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30
한국여성의전화 지음 / 오월의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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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2013년에 실시한 전국가정폭력실태조사에서 조사한 기간을 기준으로 가정 내에서 신체, 정서, 경제, 성적 폭력이 일어난 비율은 45.5%였다고 한다. 흔히 폭력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물리적 폭력보다 개념을 넓게 잡은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짐작되지만(이 기준을 적용하면 내 주변에도 꽤 된다), 그래도 '체감하는' 것보다 그 비율이 높은 이유는 이 책에서 설명된다. 가정폭력이 발생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비율은 1.8%에 불과하고, 그나마 외부에 드러난 가해자 중에서도 기소되는 비율은 8.5%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은 폭력의 강도가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다르지 않은데도 가족과 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감춰지며 더 오랜 기간 자주 이루어진다. 

이 책은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운영하는 쉼터에 머물렀던 가정폭력 여성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글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일은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때도 많았고 마음이 너무나 아프기도 했다. 모두 심한 물리적인 폭력(대체로 언어, 정서적 폭력도 함께)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폭력을 당한 경험을 말한 부분은 특히 읽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 외에도 성장과정과 결혼생활 전반에서 겪은 일들도 정말 끔찍했다. 폭력적인 원가정, 아들이 그렇게 폭력을 휘두르고 망나니같이 구는 것을 보고도 아들 편만 들고 며느리를 욕하는 시가, 사정을 알면서도 가정을 지킬 것만을 종용하고 딸을 지켜주지 않는 친정, 별것 아니라며 사건을 외면하는 경찰...처음에는 그렇게 오랜 기간 고통당하면서도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 끝내 가정을 지킨 이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사실 그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의 절망감과 무력감은 짐작하기조차 힘든 일이다. 그 상황에서 끝내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이야기를 들려준 글쓴이들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왜 때리는가? 이런 질문이 바로 폭력이다.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때릴 수 있으니 때리는 것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대신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왜 사회는 여성의 경험을 믿지 않는가? 왜 국가는 이 문제를 사소하게 다루는가? 왜 우리는 언제나 이 문제가 ‘사소하지 않다‘고 외쳐야 하는가?

가정은 폐쇄된 세계다. 가정을 ‘이해와 배려의 영역‘으로 포장하면서 그 안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폭력을 감추고, 노동력 재생산을 가정의 기능으로 설명하면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노동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평가되는지 이야기하지 않고, ‘사회의 기본단위는 가정‘이라며 가정 속의 개인은 삭제한 결과다. 하여 가정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사실 (알면서도)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이런 세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당연히 은폐될 수밖에 없다. ‘그 순간만 넘기면 되어서‘ ‘가족이기 때문에‘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대응하면 폭력이 심해지므로‘‘내가 잘못한 것이므로‘......폭력 피해를 입고서도 ‘그냥 있었던 이유‘들이다. 다시 말해, 남모르는 사람에게 당했다면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폭력이지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족이라는 이유로, 보복이 두려워서,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 때문에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사법처리 과정에서도 은폐된다. 검찰 접수 후 기소조차 되지 않는 비율이 50.4%, 가정보호사건 송치비율은 39.1%이고, 기소율은 8.5%(구속률 1.3%)에 불과하다(가정폭력사건 접수처리현황, 법무부 2015년).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한 비율이 고작 1.3%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전국가정폭력실태조사) 사실상 가정폭력은 사법체계에서도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다시 말해, 두 통계를 단순 교차했을 때, 1만 명이 가정폭력 피해를 입었다면 그 중 130명만 신고를 하고, 11명만 기소되며, 기소된 이들 중 오직 1명만이 구속된다고 할 수 있다. 기소 이후의 처리 결과는 통계의 부재로 알 수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피해자 본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피해자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드는 현실. 돌아가면 다시 함께 살아야 할 가해자 앞에서 처벌을 원하느냐고 묻는 현실.
가정폭력의 피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연결하면서 악순환을 깰 수 있다. 그 모든 인식과 제도가 그것을 은폐한다고 하더라도, 이야기를 통해 그 일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겪는 일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 나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통해 말이다.

막상 경험을 글로 옮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건 폭력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부정당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의심 속에서 결국 ‘내 잘못이 아님‘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새겨온 경험, 이것을 다시 글로 옮긴다는 것은 폭력을 다시 경험하는 과정인 동시에 자기부정을 이겨내는 과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들의 용감한 이야기로 당신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우리들의 이야기가 넘쳐서 결국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과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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