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출간된 '위험한 생각들'에서 모티브를 얻어, 우리나라 법학자들과 실무가들이 법학에서 '위험한' 생각이라는 주제로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법 제도가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역사나 다른 나라의 입법례, 여러 이론들을 통해 보여준다. 사회 변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이 기존의 법 제도에 가하는 균열을 제시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상해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혼인제도에서 인척간의 결혼(형부/제부, 형수/제수와의 결혼)이 왜 법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글, 기술발달에 따라 남녀평등이 강화되어 일부일처제에 균열이 생기고 군혼과 군족(다부다처제)이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담은 글, 혼인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개개인의 권리가 강조되면서 국가와 법은 혼인제도를 최소한으로 규율하게 되거나 계약법 등 다른 개별적 법률제도를 통해 규율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글도 있다.

  한편 정신의학에서 인정되는 정신장애(예를 들어 충동조절장애, 인격장애, 소아기호증 등)을 형벌의 감면사유가 되는 '심신장애'로 넓게 인정하자는 논쟁적인 글도 있다. 정신장애는 형벌로 다스릴 것이 아니라 치료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형벌/형법의 존재 정당성, 폐지론, 대체형벌에 대한 논의를 소개하는 글도 있다. 통계상, 역사상 형사제재에 예방적 기능이 있는지 의문이 있으므로, 형벌의 미래/대안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맥락에서, 갈수록 비대해지는 형벌의 기능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 본성의 회복을 위해 예방처분으로 보안처분의 일원화를 논하는 글도 있었다. 법인 활동에 대한 제재로 형사제재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으므로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그 밖에도 도박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글, 마약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즉, 제3자에 대한 도덕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에 대한 글, 성매매 금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 '위험한 생각들'에 실린 리처드 도킨스의 책임, 응보론(범죄자를 고장난 기계로 보는 관점)을 비판하는 글도 있다.

  대법관과 정의, 대법원 판례에 대해 논한 글들도 있다. 시간, 공간, 상황(정권), 환경, 판단주체(대법관의 성향) 등에 따라 달라져 온 대법원 판결과 법을 어떻게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편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대화를 한들 완벽한 정의에 이르지 못하는데 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인공지능에 의한 판결은 가능한가에 대해 논했다(결과적으로 인간이 만든 대상의 판단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대법원 판례의 구속력과 효력, 법관의 양심의 관계에 대한 글, 법의 명확성, 이해가능성의 문제를 다룬 글도 있었다.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공리주의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지 논의하는 글, 하이브리드 민주주의의 가능성, 주권논리에 매몰되지 않은 민주주의를 모색하는 글, 최근 국제법의 동향과 국제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 주목한 글(특히 최근 국제법의 논의가 국가중심적 법체계에서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인간중심적 법체계로 변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국제법의 역할과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것 같다), 공무원의 품위유지의무에서 '품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고민한 글, 조세법 제도에서 현행 증여세 완전포괄주의의 문제점, 조세부담의 한계를 설정할 필요성을 논한 글도 있다. 기술발전과 관련해서 인공지능의 한계를 논한 글, 가상국가(비트네이션) 가능성에 대해 논한 글,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법 해석 문제,  인지를 향상시키는 뇌기술을 허용할지 여부(전면 금지는 어려울 것이므로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를 고민해야한다는 논지였다)를 다룬 글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스티븐 핑커의 짧은 특별기고문(다른 매체에 쓴 글을 동의를 받아 번역수록한 것)은 표현의 자유가 왜 근본적인 권리인가에 대한 글로서, 논쟁적이고 위험한 생각들을 담은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글이기도 하다.

 

