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인가, 굳게 닫힌 대문이 열리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 맨 앞에는 학생처럼 보이는 청년이 포승에 묶여 있었다. 그들은 현관에 들어와 서서 응접실 의자를 가리키며 무엇인가 그 청년에게 이야기하더니 또 우르르 나갔다. 그 청년은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며, 지금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인데 그의 허위 자백을 받아 사건을 조작하려고 해도 그가우리 집에 온 사실이 없어서 내부 묘사를 못하니까 현장 답사를 시킨 것이었다. 고문에 굴복해서 허위 자백을 하고 법정에서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언을 한 또 한 사람이 정년이다. 광주사태 배후조종 자금의 금액을 정하는 단계에서 수사관이 했다는 말이다.
"학생이 1,000만 원을 받았다면 너무 많지. 그러니까 500만 원을 받은것이다. 잘 기억해두어라. 500만 원이다."
정동년이 출옥하여 양심선언을 하며 폭로한 말이다. 왜 정동년인가. 그들이 가택수색을 해서 가져간 방명록에서 종이 한 장을 통째로 사용해 호기롭게 서명한 ‘전남대 복학생 정동년‘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때 남편은 부재중이었으며 그리고 더욱이 학생들은 만나지 않던 때였다. 우리가 그를 처음 대면한 것은 1985년 미국 망명에서 돌아온 후 그가 사죄하러 동교동을 방문했을 때다.
처음에는 ‘국기문란 사건이던 것이 수사 과정에서 ‘내란 음모 사건‘으로, 다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발전했다. 오직 김대중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시나리오의 변화 과정이었다. 공소장은 13만 자로, 낭독하는 데만 6시간 20분이 걸렸다. 6명의 검찰관이 교대로 했다. 우리는 처음에 내란음모죄로 기소된 줄 알았는데 유독 남편에게만 국가보안법이 추가되었다. 내란 음모는 법정형의 상한이 무기징역이므로 사형 죄명이 하나 더 필요했던 것이다.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 수괴‘로 꾸며낸 것이 바로 ‘한민통의장‘이었다.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한민통‘ 미국 지부를 만들고 일본지부를 결성하려던 차에 납치당해 끌려왔던 것이다.  - P214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의 슬픔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눈물로 기도하며 남편과 아들의 한복 수의를 매만지면서 나마저 무너져선 안된다고 마음을 다졌다. 9월 13일 남편의 최후진술이다.

작년 11월 5일 박 대통령의 국장을 집에서 단 1초도 빼놓지 않고 지켜보았는데 아직도 내 기억에 깊게 남아 있는 것은 김수환 추기경이 말씀한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박 대통령의 죽음의 뜻을 깨닫게 해주십시오"라는 말이었습니다. ( ••• ) 나는 공동 피고 여러분께 유언을 남기고 싶습니다. 내 판단으로는 머지않아 반드시 민주주의가 회복될것입니다. 그때가 되거든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하고 싶습니다. 내 마지막 남은 소망이기도 하고 또 하느님의 이름으로하는 내 마지막 유언입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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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이건 간에 읽기를 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은 똑같이 하측두 피질의 시각단어형태 처리영역이다. 그리스어나 영어처럼 알파벳을 사용하는 언어나 중국어처럼 표의문자를 사용하는 언어나 거의 차이가 없다. 이는 데제린의 병변 연구와 뇌 영상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또한 같은 영역의 과다 활동으로 기능의 항진이나 왜곡이 야기되는 다양한 ‘과잉‘ 장애로도 입증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실독증의 반대는 어휘 환시나 문서 환시, 즉 헛 문자를 보는 증상이다. 시각 경로(망막에서 시각피질까지 시각에 관련된 부위)에 장애가 있는사람들은 환시를 일으키는 경향이 있는데, 도미니크 피치의 연구진은 환시를 겪는 이 환자들의 4분의 1에게 "텍스트, 낱말, 낱자, 숫자, 음표 환시"가 나타난다고 추정한다. 피치의 연구팀이 밝혀냈듯이, 그런 문자 환각은 왼쪽 후두 측두 부위, 특히 시각단어형태 처리영역(손상을 입는다면실독증을 일으킬 수 있는 바로 그 영역)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실독증 환자는 어휘 환시를 겪는 환자든 혹은 어떤 언어든 정상적인 읽기가 가능한 환자든 간에, 결론은 똑같을 수밖에 없다. 즉, 글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대뇌 우세반구(언어가 자리 잡은 반구)에 문자와 낱말을 (그리고 수학이나 음악 등의 다른 시각적 표기 부호도) 인식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하나의 신경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 P88

