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빼어난 문장가로 명성이 자자했다. 만일 그 명성이 그의 문학적 화려함을 인정하고, 불량한 사고 방식을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서 나왔다면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그런 팬덤을 형성했더라도너그러이 봐넘길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사고 방식이 너무 많은사람과 너무 궁합이 잘 맞았다. 20세기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수의 지식인과 예술가가 전체주의적 독재자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찬양한 나머지, 지적인 역사학자 마크 릴라 (Mark Lilla, 1956년~)는 그 증후군에 "전제 애호증(tyrannophilia)"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제 애호증 환자 중 일부는 마르크스주의자로, "그는 개새끼일지 모르지만, 우리 개새끼다."라는 오래된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수는 니체 철학자였다. 가장 악명 높은 두 사람, 마르틴 하이데거와 법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년)는 나치와 히틀러를 열렬히 추종했다. 실제로 20세기의 모든 독재자에게는 펜을 든 투사가 있었다.  - P674

왜 모든 사람 중에서 유독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잔인한 독재자들에게 아양을 떨었을까? 지식인은 누구보다 먼저 권력의 핑계를 해체하고, 예술가는 인간적 연민의 범위를 확장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정말 고맙게도 많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그린 일을 해 왔다.)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Thomas Sowell, 1930년~)과 사회학자 폴 홀랜더 (Paul Hallander, 1932~2019년)가제시한 설명은 전문가 나르시시즘(professional narcissism)이라는 것이다.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은 시장과 시민 공동체에서 그들 자신의 욕구를 해결한다. 독재자들은 위에서 아래로 이론을 실천하고, 그과정에서 지식인들은 자신의 가치에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전제 애호증은 또 한편으로는 니체 철학이 평민과 보통사람에게 느끼는 경멸과 초인이 불러일으키는 경탄을 먹고 자란다. 평민과 보통 사람은 짜증 나게도 순수 예술과 문화보다는 싸구려를 더 좋아하고, 초인은 민주주의의 번잡한 타협을 초월하고 좋은 사회의 비전을영웅적으로 실행하지 않는가? - P675

니체의 낭만적 영웅주의는 집단이 아닌 단 1명의 초인을 찬양하지만,니체의 "더 강한 종류의 사람"이 부족, 종족, 민족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이 치환을 통해 니체의 사상은 나치즘, 파시즘, 그밖의 낭만적 민족주의에 채택되었고, 지금도 정치라는 드라마에 주연으로 나온다. - P675

정치적 세일즈맨들이 신화와 도상으로 마케팅을 해서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특정한 종교, 민족, 국가로 유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세뇌와 강제를 적절히 섞으면 사람을 총알받이로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주의가 인간 본성적 충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 본성의 어떤 요소도 사람들이 자랑스러운 프랑스인이자 유럽 인이자 세계 시민으로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 P679