  서문을 보면 가급적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법적 용어를 제한하고 쉽게 쓰려고 했다는데, 그래도 법학이나 사회과학 용어가 많이 등장하고 논문 형식으로 되어 있어 솔직히 글 자체가 그렇게 읽기 쉽거나 재미있는 편은 아니다. 꾸역꾸역 읽은 글들도 많았다. 영어로 된 논문 그 자체만 싣고 번역은 싣지 않은 것(로봇과 인공지능, 로봇범죄와 형사책임, 특허침해에 대한 구제수단)도 3개나 되는데, 학술지도 아니고 이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쉽게 읽도록 쓴 책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어떤 독자층을 생각하고 만든 책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좋은 면을 이야기하자면, 국내외 훌륭한 법학자와 실무가들(그리고 스티븐 핑커)이 모여서 쓴 책이니 배경지식이 많거나 관심이 많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논쟁을 던지는 글들이 많았고, 읽으면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구나 지적 자극이 되어 좋았던 글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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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바로 세상을 배웠다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인생 사용 설명서
황해수 지음 / 미래타임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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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 청년이 17세부터 수많은 알바를 하면서 겪은 일들과 생각을 엮은 책이다. 글쓴이는 알바를 하면서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일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각양각색의 사람들, 알바가 처한 부당한 현실과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각종 갑질과 부조리를 엿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는데 글쓴이가 고생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런 동기에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나는 글쓴이보다 나이가 많지만 그처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치열하게 몸으로 부딪혀가며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경험에 너무 갇힐 필요는 없지만 경험한 만큼 달리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약간 자기계발서 느낌도 났지만 자신이 직접 겪고 깨달은 것을 솔직하게 적은 것이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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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터 Littor 2018.10.11 - 14호 릿터 Littor
릿터 편집부 지음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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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릿터의 주제는 난민.
우리 사회가 난민에 대해 갖는 막연한 거부감 또는 위선에 대해 꼬집는 글들이 많아서 좋았다. 우리나라 난민의 역사, 난민법의 도입과 시행 현황에 대해 소개한 글도 도움이 되었다. 이번호 릿터를 읽으면서 나도 난민에 대해서는 개념이나 생각이 명확히 서있지 않은 상태였단 걸 깨달았다. 권여선, 우다영 작가의 소설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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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강민선 지음 / 임시제본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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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새로나온 책 코너를 뒤지다가 문득 재미있어 보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은 책이었다. 도서관 사서 일에 대한 로망도 좀 있고 궁금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어느 정도 그렇지 않을까.

 

이 책은 도서관 사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서가 아니라, 도서관 사서로 4년 6개월간 일한 이가 겪은 일을 쓴 에세이이다. 글쓴이는 준사서자격증을 따고 구립도서관에 계약직 사서로 취직한다. 입사해보니 사서가 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 도서관에 붙일 포스터나 안내문을 만들고, 우편으로 책도 빌려주고, 빌려준 책을 여기저기 수거하러도 다녀야 한다. 부족한 예산을 아끼기 위해 이것저것 다 한다.

공공도서관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니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IMF 이후로는 서울시 대부분의 도서관이 민간 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위탁받은 민간운영주체에 따라 도서관의 성격이나 직원 복지 등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한다. 글쓴이가 일한 도서관은 불교재단 소속이었다. 스님인 이사장이 많은 것을 좌지우지했다. 매달 열리는 이상한 전체회의, 초과근무수당 없이 일하는 직원"봉사"의 날, 법인기부금 요구, 석가탄신일 "봉사", 후원금 요구, 그 밖에도 쉬쉬하는 일들. 어느 직장이나 어두운 뒷면은 있겠지만, 공공도서관마저 그럴 줄은 몰랐다. 도서관과 사서 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깨졌다.   

그래서 글쓴이는 일을 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냈다. 자기 책을 써서 스스로 출판하는 것. 이 책은 원래 독립출판물로 나왔다고 한다. 글쓴이는 책이 나온 후 더 이상 근무하기 어려워져 사서 일을 그만두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책 덕분에 그 도서관의 처우가 조금은 나아졌다고도 한다. 이 책 덕분에 독립출판물을 구비하는 공공도서관도 더 늘었으면 좋겠다. 사실 독립출판물은 쉽게 접근하기도 어려운데 공공도서관이 구입해준다면 이용자에게도 책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공공'이란 그런 것 아닌가. 이익은 안 돼도 결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   

 

사실 잘 모르고 그냥 샀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감동적이어서, 뜻밖에 받은 선물 같은 책이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책나래, 그 해 여름, 세 사서, 독립출판물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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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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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생 나고야 출신 젊은이가 1977년 재수를 하려고(사실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도쿄로 올라와서 1989년 30세가 되기까지 겪은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상경하고 대학생활을 하다 중퇴하고 취직해서 밤낮없이 살아보고 어느 정도 사회물이 들고 연애도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가 6개(여섯 날)의 에피소드로 압축되었다. 3인칭 주인공의 속마음이 1인칭처럼 그대로 드러난 부분은 처음에는 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읽다보니 익숙해졌다. 일본의 1980년대 영화, 노래, 배우와 가수, 스포츠스타나 그때 있었던 사건들이 군데군데 세밀하게 그려져 있고, 도쿄의 풍경이 변해가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어 마치 일본판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방에서 올라와 처음 서울 생활을 시작했던 시절을 떠올렸고(도쿄 애들이 나고야를 시골이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참 비슷하다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주인공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부모님의 청춘은 어땠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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