여기서 심오한 물음이 떠오른다. 어째서 모든 사람에게 읽기 기능이 붙박이로 딸려 있는 것인가? 쓰기는 인류 문화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최근에 발명된 것인데?
말로 하는 의사소통(그리고 그 신경학적 기제)에는 자연선택이라는 점진적 과정을 거쳐 진화해온 모든 자취가 남아 있다. 선사시대 인류의 뇌 구조의 변천 과정은 정교한 두개골 속 틀과 여타 화석 증거를 통해 속속들이 밝혀졌으며, 더불어 성도聲道의 변천도 추적했다. 인류가 말을 시작한 시기가 수만 년 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읽기 능력은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문자를 사용한 역사가 5,000년 남짓이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최근의 일이다. 사람 뇌의 시각단어형태 처리영역이 읽기에 탁월하게 최적화되어 있다고 해도 특별히 이 목적을 위해 진화했을 리는 없다.
이것을 월리스 문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사람의 뇌에 잠재된 (언어, 수학 등) 많은 능력(원시 혹은 선사 사회에서는 거의 쓸모없었을 능력)의 역설에 깊이 경도되었다.
윌리스는 자연선택이 당장 유용한 능력의 발생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있겠지만, 수만 년 뒤에 나타난 고등한 문화에서나 인정받을 만한 잠재적 능력의 존재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인류의 이러한 잠재력을 어떠한 자연 작용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던 월리스는 하릴없이 초자연적 존재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틀림없이 신이 사람의 정신 속에 그런 능력을 심어 넣은 것이라고 말이다. 월리스의 관점에서 신이 내린 선물로 이보다 좋은 예는 없었다. 충분히 진보한 문화가 출현할 때를 기다리며 잠복해 있는 특별한 새 능력 말이다.  - P89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볼 거리와 들을 거리와 여러 자극들이 가득한 세상이며, 우리의 생존은 이러한 자극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평가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우리를 에워싼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일종의 체계, 빠르고 확실한 환경 분석방법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보는 능력, 즉 대상을시각적으로 정의하는 능력은 타고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엄청난 지각능력, 온갖 기능의 계층구조 전체를 동원하는 능력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는 사물은 그 사물 자체가 아니다. 일련의 조명 상태나 주위 환경에 따라 그곳에 놓인 사물의 모양, 표면, 윤곽, 경계를 보며, 그사물의 이동 혹은 보는 이의 움직임에 따라 관점이 바뀐다. 이런 변동 많은 복잡한 시각적 혼돈 속에서 시각 대상의 성질을 추론하거나 가정할 만한 불변의 요소를 추출해야 한다. 우리 주위의 그 무수한 사물들 하나하나에 각각 해당 표상이나 기억 심상이 따로 있어야 한다면 무척이나 비경제적인 세계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조합인데, 무한한 방식으로 조합될 수 있는 어휘의 유한한 집합이 필요하다. 가령 알파벳 스물여섯 자를 짜 맞춰 하나의 언어를 구사하는 데 들어가는 만큼의 낱말과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처럼 태어났을 때나 그 직후에 바로 인식이 가능한 대상도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보고 만지고 조작하고 느낌과 모양새를 관련시키는 등 경험과 활동을 통해 습득된다. 시각적 물체 인식은 하측두피질에 있는 수백만 뉴런이 담당하는데, 여기에서 신경 기능은 경험과 훈련, 교육 등의 자극에 수용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단히 가변적이다. 하측두피질의 뉴런은 시지각 일반을 위해 진화했지만, 다른 목적(그 가운데가장 두드러지는 목적이 읽기 기능)에 동원되기도 한다. - P90

