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나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때, 과거를 놓아줄 때‘, 나에게는 잠겨있는 정원 앞에서 돌아설 때가 아닐까? 결코 가질 수 없는 것 때문에 슬퍼하는 대신 ‘현재를 살고, 지금 당장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닐까? 몇 년동안이나 나는 헛된 슬픔의 온실에서 허우적거렸다. 피파 피파 피파 기쁨과 절망 끝이 없었다. 나는 사실상 아무 의미도 없는 일 때문에 하늘 위의별들 사이로 붕 뜨기도 하고 말도 나오지 않는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내 전화기에 피파의 이름이 뜨거나 ‘사랑을 보내며‘라고 서명한 이메일(피파는수신자가 누구든 모든 메일에 그렇게 서명했다)이 오면 나는 며칠씩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지만 피파가 호비 아저씨랑 통화를 하면서 나를 바꿔달라고 하지 않으면(사실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말도 안 될 만큼 좌절했다. 나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렇다는 사실을 나도 알았다. 더 나쁜 것은, 피파를 향한 나의 사랑이 수면 아래에서는 엄마와 엄마의 죽음, 내가 엄마를 잃었고 이제는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과 뒤섞여 질퍽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구원하고 구원받고 싶다는, 과거로 돌아가서 삶을 바꾸고 싶다는 그맹목적이고 유아적인 갈망이 피파에게 탐욕스럽게 들러붙어 있었다. 그것은 어딘가 불안정하고 구역질나는 것이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보고 있었다. 좀 더 나가면 나는 트레일러 촌에 혼자 살면서 쇼핑몰에서 본 소녀를 스토킹하는 남자와 다를 것이 없었다. - P112

"엄마가 기뻐하시겠지?" 우리가 바버 부인의 방으로 서둘러 들어갈 때 킷시가 뾰족하고 작은 팔꿈치로 내 갈비뼈를 치면서 속삭였다. 바버 부인이우리 소식을 듣고 기뻐하던 장면 (킷시는 자기가 말해, 그럼 엄마가 더 기뻐할 거야라고 말했다)은 아무리 곱씹어도 절대 지겹지 않았다. 깜짝 놀란 눈빛 차갑고 지친 얼굴에서 무방비 상태로 환하게 피어나던 기쁨. 한 손은 나를 한 손은 킷시를 잡고 있었지만 그 아름다운 미소-나는 그 미소를 결코잊지 못할 것이다는 온전히 나를 향한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그토록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 누가 알았을까? 또는, 나자신이 그렇게 행복할지 누가 알았을까? 내 기분은 새총처럼 날았고, 여러해 동안 갇혀서 마비되어 있던 내 심장은 유리잔에 갇힌 벌처럼 쌩쌩 여기저기 부딪쳤다. 모든 것이 눈부시고 날카롭고 혼란스럽고 이상했다. 하지만그것은 여러 해 동안 약 기운 속에서 썩은 이처럼 나를 괴롭히던 둔중한 불행, 무언가를 망쳤다는 기분 더럽고 메스꺼운 통증과는 전혀 다른 깨끗한통증이었다. 그 명확함은 정말 기분 좋았다.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드는 얼룩진 안경을 벗은 것 같았다. 여름 내내 나는 사실상 무아지경 상태였다. 나는 얼얼하고 멍하고 힘이 넘쳤고, 진을 마시고 칵테일새우를 먹고 상쾌한 테니스공 소리를 듣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나는 킷시, 킷시, 킷시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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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반점이었다. 그 반점은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마을은 불타고 있었다. 남자들이 불을 지른 것이었다. 남자들은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못을 박은 그들의 군화 밑에서 눈이 비명을 질렀다. 역겨운 비명을 질렀다. 눈이, 사람들이 집들을 둘러서 있고, 집들은 불타고 있었다. 그들은 솥이며 아이들, 이불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핏빛 눈 속에서 고양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눈은 불에 비쳐 그렇게 붉은 것이었다. 그리고 눈은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바작바작 타며 신음 소리를 내는 집들 주변에 말없이 둘러서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은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 P21

