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만날 때마다 자꾸 공산당선언은 읽었냐고 묻는 공룡화석같은 운동권 출신 아빠 김헌영.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1980년 데모 때 최루탄을 피해 화실로 뛰어든 아빠를 만나 결혼하게 된 화가 엄마 노윤진(미스엔).

위장취업 동지로 아빠와 만난 승지 엄마.

저녁에 6시간씩 아이스크림집 알바를 뛰는 20대 초반 대학생인 나 김호은.

제비꽃이라는 이름의 토끼를 기르는 중학생이자 아빠가 승지엄마와 만나면서 딸로 맞아들인 승지.

 

엄마는 이혼 후 미술학원을 운영하다가 돈을 벌러 떠나고 나는 4년간 외가에 얹혀 살았다. 2년만에 재회한 엄마는 그동안 돈을 벌어 방 3개짜리 24평 재개발 직전 아파트를 마련했다. 

오랜만에 연락 온 아빠는 나에게 승지를 엄마에게 데려다 주라 하고 떠난 후 연락이 끊긴다. 자기 애인의 자식을 전처에게 맡기려 하다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엄마는 아빠에게 승지를 다시 데려다 주기 위해 나와 함께 지방도시를 전전하면서 아빠의 단서를 찾아다닌다. 그러면서 나는 옛 기억을 떠올린다. 아빠가 승지 엄마에게 도장케이스를 선물하던 풍경과 아빠는 그 도장케이스를 결혼기념일 선물로 엄마에게도 주었던 것. 운동권이었으나 운동권이 몰락한 후로도 가족을 지키지 않고 속물이 되기를 포기한 아빠에 대한 원망. 아빠의 친구였던 해자, 경자 아저씨. 고등학교 시절 사랑했으나 느닷없이 멀어진 후배 K이야기(K와는 이후 재회했으나 나와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 다른 이유를 마음에 품고 헤어졌던 것). 사라진 공룡같은 아빠. 아빠를 찾는 일은 허탕치고-사실 승지는 아빠의 행적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 한다-엄마와 나, 승지의 불편하고 어색한 동거가 시작된다. 그러다 엄마의 애인도 동석한 엄마의 생일파티, 승지의 첫 생리, 함께 보낸 주말, 백화점 쇼핑, 다툼, 대화를 통해 나와 엄마, 승지는 서로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된다.

 

읽으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고 자꾸 끊기는 느낌을 받았다(실제로 이 책을 쓸 때 종종 중단했었다고). 반복되는 문구와 단어, 가끔씩 튀어나오는 설명조 대사의 어색함, 지금 보기에는 조금 촌스럽고 인위적인 설정도 단점이다.  

하지만 세속적인 삶에 묵묵히 복무하는 것의 소중함-그 어떤 것을 너무 사랑하게 되면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하게 된다는 것, 사랑하고 자식을 낳는 것의 의미. 의식주, 생계, 교제, 역할, 사랑, 청소, 밥하기 등 온갖 노력들의 경건함, 미스엔, 한 여자로서 살아가는 엄마의 이야기는 충분히 인상적이고 나에게도 격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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