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방사 - 잘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 한겨레출판사..
잘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책은 불법포확되어 강제로 돌고래쇼의 대상이 되었던 제주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내용을 중심으로 다양한 대한민국 돌고래쇼의 역사에서부터 돌고래 불법포획의 문제,
돌고래라는 동물에 대한 이해, 동물복지와 생명정치의 문제, 제돌이시민위의 출범과 야생방사,
그리고 방사된 돌고래의 최근 모습까지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는 책이다.
잘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책의 목차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물 아래로부터의 역사.
2부.. 남방큰돌고래는 돌고돌고 돈다.
3부.. 생명정치와 돌고래의 저항.
4부.. 국기에 대한 경례도 않고 돌고래는 떠났다.
제주 해녀들이 "곰새기" 라고 부르는 남방큰돌고래는 아주 먼 옛날부터 제주 바다에 살았다.
곰새기 혹은 수웩이, 수어기, 수애기. 부르는 이름이 각기 달라도 해녀들은 이 신비한 돌고래의 존재를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1980년대까지 제주도에서 인간과 돌고래의 관계는 상호 신뢰에 의존해왔다.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 중 하나가 바로 돌고래쇼다. 그런데 쇼에 나오는 돌고래 중 상당수가
불법포획돼 동물원에 팔여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재호 기자입니다.
하늘로 치솟고 시원하게 물살을 가릅니다. 여기저기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관람객들에게 인기만점인 이 돌고래들은
어디서 왔을까.? 해경 조사 결과 이 중 상당수가 제주 앞바다에서 어민들에게 불법포획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2011년 7월 14일 , MBC <뉴스데스크> (전재호,2011) -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문제의 업체는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퍼스픽랜드" 였다.
퍼시픽랜드는 1986년 국내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실으며 "로얄마린파크" 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국제 규모의 관광 해양 수족관" 을 표방하면서 단숨에 제주도 관광의 필수 코스로 떠올랐다.
서울대공원 돌고래는 세 마리였다. 돌이, 고리, 래리였다. "돌. 고. 래 " 에서 한 자씩 이름을 땄다고한다.
한국 최초의 전시공연용 돌고래, 야생 돌고래가 아닌 감금 돌고래였다. 돌이, 고리, 래리는 일본에서 왔다.
우리나라 역사상 첫 돌고래 재판이 열렸다. 2012년 2월 8일 제주지방법원 302호에는 검찰이 기소한
퍼스픽랜드의 대표 그리고 이사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예상외로 퍼시픽랜드 측은 처음부터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관심은 퍼시픽랜드에서 공연 중인 돌고래들로 향했다.
불법 상태를 되돌리는 방법은 국가가 돌고래를 몰수해 다시 방사하는 것이었다.
재판의 쟁점은 사상 초유의 " 살아 있는 돌고래의 몰수" 가 가능하냐로 옮겨가고 있었다.
수족관 돌고래가 바다에 나가서 살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2009년 7월 퍼시픽랜드에서 이송된 돌고래가 제돌이다.
바다에서 잡혀온 돌고래가 처음 배우는 게 죽은 생선을 먹는 거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은 못 된다.
꽤 오랜 시간 뒤 배고픔을 참지 못한 돌고래는 결국 죽은 생선을 먹는 법을 배운다.
돌고래들이 연습을 하면서 다치는 경우도 있고 , 사망에 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는 걸 읽고 가슴이 아프다.
말 못하는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조정되고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다니....슬픈 현실이다.
2012년 3월 12일 박원순 시장 오전 10시 서울대공원에서 기자회견..
기자회견 안건은 " 돌고래 공연 중단 및 방사 요구에 따른 서울시의 입장 " 이었다.
기자회견에서 서울시가 발표한 입장은 세 가지였다.
첫째.. 돌고래쇼를 잠정 중단한다.
둘째.. 여룬 수렴 절차를 거쳐 돌고래쇼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세째.. 제돌이는 1년의 야생방사훈련을 거쳐 바다로 되돌려 보낸다.
인간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한순간이 찾아온다. 세상을 바꾸는 나비효과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1960년대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플리퍼>는 돌고래의 귀엽고 영특한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전 세계 수족관 건설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이 시리즈에 출연한 돌고래들의 조련사로 명성을 높였던 리처드 오배리는 어느 날 <플리퍼>의
주인공 돌고래가 자신의 품 안에서 죽는 걸 목도한다. 자신이 어떤 나쁜 체제의 선전가가 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그는 회심했고, 그만의 돌고래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돌고래의 수족관 감금에 반대하는 전투적 운동가가 되었다.
돌고래가 자실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백발 전직 조련사의 푸른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 내 품 안에서 돌고래 케이시 가 자살했죠.."