머리가 벗어진 남자들이 탁자 앞에 서 있었다. 두 시간 전에 그중 한 남자가 붉은 색연필로 선을 하나 그었다. 지도 위에, 지도 위에는 점이 한 개 있었다. 그 마을이었다. 그다음누군가가 전화를 했다. 그러자 군인들이 반점, 핏빛으로 불타는 그 마을을 밤의 어둠 속으로 깨끗이 쓸어 넣어버렸다.
담홍색 눈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얼어 죽어가는 고양이들과함께 머리가 벗어진 남자들 사이에서 다시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한 처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천둥소리가 들렸다. 아주 멀리서남자들이 밤거리를 지나갔다. 그들은 콧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배나무 냄새를 맡았다. 전쟁 중이 아니었다. 남자들은 또 군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하늘에는 핏빛 반점이 하나 있었다. 남자들은 이제 콧노래를 그쳤다. 한 남자가말했다. 저기 봐, 태양이야. 그들은 계속 걸어갔다. 그러나이제 콧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꽃 피는 배나무 아래에서 담홍색 눈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붉게 물든 눈에서 다시는 벗어나지 못했다. - P22

 두려움 때문에 기름에 심지를 담가 불을 붙이지. 그러나우리는 여전히 바보들이야. 이 모든 걸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두려움을 이기려고 하는 거야. 철모를 쓰는 것도 두려움때문이야. 그러나 이 모든 게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우리가 실크 속치마나 밤꾀꼬리의 신음소리에 빠져 우리 자신의 삶을 잊는다 해도, 어느새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거든, 그 순간, 두려움은 어디선가 기침을 하고 있어. 두려움이우리를 엄습하면 철모도 소용이 없어. 그러면 집도 여자도 술도 철모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거야.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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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또 한 가지 요인은 SARS-CoV가 인체를 침범하는 방식 자체일 것이다. 우선 증상이 감염력이 매우 높아지기 전에 나타난다. 두통, 발열, 오한, 아마 기침까지도 본격적으로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전에 시작된다. 심지어 슈퍼전파자들도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많은 감염자들을 감염력이 최고조에 달하기 전에 발견하여 입원 및 격리시킬 수 있었다. 애석한 점은 전염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의료인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에게 감염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한 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상황보다는 훨씬낫다. 이것이야말로 행운이다. 독감을 비롯한 많은 질병에서는 이 순서가 반대다. 증상이 나타나기 며칠 전부터 이미 감염을 퍼뜨리고 다닌다. 위험이 닥친 후에야 경고가 따라오는 셈이다. 사스라는 질병이이랬다면 2003년 유행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고 훨씬 암울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 P259

 정신병원 안에 있는 풀밭에 양을 몇 마리 길렀던 것이다. 그해 새끼 낳는 기간에 새끼양 한 마리가 어미에게 버림받은 일이 있었다. 환자 하나가 그 새끼를 키우겠다고 자청하여 자기 침실로데려가 하루에 여섯 번씩 젖병으로 젖을 먹였다. 다른 환자들도 이 새끼양을 귀여워하여 끌어안곤 했다. 누군가는 정신질환에 치유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듯도 하다. 물론 양의 Q열 검사에서 양성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얘기다. 오랫동안 인간의 감정은 인수공통감염병을 예방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변기 뚜껑이 열려 있으면 그 속의 물을 마시곤 하는 애완견과 입을 맞추는 행위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 P287

배설물이 밀짚에 스며들며 천천히 퇴비가 되는 동안, 콕시엘라 버네티의 숫자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쓰레기 더미 아래 깊숙한 곳에서 언제고 터져나올 순간만 기다리는 거죠." 밀짚이 축사 구덩이 가장자리에 이르러 더 이상 새로운 밀짚을 깔 수 없게 될 때까지 그중 한 마리라도 감염된다면 수많은 염소에게 세균이 쉽게 퍼질 수 있다. 또한, 어느날 염소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기계가 들어와 그 귀중한 퇴비를 퍼내어 밭과 목초지에 뿌리는 순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균이 미세한 저항성 입자의 형태로 산들바람에 실려 주변으로 퍼진다.
로스트의 말에 따르면 네덜란드식 고밀집형 염소 낙농업은 최근 발생한 유행의 원인 중 하나다. 염소 숫자가 늘어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염소농장의 평균 크기가 어느때보다도 커졌다는 것이 문제다.  - P290

생물학의 현대적 발전을 높이 평가하는 다른 연구자들은 감염병이라는 현상을 전반적으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계 사이의 다른 수많은 경쟁과 동일한 특성을 지닌 인간과 미생물 사이의 생존경쟁이라는 생태학적 맥락에서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 P295

