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게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 수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눈에 띄곤 한다. 도카이 의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 같은 사람들은 굴곡진 주위 세계에 (말하자면) 올곧은 자신을 끼워맞춰 살아가기 위해 많든 적든 저마다 조정작업을 요구받게 되는데, 대부분 본인은 자신이 얼마나 번거로운 기교를 부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퍼뜩 깨달았을 때, 사태는 때로는 비통하고 또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물론 죽을 때까지 그런 빛을 목도하지 않는, 혹은 목도하더라도 딱히 별다른 느낌을 받지않는 축복받은 (이라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사람들도 허다하게 존재하지만. - P117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면 내 마음도 따라서 당겨집니다. 로프로 이어진 두 척의 보트처럼 줄을 끊으려 해도 그걸 끊어낼 칼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는 잘못된 보트에 이어졌던 거라고 우리는 뒤늦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단언할 수 있을까? 생각건대 그 여자가 (아마도)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거짓말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론 의미는 얼마간 다르겠지만, 도카이 의사 또한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사랑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본인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타율적인 작용이었다. 제삼자가 나중에야 뭘 좀 아는 척 왈가왈부하고 자못 서글프게 고개를 내젓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을 저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음을 뒤흔들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고, 때로는 죽음에까지 몰아붙이는 그런 기관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분명 몹시 퉁명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혹은 단순한 기교의 나열로 끝나버릴 것이다 - P1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조가 초조한들 어쩌겠는가. 승려는 드나들어도 군관들은 계속 실패하는 것을..…. 심기성은 결국 12월 28일에 관직과 임무를 반납하며 반성문을 겸한 사직서를 올렸다.
"신은 양반답지 않게 걸음이 나는 듯했다지만 그건 옛날일입니다. 근래 큰 병을 앓은 터라 신체기능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승려나 백성들은 혼자도 움직이므로 포위망을 빠져나가기 쉽지만 신은 양반입니다. 몇 되밖에 되지 않는(혼자서도 충분히 멜 수 있는 양의 식량이나 단 한 벌의 옷이라도반드시 하인이 메고 가야 합니다. 호위를 위해 선전관이 같이 가는데 그 친구도 양반이라 하인에게 짐을 들립니다. 자연히 인원이 최소 4~5 명 이상이 되어 경계선을 넘기가 힘들어집니다. 신이 벌써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목책에서 번번이 적의 초병에게 발각됐고 서너 번은 죽을 고비를 넘겼사옵니다."
심기성의 사직서를 본 인조는 너무 괘씸했는지 사직을 허락하지 않고 심술궂은 처벌을 내렸다.
"다 용서할 테니 다시 출발하라."
절반은 비겁한 변명이었다고 해도 중요한 점은 양반이라 배낭을 멜 수 없다는 말이 당당히 핑계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조선이었다는 점이다.  - P2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금까지 여자가 운전하는 차를 적잖이 타보았지만, 가후쿠가보기에 여자들의 운전습관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뉘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난폭하거나 지나치다 싶을 만큼 신중하거나, 후자가 전자보다-우리는 그 점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훨씬 많았다. 일반론을 말하자면, 여자 운전자는 남자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물론 조심스럽고 신중한 운전에 불만을 제기할 이유는없다. 그래도 그런 운전은 때로 주위 운전자들을 답답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 P9

다른 때는 옆에 누가 있으면 긴장해서 도저히 소리 내어 대사연습을 할 생각도 못 하지만, 미사키의 경우에는 그 존재가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가후쿠는 그녀의 무표정하고 무뚝뚝한 면이 감사했다. 그가 옆에서 아무리 큰 소리로 대사를 읊어대도 그녀는 마치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어쩌면 정말로 아무것도 귀에 들어가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항상 운전에 신경을 집중했다. 혹은 운전이 가져다주는 특수한 선의 경지에 빠져 있었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운암댁은 물문 근처로 천천히 다가갔다. 수많은 구경꾼들이 돌팔매처럼 집어던지는 경멸에 찬 눈초리, 낄낄거리는 웃음을 홈빡뒤집어쓴 채로 완장은 물문을 향해서 흘러오고 있었다. 물문에 가까이 이를수록 점점 빠르고 거세지는 물살에 실려 완장 또한 걸음을 재우치고 있었다.
운암댁은 물문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들 때까지 아들의 완장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뗄 수가 없었다.
일단 소용돌이에 먹혀 시야에서 사라지는 듯싶던 그것은 물고기떼의 탈출을 막으려고 물문 주위에 둘러친 굵고도 촘촘한 철망에걸려서 제자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용돌이를 타고 언제까지나 맴돌이를 계속할 작정인 듯했다. 그것이 눈앞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운암댁 역시 언제까지고 물문 근처를 떠나지 않고 지켜볼 작정이었다. 마치 너무도 한이 맺혀서 아직도 저수지를 떠나지못하고 물문 주위를 맴도는 아들의 얼굴이라도 대하듯이 그니는 끝끝내 완장의 행방을 주시하고 있을 작정이었다. - P3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성구를 비롯한 비변사 대신들이 단체로 움직였다. 인조에게 두 개의 안을 제시하고 양자택일을 요구한 것이다. ① 사신을 파견해 청의 요구를 수용하고 협상한다.
② 전시동원체제를 가동한다.
②는 삼남과 강원도에서 준비 중인 병력 18,300명을 일제히 동원해 12월 10일까지 국경에 배치한다는 방안이었다.
비변사마저 인조에게 결단을 요구하자 인조는 ②를 선택했다. 대신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인조가 입을 열었다.
"이런 대병력이 움직이면 지나가는 고을에서 군량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 서두르지 말고 소문내지도 말고, 먼저 고을 창고에 군량을 충분히 비축하고 움직이도록 하라."
서두르지 말고 군량을 비축한 다음에 움직이라고? 침공은한겨울 결빙기인 12월과 1월 사이일 것이다. 지금 당장 동원령을 내려도 12월 10일에 간신히 맞출 판인데, 먼저 군량을, 그것도 백성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소량으로 조금씩 비축하라고? 그렇게 하다가는 봄이 와도 끝나지 않을것이다.
이날 인조가 이 한마디의 토만 달지 않았어도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청군이 압록강을 건넌 날이 바로 12월 9일이었다. - P148

