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배신 -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
윌리엄 데레저위츠 지음, 김선희 옮김 / 다른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미국 명문대생들의 우울증, 두려움과 불안, 좌절, 공허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들에게는 강박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욕망과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태도, 그러면서도 은근한 열등감이 공존하고 있다. 미국 명문대는 (기부입학 등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못지 않은 경쟁과 스펙쌓기를 해야 입학할 수 있고, 학생들은 입학 후로도 성적관리, 스펙쌓기 등을 통한 취업준비를 계속해야 한다. 갈수록 경제학 등 실용적인 학문의 비중이 높아지고 졸업 후에는 상당수의 학생들이 컨설팅회사, 투자은행 등 고액의 연봉이 보장되는 회사로 안착한다. 이들은 명문대를 졸업한 만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부와 안정, 명성이라는 제한된 개념 안에서만 움직이려는 경향을 보인다(가능성의 역설). 학생들의 평온함, 뛰어난 달성이라는 허울 뒤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숨겨져 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실패를 경험한 적이 거의 없으므로 실패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그리고 그 두려움은 이들의 부모의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이 학생들은 매우 지적이고 성취도가 높지만 똑똑한 양처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생각이 없다.  

미국의 명문대(하버드, 예일, 프린스턴)는 남북전쟁 후 생겨난 신흥 부호세력이 자신을 여타 이민자들과 차별화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성장했다. 위 대학들에서는 처음에는 부유한 계층의 덕목을 갖춘 이들을 주로 선발하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SAT 등 수학능력을 중시하는 것으로 입학생 선발 기준을 바꾸면서 기존에 요구하던 상류층의 자질(봉사, 리더십, 면접, 추천서 등)에 수학능력까지 함께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바빠지고 명문대 입시경쟁률은 상승하였으며 대학평가순위 공개에 따라 입시열풍은 더욱 심해졌다. 학생들을 몰아대는 중상류층의 고압적인 학부모(이른바 헬리콥터 부모, 타이거마더)도 등장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다른 이들보다 월등하다는 과대망상과 자신이 사실은 그렇게 잘나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하여 생겨난 우울증 사이에서 극단적으로 흔들린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아를 형성하면서 스스로의 감정과 욕망을 알아보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대학에서 왜 리더십, 봉사정신 등을 요구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없이 학생들은 입학에 필요한 위 덕목들을 '습득'하고 입학원서에 쓸 자신을 포장하는 법을 배운다.

대학들은 시설에 치중하고 등록금을 인상하면서 취업을 위한 전공수업에 치중할 뿐 삶의 목적과 같은 중요한 질문에 대해 더 이상 다루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전공과목에서 학문적 엄격함이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취업을 위해 높은 학점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과 대학 운영을 위해 기부금 등을 얻어내야 하는 대학의 상호협력에 따라 학점 인플레 현상이 일어난다. 학생들은 높은 기대를 품고 명문대에 입학하지만, 대학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대학에서 배워야 할 것, 그리고 대학이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 

먼저 학생들은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존의 편견, 관습적 생각에서 벗어나 습관적으로 의심, 비판하고 그 의심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도록 교수는 접근법을 제시하고 지도하며, 학생들은 교수의 지도를 받으면서 동료들과 토론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나중에는 배울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다음으로, 학생들은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자아를 형성해야 한다. 누구나 정신을 소유하고 태어나지만, 그 정신은 성찰, 자기검열, 정신과 영혼, 정신과 경험 사이의 소통을 통해서만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존재, 즉 영혼이 된다. 학생들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현재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이 훌륭한 사람이고 어떻게 하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가를 발견해야 하고, 대학은 그 과정에서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은 평생 계속되므로 대학시절부터 고뇌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은 소명을 찾고 도덕적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야 한다. 도덕적 문제해결능력이 있는 사람, 즉 도덕적으로 용감한 사람은 스스로 가치판단을 하고 선택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소명은 자발적으로 하게 되는 일, 몇 시간씩 몰두할 수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다고 믿고 사랑하는 일을 선택하여 찾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상(덕목)은 우리에게 지위와 부, 성공이라는 유혹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성공 대신 일 자체를 목표로 삼아라. 일과 사랑만이 인생에서 남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리더십과 봉사정신을 요구하지만 그러한 덕목에 숨은 욕구를 직시하라. 예를 들어 봉사는 내가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신에 대한 봉사(service)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스스로를 낮추어 남을 섬겨야 한다. 지능은 윤리적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기초학문(역사, 철학, 종교, 문학)이 중요하다. 기초학문을 배움으로써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스스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타인과 의사소통, 협업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서 배움을 시작해야 한다. 교수는 그 과정에서 생각의 기술, 즉 반복과 점진적 변형, 확장을 통해 다른이의 주장을 분석하고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는 법을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 

최근 등록금이 인상되고 특히 명문대의 경우 다양한 덕목을 요구하여 입학준비에 드는 비용이 증가하면서 겉보기에만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으로 보일 뿐 실제로는 학생들의 계층이 점차 중상류층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백인 상류층 자제, 아시아계 상류층 자제 등). 소수집단을 우대하는 정책이나 장학금 제도는 실제로는 경제적 이유 등 다양한 이유로 대학을 지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대학은 계급을 재생산하는 시스템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저자의 위와 같은 비판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특히 대학입학 기준의 문제, 이에 따른 학생들간 경쟁 심화 및 계층 집중 경향, 스펙쌓기열풍과 대학의 상업화에 따른 교육의 부실화 등의 내용은 우리나라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모두가 대학에 가야한다고, 그 중에서도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왜 가야하는지, 가서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다(자기소개서에 쓰는 포장된 글 말고). 나의 대학입학 및 진로선택 동기, 내가 대학에서 배웠던 것, 대학생활을 돌이켜보아도 그러하다(그래서 방황했지). 현재의 대학입시 및 교육시스템이 말 잘 듣고 생각없는 똑똑한 양을 양산하고 있는 것 아닌지 학생과 부모, 대학교육자들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끝없이 주어진 일과 덕분에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이들은 자신이 어떠한 삶을 원하는지 모른다. 대학은 이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인할 시간이나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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