 그래서 문자의 형태는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윤곽 집합의 닮은꼴로 정선되어 기존의 사물 인지 기제를 활용할 수 있었다"는 가설을 도출했다.
문화적 도구인 문자는 하측두피질 신경이 선호하는 일련의 형태를 이용하도록 진화했다. 드안느는 말한다. "문자의 꼴은 아무렇게나 선택된것이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뇌가 표기 체계의 설계를 얼마나 제약하는지, 문화상대주의는 끼어들 여지조차 없다. 영장류의 뇌는 아주 제한된 수의 문자꼴 집합만 받아들인다." 
이는 ‘윌리스 문제‘를 푸는 우아한 해법이다. 실로 여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쓰기와 읽기의 기원은 진화 과정의 직접적인 적응으로 이해할수 없다. 그것은 뇌의 가소성에 달린 문제다. 한 사람의 짧은 일생에서조차 경험, 즉 경험선택은 자연선택만큼이나 강력한 변화의 매체가 된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진화를 통한 발전보다 수십만 배 빠른 시간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적, 개인적 발전을 막기는 커녕 그러한 발전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우리의 문자는 신이 개입해서 준 선물이 아니라 문화적 발명품이요. 이전부터 존재하던 신경의 속성을 새로이 영리하게 창조적으로 이용하게 만드는 문화선택의 결과다. - P92

얼굴 인식은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능력이며, 대다수는수천 명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고 군중 속에서 잘 아는 사람의얼굴을 쉽게 찾아낸다. 그러한 구분에는 특수한 전문적 기술이 필요하며, 이 기술은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영장류에게도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얼굴 실인증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뇌의 가소성, 즉 결함이 있거나 손상된 뇌 부위의 기능을 뇌의 일부 혹은 시스템이 대신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얼굴 실인증이나 지형 실인증에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듯하며, 보통은 나이가 든다고 약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얼굴 실인증을 겪는 사람들은 비상한 수완과 창조적 전략을 발휘하여 그러한 결함을 우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특이하게 생긴 코나 수염, 안경 혹은 의복 형태 따위의 특징을 잡아내는 것이다. 얼굴 실인증을 겪는 많은 사람이 목소리나 자세 혹은 걸음걸이로 사람을 인식하는데, 물론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이면 제자일 것으로 예상하고, 사무실에서 마주친 사람이면 직장 동료일 것으로예상하는 등) 맥락에 따른 예상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한 전략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도 발동하여 증세가 심하지 않은 얼굴 실인증 환자들은 자신의 얼굴 인식 능력이 실제로 얼마나 형편없는지 잘 의식하지 못해서 (예를 들면 머리카락이나 안경 같은 부수적 단서를 제거한 사진 테스트 등의) 검사를 통해 그러한 사실을 알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 P109

이처럼 대뇌피질이 등위적이라는 생각이 우세하다가 1860년대에 폴브로카의 연구가 나오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브로카는 표현성 실어증을겪었던 많은 환자를 검시하여 모든 시신의 손상 부위가 좌측 전두엽에 국한됨을 입증했다. 1865년에 브로카는 "우리는 좌반구로 말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이로써 뇌가 균질하며 미분화적이라는 생각은 사라진것으로 보인다.
브로카는 좌반구 전두엽의 특정 부위에서 ‘말을 담당하는 운동 중추‘를 찾아냈다고 여겼는데, 오늘날 브로카 영역이라고 부르는 부위다. 이것이 ‘위치 파악‘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새 장을 열었고, 신경 및 인지 기능과 뇌의 특정 중추와의 순수한 상관관계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신경학은 성큼 전진하여 각종 ‘중추‘를 찾아낸다. 브로카가 말을 담당하는운동 중추를 찾아낸 데 이어, 베르니케는 말을 담당하는 청각 중추를, 데제린은 말을 담당하는 시각 중추를 찾아냈다. 이는 전부 언어 반구인 좌반구에 있으며, 우반구에서는 시지각 중추를 찾아냈다. - P113

