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 청소년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세계 명작 문학이나 우리나라 소설은 대부분 남성작가의 것이었고, 그 작가의 시점에서 등장인물에 감정을 이입해서 읽어왔다. 이렇듯 "여성독자들은 이해해왔다." 그렇게 해도 감정을 이입할 수 없었던 소설은 취향이 아닌 것으로 한쪽에 미뤄두고. 어른이 되어 그 책들을 다시 읽어본다면 어떨까.

이다혜 작가는 어른이 되어, 만든 사람의 시점이 아닌 자신의 시점으로 책과 영화를 읽는다. 미스터리와 공포, 스릴러 장르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종종 죽음을 맞이하거나 범죄의 대상이 되어 남자주인공들이 각성하는 계기로 활용된다. "여성으로서 이 장르의 팬이 된다는 것은 시련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무진기행에서 '인숙'을 다루는 방식, 묘사에서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한편으로 <나를 찾아줘>에서 에이미라는 캐릭터를 보면 혼란스럽다. "뒤늦게 깨닫기를, 나는 에이미의 편이거나 그렇지 않기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이며...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여자가 주인공이면서 사건을 지배하는 악당 캐릭터인 픽션을 보기 드문 나머지, 나는 여기에서조차 나랑 같은 성별인 사람이 저렇게 굴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여성을 대표하는 단 한 명의 여성은 있을 수 없다."

다시 읽는 것은 문학작품이나 영화뿐만이 아니다. 학창시절 웃고 넘어갔던 선생님과 선배들의 음담패설, 과거에 자신이 썼던 글을 돌이켜보고 하는 분노와 반성도 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예전에 있었던 일들,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달리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사람이 그래도 전진한다는 뜻이리라(혹은 후퇴하는 것인지도).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인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이야기. 나는 이 부분 이야기가 특히 마음아프고 좋았다. "소녀가 성인 여성이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소녀와 소년에게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이성을 보고 설렘을 느끼는 감정만큼이나, 나를 압도하는 동성을 보고 지금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경험. 그 강렬한 또래 문화 속에서 '지금의 나 자신'과 나 자신을 둘러싼 많은 것들을 싫어하게 되는 것, 여기서 탈출하고 싶다는 감정을 강렬하게 경험하는 것이 이 시기에 굉장히 중요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당연히, 내 친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아주 가까운 친구라고? 그렇다. 그렇다면 그녀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그 거리가 가까운 만큼 더 강렬할 것이다. 실제로 레누는 릴라에게 그런 욕망을 느낀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레누는 릴라의 우월함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를 이렇게 책장에 코를 파묻고 읽게 하는 레누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레누는 릴라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인생은 저기 있는 게 아닐까. 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인생이 저기 있는 게 아닐지 몰라도 여기에는 확실히 없는 것 같아. 매 순간 레누가 절절하게 고백하는 질투의 감정이야말로 우리를 이 책에 매어놓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감정은, 가깝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질투와 나 자신에 대한 끝없는 불안이니까. 소녀를 여자로 만드는 것은 남자보다는 여자라고 생각해왔다. 엘레나 페란테는 그게 정확히 어떤 뜻인지를, 아주 두꺼운 네 권의 소설로 들려주고 있다. 친구가 심리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들은 말. '당신 자신을 당신의 달이라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 스스로에게 사주고 싶은 것......어떻게 달라지나요? ...나는 내 딸이다, 내가 사랑하는 내 딸이다 생각하고, 마음이든 물건이든 어떻게 해주고 싶은지 생각해보세요." 나 자신이 딸이었던 기억,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기억을 잃어가며 나이를 먹는다.세살 난 딸에게는 배꼽 뽀뽀도 해주고 매일 안아주고 사랑한다는 말도 해주던 부모들은 이제 늙거나 죽었고, 나 역시 그런 애정표현은 해준대도 싫다. 그런데 그냥, 사랑하는 내 딸이다라는 확신에 찬 감정만으로도(내가 내 딸을 사랑하는 감정이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훨씬 쉽다. 신기하게도 그렇더라.) 아주 약간은 고통이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런 감정으로 생각했을까를 생각하면 조금은 울게 된다."

직장 상사에게 "넌 울지 않아서 좋다"는 말을 들은 것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칭찬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상사가 가장 많이 울게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화가 나서 그 앞에서 울지 않았을 뿐이고 사실은 '우는 게 여자 같아 싫다고 생각해서' 화장실에서, 집에서 울었다. "(직장에서 우는 것은 나쁘고 화내는 것은 괜찮은가? 화내는 것도 나쁘다. 그런데 직장에서 과도하게 화내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으면서 우는 것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많은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우는 것은 남성을 향한 것,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려울 때의 절망감, 분노 혹은 체념 등 여러 감정이 이유가 된다고. 우는 것을 낮게 보고 화내는 것을 권력으로 해석해버리면, 그 맥락에 여성성과 남성성을 자기도 모르게 대입해버리면, (남녀불문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얼마나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는지로 자신의 성공을 가늠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라는 말의 허구성을 지적한 이야기도 좋았다.

"가스라이팅, 가스등 이펙트는 상대를 심리적으로 조종하는 가해자와의 관계를 다룬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인정받고자 하는 소망이 잘못된 상대를 만나 빚는 비극으로, 일과 관련해서는 지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조차 자신을 하찮게 취급하는 배우자나 애인, 직장 상사나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영화<가스등>에 비유해 설명한다. 나의 의견을 기분으로 받아들이는 상대와 대화하기란 쉽지 않다...일차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그런 상대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가스라이팅의 가장 대단한 부분이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객관적인 상황이 상대의 말과 다르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그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보다 중요한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이 자기 안에 크게 자라나 있다." 이건 <걸온더트레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영화 <맨해튼 살인사건>도.

 

글쓴이가 나와 가까운(조금 더 위?) 연배여서 그런지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작가는 학생들을 상대로 말할 일이 생기면 "여러분과 같은 또래의 작가를 꼭 찾아서 같이 성장하는 기분으로 오랫동안 읽어가시라"고 한다는데, 나도 그런 기분으로 작가의 글을 오랫동안 읽어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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