버넷은 책에서 캘리포니아산 작은잉꼬, 오스트레일리아산 야생 앵무새, X씨가 우중충한 뒷마당 헛간에서 길러 한 동물들에 의해 새를 좋아하는 멜버른의 노동자들이 감염병에 시달린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다. 버넷은 앵무새병이 정상적으로는 감염력이 그리 높지 않다고 적었다. 야생조류 집단에서는 풍토병처럼 존재하며 거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앵무새들도 야생에서 자연 상태로 살도록 내버려둔다면 아무런 증상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어쩌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새 사냥꾼과 중간 상인인 X씨는 그들의자연적인 삶을 단절시켰다. ‘포획된 새들은 붐비고 지저분한 곳에서살며 운동을 하거나 햇빛을 볼 기회조차 없었으므로 잠복감염이 급성질병으로 나타난 것도 당연한 일이다. 환경적인 스트레스에 의해 클라미도필라 시타키Chlamydophila psittaci*가 증식하여 폭발적인 질병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버넷은 이 사건과 비슷한 다른 사건들을 통해 감염병에 관한 한 가지 일반적인 진실이 드러난다고 썼다. ‘감염병이란 인간과 기생병원체사이의 갈등이다. 안정적인 환경이라면 두 가지 생물종은 영원히 생존할 수 있는 사실상의 평형상태, 즉 극단계climax state에 도달한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활동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서 살기때문에 질병 또한 그런 평형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전체적인 개념, 특히 인간에 의한 환경의 교란이 유행병을 촉발시킨다는 점에서 버넷은 옳았다.  - P297

하지만 잠깐 우리는 생태학을 다루고 있고 생태학은 매우 복잡하다. 추가적으로 두 가지 인자를 고려해야 한다. 한 가지는 불변의 사실이고, 한 가지는 변수다. 불변의 사실이란 검은다리진드기 사이에서 보렐리아 부르크도르페리의 수직감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자면 감염이 대물림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마리의 사슴에 달라붙어 피를 빨던 진드기 암컷에서 태어난 100만 마리의 아기 진드기 중에 부화 당시에 보렐리아 부르크도르페리에 감염된 놈은 한 마리도 없다. 사슴과 모든 암컷 진드기가 감염되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새끼들은 깨끗하고 건강한 상태로 세상에 태어난다. 따라서 진드기의 모든 세대는 새롭게 감염된다. 일반적으로 유충 시기에 감염된 숙주(생쥐나 뾰족뒤쥐의 피를 빤결과 나선균에 감염되는 것으로보인다. 이놈들이 변태를 거쳐 약충이 되고 감염되지 않은 숙주의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빠는 순간 혈액 응고 성분이 포함된 침을 통해 나선균이 전파된다. "진드기가 포유동물을 통해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나중에 다른 포유동물에게 병을 옮기지도 않습니다." 오스트펠드의 말이다. 이런 상호감염을 통해 보렐리아 부르크도르페리는 진드기에서도, 숙주에서도 높은 감염률을 유지한다. - P315

나선균이 대물림되지 않는다는 불변의 사실과 관련된 변수는 오스트펠드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보유숙주 전파력‘이라고 부르는 요소다.
이미 감염된 숙주가 자기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빠는 진드기에게 감염을 전달해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측정한 것이다. 보육숙주 전파력은동물마다 다르며, 병원체에 대한 면역반응의 강도와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면역반응이 약하여 혈액 속에 나선균 숫자가 많다면 그 동물은 보렐리아 부르크도르페리의 보유숙주로서 진드기에게 감염을 옮기는 ‘전파력‘이 높다. 면역반응이 강하고 효과적이어서 혈액 속 나선균의 숫자가 크게 줄어든다면 그 동물은 보유숙주로서 ‘전파력‘이 비교적 낮다. 포획된 동물과 그들의 몸에 붙어 기생하는 진드기를 대상으로 한 오스트펠드 팀의 연구 결과, 라임병 나선균의 보유숙주 중 가장 전파력이 높은 동물은 흰발생쥐였다. 다람쥐가 한참 뒤진2등, 뾰족뒤쥐는 근소한 차이로 3등이었다. - P315

이것은 그가 20년간 연구 끝에 얻어낸 가장 중요한 결론이다. 특정한 지역에서 라임병의 위험은 토종 동물종의 다양성이 줄어들수록 높아지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아마도 생쥐나 뾰족뒤쥐(전파력이 높다)와 서식지를 공유하는 거의 모든 척추동물숙주(전파력이 낮다) 사이에 보유숙주 전파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전파력이 높은 보유숙주의 효과가 전파력이 낮은 다른 동물의 존재로 인해 희석되는 것이다. 생태학적 역할을 담당하는 동물들, 즉 매, 올빼미, 여우, 족제비, 주머니쥐 등 중간 크기의 포식자와 청설모나 다람쥐 등 몸집이 작은 경쟁자가 모두 존재하는 숲에서는 흰발생쥐와 뾰족뒤쥐의 개체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포식과 경쟁에 의해 크게 늘어나지도 못한다. 평균적인 보유숙주 전파력이 낮게 유지되는 것이다.  - P321