우리는 결코 완벽한 세계를 갖지 못할 테고, 그런 세계를 추구하는일은 위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의 번영을 증진하는 일에 지식을 계속 사용한다면 세계를 개선할 방안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다.
이 영웅적인 이야기는 또 하나의 신화가 아니다. 신화는 허구이지만이 이야기는 사실 - 우리가 가진 최고의 지식,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단하나의 진리에 비추어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 진실을 믿는것은 그렇다고 믿을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알아 감에 따라 우리는 그 이야기의 어느 구절이 계속 참이고 어느 구절이 거짓인지를 밝혀낼 것이다. 어떤 구절도 거짓일 수 있고, 어떤 구절도 거짓이될 수 있다.
또한 그 이야기는 어느 한 부족의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것, 이성의힘과 이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지각력이 있는 모든 존재의것이다.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죽음보다 삶이 더 낫고, 병보다 건강이 더 낫고, 궁핍보다 풍요가 더 낫고, 압제보다 자유가 더 낫고, 고통보다 행복이 더 낫고, 미신과 무지보다 지식이 낫다는 확신만 있으면 되기때문이다. - P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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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제스처, 소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만져주던 모습, 수잔의 손이 사뿐한 동작으로 아이의 가느다란 머리칼과 가냘픈목을 쓰다듬던 모습은 올리브의 뇌리에 남았다. 배에서 다이빙하여 선창까지 수월하게 헤엄쳐 가는 여인을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어떤 이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이들은 할 수 있다는걸 상기시켜주듯이.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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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Consciousness Explained)』의 대니얼 클레멘트 데닛(Daniel Clement Dennett, 1942년)과 몇몇 철학자는 의식이라는 난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머리뼈 안 극장에 호문쿨루스(homunculus, 플라스크 속 작은인간)가 앉아 있다고 상상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그런 혼동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내 육신에서 분리될 수 있는 이 작은 인간은 내 극장에서 잠시 까치발로 걸어 나와서는 당신의 극장에 들러서 당신의 빨간색이 내빨간색과 같은지 다른지 확인하거나, 박쥐의 극장에 들러서 거기서 상연되는 영화를 관람한다. 혹은 좀비에게서는 사라졌지만 로봇에게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스타 트렉의 한 행성 자크(Zakdorn)으로 전송되는 빔을 타면 살아서 갈 수도 있고 일단 죽어서 갈 수도 있다. 나는 이따금 이 난제로 빚어진 해악(보수적인 지식인 디네시 조지프 디자(Dinesh Joseph D‘Souza, 1961년~)가 신의 존재에 관한 토론에서 나의 책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How the Mind Works), 한 권을 높이 들고 야단스레 흔들어댄 것을 포함해)을 볼때마다 그 용어가 없으면 우리 상황이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데닛의 말에 동의하고 싶어진다. 다양한 오해들이 있지만 이 난제는 천리안, 텔레파시, 시간 여행, 점, 원격 작용 같은 기이한 물리적 혹은 초과학적 현상이 아니고, 불가사의한 양자 물리학, 사이비 에너지 진동, 그밖의 황당한뉴에이지 이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금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이 난제가 비물질적인 영혼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의식에대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의식은 오로지 신경 활동에만 의존한다. - P644

우리의 가장 멋진 과학이 일러 주는 바에 따르면, 의식은 현재의 목표, 기억, 주변 환경이 표시된 일종의 총괄적 작업 공간이며, 앞앞이마엽ㅡ마루엽 신경 회로에서 점멸하는 동조 발화의 형태로 뇌에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이 이론에서 마지막 조각ㅡ그런 회로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어떤 것처럼느껴진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을 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놀랍지는 않다. 앰브로즈귀넷 비어스(Ambrose Gwinnert Bierce, 1842~1914년)가 악마의 사전(The Devil‘sDictionary)」에서 지적했듯이, 마음이 그 자신을 알기 위해 쓸 수 있는 도구는 그 자신뿐이며, 따라서 자기 존재의 가장 깊은 측면, 즉 본래적 주관성을 이해한다는 만족감을 결코 맛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 P645

유신론적 윤리학자들은, 그리스 신화의 변덕스러운 신들과는 달리성서의 하느님은 본성상 부도덕한 계율을 내릴 수 없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성서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구약의하느님은 무고한 사람 수백만 명을 살해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차별강간과 대량 학살을 범하라고 명령했으며, 불경, 우상숭배, 동성애, 간음, 부모에게 말대꾸하는 행위, 안식일에 일하는 행위에 사형을 지시한반면, 노예제, 강간, 고문, 신체 절단, 대량 학살은 딱히 잘못된 것이라고하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청동기 및 칠기 시대에 끊이지 않고 벌어진행위들이다. 물론 오늘날 개화된 신자들은 인도적인 명령들만 골라 담고, 사악한 명령들은 우화적으로 해석하거나, 수정하거나, 무시한다. 그런데 그게 바로 요점이다. 계몽주의적 휴머니즘의 렌즈를 통해 성서를읽고 있는 것이다. - P647

 인간 본성의 모든 특징이 수시로 채워야 하는 항상적 충동은 아니다. 물론 사람들은 초자연적 믿음으로 이어지는 인지적 착각에 잘 빠지고, 공동체에 소속될 필요도 분명히 있다.역사 속에서 오래전부터 다양한 제도가 출현해서 그런 착각을 조장하고 그런 필요를 채워 주는 관습의 패키지를 제공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패키지가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성적 욕망이 존재한다고 해서 플레이보이 클럽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과 같다. 사회의 교육 수준과 안전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종교가 남긴 유산들 중에서 시대에 맞지 않게 된 것들은 패키지에서 빠질 수 있다. 보다 리버럴해진 종교는 초자연적 도그마나 철기 시대의 도덕을 빼고도 많은 사람이 즐기는 예술, 의례, 도상, 공동체적 온정은 계속 제공할 수 있다. - P651

