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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집. 신문 등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처음에는 에세이 하나당 1-2장 정도의 분량이라 가볍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글 하나하나에 담긴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고
마음을 울리는 글이 많아
걷는듯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다.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영화와 TV 방송에 대한 생각(본래 TV방송 제작으로 경력을 시작했으므로. 언젠가 TV 연속극을 제작해 보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 GV/영화제에서 겪었던 일, 작업이나 캐스팅 방식, 감독의 어린 시절 이야기, 배우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아버지 상중에 받은, 20년전 자신이 보낸 타임캡슐 엽서, 아버지의 수염에 대한 이야기(덤덤하게 써내려 갔는데도 정말 슬펐다),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생각(후쿠시마까지 가서 영상을 찍어왔지만 차마 작품으로 만들지는 못한 것) 등이 골고루 담겨 있다.
예를 들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작업할 때에는 주인공 부부들의 선택보다는 일상의 디테일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일상의 디테일을 묘사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감독의 TV 다큐 제작 경력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감독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사람들이 쉽게 망각하려 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고,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정치와 언론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가장 치졸한 폭력이라고 일갈하는데, 그 말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 마음이 무겁게 울렸다.
다 읽고 나니 감독이 더욱 좋아졌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그의 태도, 시선이 정말 담백하고 따뜻해서
그가 어떻게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만약 이렇게 자신의 내면적 체험과 감정을 탐구해서 어떤 종의 보편에 닿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당분간 그런 자세로 나와 영화와 세계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이렇게 생각했다.
감정이 형태를 가지려면, 영화로 치면 영화 밖의 또다른 한 가지, 자신 이외의 어떤 대상이 필요하다. 감정은 그 외부와의 만남이나 충돌에 의해 생긴다. 작품은 세계와의 대화다. 작품을 표현이 아닌 대화로 여기는 것. 누군가 한 사람에게 말을 걸듯이 만든다.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한 게 아닐까. 결핌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연출가와 감독을 나름대로 구분해본다면, 배우의 연기를 종합적으로 컨트롤하는 것이 연출가이고, 감독은 그 인간들이 사는 세상의 존재 양상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닐까 하고 멋대로 생각한다. ... 3월 11일의 전과 후 나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과거도 포함해 그 의미가 크게 바뀌었다. 그 변화에서 오는 당혹감. 그 변화를 작품이라는 형태로 그리는 것에 대한 주저. 수면에 너무 큰 돌이 던져져 물결이 아직 잦아들지 않은 상황. 연출가로서의 나는 한시라도 빨리 배우들과 공동작업을 하고 싶지만, 감독으로서는 당분간 좀더 파문을 응시하고 싶다.
빨리 잊자. 그들은 모두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4개월 전에 경험한 것은, 일본 어느 곳에 사는지에 관계없이, 지금까지 우리가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잊은 척하며 내달려온 문명을 근본부터 되묻는 사건이었다. 그 풍경을 앞에 두고, 미래나 안전보다도 경제를 우선시하는 가치관이 경멸스럽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눈을 흐리는 큰 원인 중 하나는, 신문과 방송이라는 미디어가 벌써 망각 쪽으로 방향키를 돌렸다는 사실이다. 그들 대부분도 역시 기득권층의 이익 안에서 눈이 흐려져버린 것이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실패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문화로 성숙된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에게 동물이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정치와 언론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가장 치졸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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