일부 연구자는 얼굴 실인증이 있는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일장소를 인식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은 얼굴과 장소인식을 관장하는 영역이 각기 따로 있으면서도 인접해 있음을 시사한다고 본다. 그런가 하면 두 기능 모두 하나의 구역에서 관장하는데, 한쪽은 얼굴에 치중하고 다른 쪽은 장소에 치중한다고 믿는 연구자도 있다.
하지만 신경심리학자 엘코논 골드버그는 대뇌피질 안에 정해진 기능을 전담하는 독립된 중추 혹은 신경 구성 단원이 장착되어 있다는 발상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고위 피질 기능에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영역이 있어서 경험과 훈련에 의해 계발된 기능이 그 경사를 따라 합치하거나 어느 한쪽으로 이동하는 것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저서 《내 안의CEO, 전두엽The New Executive Brain) [한국어판, 시그마프레스, 2008]에서 뇌가 기능적 단원들의 집합이라면 유연성과 가소성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므로 진화론적으로 단원[모듈] 원리에서 경사 원리로 이동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골드버그는 단원성(정해진 기능, 입력분과 출력분이 정해져 있는 책들의조합)이 시상의 특성일 수는 있지만, 대뇌피질은 경사 구조에 가까워서 1차 감각피질에서 연합피질로, 그리고 무엇보다 최상위에 있는 전두피질로 올라가면서 점점 더 현저해진다고 주장한다. 단원성과 경사성은 서로를 보완하는 이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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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을 둘러치고 거리를 떼어놓는 것은 불의의 감정 폭발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가끔 철없이 달려들어 제 부모들 품으로 안겨들때가 많습니다."
"그렇겠지. 병을 앓아도 부모 제 부모니까."
"원장님 말씀대로 이 섬 안에서는 모든 일이 입으로 말해지는 것과 실제 행동 사이에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게 오히려 상식이 되고 있는 편이구요."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가 그렇다는 게요."
원장은 면회 대열에 눈을 주고 있으면서도 상욱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저흰 늘 저 아이들에게 나병은 유전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어떤 다른 병보다도 이 병은 전염성이 약하므로 너희들은 다른 건강한 아이들과 아무것도 다를 데가 없는 떳떳한 어린이라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저 아이들은 직원들 자녀들이 다니는 고개 너머 국민학교로는 등교를 못합니다. 뿐입니까. 이 보육소의 분교에서마저도 건강한 선생은 수업을 맡아주러 오시는 분이 없습니다. 보육소의 미감아 교실 선생님은 거의 모두가 음성 병력자들뿐입니다."
"그건 아무래도 좀 기분 문제가 있을 테니까." - P51

분홍색이나 벚꽃 소식이란 이 병이 얼굴 근처에 첫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할 때 자주 그 벚꽃의 분홍색을 볼 수 있는 데서 연유한 말이었다. 분홍색이나 자주색은 병이 나은 다음까지도 눈두덩 같은 데에선 평생을 두고 떠나가주지 않는 이 병 고유의 색조라 할 수 있었다. 섬사람들은 누구나 그 절망스런 분홍색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것을 저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섬에는 무슨 인연인지 붉은 황토색이 많았고, 봄만 되면 그 분홍색 벚꽃이 구름처럼 섬을 뒤덮었다. 육지 사람들은 봄이 되면 떼지어 섬으로 와서 이 붉은 섬을구경하고 돌아갔다. 황톳길과 벚꽃과 그 벚꽃의 분홍색이 원색의 그림자처럼 곱게 점찍힌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돌아갔다. 분홍색은 절망의 색깔이었다. 누구나 분홍색을 저주했다. - P54

" 그 사람들은 오늘 낮 원장님을 뵙기 전에 벌써 열 번 이상이나 그곳에 서서 새 원장이 숨겨 가지고 온 주원장의
동상을 보곤 했습니다. 누구든지 이곳에만 오면 주원장의 동상을 새로 세우고 싶어했습니다. 더러는 성공하고 더러는 실패도 했습니다. 어느 쪽이나 원장이 섬을 떠나고 나면 섬에 남는 것은 배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성공을 하고 간 쪽이 사정은 더 나빴습니다."
"••••••"
"그들은 결국 그런 식으로 어느 원장에게서나 똑같은 주정수 원장의 연설을 듣게 되었고, 그의 동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그들은 열 번 이상씩이나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원장님께선 아까 이 섬 전체가 온통 불신과 배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그런 불신과 배반이야말로 바로 그 수많은 주정수의 동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그렇다면그 사람들은 아마 원장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될 수밖에 없었겠지요. 원장님의 말씀이 계속되는 동안 그자들은 또 한번 그 주정수의 연설을 들으면서 원장님에게서 그의 동상을 찾으려 하고 있었을게 틀림없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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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과 복학 조치는 그동안 금압되었던 총학생회 부활로 불붙었다. 학원가는 3월에 학생회를 구성했다. 4월에 교내에서 ‘교련 철폐‘, ‘유신 어용 교수 퇴진‘ 등 학내 민주화 투쟁을 하고 5월엔 거리로 나섰다. 13일 밤 학생들이광화문 일대에서 시위를 벌였다. 14일은 정오부터 전국의 대학 교문이 활짝 열려 ‘전두환 물러가라‘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서울에선 광화문으로 수만 명이 진출했다. 대학의 교문을 굳게 지키던 전경들이 일제히 사라지는가 하면 인천 지역 대학생들의 서울 진입을 막던 경찰이 오히려 이들을 도심으로 유도하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15일 오후에 서울역 광장에는 10만여 명의 학생들이 운집하여 연좌했다. 서울역 광장으로 향하는학생들은 ‘5·16 장례 대행진‘, ‘5·16 사형집행‘, ‘썩은 언론 규탄한다‘ 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었다. 대학생들의 군사정권에 대한 오랜 반감을 볼 수있는 현수막이었다.
권력 내부의 모든 정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시민들은 학생들의 움직임의 배경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저 다소 불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늦어지긴 했지만 국회 개회일인 5월 20일을 기다렸다.
그즈음 신군부는 검열로 언론을 장악하고 일본발 정보인 ‘남침설‘과 ‘휴전선에서의 총격전‘ 등을 유포하면서 국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더욱 부추겼다. 그리고 미국 대사관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도와온 자국민들에게 어서 한국을 떠나라는 긴급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정치권은 그저 자제를 호소했다. 신현확 총리의 정치 일정 단축 성명과 시민들의 냉담함, 그리고 군 병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에 각 대학의 학생 대표들은 15일 이른바 ‘서울역 회군‘을 결정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이 서울역 회군 결정은 비판을 받았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의미가 없다지만 그때 만약 10만여 학생들이 서울역을 사수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광주사태‘가 아닌 ‘서울사태‘가 일어나고 신군부 등장이 저지되었을까? 때로 매우 궁금해지는 역사의 한 고비가 아닐 수 없다. - P197