우선, 의미의 원천으로서 종교를 대신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어류학이나 신장병학에 의지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것은 과학만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 이성, 휴머니즘적 가치(과학 포함)로 이루어진 총체적인 구조물이다. 그 구조물에성서의 말씀과 비유. 그리고 현자, 학자, 랍비의 글처럼 종교에서 나온 것들이 중요한 요소로서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구조물을 지배하는 것은 세속적인 내용으로, 그리스 철학과 계몽주의철학에서 비롯된 윤리학적 논쟁들, 셰익스피어, 낭만주의 시인, 19세기소설가, 그밖의 위대한 예술가 및 평론가의 작품에 들어 있는 사랑, 상실, 고독의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편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때 삶의궁극적 질문들과 관련해 종교가 기여한 것 중 많은 부분은 심오하고 초시간적이라기보다는 얄팍하고 낡은 것들이다. 신성 모독자를 처벌하는
‘정의‘ 개념과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여성에게 강요하는 ‘사랑‘ 개념이 대표적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비물질적인 영혼의 존재에 의존하는 그 어떤 삶과 죽음의 개념도 사실적인 면에서 의심스럽고 도덕적인 면에서 위험하다. 또한 우주적 정의와 형이상학적 희망(인간적 정의와 세속적 희망의 반대)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것을 찾는 노력은 헛되고 무의미하다. 사람은 초자연적인 믿음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그런노력을 권장할 만한 실질적인 내용이 거의 없다. - P654

왜 종교는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20세기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종교를 법으로 금지하거나 규제했고, 다시 자유화되었을 때에는 시민들의 종교에 대한 취향은 느리게 회복되었다. 이소원함은 어느 정도 1960년대에 최고 수위를 찍었던, 모든 제도에 대한신뢰 감소의 탓이다." 두 번째 요인은 여권 신장, 출산의 자유, 동성애 용인 등 해방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15장) 또한 삶이 경제 성장과 의료, 사회 보장 확대 덕분에 더 세속적으로 변함에 따라 사람들은 더 이상 신에게 구원을 빌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다른 요인들이불변일 때 안전망이 강한 나라일수록 덜 종교적이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이유는 이성 그 자체일 것이다. 지적 호기심과 과학적 사고력을 갖추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기적을 믿지 않는다. 종교를 버리는 이유로 미국인들이 말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의 부족"이다.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어떤 종교를 믿든 신자의 비율이낮고, 세계적으로 무신론은 플린 효과를 보인다. 나라들이 더 똑똑해질수록 그 국민들은 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 P661

이슬람 세계를 괴롭히는 문제들에 유신론적 도덕관이 분명한 역할을하고 있음에도 많은 서양 지식인들 - 이들은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억압, 강한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정치적 폭력이 심지어 100배 희석된 채로 자기들 나라에 존재한다면 기겁을 할 것이다. 은 그런 관습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 이상하게도 옹호자로 돌변한다. 어떤 변명은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막고자 하는 훌륭한 바람에서 나온다.
어떤 변명은 세계가 문명의 충돌에 빠졌다는 파괴적인(그리고 필시 자기 실현적인 이야기를 의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다. 또 어떤 변명은 자신의 사회를 통렬히 비난하고 적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서양 지식인들의오랜 역사와 일치한다. (잠시 후에 이 증후군을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많은 변명이 유신론자, 신앙신론자, 제2문화의 지식인 사이에 은밀히 퍼져 있는종교에 대한 편애, 그리고 계몽주의적 휴머니즘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를꺼리는 태도에서 나온다. - P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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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 (Consciousness Explained)』의 대니얼 클레멘트 데닛(Daniel Clement Dennet, 1942년~)과 몇몇 철학자는 의식이라는 난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머리뼈 안 극장에 호문쿨루스(homuncuhus, 플라스크 속 작은인간)가 앉아 있다고 상상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그런 혼동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내 육신에서 분리될 수 있는 이 작은 인간은 내 극장에서 잠시 까치발로 걸어 나와서는 당신의 극장에 들러서 당신의 빨간색이 내빨간색과 같은지 다른지 확인하거나, 박쥐의 극장에 들러서 거기서 상연되는 영화를 관람한다. 혹은 좀비에게서는 사라졌지만 로봇에게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스타 트렉」의 한 행성 자크돈(Zakdorn)으로 전송되는 빔을 타면 살아서 갈 수도 있고 일단 죽어서 갈 수도 있다. 나는 이따금 이 난제로 빚어진 해악(보수적인 지식인 디네시 조지프 디수자(Dinesh Joseph D‘Souza 1961년~)가 신의 존재에 관한 토론에서 나의 책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How the Mind Works)』 한 권을 높이 들고 야단스레 흔들어댄 것을 포함해)을 볼때마다 그 용어가 없으면 우리 상황이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데닛의 말에 동의하고 싶어진다. 다양한 오해들이 있지만 이 난제는 천리안, 텔레파시, 시간 여행, 점, 원격 작용 같은 기이한 물리적 혹은 초과학적 현상이 아니고, 불가사의한 양자물리학, 사이비 에너지 진동, 그밖의 황당한 뉴에이지 이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금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난제가 비물질적인 영혼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의식에 대해 우리가아는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의식은 오로지 신경 활동에만 의존한다. - P644

