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반점이었다. 그 반점은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마을은 불타고 있었다. 남자들이 불을 지른 것이었다. 남자들은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못을 박은 그들의 군화 밑에서 눈이 비명을 질렀다. 역겨운 비명을 질렀다. 눈이, 사람들이 집들을 둘러서 있고, 집들은 불타고 있었다. 그들은 솥이며 아이들, 이불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핏빛 눈 속에서 고양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눈은 불에 비쳐 그렇게 붉은 것이었다. 그리고 눈은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바작바작 타며 신음 소리를 내는 집들 주변에 말없이 둘러서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은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 P21

머리가 벗어진 남자들이 탁자 앞에 서 있었다. 두 시간 전에 그중 한 남자가 붉은 색연필로 선을 하나 그었다. 지도 위에, 지도 위에는 점이 한 개 있었다. 그 마을이었다. 그다음누군가가 전화를 했다. 그러자 군인들이 반점, 핏빛으로 불타는 그 마을을 밤의 어둠 속으로 깨끗이 쓸어 넣어버렸다.
담홍색 눈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얼어 죽어가는 고양이들과함께 머리가 벗어진 남자들 사이에서 다시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한 처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천둥소리가 들렸다. 아주 멀리서남자들이 밤거리를 지나갔다. 그들은 콧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배나무 냄새를 맡았다. 전쟁 중이 아니었다. 남자들은 또 군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하늘에는 핏빛 반점이 하나 있었다. 남자들은 이제 콧노래를 그쳤다. 한 남자가말했다. 저기 봐, 태양이야. 그들은 계속 걸어갔다. 그러나이제 콧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꽃 피는 배나무 아래에서 담홍색 눈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붉게 물든 눈에서 다시는 벗어나지 못했다. - P22

 두려움 때문에 기름에 심지를 담가 불을 붙이지. 그러나우리는 여전히 바보들이야. 이 모든 걸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두려움을 이기려고 하는 거야. 철모를 쓰는 것도 두려움때문이야. 그러나 이 모든 게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우리가 실크 속치마나 밤꾀꼬리의 신음소리에 빠져 우리 자신의 삶을 잊는다 해도, 어느새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거든, 그 순간, 두려움은 어디선가 기침을 하고 있어. 두려움이우리를 엄습하면 철모도 소용이 없어. 그러면 집도 여자도 술도 철모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거야.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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