국민연합의 문익환목사, 이문영 교수, 예춘호 의원이 15일 동교동을 방문했다. 앞서 7일 성명을 발표했지만 반응이 없자, 문익환 목사가 2차 성명서를 만들고 한완상 교수 모친 상가에서 검토를 거친 후 우리 서명을 받으러 온 것이다. 성명서 중 행동강령은 그저 놀랍기만 했다.

계엄은 원천적으로 무효이므로 계엄군은 상부의 명령을 받을 이유가없다.
군인들은 명령에 불복종하고, 무기를 놓고 방영을 나와라,
모든 노동자는 해머를 놓고 공장을 나와라.
모든 상인은 문을 닫고 철시하라.
모든 국민은 검은 리본을 달고 5월 20일 서울은 장충단공원, 지방은도청과 시청으로 모여라.

재야는 이제 국민들이 궐기할 차례라고 생각해 서둘렀다. 성명서를 검토한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인이지 혁명가가 아닙니다. 계엄군에게 상부 명령을 받지 말라는 것은 내란 선동으로 몰리기 십상입니다. 20일 국회가 열려 계엄 해제결의를 하게 되었으니 그 결과를 보고 행동해도 늦지 않습니다."
오랜 토론과 조정 끝에 성명 내용은 일반 국민들의 요구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결정했다. ‘계엄령 철폐‘, ‘전두환 · 신현확 퇴진‘으로후퇴했다. 그리고 날짜도 국회 소집 이후인 22일로 늦춘 성명서를 가지고돌아가던 그분들의 실망한 모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김대중은 염려가 너무 많아. 너무 소심해.‘
그분들의 뒷모습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훗날 이 소심증과 염려증이 여러 목숨을 구했다. 김대중에 대한 편견과 오해 중에 가장 일반적인게 강경하고 과격하다는 것인데 내가 보는 그는 지나치리만큼 신중한사람이다. 혹독한 군사독재정권에서 일관되게 신념을 지키며 투쟁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 같은 자기 절제 덕분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 P199

5월 16일, 서울 거리는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그는 김영삼 총재와 동교동에서 회동했다. ‘계엄 해제‘, ‘정부 주도 개헌 반대‘ 등 6개 항에 걸친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공화당도 계엄령 일부 해제에 대해서는 공조를 약속했다. 17일 전국의 대학학생회장단도 이화여대에서 모여 마라톤 회의 끝에 학원으로 돌아갈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린 시각이었다. 신군부는 국회가 열리기 전 주말을 디데이로 정했다. 그들은 체포할 명단을 작성하고 체포조로 보안사와 수경사 군인들을 집결시켰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결의하면 바로 무장해제를 당할 신군부는 중동을 방문중인 최규하 대통령을 하루 앞당겨 급거 귀국하게 했다. 그리고 곧바로 16일 밤 11시에 청와대에서 대책 회의를 했다. 그다음날 비상 국무회의를 소집해 18일 0시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제외되었던 제주도를 포함시킨 것만 달랐다. 여기에 비상계엄 전국 확대라는 근사한 이름을 달았다.
이렇게 1980년 ‘서울의 봄‘은 막을 내렸다. 1968년 둡체크Dubtek 정권의 인간적 사회주의를 짓밟은 소련의 탱크를 우리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서울의 봄‘은 ‘프라하의 봄‘처럼 짧았다. 모두 잠시 신기루를 본 것이었다.
‘빼앗긴 봄‘ 이후에 찾아온 겨울은 너무나 혹독했다. - P200