우리의 가장 멋진 과학이 일러 주는 바에 따르면, 의식은 현재의 목표, 기억, 주변 환경이 표시된 일종의 총괄적 작업 공간이며, 앞앞이마엽ㅡ마루엽 신경 회로에서 점멸하는 동조 발화의 형태로 뇌에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이 이론에서 마지막 조각ㅡ 그런 회로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어떤 것처럼느껴진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을 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놀랍지는 않다. 앰브로즈귀넷 비어스(Ambrose Gwinnett Bierce, 1842~1914년)가 악마의 사전(The Devil‘sDictionary)」에서 지적했듯이, 마음이 그 자신을 알기 위해 쓸 수 있는 도구는 그 자신뿐이며, 따라서 자기존재의 가장 깊은 측면, 즉 본래적 주관성을 이해한다는 만족감을 결코 맛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 P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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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담론을 더 이성적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슈들을 가능한 한 탈정치화해야 한다. 실험들로 입증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가령 복지 개혁 같은 새로운 정책에 대해 들을 때 자기가 지지하는 당이 제안하면 그정책을 좋아하고 반대하는 당이 제안하면 싫어하면서도, 내내 자기는정책의 객관적인 장단점에 반응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몇몇 기후 운동가는 앨 고어가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을 쓰고 영화에 출연한것이 환경 운동에 득보다 독이 되었을 수 있다고 한탄했다. 민주당 출신의 전 부통령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고어 때문에 기후 변화에 좌파 낙인이 찍혔다는 이유에서이다. (오늘날에는 믿기 힘들지만, 한때 환경 운동은 우파의 대의명분일 때가 있었다. 상류 계급이 인종차별, 빈곤, 베트남 같은 심각한 이슈보다는 시골 사유지에서 사냥할 오리의 서식지와 풍광을 걱정한 것이다.) 더 많은 과학자를 고용해서 더 큰 목소리로 더 느리게 이야기하게 하는 것보다는 기후 변화의 증거를 확신하고 있는 보수적인 논평가와 리버럴한 논평가를 함께 동원한다면 더 큰 효과를 볼지도 모른다.  - P577

다른 무엇보다 먼저, 과학적 사고를 승인한다고 해서 이것을 ‘과학‘이라는 직업 조합의 구성원들이 특별히 현명하거나 고상하다는 어떤 믿음과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과학 문화는 오히려 정반대 믿음에 기초해있다. 열린 토론, 동료 평가, 이중 맹검 등 과학 문화를 상징하는 관행들이 만들어진 까닭은 과학자들도 인간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과실을 피하기 위함이다.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1918~1988년)은 과학의 첫 번째 원리를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을 속이지 마라. 가장속이기 쉬운 사람은 나 자신이다." - P589

과학주의를 악마화하는 사람들은 이해 가능성을 환원주의라는 죄악과 혼동할 때가 많다. 환원주의란 복잡한 체계를 더 단순한 요소로분해하거나 비난하는 이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더 단순한 요소들로만 분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깊은 원리에 의거해서 복잡한 현상을 설명할때는 그 풍부함이 폐기되지 않는다. 구성요소들을 더 낮은 수준으로환원할 수 없는 패턴들이 어느 한 분석의 차원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운동하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누구라도 그것을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언어로 설명하기보다는, 1914년 유럽 지도자들의 지각과 목표를 갖고 더 명쾌한 언어로 설명할 것이다. 동시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은 왜 인간의 마음이 그 역사적인 순간에 치명적으로 조합된 지각과 목표 - 부족주의, 지나친 자신감, 상호 두려움, 명예의 문화 -에 빠졌는지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 P592

