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한식의 품격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한식 외식에 대해 전통이나 정서, 관습에 기대지 않고 정말 신랄하게, 이성적, 과학적으로 조리의 원리에 따라 품평하고, 앞으로 한식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책이었다. 한마디로 욕먹을 각오 하고 쓴 책으로 보였다. 관습적으로 양념하던 것, 반찬 내놓던 것을 서슴없이 비판했다. 평소 내가 잘 먹고 좋아하는 음식들을 신랄하게 까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아팠지만(나는 맛있게 먹었는데ㅜㅜ), 수긍할 부분이 정말 많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사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평양냉면이었다. 평양냉면은 육수(차가운 가운데 고기로 육수를 내야 한다는 것), 면(잘 끊어지는 메밀을 주재료로 압출면을 만든다는 것)을 만들기가 어려워 사실 외식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고급음식이라는 것이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듣고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 책의 상당 분량을 차지하는 저자의 평양냉면 찬양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정말 평양냉면 덕후라고 생각했다. 아니나다를까 정말 책을 냈다. 평양냉면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후속작을.  

이 책은 저자가 서울,경기 지방의 유명 평양냉면 집을 다니면서 먹어보고 면, 육수, 고명/반찬, 접객/환경 부분으로 나누어 디테일하게 평한 책이다. 그 중 단품 음식 중에는 고가임에도 그에 맞지 않는 스테인레스 그릇을 사용하거나 공용수저통을 사용하는 것, 차가운 육수에 어울리지 않는 계란 완숙을 올리는 것, 맛의 균형을 깨뜨리는 고명이나 반찬을 내놓는 것 등은 공통적인 비판대상이었다. 나는 평양냉면을 좋아하기는 해도 굳이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라서 이 책에 소개된 집 중에서는 두 군데밖에 못 가보았지만, 그럼에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당장이라도 나가서 냉면 한 사발 사먹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평양냉면은 워낙 매니아가 많은 음식이고 취향이 갈려서 어떤 사람에게는 최고의 냉면집이 어떤 사람에게는 최악의 냉면집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평양냉면 매니아들에게는 선물같은 책일 수도 있겠고, 품평된 어떤 평양냉면집에는 악몽같은 책일 수도 있겠다.

참고삼아, 저자가 특히 칭찬한 냉면집으로는 우래옥,의정부 평양면옥,봉피양,능라도,능라밥상,평양옥,광화문국밥, 신라호텔 라연(지금은 냉면을 안 판다고 한다)이 있었다(별 세개 반 이상). 아주 혹평한 냉면집도 있지만 그건 그냥 내 마음속에만 담아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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