이런 통찰을 통해 오스트펠드는 공중보건에 직접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떤 조건에서 숲 속의 동물 다양성이 줄어들까? 보다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어떤 조림지와 녹지와 공원에서 라임병에 노출될 위험이 가장 클까? 포장도로와 빌딩과 기타 인공물로 둘러싸인 숲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모두 생태학적으로 고립된 섬과 같다. 이런 숲은 마음대로 드나들기 어렵기 때문에 이곳에 사는 육상동물들의 공동체는 외부와 단절된다.(조류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섬이라도 큰섬에는 일반적으로 작은 섬보다 더 많은 동물종이 산다. 마다가스카르는 피지보다 생물다양성이 높으며, 피지는 트루크 제도(태평양 서부 캐롤라인 제도 중 일부에 해당하는 몇몇 섬들)보다 생물다양성이높다. 왜 그럴까? 간단히 말하자면 육지의 면적이 넓고 다양한 서식지가 존재할수록 더 많은 종류의 생물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22

스 카운티 같은 환경에서 규모가 작은 조림지에는 몇 가지 동물종만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중 하나가 바로 흰발생쥐다. 이 녀석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생존력이 강하며, 새끼를 많이 낳고 기회를 잘 포착한다. 흰발생쥐는 틀림없이 그곳에 들어와 살 것이다. 포식자와 경쟁자가 거의 없으므로 개체수는 어느 정도 변동은 있겠지만평균적으로 높게 유지되며 도토리가 많이 열린 해 뒤로는 몇 년간 여름만 되면 급증할 것이다. 작은 조림지는 하멜른(Hamelin, 독일 북부의 도시로 ‘피리부는 사나이‘의 전설로 유명하다-역주)의 거리처럼 생쥐들이 득실댈 것이다. 진드기 숫자도 늘어날 것이다. 흰발생쥐는 털에 붙은 유충을 떼어내는 데 서툴기 때문에(주머니쥐나 개똥지빠귀는 물론 줄다람쥐보다도 못하다), 진드기들은 피를 배불리 빨아먹고 많은 숫자가 생존할 것이다. 또한 흰발생쥐는 보렐리아 부르크도르페리의 보유숙주 전파력이 높아 균을 효율적으로 증식시키고 전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진드기들이 감염될 것이다. 동물종의 다양성이 풍부한 큰 규모의 숲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흰발생쥐는 다양한 포식자와 경쟁자들에 둘러싸여 개체수가 많이 늘지 못한다. 다른 동물은 나선균의 숙주 전파력이높지 않으며, 굶주린 진드기 유충을 잘 견디지 못한다. 전체적으로 감염된 진그기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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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이었다. 아니, 절망적인 것 이상이었다. 모욕적이었다. 피파가 오면 나는 항상 내 방문을 조금 열어두었는데, 그다지 교묘하다고 할 수 없는 초대였다. (너무 연약해서 땅 위를 잘 걷지 못하는 작은 인어공주처럼) 발을 끄는 사랑스러운 발걸음조차도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피파는 모든 것에 엮여 있는 황금실, 아름다움을 확대해 온 세상을 오직 그녀와 관련된것으로 바꾸는 렌즈였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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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는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동물종이므로 우리의 질병또한 새로운 것들이다. 우리는 다른 동물로부터 질병을 빌려왔다. 헨드라나 에볼라 등 일부 감염병은 가끔씩 찾아오며 유행이 발생해도 곧막다른 골목에 이른다. 독감이나 에이즈 같은 질병은 일단 뿌리를 내린 후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파되며 인간이라는 서식 환경 내에서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인간이 아닌 영장류에서 유래한열대열원충과 삼일열원충 또한 비슷한 성공을 거두었다.
플라스모듐 놀레시는 어쩌면 갈림길에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로서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며 장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놈들은 원생생물이므로 계획 같은 건 없을 것이다. 그저 상황에 맞춰 반응할 뿐이다. 다른 말라리아 원충 사촌들이 기나긴 세월에 걸쳐매우 효과적으로 적응했듯이 놈들도 적응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인수공통감염병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킬것이다. 질병이 어디에서 왔는지뿐만 아니라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말이다. - P205