우생학 운동은 나치즘과의 연관성 때문에 영구적인 의혹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그 용어가 살아남은 것은 부모가 치명적인 퇴행성 질환이 없는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유전 의학을 적용하는 등의 수많은 과학적 노력, 그리고 개인차의 유전적, 환경적 원인을 분석하는 행동 유전학의 전 분야에 낙인을 찍는 수단으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의 기록과 무관하게 우생학은 우파 과학자들의 운동으로 자주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로 우생학을 옹호한 진영은 진보주의자, 리버럴, 사회주의자 들이었고, 여기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년),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년), 엠마 골드만(EmmaGoldman, 1869~1940년), 조지 버나드 쇼, 해럴드 조지프 라스키(Harold JosephLaski, 1893~195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 시드니 웹(Sydney Webb, 1859~1947년)과 마사 비어트리스 웹 (Martha Beatrice Webb. 1858~1943년) 부부, 우드로 원슨, 마거릿 히긴스 생어(Margaret Higgins Sanger, 1879~1966년) 등이 포함되어있다. 어쨌든 우생학은 현 상태보다는 개혁에, 이기심보다는 사회적 책임에, 자유 방임주의보다는 중앙 집중적 계획에 호의적이었다. 우생학을 가장 단호하게 거부하기 위해서는 고전적인 자유주의나 자유 지상주의의 원리에 호소해야 한다. 즉 정부는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전능한 통치자가 아니라 제한된 권력을 가진 제도일 뿐이며, 인류의 유전적 구성을 개량할 권력은 거기에 없다는 것이다. - P602

비폭력 저항 운동은 효과가 있을까? 많은 사람이 간디와 마틴 루서킹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믿는다. 그들의 운동은 적절한 때에 개화된 민주주의 국가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다른 모든 곳에서 억압된 민중은 폭력이 아니고서는 독재자의 군화 밑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2명의정치 과학자 에리카 체노웨스(Erica Chenoweth, 1980년~)와 마리아 스테판(Maria Stephan)은 1900년부터 2006년까지 전 세계에서 정치적 저항 운동의 데이터 집합을 모았고, 비폭력 저항 운동은 4분의 3이 성공한 데 반해 폭력적인 저항 운동은 고작 3분의 1만이 성공했음을 발견했다." 간디와 킹은 옳았지만, 데이터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폭력적인 반정부 집단이나 테러 집단에 가담해야겠다는 충동은 정의로운 전쟁이 있을 수 있다는 정의 전쟁론(just war theory)보다는 남자들사이의 유대감에 더 크게 기인하지만, 전투원들은 대부분 더 좋은 세계를 만들고자 한다면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 듯하다. 폭력적인 전략이 부도덕할 뿐 아니라 효과마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체노웨스와 스테판의 책을 나무 상자에 담아 분쟁 지역에 투하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급진적인 집단의 지도자 중에는 많이 배운 사람이 많으며 몇 해 전에 접한 학자들의 책을 읽고 그렇게 격앙해 있다.), 말단 병사들 가운데서도 대학에 다니면서 폭력 혁명의 필요성에 관한 통념을 흡수한 사람이 드물지 않다." 표준적인 대학 커리큘럼에서 카를 마르크스나 프란츠 파농의 책을 줄이고 정치 폭력에 대한 정량 분석을 더 많이 넣는다면 장기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 P610

지금 휴머니즘이라고 불리는 운동이 성장하면서 의미와 윤리를 떠받치는 초자연적이지 않은 기초를 다지고 있다. 그 기초는 바로, 신 없는 선(good without God)이다. 휴머니즘 운동의 목표는 1933년부터 세 번에걸쳐 선언되었다. 2003년에 나온 ‘제3차 휴머니즘 선언(Humanist ManifesteII)‘은 아래와 같이 단언한다.

