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름만 많이 들어본 '조지 엘리엇'의 대표작이라는 '미들마치'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현재 국내에 번역된 것으로는 발췌본밖에 없다고 한다.

 

허세 돋아 원서를 찾아보니 두께가 장난이 아니다.

이건 도저히 내 능력으로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우리말 발췌본을 읽어보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19세기 영국의 정신을 그리고 있는 서사시적 소설'이라고 한다. 발췌본만 보아도 인물들의 성격이나 행동이 모두 개성있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주인공 도로시아의 결혼과 실패 과정이, 그 이후 윌과의 사랑을 그린 부분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아름답고 부유한 명문 집안 사람인 도로시아 브룩은 사회에 대한 봉사욕구와 지적 호기심, 열정이 강한 사람으로, 남편에게 정신적 지도자와 스승의 역할을 기대하고 18세인 자신보다 27세 연상인 45세의 목사 캐소본과 결혼한다. 하지만 사실 캐소본은 학자로서도 남편으로서도 무능하고 편협한 인물이라, 도로시아는 매우 실망스러운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조지 엘리엇이 실제 자신의 경험(당대의 저명한 문학비평가로서 문학적 스승이자 유부남이었던 루이스와의 생활)을 투영한 것인지, 캐소본의 편협함과 열등감에 대한 묘사가 아주 생생하다. 얼마 안 되는 이 책의 분량에서 그런 캐소본의 존재감은 정말 대단하다.

등장인물들이 서로 결혼과 배우자에 대한 이상이 달라 좌절하거나(도로시아-캐소본, 리드게이트-로저먼드 커플처럼) 상대방의 부족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모습(프레드-메리, 불스트로트 부부처럼)도 생각해 볼 만하다. 받아들인다는 것이 반드시 이상적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의 부부들은 상대방에 대해 지나치거나 잘못된 기대를 갖는 경우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 기대는 당시 사회통념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배우자상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도로시아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그린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조지 엘리엇 자신은 여러 편의 소설을 쓰는 등 작품 활동을 하고 <웨스트민스터 리뷰>라는 잡지의 부편집장을 할 정도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음에도, 도로시아라는 열정적인 주인공을 결혼 생활에서 자아를 찾는 것에 만족하는 인물로 그린 것이 의아하기는 하다. 그래서인지 도로시아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선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그 선택 또한 평범한 이가 처한 외부 환경과 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한 결과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마무리짓는다. 작가가 살던 선택지가 많지 않은 시기(1819-1880)에 애쓰던 다른 이들을 긍정하는 시선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원래 문학작품을 발췌본으로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이건 원전을 1/15 분량으로 줄인 것이라 줄거리 요약에 가까운 것 같아 더 안타까웠다. 해설에 의하면 원작에서는 당대의 선거법 개정과 토지개혁 등 정치사회적 변화를 자세히 묘사했다던데, 이런 부분은 발췌본에 거의 드러나있지 않다. 심지어 전개상 중요한 것 같은 장면도 생략되어 있다. 궁금한 부분은 원서에서 찾아보아야 하나... BBC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니 드라마를 보는 것도 나름 궁금함을 해소하는 방법이겠다.

옮긴이의 말로는 이 책의 번역이 아주 어렵다던데, 그래도 누군가 힘내주셔서 완역본을 꼭 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 조지 엘리엇의 본명은 '메리 에번스'로 여류작가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편견 때문에 '조지 엘리엇'이라는 남성의 필명으로 작품활동을 했고, 조지 엘리엇 스스로 '여성 작가들의 어리석은 소설들'이라는 에세이에서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상투적 로맨스나 쓰는 당시의 여성 작가들을 경멸하면서 자신은 그런 작가들과 다름'을 천명했고, '여성 작가라기보다는 당대의 어느 남성 작가에 견주어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위대한 작가', '여성의 감성을 뛰어넘은 탁월한 지적 작가이자 도덕적 작가'로 평가되었다는데,

그 경멸당한 '여성 작가들'이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제인 오스틴은 조지 엘리엇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고 하고, 설마 브론테?), 전반적으로 당시의 다른 여성 작가들을 낮추어 평가하는 것 같은데 그러한 평가가 온당한지는 그들의 소설들을 다 읽어보지는 못해서 잘 모르겠고, 칭찬 같지 않은 칭찬 같은 느낌.

 

 

 

 

"전 판단력으로 보나 지식으로 보나 저보다 뛰어난 사람을 남편으로 맞고 싶어요."
...
그녀는 캐소본 씨를 향해, 당신이 과연 내게 어울리는 훌륭한 남편인지 스스로 자문해보아야 한다면서 그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이 과연 캐소본의 아내가 될 자격이 있는지 걱정스럽게 자문하고 있었다.