발표 직후, 5월 17일에 집을 수색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와서 남편의 내의와 책 몇 권을 달라며 동행을 요구했다. 나는 혹시 면회를 시켜주려나 하고순진하게 기대했다. 그러나 그 동행은 군 검찰로 심문을 당하러 가는 길이었다. 몇 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계엄사는 7월 4일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을 발표했다. 그것은 완벽한 허구요, 소설이었다. "김대중과 추종자들은 국민연합을 주축으로 복학생들을 행동대원으로 해서 대학생들을 선동하려 했다. 대중을 규합하고 민중봉기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한 이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를 수립하려고 했다" 라는 발표문 앞에서 나는 말을 잃었다. 그리고 김대중이 공산주의자이며 광주항쟁의 배후조종자라는 것이었다. 보도를 접한 나는 그래도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잠시 안도했다.

‘미국의 소리‘에서는 계속 놀라운 뉴스를 보도했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김대중에 관한 혐의가 그대로 군법회의에 회부된다면 최고 사형까지 처하게 될 것이다."
천길, 만길 낭떠러지에서 나는 오로지 하나님께 매달렸다.  - P203

정작 그가 광주항쟁 소식을 들은 것은 6월 28일 남산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였다. 사정은 이랬다.

40여 일 취조로 심신이 극도로 혼미한 상태에서 날짜를 기억하는 것은 그날 합동수사본부 수사단 이학봉 단장이 왔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난번에 각서를 썼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협력하면 대통령직 외에 어떤 직책이라도 주겠다. 협조하지 않겠다면 우린 살려줄 수 없다. 재판은 요식행위다."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 사흘 후에 다시 올 것이다."
그가 돌아간 후 정보부 직원이 신문을 한 무더기 가져왔다. 광주 사건이 실린 신문이었다. 사망자 수를 보고 기절했다. 혈압이 치솟아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았다. 나를 지지해준 젊은이들, 광주에서 죽은 사람들, 나를 그토록 신뢰하고 존경하는 가족을 배반할 수 없었다. 죽어서 살자고 결심했다. 사흘 후 그가 왔다.
"협력할 수 없다. 죽음이 곧 삶이다."
그는 이틀 후 또 왔다. 단호하게 거절하자 성질을 내며 돌아갔다. 이같은 회유는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로 옮겨서도 계속되었다. 임무를 부여받은 군교도소장이 빙빙 돌며 기색을 살폈다.
"왜 자꾸 내 주변을 도는지 알겠는데 헛수고입니다. 나는 죽기를 각오했소."
"참 잘 생각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 <김대중 자서전>에서 - P204