세계의 지식은 관찰, 실험, 이성적 분석을 통해 획득한 성과물이다. 휴머니스트는 과학이야말로 이 지식을 결정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자 문제를 해결하고 유익한 기술을 개발하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또한사상, 예술, 내적 경험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고, 각각의 주제를 비판적 지성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치 있음을 인정한다.
인간은 본래 자연의 일부분이며 어떤 안내도 없이 진화적 변화를 거친 존재이다. 우리는 이 삶이 전부이자 끝이라고 인정하며 있는 그대로의 것과우리가 바라거나 상상하는 것을 구분한다. 우리는 미래의 도전을 환영하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에 이끌리고 겁내지 않는다.
윤리적 가치는 경험으로 검증되었듯이 인간의 필요와 이익에서 유래했다. 휴머니스트는 인간의 환경, 이익, 관심사에 의해 빚어지고 지구 생태계와 그녀머에 펼쳐져 있는 인간의 행복 위에 가치를 세운다.
삶의 실현은 인간적인 이상에 봉사하는 개인적 참여에서 나온다. 우리는••• 강한 목적 의식으로 우리의 삶을 고취하고, 인간 존재의 기쁨과 아름다움,그 도전과 비극, 더 나아가 죽음의 필연성과 궁극성에서에서 감탄과 경외를 찾는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이며 관계에서 의미를 찾는다. 휴머니스트는 ••• 서로 돌보고 배려하는 세계, 잔인함과 그 결과가 없는 세계, 다름이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협력으로 해결되는 세계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에 이로운 일은 개인의 행복을 극대화한다. 진보적인 문화는 생존만을 위한 잔인한 상황에서 인류를 해방하고자 힘써 왔고, 고통을 줄이고, 사회를 개선하고, 지구 공동체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 P620

스피노자의 금언은 분류 원리상 도덕성의 세속적 기초를 공평성(Impartiality)에서 찾자는 생각이 담겨 있다. 즉 대명사 나(Iand me)에는내 이익이 당신이나 그 누구의 이익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정당화할 수있는 마술적인 힘이 전혀 없다는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일 내가 강간, 폭행, 굶김, 살해를 당하는 것에 반대한다면, 나 또한 당신에게강간, 폭행, 김, 살해를 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공평성은 도덕성을 ‘이성적 근거‘ 위에 놓고자 하는 많은 시도를 떠받쳐 준다. 스피노자의 영원의 관점, 홉스의 사회 계약, 칸트의 정언명령, 롤스의 무지의 베일, 네이글의 아무 데도 아닌 곳에서의 관점(veiw from nowhere), 로크와 제퍼슨이 제시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자명한 진리, 그리고물론 황금률과 수많은 도덕 전통에서 재발견되는 귀중하고도 엄정한그 이형들이 그런 시도였다. 은률은 "너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마라"이고, 백금률은 "남들이 너에게 바랄 만한 일을 남들에게 하라."이다. 은률과 백금률은 마조히스트, 자살 폭탄 테러범, 취향의 차이 등 황금률의 난제를 예상하고 만들어졌다.) - P622

휴머니즘은 다양한 문화를 가진 합리적인 사람들이 모여 잘 지낼 필요가 있을 때 도달하게 되는 도덕률이지만 그럼에도 절대 무미건조하거나 달콤하기만 한 최소 공통 분모가 아니다. 도덕성은 인간 번영의 극대화에 있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두 가지 대안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첫째는 유신론적 도덕관이다. 도덕성의 핵심은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고, 신의 명령은 초자연적인 보상과 처벌을 통해 이 세계나 사후 세계에서 집행된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낭만적 영웅주의, 즉도덕성은 한 개인이나 민족의 순수성, 진정성, 위대함에 있다는 생각이다. 낭만적 영웅주의는 19세기에 처음 명확히 표명되었지만,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네오파시즘, 신반동주의 (neo-reaction, 반자유, 반계몽, 애국주의,
백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극우 운동으로, 검은 계몽주의(Dark Enlightenment)라고도 한다. 옮긴이), 알트라이트(AltRight, 극단적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온라인 기반 보수주의 운동 옮긴이)처럼 새로 출현하는 운동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지식인이 휴머니즘의 이 대안들을 드러내놓고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에는 인간 심리의 생생한 진리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인간에게는 유신론적, 종교적, 영웅적, 혹은 종족적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휴머니즘은 틀리지는 않지만 인간 본성을 거스른다고 그들은 말한다.
휴머니즘 원리에 기초하면 어떤 사회도 오래가지 않는다고. 세계 질서는말할 것도 없고. - P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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