" 자살이라고요?"
야생에서 포획된 돌고래는 " 야생의 몸" 에서 "수족관의 몸" 으로, 그리고 다시 "돌고래쇼의 몸" 으로 변환된다한다.
돌고래들이 죽은 생선을 허락하면, 사욕사들은 먹이 지배와 긍정적 강화를 통해 돌고래쇼 묘기를 가르친다.
“산업혁명은 석탄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고래로부터 일어났다.” 18~19세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발전의
견인차는 늦은 밤 공장과 가정, 거리의 등불을 밝히던 고래기름 덕분이었다.
북극과 태평양 등 전 세계 바다에서 벌어진 고래 학살, 광기에 찬 에이헙 선장과 줄달음치는 모비딕이 산업혁명을
일구었다. 근대 모직산업은 양이 없었으면 성장하지 못했고, 소와 닭은 근대 공장식 축산을 축조한 노동자였다.
현대 테마파크의 수익원은 노동하는 돌고래다.
재판 결과 야생방사가 결정되었다. 1년여의 재판 기간 퍼시픽랜드 몰수형 돌고래 열한 마리 중 일곱 마리가 죽고
네 마리가 남았다. 그런데 그 네 마리 중 두 마리가 현재 건강이 좋지 않아 바다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제돌이가 바다로 나간 날과 태산이, 복순이가 바다로 나간 날의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허둥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거창한 마술쇼 같은 걸 기대하고 무대를 차려주었지만, 돌고래들은 고별공연을 내팽개치고 사라져버렸다.
아니, 마술쇼가 있긴 했다. 돌고래가 공룡만큼 컸다면, 만리장성을 사라지게 한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쇼 정도는 됐을 것이다.
돌고래의 야생방사를 통해 우리가 사유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근대과학의 한계와 불확실성이다.
제돌이의 야생방사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이들 모두 한결같이 "과학적인 근거" 를 댔지만,
결론적으로 과학은 아무것도 완벽하게 예측하지못했다. 과학은 돌고래의 의지 앞에서 항상 미끄러지기만 했다.
돌고래 야생방사를 기념하여 인간들은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지만, 돌고래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와 해방을 위한 자신만의 길을 떠났다. 이후의 관찰을 위해 돌고래 몸에 GPS도 달았지만,
이 역시 금세 무용지물이 되었다.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간 지 1년이 지나고 동물자유연대와 핫핑크돌핀스 등은
태산이와 복순이의 야생방사도 추진해 성공한다.
2016년 4월에는 삼팔이와 춘삼이의 출산 소식도 이어졌다.
" 잘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책의 저자인 한겨레신문 남종영 기자는 2011년 7월 불법포획된 돌고래들이
서울대공원 돌고래쇼에 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국내 수족관에 있는 돌고래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제돌이 야생방사와 그 이후까지의 기록을 담았고, 동물인 돌고래에 대한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동물복지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도서이다.
태산이와 복순이의 야생방사를 앞두고 옛 동료 남방큰돌고래들이 방문한 것이다.
약 30마리의 남방큰돌고래 떼가 주변으로 다가왔다. 개중에는 먼저 야생방사된 제돌이도 있었다.
말 못하는 동물들도 서로를 반겨주고 야생방사를 축하해 주다니.. 너무 감동적이다.
특히 복순이가 아기를 낳았는데, 자꾸 가라앉는 새끼를 절박하게 물 위로 띄웠다. 이미 죽었는데..
복순이는 결사적으로 새끼를 수면 위로 들어 올렸다. 죽은 새끼를.. 자기 자식에 대한 모정이 너무나 강하다. 슬프다.
제돌이는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를 일깨웠다. 동물을 이용한 이윤 추구,
과학 지식의 획득, 기관 대 기관의 쟁투, 스펙터클의 연출 등 이 모든 인간의 욕망이 돌고래의 몸에 부사됐다.
맨 처음 한 환경운동가의 일인시위로 촉발된 야생방사는 전국적인 이슈로 번지면서 국가의 사업으로
" 재영토화" 됐으며, 야생 남방큰돌고래의 삶의 영역도 전문가, 관료에 의해 관리받기 시작했다.
우리는 태산이, 복순이의 자항도 잊지 말아야 한다. 두 돌고래는 " 쇼를 하지 않으면 밥도 없다." 는 잔혹한
"먹이 지배" 와 " 긍정적 강화 " 라는 통치 기술에 몸을 전적으로 내주지 않았다.
태산이와 복순이의 행동이 "돌고래 우울증" 이든 " 동물의 저항" 이든, 인간의 생명정치에 균열을 낸 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