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평론가의 글이 정확하고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들어보았지만, 그의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도 처음에는 읽을 생각이 잘 들지 않았던 게, 제목만 보고도 무슨 말을 할 지 알 것 같다는 자만심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호기심에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는데 몇 장 넘기고 나서 깨달았다. 이 책은 사보았어야 했다는 것을...

 

이 책은 크게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표제와 가장 맞닿아 있는 슬픔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1부가 가장 좋았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치열하게 이해하려고 고민한 글들이 이렇게 정제되고 또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아이스킬로스의 소위 '고통을 통한 배움'이란 고통 뒤에는 깨달음이 있다는 뜻이지만 고통 없이는 무엇도 진정으로 배울 수 없다는 뜻도 된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같은 경험과 같은 고통만이 같은 슬픔에 이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참한 소식이다. 그런데 더 비참한 소식은 우리가 그런 교육을 통해서도 끝내 배움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교육이 하나의 생명으로서의 내 존립을 위협하기라도 한다면 말이다. (...) <킬링 디어>가 엄밀한 의미에서 '비극'인 것은 이 인간 조건의 비극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슬픔이다. 이 역설을 인정할 때 나는 불편해지고 불우해진다. 그러나 인정은 거기서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하는 것이다. <킬링 디어>의 첫 장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뛰고 있는 심장이다. 이 장면은 말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에 진저리 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

"어떤 책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으려면 그 작품이 그 누군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 (...)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인식이 곧 위로라는 것 - 론 마라스코, 브라이언 셔프 <슬픔의 위안>)

   

 

 

 

 

 

 

 

 

 

 

 

 

"자신의 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규정되는 모든 존재들은 억울하다. 이 억울함이 벌써 폭력의 결과다. '폭력'의 외연은 가급적 넓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런 정의를 시도해본다.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 그런 감수성이 더 필요하다. 

 

2부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이다.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는 오래 전에 읽은 것이라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나 싶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이방인>은 마침 얼마 전에 읽은 터라 그 평론을 기대했는데 그렇게 새롭지는 않았다. 그 밖에도 좋은 소설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고, 그 소개에 소설에 대한 그의 생각-소설적인 문장이란 무엇인가, 소설을 왜 읽는가 등-을 담고 있다.

 

2부에서 소개한 책들 중에 읽어보고 싶은 책들

 

 

 

 

 

 

 

 

 

 

 

 

 

 

 

 

 

 

 

 

 

 

 

 

 

 

 

 

 

 

 "소설적인 문장은 '소설적인 문장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속에서 고뇌한 흔적을 품고 있는 문장이다. 추상적인 명제이지만 정직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 고뇌는 반드시 전달된다."(제발트만큼 고집불통인)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간접체험으로서의 문학은 다만 나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피 흘릴 필요가 없는 배움은, 이 배움 덕분에 내가 달라졌다고 믿게 할 뿐, 나를 실제로 바꾸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아무리 읽고 써도 피는 흐르지 않는다. / 피 흘려 깨달아도 또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반복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믿을 수밖에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나보다 좀 더 좋은 사람이다. 10년 후의 나는 더 좋아질 것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믿음조차 없으면 가망 없을 것이다. 문학은 그 믿음의 지원군이다. 피 흘리지 않으면 진정으로 바뀌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거꾸로 말하면, 피 흘리지 않고 인생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3부는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성숙한(계몽된) 인간이 갖고 있는 감수성이란, '젠더 감수성'이나 '인권 감수성'이라는 개념에서 그 용례를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이해하고 행여 그것에 대한 잘못된 지식/믿음(즉 '무지'와 '미신')이 '차별'의 근거로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을 예방하거나 비판할 줄 아는 민감함을 의미한다. 이런 감수성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나에게 그것이 없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시적으로 품고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인정의 문제. 메릴 스트립의 연설. 비판과 풍자와 조롱의 문제- 대상이 강자인가 약자인가, 대상의 속성이 선택인가 조건인가, 그 웃음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명박근혜 정권 때 쓰여진 글들도 상당수 실려 있다. 어둡고 답답했던 시기를 돌이켜보았다. 지금은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지만, 언제 또 올지 모른다.  

 

 

 

 

 

 

 

 

 

 

 

 

 

4부는 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언어는 문학의 매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매체다. 언어가 눈에 띄게 거칠어지거나 진부해지면 삶은 눈에 잘 안 띄게 그와 비슷해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들이 계속 시를 쓰고 읽는다."

"극소량의 폭력성도 함유하고 있지 않은 언어의 상태에 도달하여, 그로써 세계의 폭력성을 드러내려고 한다. 자주 오해되지만 그런 비폭력적인 언어의 상태가 순한 단어와 예쁜 표현들로 달성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떤 '시선'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그런 시선을 가능케 하는 어떤 '자리'에 설 때 생겨난다. 그럴 때 시인은 발생하는 것이다."

"삶이란 의미를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그 순간에만 겨우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것이니까" "더 많은 시를 더 필사적으로 읽지 않으면 안 된다."  

나에게 시는 좀처럼 다가가기 어려운 그대이다. 남이 좋은 시라고 소개해 준 걸 읽어보면 그렇게 좋은데, 내가 시집을 사서 읽으면 반쯤은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 그가 소개하는 좋은 시 중에는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시집에 실려있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좋은 시를 알아보는 이들이 부럽다. 읽다보면 시와도 화해하는 날이 올까.

 

 

 

 

 

 

 

 

 

 

 

 

 

 

 

 

 

 

 

 

 

 

 

 

 

 

 

 

 

 

5부는 문화에 대한 이야기. 사랑, 적과의 관계, 그외에도 여러 가지를 이야기한다.

"어떤 이를 비판할 때 해서는 안 되는 일 중 하나는 상대방을 '비판하기 쉬운 존재로 만드는' 일이다. 그에 대한 나의 비판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그의 다른 글에 이미 존재할 때, 그것을 못 본 척해서는 안 된다. 그런 비판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비판당하는 적은 황당한 불쾌감을, 비판하는 나는 얄팍한 우월감을 느끼게 될 뿐, 그 이후 둘은 '이전보다 더 자기 자신인'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요컨대 진정한 비판은 적의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부분과 맞서는 일이다. 그럴 때 나의 비판 또한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수준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말대로 적을 대하는 태도는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돼 있다. 적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적을 사랑하면서 고귀해질 것인가, 적을 조롱하면서 공허해질 것인가.(...)"

"월리스에 따르면 그것(인문학)은 곧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방법이란 곧 선택하는 방법이라는 것. 어떤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이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다른 생각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늘 같은 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 외에도 추천한 책들 중에서 읽어보고 싶은 책들. 다른 리뷰들을 읽어보니 이 분의 전작들이 더 좋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이전의 책들도 찾아서 읽어보아야겠다.

읽고 싶은 책들이 또 잔뜩 늘었네. 이 중에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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