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가 초조한들 어쩌겠는가. 승려는 드나들어도 군관들은 계속 실패하는 것을..…. 심기성은 결국 12월 28일에 관직과 임무를 반납하며 반성문을 겸한 사직서를 올렸다.
"신은 양반답지 않게 걸음이 나는 듯했다지만 그건 옛날일입니다. 근래 큰 병을 앓은 터라 신체기능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승려나 백성들은 혼자도 움직이므로 포위망을 빠져나가기 쉽지만 신은 양반입니다. 몇 되밖에 되지 않는(혼자서도 충분히 멜 수 있는 양의 식량이나 단 한 벌의 옷이라도반드시 하인이 메고 가야 합니다. 호위를 위해 선전관이 같이 가는데 그 친구도 양반이라 하인에게 짐을 들립니다. 자연히 인원이 최소 4~5 명 이상이 되어 경계선을 넘기가 힘들어집니다. 신이 벌써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목책에서 번번이 적의 초병에게 발각됐고 서너 번은 죽을 고비를 넘겼사옵니다."
심기성의 사직서를 본 인조는 너무 괘씸했는지 사직을 허락하지 않고 심술궂은 처벌을 내렸다.
"다 용서할 테니 다시 출발하라."
절반은 비겁한 변명이었다고 해도 중요한 점은 양반이라 배낭을 멜 수 없다는 말이 당당히 핑계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조선이었다는 점이다. - P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