나는 광주가 남편의 목숨을 구했다고 믿는다. 광주에서 살상을 한 신군부는 김대중을 결코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김대중 역시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린 광주를 배반할 수 없었다. 만약 그때 거듭된 고난으로 지쳐서 집요한 회유에 굴복하고 협력했더라면 그 인생이 얼마나 비루해졌을까. 나역시 그런 남편을 용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불의에 굴복하지 않은 그를 헌신적으로 도운 것은 단지 내가 그의 배우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남편은 한참 후에 말했다.
"나도 인간인데 어찌 살고 싶지 않았겠소. 해외로 나가 가족들과 조용히살까 하고 마음이 흔들릴 때 제일 먼저 당신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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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aphasia‘은 어원적으로 말을 잃었다는 뜻이지만, 이는 말보다는 언어 자체 (표현 능력이나 이해 능력의 전부 혹은 일부)를 잃어버린 것이다(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아서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뇌를 다치거나 뇌졸중을 얻은 뒤에 실어증이 생겨서 수화를 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모로 보든 말하는 사람의 실어증과 비슷한 수화 실어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어증은 뇌의 어떤 부분이 관련되느냐에 따라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표현성 실어증과 수용성 실어증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두 상태가 공존하는 경우는 전실어증이라고 한다.
실어증은 희귀한 장애가 아니다. 뇌졸중이나 머리 부상, 종양 또는 퇴행성 뇌질환의 결과로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300명 가운데 한 명꼴로 영구적 실어증이 생길 수 있다고 추산된다. 하지만 실어증은 완치율이높으며 부분적으로 치료되는 경우도 많다(단 몇 분만 지속되는 일과성 실어증도 있는데, 편두통이나 간질 발작을 겪을 때 일어날 수 있다).
아주 가벼운 형태의 표현성 실어증은 적합한 어휘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전체 문장 구조는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어휘만 잘못 쓰는 특성을보인다. 이러한 장애는 고유명사를 포함하여 특히 명사에 영향을 미친다. 좀 더 중증이면 문법적으로 완전한 문장을 구사할 수 없어서 짧고 빈약한 ‘전보문‘처럼 말하며, 실어증이 아주 심한 환자는 거의 말을 하지 못하고 이따금씩 ("젠장!"이나 "좋아!" 같은) 짧은 말을 내뱉을 수는 있다. 때로는 환자가 한 낱말만 거듭 반복하거나 모든 상황에 단 하나의 문장만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환자도 이런 자신을 몹시 답답해한다. 한 환자는 뇌졸중이 발병한 뒤로 "고마워요, 엄마"라는 문장밖에는 말하지 못했고, 또다른 환자는 이탈리아 여성이었는데 늘 하는 말이 "tutta la verità, tut-ta la verità (온전한 진실 - 옮긴이)"였다. - P49

만성질환 환자를 문안하러 왔다가 마비되고 앞이 안 보이고 말 없는 ‘불치병‘ 환자 수백 명이 모여 있는 광경에 충격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처음 드는 생각은 보통 이렇다. 이런 상황이라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일까? 이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또 자신에게 장애가 생겨서 이런 곳에 살게 되면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른 면을 생각하게 된다. 대다수 환자들은 치료법이 아예없거나 차도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환자가 도움을받아 건강을 되찾고 장점을 살려서 다른 일을 할 만한 능력을 계발하며 현실을 극복하고 삶에 적응해간다(물론 이는 신경 손상의 유형이나 정도에 좌우되며, 개개인 환자의 내적 자원이나 외부 환경이 어떻게 뒷받침해주느냐에달려 있다).
병문안 온 사람에게 만성질환 병원의 첫인상이 견디기 힘들다면, 처음 입원하는 환자들에게는 공포스러울 것이다. 많은 입원 환자가 공포와 더불어 슬픔과 씁쓸함을 느끼며 격렬한 분노로 대응하는 경우도 있다(이러한 복잡한 감정 반응이 때로는 중증 ‘입원 정신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내가 팻을 처음 본 것은 그녀가 베스에이브러햄병원에 막 입원한 1991년 10월이었다. 그때 팻은 분노와 좌절감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직원들도 모르고 병원 시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팻은 기관이 딱딱한 규정과 질서로 자신을 짓누른다고 느꼈다. 몸짓으로 의사 표현은 할 수 있었지만(그녀의 몸짓은 뜻이 완전히 통하지는 않았어도 늘 열정적이었다) 논리적인 말은 전혀 되지 않는 상태였다(하지만 직원은 팻이 가끔 "젠장!"이나 "꺼져!"라며 소리를 지른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꽤 많이 이해하는듯했지만 테스트해본 결과 말 자체보다는 어조나 표정, 몸짓에 반응하는것으로 밝혀졌다. - P54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낸시 에트코프 연구진의 2000년 <네이처> 논문에서는 실어증을 겪는 사람들이 알고 보면 "언어 장애가 전혀 없는 사람들보다 거짓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 월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논문은 실어증 환자들이 그런 능력을 갖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하는데, 실어증이 발발한 지 몇 달밖에 안 되는 환자들에게는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팻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처음에는 타인의 감정이나 의도를 알아차리는 데 능하다고 보기 어려웠지만, 몇 해가 지나면서 초자연적이라고 할 만한 기술을 갖추게 되었다. 실어증을 겪는 사람들이 비언어적 의사 표현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같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도 노련해질 수 있다. 팻은이제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그리고 많은 경우에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 P57

