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조던 B. 피터슨 외 지음, 조은경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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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을 두고 서구에서 논쟁이 치열하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호불호가 정치적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캐나다 방송국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진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4명의 토론자를 데리고 토론을 진행했다. 


"미셸 골드버그 

: 정치란 그런 것입니다. 서로 반대하는 그룹들이 서로 논쟁하는 것. 

미국에서 정체성 정치가 비판받은 짖머은 그것이 계급을 희생시켜 인종이나 젠더 문제를 부각시켜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뉴딜연합(1930년대 뉴딜정책으로 형성된 노동자, 농민, 흑인, 여성 등 비주류 사회세력의 연합으로 민주장 장기집권의 토대가 되었다)을 약화했다는 거죠. 하지만 미국에 한정해서만 보면, 뉴딜연합은 인종, 시민권운동에 의해 붕괴되었어요. 정면돌파를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여성과 소수 인종의 권리는 예속될 것입니다." 


스티븐 프라이

제가 궁극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에 반대하는 이유는 제가 일생 동안 혐오하고 반대해왔던 것들이 PC에 있기 때문입니다. ㅡ 설교 조의 개입, 경건한 체하는 태도, 독선, 이단 사냥, 비난, 수치심 주기, 증거 없이 하는 확언, 공격, 마녀사냥식 심문, 검열 등이 PC에 결합되어 있어요. 

제가 PC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목표를 반드시 성취하고 싶지만 PC는 적합한 방법이 아니라고 보는 거죠.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커다란 실패는 효과적인 것보다 올바른 것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조던 피터슨

결과의 평등, 집단 정체성을 축으로 모든 논쟁을 해석하는 것, 병적인 좌파가 캠퍼스를 장악하는 것에 반대한다. 

집단의 권리와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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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정치의 양극화가 정치적 갈등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고학력 신산업 종사자들은 개방성과 진보주의의 가치를 외친 반면

전통 제조업이나 농업 등에 종사하던 이들은 여전히 전통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소리쳤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약 20~30년간 두 공간과 인구집단의 간극은 커졌고, 두 집단이 공유하는 공통의 관심사나 목표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미디어의 파편화 경향, 온라인커뮤니티의 분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가 이를 더 가속화하였을 것이다. 

젊고 진보적인 인구가 계속 유입되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진적인 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세를 불려나가고 

이에 반대하는 보수 내지 대안우파가 생겨나 인터넷 미디어로 뭉쳤다.

2016년 이후로 브렉시트나 트럼프 당선 등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비롯한 진보적 가치에 호의적이지 않은 포퓰리즘 운동이 부상하고 국경을 넘어 공유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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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토론이란 것은 자기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이고 그것으로 인해 토론자 개인의 견해가 바뀌기는 어렵다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기대는 안 했지만, 이건 쟁점 정리도 잘 안 되고, 서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개념부터 다르게 생각하고 시작한 난상토론이라...

토론자 각자의 입장만 확인하고 (서로 얼굴을 붉힌) 자리가 된 것 같아 아쉬웠다. 

대략 북미권 분위기가 이렇구나 짐작만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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