슈퍼전파자superspreader란 전형적인 감염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직접 감염시킨 환자를 가리킨다. 보통 유행병이 시작될 때 각각의 일차감염자에 의해 감염되는 이차감염자의 평균 숫자를 Ro (조지 맥도널드가 수리역학에 도입했던 중요한 변수)라 하는데 슈퍼전파자는 이런 평균치를 훨씬 넘어서는 일차감염자다. 어떤 집단에 슈퍼전파자가 존재하면 일상적인 계산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대유행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로이드-스미스 J. O. Lloyd-Smith와 공저자들은 <네이치>에 이렇게 썼다. ‘어떤 집단에서 Ro를 예측하면 감염력의 개인차가 상당하다는 사실이 가려질 수 있다. 중증급성호흡증후군(사스)의 전 세계적 유행 시 수많은 ‘슈퍼전파사건‘을 통해 어떤 환자들은 이례적으로 많은 이차감염자를냈다.‘ ‘장티푸스 메리‘는 전설적인 슈퍼전파자였다. 로이드-스미스와 공동저자들은 이 개념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질병이 유행할 때 슈퍼전파자가 발견된다면 전 인구를 대상으로 한 폭넓은 통제 조치보다도 슈퍼전파자를 격리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49명의 감염 환자를 격리시킨다고 해도 단 한 명의 슈퍼전파자를 놓치면 통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유행병이 확산된다는 것이다.  - P214

그들이 옳았다. 이 바이러스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로 명명되었으며 SARS-CoV라는 우아하지 못한 약자로 표기되었다. 인간에게심각한 질병을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되기는 처음이었다. (몇몇 코로나바이러스는 다른 수많은 바이러스와 함께 감기의 원인이다. 마우스의 간염이나 돼지의 위장관염, 칠면조의 호흡기 감염을 일으키는 것들도 있다.) SARS-CoV라고 표기하면 전혀 불길한 느낌이들지 않는다. 한때는 새로운 병원체가 발견되면 포산 바이러스, 광저우 바이러스하는 식으로 지역명을 따서 훨씬 생생한 이름을 붙이곤 했다. 사람들은 ‘조심해! 저 친구는 광저우에 걸렸어!‘라고 수군댔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이 그런 명명법을 부당하고, 달갑지 않으며, 관광산업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 P229

중국 남부 사람들은 항상 지구 상 다른 어떤 민족보다 다양한 동물을 음식으로 즐겼다. ‘야생의 맛을 추구하는 시대‘를 맞아 야생동물 요리의 범위와 형태와 소비량은 계속 늘어  사실상 땅과 바다와 하늘에 사는 모든 동물이 포함되었다.

야생의 맛(광둥어로 예웨이 Lyeweil]라고 한다)은 ‘체면‘을 세우고 부를 과시하며 행운을 기원하는 방식으로 간주된다. 그린펠드는 야생동물을 먹는 행위가 새로운 과시적 소비성향뿐 아니라 수많은 여성이 유리 진열장뒤에서 손님을 유혹하는 매춘산업과 연관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이런 유행은 희한한 요리와 천연약재와 이국적인 최음제(호랑이 음경 같은)를 추구하는 전통과 맞물려 빠른 속도로 정착되고 퍼져갔다. 어떤 관리는 그린펠드에게 광저우 시내에만도 야생동물 요리를 내는 음식점이 2천 개가 넘는다고 알려주었다. 그린펠드가 그의 사무실에 있는 동안만도 4개 업소에 허가증이 발급되었다. - P232

시벳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바이러스 항체가 관박쥐에서 흔히 검출된다는 사실은 중요한 발견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리의 연구팀은 분변 검체에서 추출한 바이러스 게놈 절편들의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비교분석 결과 사스 유사 바이러스는 검체마다상당한 유전학적 다양성을 나타냈다. 인간에서 분리된 모든 SARS-CoV 사이의 다양성보다도 높은 수준이었다. 이 바이러스는 일정 기간박쥐 군집 속에 머물면서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변화하고 다양성을 늘려가는 것 같았다. 사실 인간 사스 바이러스에서 알려진 다양성의 총합이 박쥐 바이러스의 다양성 속에 포함되었다. 이런 내포관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가계도에 표시하는 것이다. 리와 동료들은 실제로 가계도를 작성하여 <사이언스> 지에 발표한 논문에도실었다. 그 속에서 인간 사스 바이러스는 관박쥐 속에 사는 바이러스를 나타내는 굵은 가지에서 뻗어나온 가늘고 작은 잔가지에 불과하다.
이건 무슨 뜻일까? 관박쥐가 사스의 유일한 보유숙주가 아니라 보유숙주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또한 2003년 유행 시 시벳은 보유숙주가 아니라 증식숙주 역할을 한 것이 틀림없다는 뜻이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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