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형제 폐지에 적극 앞장섰던 빅토르 위고가 27세(1829년)에 써서 익명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무슨 범죄를 어떻게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귀한 가문 사람인 것 같은 주인공은 3일간의 재판 끝에 유난히 날씨가 좋은 마지막 날,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비세트르 감옥으로 이송된 후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검사장의 집행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6주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고통을 담은 수기를 쓴다(그래서 이 책의 서문에는 실제 어느 사형수의 수기가 발견된 것인지, 한 몽상가가 쓴 책인지 선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쓰여 있다).
그는 감방 안에서 먼저 이 방을 떠난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죽은 사람들의 환각을 보기도 한다. 도형수들이 툴롱의 도형장으로 떠나는 날은 감옥 안 축제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세찬 비가 내리면서 상황은 우스꽝스럽고 침울해진다. 도형수들이 떠나고 난 후 감방에는 열다섯살 소녀가 흉측한 가사로 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감옥이 모든 것을 퇴색시킨다고 생각한다.
최후의 날, 그는 콩시에르주리 감옥으로 이송된 후 그레브 광장에서 사형 집행될 예정이다. 그는 콩시에르주리로 이송되어, 그날 사형선고를 받은 다른 사형수를 만난다. 그 사형수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교수형으로 잃은 후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도둑질, 강도, 살인으로 생활해오다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형을 당하게 된 사람인데, 반강제로 주인공의 프록코트를 빼앗는다. 업무상 찾아온 신부는 그의 불경함을 꾸짖을 뿐이고, 멍청한 얼굴을 한 헌병은 그에게 복권 번호를 알려달라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한다. 그는 살아생전 천국 같았던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단두대의 고통, 국왕, 죽음 이후에 대해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세살박이 딸을 본다. 딸은 벌써 아버지를 잊었다.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탈옥을, 또는 사면을 꿈꾸지만 헛된 꿈이다. 사람들이 고함을 치고 신나게 떠드는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그는 단두대에 오른다.
빅토르 위고는 읽는 사람들이 사형수의 마음에 좀더 공감할 수 있도록 일부러 주인공의 범죄 장면은 뺐다고 한다. 사실 사형을 선고받을 정도면 대체로 당대의 사람들이 '흉약한 범죄'라고 생각하는 범죄를 저지른 경우여서, 범죄 장면을 구체적으로 썼으면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겠다(이 소설의 주인공은 정치범은 아닌 것 같고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갈구하는 주인공의 마음, 사형수를 하나의 업무로만 여기는 판사, 검사, 변호사, 배심원단, 간수, 신부, 관람료까지 지불해가면서 사형집행을 유희거리로 삼는 군중들과, 마찬가지로 사형수를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동료 죄수들의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빅토르 위고가 젊었을 때 쓴 것이라서 그런지 글에서 뜨거운 혈기도 느껴졌다.
아무튼 이 책은 당시 아주 잘 팔렸다고 하지만, 빅토르 위고가 바랐던 것처럼 프랑스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된 것은 그로부터 150년 가까이 지난 1981년에 이르러서이고, 놀랍게도 1977년까지 기요틴에 의한 사형집행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흉악범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것을 강력히 외치는 우리나라에서 사형제 폐지는 요원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나 또한 흉악범에 대해서는 사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사적 보복을 금지하는 법 체제에서 응보라는 감정을 고려하면 그렇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피해자 유족의 감정이 오롯이 위로받을 수 있을지, 국가가 행하는 '합법적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죽음에는 죽음으로 갚는다는 응보의 본성을 억누르는 방향으로 제도가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닌지, 이런저런 면에서는 반대의 생각도 든다.
프랑스에서도 사형제를 폐지할 당시에는 반대하는 여론이 더 많았는데 폐지한 후 여론이 법을 따라왔다고 하니, 입법적 결단이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관련해서 읽어볼 만한 책.
프랑스에서 사형제 반대를 위해 평생 싸워 결국 사형제 폐지에 공헌한 로베르 바댕테르의 '사형제도에 반하여'(가톨릭신문사)라는 책이 있다고 하는데 알라딘에서는 구입할 수가 없다(그래24에서는 가능).
비는 더욱 세차게 쏟아졌다. 물이 고인 안뜰의 돌바닥에는 물이 철철 흐르는 알몸의 도형수들밖에 없었다. 침울한 침묵이 소란스런 허세의 뒤를 이었다. 그들은 추위로 몸을 떨었고, 이를 딱딱 마주쳤다. 가느다란 다리와 뼈만 앙상한 무릎이 서로 부딪쳤다. 새파래진 팔다리에 흠뻑 젖은 내의와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의, 그리고 바지를 걸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벗고 있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유일하게 한 늙은이만이 유쾌한 기분을 잃지 않았다. 그는 젖은 내의로 몸을 닦으면서 "이것은 각본에 없던 것인데"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하늘에 주먹질을 해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변호사가 뭐라고 했지? 도형에 처하라고? 아! 그래, 천 번이라도 사형이 낫지! 도형장보다는 단두대, 지옥보다는 죽음이 낫다. 목에 도형수의 쇠고리를 차느니 기요틴의 칼날에 목을 맡기는 것이 낫지! 도형이라니, 빌어먹을!
상소란 끊어질 때까지 매 순간 우두둑거리는, 심연 위에 당신을 매단 줄에 불과하다. 기요틴의 칼날이 6주에 걸쳐 떨어지는 것과 같다.
이 선량한 간수는 온화한 미소, 다정한 말투, 아첨하며 감시하는 눈, 두툼하고 넓적한 손과 함께 감옥 그 자체와 같은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한 비세트르 감옥이다. 내 둘레에 있는 모든 것이 감옥이다. 나는 모든 형태 속에서, 철책과 빗장의 형태뿐만 아니라 인간적 형태 속에서도 감옥을 본다. 벽은 돌로 된 감옥이다. 문은 나무로 된 감옥이다. 간수는 살과 뼈로 된 감옥이다. 감옥은 반은 집이고 반은 사람인, 무시무시하고 완벽한, 분할 불가능한 존재다. 나는 그의 먹이다. 감옥은 나를 품고, 자신의 모든 주름으로 나를 포옹한다.
지금의 나는 편안하다. 모든 것이 끝났다. 정말 끝났다. 소장이 방문해 생겨난 소름 끼치는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고백컨대, 여전히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조금 전에는 두려웠다. 지금은 다행히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아, 사면을 받을 수 있다면! 사면을! ... 기꺼이 도형장에 가겠다. ... 종신 도형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 하지만 목숨만은!
아! 하이에나 같은 고함을 지르는 끔찍한 군중. 내가 그들에게서 벗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내가 살아날지, 특사를 내릴지 누가 알겠는가? ...나에게 사면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아! 비열한 사람들! 그들이 계단을 올라오는 것 같다.
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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