용자들에게 혁신적인 오락거리를 제공하고, 소유주에게는 커다란 이득을 안겨 주었다.
역사와 사회는 신박한 혁신이라는 이름을 남겼지만, 체스판 안쪽의 노동자는 이름조차 남길 수 없었다. 21세기 우리는 제레미아스 아담스 교수가 예시를 들었던 '자동 체스 로봇 안의 노동자'의 비극을 얼마나 재연할까? 이 책은 체스판의 소유주의 입장도, 체스판 사용자의 입장도 아닌, 체스판 안쪽의 노동자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있다.
플랫폼(Platform)이란 원래 기차나 전철에서 승객이 타고 내리는 승강장을 말한다. Plat 자체가 조그마하고 평평한 땅을 말하는데, Place(평평한 장소), plat(작고 평평한 땅), Plane(평평한 면), Plate(평평한 접시), Plain(평지)와 같이 평평하고 고른 면을 가진 것을 말한다. 이런 플랫폼은 사용자가 제공자 둘 사이에서 만날 수 있는 기본적인 평평한 땅 정도만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 승강장에서 사용자와 제공자는 마음 것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실현 시킬 수 있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해보인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 사업이 확장되면서, 우리는 무수하게 많은 피해를 목격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누군가의 명예를 회손한다거나, 청소년에게 유해 매체물을 제공한다거나, 혹은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공개 등의 막심한 피해를 사회적으로 겪었고 목격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N번방 또한 트위터라는 플랫폼을 통해 이용자와 제공자가 불법, 합법가리지 않고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토록 많은 불법이 일어나면서, 플랫폼 기업은 단지 '멍석만 깔았다'는 이유로 법적인 책임을 항상 벗어나곤 했다. 단지 칼을 팔았을 뿐 그것을 살인의 도구로 사용하던지, 음식을 만들기 위한 식기구로 사용하던지는 판매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모호한 사업의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사건들에 이제 플랫폼 기업들도 적당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베트남이나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비트코인이 불법이다. 비트코인은 최초 목적과는 다르게 우리가 말하는 어둠의 경로에서 자금 세탁이나 범죄와 연류된 일에 자주 쓰인다. 이런 일을 방지하고자, 사회주의국가에서는 비트코인이라는 플랫폼 자체를 불법화 시켰다. 하지만 일본, 미국, 한국 등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불법'이라는 판결대신, '적정한 규제'의 수준으로 적당히 사회에서 순기능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처럼 플랫폼 사업은 사용자와 이용자 간의 사용 목적과 방법에 따라 사회의 '악'이 될 수도, '선'이 될 수도 있다. 이토록 인간의 본성이나 자본주의의 원칙에 맡기고 나면, 순전히 '악'의 영향이 많은 양날의 검인 플랫폼 산업의 순기능 역할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적절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 이 책은 플랫폼 기업이 간과하는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법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측면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타다'라고 우리나라에서 아주 핫한 이슈가 있다. 미국처럼 시원하게 국가에서 밀어줘도 모자랄 판국에, 왜 규제를 하고 혁신을 가로 막는가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무능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혁신'이라는 이름에 숨겨진 '노동자의 권리'가 그렇다.
책에서 언급한 사업은 아니지만, 쉽게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유튜버나 블로거 같은 경우도 비슷한 처지라고 볼 수 있다. 유튜브 영상을 10시간을 이용해 찍던, 5시간을 찍던 이는 노동법상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세금에서도 불명확한 부분도 분명하게 있다. 이런 산업의 확장될수록, 과연 노동자들은 법적인 권리를 과연 보장 받을 수 있는가?
그렇다. 혁신이라는 이름 때문에 보호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어찌보면 '플랫폼 기업가'의 권익을 위해 노동자의 권익을 말살시키는 정책과도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보수층을 대표하며 대통령으로 당선 되고, 미국 플랫폼 사업은 더할 나위 없이 주가가 고공행진 중이다.
트럼프는 트위터로 중대한 결정 사항을 발표할 만큼 플랫폼 사업을 애용하는 인물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더 노스 페이스'는 페이스북 광고를 정면 중단하기로 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거짓 CNN 뉴스 영상을 이용해 게시한 정치 선동 글에 대해 페이스북이 무대응 대처를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페이스북은 시위대를 폭력배로 지칭하고 약탈과 총격이 시작된다는 트럼프의 글을 그대로 두었는데, 어찌 됐건, 플랫폼 기업과 미국 보수집권당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시기라고 볼 수도 있다. 예전에 피자 배달 주문을 하고 30분 안에 배달이 오지 않으면 피자가 공짜라는 마케팅이 있었다. 이런 '30분 피자 배달제'는 인권의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사업주는 이런 '30분 피자 배달제'로 인해 매출이 오르고, 사용자들은 빠른 피자 주문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배달원의 인권이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이 마케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면 폐지되었다.
이처럼 10년전 이미 사라진 '30분 피자 배달제'는 어쩌면 우리에게 플랫폼 기업에 대한 노동자 권익 보호에 대해 우리의 역할을 시험 해 봤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30분 그리고 수 분의 기다림을 가지는 정도의 불편함이 생겼지만, 피자 배달원들의 안전과 인권에 대해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어쩌면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플랫폼 노동자들의 인권과 이득을 갉아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법률의 모호성에 의해 생겨나는 사회적 혁신과의 대립의 문제도 있지만, 이는 조급함 없이 차분하고 성숙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