뇌졸중이 발병하거나 뇌 손상을 입은 뒤로 12~18개월 뒤에는 더이상 회복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때로는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일반화가 잘못임을 입증하는 환자도 많이 보았다. 게다가 지난 몇십 년 동안 신경과학은 뇌의 회복력과 재생력이 기존에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 손상 부위가 지나치게 크지 않을 경우에는 손상되지 않은 부위가 손상된 부위의 기능을 대신하는 ‘가소성‘이라는 위대한 능력도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적응 능력, 즉 원래의 방법이 더이상 통하지 않을 때 새로운, 혹은 다른 방법을 찾는 능력을 발휘한다. 팻은 뇌졸중을 앓은 지 다섯 해가 지나서도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나 계속해서 수용력이 높아졌고,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 P59

노엄 촘스키가 언어학에서 혁명을 일으켰다면, 스티븐 코슬린은 심상연구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기‘와 ‘보여주기‘ 논했다면, 코슬린은 ‘서술적이고 ‘묘사적인 표현 방식을 논한다. 정상적인 뇌는 두 방식을 모두 구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어서 어느한 방식만 쓸 수도 있고 두 방식을 전부 쓸 수도 있다. 팻은 명제 구성 능력, 단언 능력, 서술 능력을 거의 상실했으며, 이 능력을 회복할 가능성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묘사 능력은 뇌졸중의 영향에서 벗어나언어를 잃은 상태에 적응하면서 현저하게 향상되었다. 그녀의 묘사 능력은 다른 사람의 몸짓과 표정을 읽어내는 능력(수용성)과 자신의 의사를손짓과 몸짓으로 표현해내는 기교(표현성)의 양면성을 띤다. - P60

팻의 딸들조차 그녀의 회복 능력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어떻게 우울해하지 않죠? 우울증 이력이 있는데 말이에요. 처음에는 어머니가 어떻게 이렇게 사실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칼이라도 집어 드는 건 아닐까하고요." 다나는 어머니의 몸짓이 ‘세상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이게 뭐야? 내가 왜 이런 방에 있는 거야?‘ 하고 호소하는 듯하며, 어머니가 날선 뇌졸중의 공포에 사로잡힌 것 같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하지만 팻은 자신이 반신불수 상태이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운이 좋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뇌 손상의 범위가 넓기는 하지만 정신력이나 성격을 허물어뜨리지는 않았다는 점, 딸들이 그녀에게 마음 붙일 일과 활동을 만들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또 한편으로는 개인 도우미와 치료사를 별도로 고용할 경제력이 있었다는 점, 팻을 끊임없이 면밀히 관찰해주는 병리사를 만났다는 점, 인간적으로 용기를 주고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도구인 ‘경전‘을 준비해서 치료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 등 팻은 실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팻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세계와 교감하고 있어서 가족에게 "달링"이라고 말하지만 병동에서는 팻이 달링이었다. 팻은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을 전혀 잃지 않았으며(다나가 말하길, "어머니는 선생님도 사로잡았지요, 색스 선생님"), 왼손으로 그림도 그릴 수 있다. 그녀는 살아 있다는 사실,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으며, 다나는것이 어머니가 의욕을 잃지 않고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라고보았다. - P64

우리가 생각하는 읽기는 분할할 수 없이 하나로 이어지는 행위이우리 읽을 때는 그 의미와 글로 쓰인 언어의 아름다움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많은 과정은 의식하지 못한다. 하워드 엥겔이 겪은 것과 같은 상황에 맞닥뜨리고 나서야, 알고 보면 읽기의 단계들이 일렬로 혹은 서열에 따라 연결된 하나의 전체에 종속되어서 어느 순간에라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890년, 독일 신경학자 하인리히 리사우어가 뇌졸중이 발생한 환자가잘 아는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심맹psychic blind-ness" 이라고 기술했다. 이 상태, 즉 시각 실인증을 겪는 사람들은 시력, 색 인지, 시야 등은 완전히 정상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눈앞에 보이는것을 전혀 인지하거나 식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독증은 특수한 형태의 시각 실인증으로, 문자언어를 인지하지 못하는 장애다. 1861년에 프랑스 신경학자 폴 브로카가 말의 ‘운동 심상‘을 관장하는 중심부를 찾아내고, 그로부터 몇 해 뒤에 독일의 신경학자 카를 베르니케가 말의 ‘청각 심상을 관장하는 중심부를 찾아낸 뒤로, 19세기 신경학자들은 뇌 안에 말의 시각 심상을 관장하는 부위(손상될 경우에 읽기장에 즉 ‘심맹‘을 일으키는 부위도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겼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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