아직 그녀는 현명한 남편을 갖는 데 만족할 만큼 자신을 포기하진 않았다. 가엾게도 그녀는 자신이 현명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모두에게 똑똑하다는 평판을 받고 있었지만, 브룩 양의 생각에는 확실히 순진한 데가 있었다. 그다지 똑똑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실리아 쪽이 오히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사람의 가식을 훨씬 재빨리 파악했다.

오랫동안 지식을 쌓았지만 그 지식에 대해 어떤 흥미나 공감을 못 느끼는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열정적인 젊은이를 우울하게 만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캐소본 씨는 가엾게도 그 자신이 이 작은 골방과 구불구불한 계단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그는 신혼여행이 처음이고, 자신이 상상하던 것보다 더욱 부인에게 얽매이는 종속 관계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 매력적인 젊은 신부는 자신에게 애정을 달라고 강요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가장 위로가 필요한 지금, 무정하게도 그를 괴롭힌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는 인생에서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갈채에 인색한 냉담한 청중을 피할 부드러운 울타리를 얻으려 했는데, 알고 보니 그런 울타리 대신 깐깐한 청중을 얻은 게 아닌가?

사실 그는 아내에게 자기가 없는 동안 젊은 래디슬로를 집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첫째로 그녀가 잘못했다고 사과하는데 다시 불평하는 게 매정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둘째로 더 말을 해서 자신이 흥분하는 일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강한 질투심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강한 질투심은 학문적 동료를 질투하는 것만으로는 양이 안 차서 그 밖에도 상대만 있으면 그냥 내버려 두질 않았다. 질투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태울 불길이 거의 필요 않은 질투도 있다. 그러한 질투는 열정이 아니라, 자신감 없는 에고이즘이라는 흐릿하고 음울한 절망 속에서 자란다.

그의 경험이라고 해봤자 동정을 피하고, 자기 기분을 남에게 들키는 것이 가장 두려운, 가련한 경험뿐이었다. 다시 말해 거만하고 편협한 예민함 때문에 동정으로 변할 만큼 너그러운 마음이 없어서 자기 일에만 몰두하든지, 아니면 기껏해야 이기적인 신중함 같은 좁은 조류에 갇혀 실처럼 떠는 그런 경험들뿐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매우 가엾게 여긴다. 소위 고도의 학식을 지녔지만 누리지 못하다니, 또 이런 멋진 인생의 장관 앞에서 굶주려 떠는 의심 많은 자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니. 영광을 목도하면서도 그 영광에 맘껏 사로잡히지 못하다니, 의식을 황홀하리만큼 생생한 사상이나 열정적인 열의, 정열적인 행동으로 바꾸지 못하고, 항상 학식은 많지만 영감은 모르고, 야심은 있지만 소심하며, 작은 일에 구애되어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도 편한 운명이 아니었다.

이제 그녀는 "그건 내 잘못이 아니고 남편 잘못이야"라고 쓰라리게 내뱉었다. 그녀의 존재 전부에 담겨 있던 동정심이 모두 엎질러져 버렸다. 남편의 존재와 남편의 훌륭함을 믿은 게 그녀의 잘못이란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남편은 어떤 존재인가? 그녀는 남편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그녀는 덜덜 떨면서 남편의 눈빛을 살피고,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녀의 가장 소중한 영혼을 감옥에 가둬놓고 남몰래 그것을 방문했었다.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상 남편(윌 래디슬로)은 항상 악과 싸웠고 아내로서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 도로시아에게는 가장 기쁜 일이었다. 도로시아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나 자립적이고 드문 뛰어난 여성이 다른 사람의 삶에 흡수되어 그 사회에서 아무개의 아내와 어머니로만 알려지는 것을 참으로 애석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녀가 자기 힘으로 어떤 다른 일을 해야 했는지 아무도 정확히 말하지 못했다. 제임스 체텀 경만 해도, 그녀가 윌 래디슬로와 결혼하지 말아야 했다는 부정적인 처방 이상은 내리지 못했다.

그녀의 생애를 결정한 이 두 가지 행동이 분명히 이상적으로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온갖 불완전한 사회 상태의 조건 속에서 힘차고 고귀한 충동으로 고군분투한 결과가 이와 같이 선악이 반반 섞인 행위로 나타난 것이다. 그와 같은 사회에서는 위대한 감정이 때로 오류로 간주되고, 위대한 신념이 때로 망상으로 간주된다. 아무리 내적 존재가 강해도, 그것을 에워싼 외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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