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과 복학 조치는 그동안 금압되었던 총학생회 부활로 불붙었다. 학원가는 3월에 학생회를 구성했다. 4월에 교내에서 ‘교련 철폐‘, ‘유신 어용 교수 퇴진‘ 등 학내 민주화 투쟁을 하고 5월엔 거리로 나섰다. 13일 밤 학생들이광화문 일대에서 시위를 벌였다. 14일은 정오부터 전국의 대학 교문이 활짝 열려 ‘전두환 물러가라‘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서울에선 광화문으로 수만 명이 진출했다. 대학의 교문을 굳게 지키던 전경들이 일제히 사라지는가 하면 인천 지역 대학생들의 서울 진입을 막던 경찰이 오히려 이들을 도심으로 유도하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15일 오후에 서울역 광장에는 10만여 명의 학생들이 운집하여 연좌했다. 서울역 광장으로 향하는학생들은 ‘5·16 장례 대행진‘, ‘5·16 사형집행‘, ‘썩은 언론 규탄한다‘ 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었다. 대학생들의 군사정권에 대한 오랜 반감을 볼 수있는 현수막이었다.
권력 내부의 모든 정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시민들은 학생들의 움직임의 배경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저 다소 불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늦어지긴 했지만 국회 개회일인 5월 20일을 기다렸다.
그즈음 신군부는 검열로 언론을 장악하고 일본발 정보인 ‘남침설‘과 ‘휴전선에서의 총격전‘ 등을 유포하면서 국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더욱 부추겼다. 그리고 미국 대사관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도와온 자국민들에게 어서 한국을 떠나라는 긴급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정치권은 그저 자제를 호소했다. 신현확 총리의 정치 일정 단축 성명과 시민들의 냉담함, 그리고 군 병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에 각 대학의 학생 대표들은 15일 이른바 ‘서울역 회군‘을 결정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이 서울역 회군 결정은 비판을 받았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의미가 없다지만 그때 만약 10만여 학생들이 서울역을 사수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광주사태‘가 아닌 ‘서울사태‘가 일어나고 신군부 등장이 저지되었을까? 때로 매우 궁금해지는 역사의 한 고비가 아닐 수 없다. - P197

국민연합의 문익환목사, 이문영 교수, 예춘호 의원이 15일 동교동을 방문했다. 앞서 7일 성명을 발표했지만 반응이 없자, 문익환 목사가 2차 성명서를 만들고 한완상 교수 모친 상가에서 검토를 거친 후 우리 서명을 받으러 온 것이다. 성명서 중 행동강령은 그저 놀랍기만 했다.

계엄은 원천적으로 무효이므로 계엄군은 상부의 명령을 받을 이유가없다.
군인들은 명령에 불복종하고, 무기를 놓고 방영을 나와라,
모든 노동자는 해머를 놓고 공장을 나와라.
모든 상인은 문을 닫고 철시하라.
모든 국민은 검은 리본을 달고 5월 20일 서울은 장충단공원, 지방은도청과 시청으로 모여라.

재야는 이제 국민들이 궐기할 차례라고 생각해 서둘렀다. 성명서를 검토한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인이지 혁명가가 아닙니다. 계엄군에게 상부 명령을 받지 말라는 것은 내란 선동으로 몰리기 십상입니다. 20일 국회가 열려 계엄 해제결의를 하게 되었으니 그 결과를 보고 행동해도 늦지 않습니다."
오랜 토론과 조정 끝에 성명 내용은 일반 국민들의 요구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결정했다. ‘계엄령 철폐‘, ‘전두환 · 신현확 퇴진‘으로후퇴했다. 그리고 날짜도 국회 소집 이후인 22일로 늦춘 성명서를 가지고돌아가던 그분들의 실망한 모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김대중은 염려가 너무 많아. 너무 소심해.‘
그분들의 뒷모습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훗날 이 소심증과 염려증이 여러 목숨을 구했다. 김대중에 대한 편견과 오해 중에 가장 일반적인게 강경하고 과격하다는 것인데 내가 보는 그는 지나치리만큼 신중한사람이다. 혹독한 군사독재정권에서 일관되게 신념을 지키며 투쟁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 같은 자기 절제 덕분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 P199