어떤 비변사 대신이 이런 지적을했다. 9일에 전쟁이 터졌다는데 어떻게 3일이 지나도록 의주에서 달랑 장계 한 장만 도착할 수 있느냐고변란이 발생하면 담당 관원은 시시각각으로 상황보고를해야 한다. 즉, 의주 한 곳에서만 해도 장계가 시간마다 계속도착해야 했다. 주변 고을에서도 똑같이 장계를 올려야 하니까 하루에만 수십 개의 장계가 차례로 도착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의주에서는 첫 번째 장계, 그것도 적이 침략했다는 장계 하나만 도착하고 이후의 보고가 뚝 끊겼다. 왜일까? 이유는 뻔한데, 행정의 달인들은 행정적인 결론을 내고 더 행정적인 명령을 하달한다.
"긴급지시. 비변사에서 각급 지휘관에게 역참마다 파발마를 2필씩 증치하여 보고가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주의할 것. 이 명령을 즉시 적절히 조치하지 않을 경우 추후에 엄정한 조사와 처벌을 시행할 것임." - P172

인조도 뒤따라 즉시 출발하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사복시(궁중의 가마와 말을 관장하는 관청) 마구간에 말은 있는데, 말 고삐를 잡아줄 하인인 말구종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조선은 체면이 중요한 양반사회였다. 말구종을 구하지 못한 인조는 정오까지도 출발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대신 하나가 간신히 사간원의 하인 2명을데리고 와서 말고삐를 잡게 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조정이 통째로 피란하려니 준비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침내 궁을 나선 시각은 미시(오후 1시30분~3시 30분)였다.
오후 1시경 청군의 선봉대가 홍제원 도로를 차단한다. 강화행 도로가 청군에 의해 막혀버렸다. 강화행 도로가 막히자 인조 행렬은 적어도 4시간 이상 한성을 벗어나지 못하고우왕좌왕한다」 남대문으로 나가 우회로를 찾자는 의견과 남한산성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홍제원의 청선봉대는 소수일 테니 공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인조는 조선군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다.
영의정 김류가 강력하게 남한산성행을 주장해 인조 행렬은 결국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 P175

하지만 진짜 이유는 이틀 후인 17일 인조가 대신들을 만난 자리에서 밝혀진다.
"병은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가다가 적을 만나 수모를 당할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영의정 김류는 그때 강화로 가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통탄했다. 김류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소수의 대신을 데리고 변장을 하고서라도 산성을 빠져나가셔야 한다고말했다. 하지만 인조는 "지금 신하들을 모두 버리고 나만 빠져나가란 말이냐! 그럴 순 없다."라고 말했다.
멋있어 보이는 말이지만, 이 말 뒤에는 ‘신하 없는 왕은 평민이 될 수도 있다.‘라는 이면의 진리가 숨어있다. 게다가 광해군도 아직 멀쩡히 살아있었다. 인조는 아무리 충성스러운신하라도 어느 선 이상은 절대로 믿지 않았다.
산성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엎질러진물이었다. 인조의 결심은 확고했다. ‘패망하고 나라와 백성이 모두 죽는다고 해도 여기서 결판을 내야 한다. 내가 희생양이 될 수는 없다. 또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는 모험을 할수도 없다.‘ 결국 인조의 회귀 결정으로 남한산성은 역사를품게 된다. - P1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