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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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허지웅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이글루스에서였던 것 같다. 글이 재미있어서 새벽 내내 읽기도 했다. <대한민국 표류기>를 읽은 후로 그의 책을 일부러 골라읽지는 않게 되었다. 책이 별로였던 건 아닌데 굳이 그의 글을 또 읽고 싶지는 않았다. 그를 티비에서 자주 보게 된 후로는 더욱 읽고 싶지가 않았다. 유명세로 책을 파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서점에 들렀다가 가벼운 책이 읽고 싶어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책은 무겁고 빡빡하게 읽혔다. 좋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인데, 에세이 한 권에 담긴 글이 모두 마음에 든 적은 없고 그 중 마음에 남는 글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호감도가 달라진다. 이 책에는 마음에 남는 글이 많았다. 

  어머니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좋은 어른이 되지 못할까봐 겁내고 두려워하는 것도 좋았다(나도 좀 겁낼 필요가 있다). 바라는 대로 좋은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청소에 관한 이야기, 내가 못 본 영화나 책에 관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그 중 몇 개(졸업, 분노의 질주 시리즈, 모래의 여자, 벨벳 골드마인, 페드라, 데몰리션, 버스터 키튼의 영화들, 4등, 마진 콜, 투 빅 투 페일, 빅 쇼트, 인사이드 잡)는 찾아 보고 싶다. 순백의 피해자, 내부고발자, 가해자와 피해자, 끓는점 이야기에서는 무릎을 탁 쳤다. 

  얼핏 보면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 그의 글은 매우 뜨겁다. 냉정한 것을 쿨한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는 걸 그의 글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는다. 가끔은 글이 너무 감성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감성 때문에 마음이 울리기도 했다. 이야기나 표현이 재탕되고 뜬금없는 줄 띄우기가 가끔은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뭐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카일로 렌의 외모에 대한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다. 

  에세이는 저자와 따로 떼어 볼 수 없는 것 같다. 저자에 대한 호감이 글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고 글에 대한 호감이 저자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가 논쟁적인 글을 써서 사람들의 욕을 많이 먹었음에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한다(그가 사랑한 형 신해철도 그랬다). 만일 그가 조금만 덜 패셔너블(?)했다면 그의 글을 좀 더 좋아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 별 네개 정도의 거리에서 응원해야겠다. 

남의 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남 탓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은 쉽게 불행해지지 않는다. 불행할 시간이 있으면 더 많은 걸 책임지고 노력한다. 어른스러운 길이란 건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선택과, 이후 어른스럽게 책임지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들이 행복했을 것이라,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행복할 거라 확신한다. <졸업>은 낭만이나 후회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생의 다음 페이지를 넘길 때 느껴지는 단 한 장의 촉감과, 그것의 어마어마한 무게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만하다는 것에 관한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영화(벨벳 골드마인)는 내가 그 모든 혼돈에 휩쓸려 익사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관찰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삶과 혼돈은 결코 유리되거나 결별할 수 없는 것이기에, 매번 마냥 슬퍼하고 분노하기보다 껴안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필요를 알려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우는 건 하나도 슬프지 않은데, 울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너무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

이 영화(데몰리션)의 주인공이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보기 드물게 솔직하다. 대개 사람은 어떤 상황을 맞이했을 때 학습된 대로 행동한다. 슬픈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기쁜 일이 생기면 저렇게 한다. 그렇게 행동하는 게 타인의 감정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상황을 빠르게 무마하기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학습된 대로 행동하지 않고 자기 기분이 왜 이런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찾아내길 바라고 또 끝내 규명해낸다. 그에 따르는 수많은 타인들의 오해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소란이 따랐음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진 건 주인공의 용기와 끈기 덕분이다. 시끄럽게 만드는 것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전에는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쉽게 까먹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까먹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까먹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까지 함께 잊어버리기 마련이더라. 그리고 그렇게 까먹은 중요한 것들은 너무 중요하고 소중해서, 반드시 훗날 가슴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어쩌면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필요한 건 망각이나 체념이 아니라 이해하는 태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이해 말이다.

사람들은 간과한다. 순백의 피해자라는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자신 또한 언젠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순백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제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던 그 많은 피해자들을 떠올려보자. 어쩌면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라 모두에게 엄정하게 적용될 원칙과 약속

누구나 그럴듯한 상황과 환경이 주어지면 사랑을, 혈연을, 우정을, 금전을, 위계를 빌미로 악을 행사한다. 그 자신만이 그것을 악으로 인식하지 않고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 혹은 선의로 인식할 뿐이다. 악은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지 않는다.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란 그렇게 힘들다.

살아가면서 모든 선택과 결정은 결국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적인 것을 부정한 것으로 환원시키고 모든 종류의 비판적인 텍스트를 정치적이라 겁박하는 시도들은 가장 음흉하고 비뚤어진 형태의 협박이며 가장 저열한 수준의 정치다.

자랑스러운 역사란 왜곡된 자화자찬이 아니라 그 모든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거듭해가며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유와 반성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과거는 대개 창피한 것이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돌아볼 수 있는 정직함만이 늘 위대하다.

명백한 사실관계를 두고는 균형을 찾을 이유가 없다. 확실한 사실관계를 두고도 무게중심을 찾는다며 진영논리를 끄집어내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그들은 용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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