5월 16일, 서울 거리는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그는 김영삼 총재와 동교동에서 회동했다. ‘계엄 해제‘, ‘정부 주도 개헌 반대‘ 등 6개 항에 걸친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공화당도 계엄령 일부 해제에 대해서는 공조를 약속했다. 17일 전국의 대학학생회장단도 이화여대에서 모여 마라톤 회의 끝에 학원으로 돌아갈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린 시각이었다. 신군부는 국회가 열리기 전 주말을 디데이로 정했다. 그들은 체포할 명단을 작성하고 체포조로 보안사와 수경사 군인들을 집결시켰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결의하면 바로 무장해제를 당할 신군부는 중동을 방문중인 최규하 대통령을 하루 앞당겨 급거 귀국하게 했다. 그리고 곧바로 16일 밤 11시에 청와대에서 대책 회의를 했다. 그다음날 비상 국무회의를 소집해 18일 0시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제외되었던 제주도를 포함시킨 것만 달랐다. 여기에 비상계엄 전국 확대라는 근사한 이름을 달았다.
이렇게 1980년 ‘서울의 봄‘은 막을 내렸다. 1968년 둡체크Dubtek 정권의 인간적 사회주의를 짓밟은 소련의 탱크를 우리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서울의 봄‘은 ‘프라하의 봄‘처럼 짧았다. 모두 잠시 신기루를 본 것이었다.
‘빼앗긴 봄‘ 이후에 찾아온 겨울은 너무나 혹독했다. - P200

발표 직후, 5월 17일에 집을 수색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와서 남편의 내의와 책 몇 권을 달라며 동행을 요구했다. 나는 혹시 면회를 시켜주려나 하고순진하게 기대했다. 그러나 그 동행은 군 검찰로 심문을 당하러 가는 길이었다. 몇 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계엄사는 7월 4일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을 발표했다. 그것은 완벽한 허구요, 소설이었다. "김대중과 추종자들은 국민연합을 주축으로 복학생들을 행동대원으로 해서 대학생들을 선동하려 했다. 대중을 규합하고 민중봉기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한 이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를 수립하려고 했다" 라는 발표문 앞에서 나는 말을 잃었다. 그리고 김대중이 공산주의자이며 광주항쟁의 배후조종자라는 것이었다. 보도를 접한 나는 그래도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잠시 안도했다.

‘미국의 소리‘에서는 계속 놀라운 뉴스를 보도했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김대중에 관한 혐의가 그대로 군법회의에 회부된다면 최고 사형까지 처하게 될 것이다."
천길, 만길 낭떠러지에서 나는 오로지 하나님께 매달렸다.  - P203

정작 그가 광주항쟁 소식을 들은 것은 6월 28일 남산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였다. 사정은 이랬다.

40여 일 취조로 심신이 극도로 혼미한 상태에서 날짜를 기억하는 것은 그날 합동수사본부 수사단 이학봉 단장이 왔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난번에 각서를 썼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협력하면 대통령직 외에 어떤 직책이라도 주겠다. 협조하지 않겠다면 우린 살려줄 수 없다. 재판은 요식행위다."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 사흘 후에 다시 올 것이다."
그가 돌아간 후 정보부 직원이 신문을 한 무더기 가져왔다. 광주 사건이 실린 신문이었다. 사망자 수를 보고 기절했다. 혈압이 치솟아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았다. 나를 지지해준 젊은이들, 광주에서 죽은 사람들, 나를 그토록 신뢰하고 존경하는 가족을 배반할 수 없었다. 죽어서 살자고 결심했다. 사흘 후 그가 왔다.
"협력할 수 없다. 죽음이 곧 삶이다."
그는 이틀 후 또 왔다. 단호하게 거절하자 성질을 내며 돌아갔다. 이같은 회유는 남한산성 육군교도소로 옮겨서도 계속되었다. 임무를 부여받은 군교도소장이 빙빙 돌며 기색을 살폈다.
"왜 자꾸 내 주변을 도는지 알겠는데 헛수고입니다. 나는 죽기를 각오했소."
"참 잘 생각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 <김대중 자서전>에서 - P204

나는 광주가 남편의 목숨을 구했다고 믿는다. 광주에서 살상을 한 신군부는 김대중을 결코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김대중 역시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린 광주를 배반할 수 없었다. 만약 그때 거듭된 고난으로 지쳐서 집요한 회유에 굴복하고 협력했더라면 그 인생이 얼마나 비루해졌을까. 나역시 그런 남편을 용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불의에 굴복하지 않은 그를 헌신적으로 도운 것은 단지 내가 그의 배우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남편은 한참 후에 말했다.
"나도 인간인데 어찌 살고 싶지 않았겠소. 해외로 나가 가족들과 조용히살까 하고 마음이 흔들릴 때 제일 먼저 당신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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