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어증aphasia‘은 어원적으로 말을 잃었다는 뜻이지만, 이는 말보다는 언어 자체 (표현 능력이나 이해 능력의 전부 혹은 일부)를 잃어버린 것이다(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아서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뇌를 다치거나 뇌졸중을 얻은 뒤에 실어증이 생겨서 수화를 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모로 보든 말하는 사람의 실어증과 비슷한 수화 실어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어증은 뇌의 어떤 부분이 관련되느냐에 따라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표현성 실어증과 수용성 실어증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두 상태가 공존하는 경우는 전실어증이라고 한다.
실어증은 희귀한 장애가 아니다. 뇌졸중이나 머리 부상, 종양 또는 퇴행성 뇌질환의 결과로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300명 가운데 한 명꼴로 영구적 실어증이 생길 수 있다고 추산된다. 하지만 실어증은 완치율이높으며 부분적으로 치료되는 경우도 많다(단 몇 분만 지속되는 일과성 실어증도 있는데, 편두통이나 간질 발작을 겪을 때 일어날 수 있다).
아주 가벼운 형태의 표현성 실어증은 적합한 어휘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전체 문장 구조는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어휘만 잘못 쓰는 특성을보인다. 이러한 장애는 고유명사를 포함하여 특히 명사에 영향을 미친다. 좀 더 중증이면 문법적으로 완전한 문장을 구사할 수 없어서 짧고 빈약한 ‘전보문‘처럼 말하며, 실어증이 아주 심한 환자는 거의 말을 하지 못하고 이따금씩 ("젠장!"이나 "좋아!" 같은) 짧은 말을 내뱉을 수는 있다. 때로는 환자가 한 낱말만 거듭 반복하거나 모든 상황에 단 하나의 문장만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환자도 이런 자신을 몹시 답답해한다. 한 환자는 뇌졸중이 발병한 뒤로 "고마워요, 엄마"라는 문장밖에는 말하지 못했고, 또다른 환자는 이탈리아 여성이었는데 늘 하는 말이 "tutta la verità, tut-ta la verità (온전한 진실 - 옮긴이)"였다. - P49

만성질환 환자를 문안하러 왔다가 마비되고 앞이 안 보이고 말 없는 ‘불치병‘ 환자 수백 명이 모여 있는 광경에 충격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처음 드는 생각은 보통 이렇다. 이런 상황이라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일까? 이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또 자신에게 장애가 생겨서 이런 곳에 살게 되면 어떻게 하나 싶은 생각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른 면을 생각하게 된다. 대다수 환자들은 치료법이 아예없거나 차도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환자가 도움을받아 건강을 되찾고 장점을 살려서 다른 일을 할 만한 능력을 계발하며 현실을 극복하고 삶에 적응해간다(물론 이는 신경 손상의 유형이나 정도에 좌우되며, 개개인 환자의 내적 자원이나 외부 환경이 어떻게 뒷받침해주느냐에달려 있다).
병문안 온 사람에게 만성질환 병원의 첫인상이 견디기 힘들다면, 처음 입원하는 환자들에게는 공포스러울 것이다. 많은 입원 환자가 공포와 더불어 슬픔과 씁쓸함을 느끼며 격렬한 분노로 대응하는 경우도 있다(이러한 복잡한 감정 반응이 때로는 중증 ‘입원 정신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내가 팻을 처음 본 것은 그녀가 베스에이브러햄병원에 막 입원한 1991년 10월이었다. 그때 팻은 분노와 좌절감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직원들도 모르고 병원 시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팻은 기관이 딱딱한 규정과 질서로 자신을 짓누른다고 느꼈다. 몸짓으로 의사 표현은 할 수 있었지만(그녀의 몸짓은 뜻이 완전히 통하지는 않았어도 늘 열정적이었다) 논리적인 말은 전혀 되지 않는 상태였다(하지만 직원은 팻이 가끔 "젠장!"이나 "꺼져!"라며 소리를 지른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꽤 많이 이해하는듯했지만 테스트해본 결과 말 자체보다는 어조나 표정, 몸짓에 반응하는것으로 밝혀졌다. - P54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낸시 에트코프 연구진의 2000년 <네이처> 논문에서는 실어증을 겪는 사람들이 알고 보면 "언어 장애가 전혀 없는 사람들보다 거짓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 월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논문은 실어증 환자들이 그런 능력을 갖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하는데, 실어증이 발발한 지 몇 달밖에 안 되는 환자들에게는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팻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처음에는 타인의 감정이나 의도를 알아차리는 데 능하다고 보기 어려웠지만, 몇 해가 지나면서 초자연적이라고 할 만한 기술을 갖추게 되었다. 실어증을 겪는 사람들이 비언어적 의사 표현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같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도 노련해질 수 있다. 팻은이제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그리고 많은 경우에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 P57

뇌졸중이 발병하거나 뇌 손상을 입은 뒤로 12~18개월 뒤에는 더이상 회복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때로는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일반화가 잘못임을 입증하는 환자도 많이 보았다. 게다가 지난 몇십 년 동안 신경과학은 뇌의 회복력과 재생력이 기존에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 손상 부위가 지나치게 크지 않을 경우에는 손상되지 않은 부위가 손상된 부위의 기능을 대신하는 ‘가소성‘이라는 위대한 능력도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적응 능력, 즉 원래의 방법이 더이상 통하지 않을 때 새로운, 혹은 다른 방법을 찾는 능력을 발휘한다. 팻은 뇌졸중을 앓은 지 다섯 해가 지나서도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나 계속해서 수용력이 높아졌고,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 P59

노엄 촘스키가 언어학에서 혁명을 일으켰다면, 스티븐 코슬린은 심상연구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기‘와 ‘보여주기‘ 논했다면, 코슬린은 ‘서술적이고 ‘묘사적인 표현 방식을 논한다. 정상적인 뇌는 두 방식을 모두 구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어서 어느한 방식만 쓸 수도 있고 두 방식을 전부 쓸 수도 있다. 팻은 명제 구성 능력, 단언 능력, 서술 능력을 거의 상실했으며, 이 능력을 회복할 가능성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묘사 능력은 뇌졸중의 영향에서 벗어나언어를 잃은 상태에 적응하면서 현저하게 향상되었다. 그녀의 묘사 능력은 다른 사람의 몸짓과 표정을 읽어내는 능력(수용성)과 자신의 의사를손짓과 몸짓으로 표현해내는 기교(표현성)의 양면성을 띤다. - P60

팻의 딸들조차 그녀의 회복 능력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어떻게 우울해하지 않죠? 우울증 이력이 있는데 말이에요. 처음에는 어머니가 어떻게 이렇게 사실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칼이라도 집어 드는 건 아닐까하고요." 다나는 어머니의 몸짓이 ‘세상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이게 뭐야? 내가 왜 이런 방에 있는 거야?‘ 하고 호소하는 듯하며, 어머니가 날선 뇌졸중의 공포에 사로잡힌 것 같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하지만 팻은 자신이 반신불수 상태이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운이 좋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뇌 손상의 범위가 넓기는 하지만 정신력이나 성격을 허물어뜨리지는 않았다는 점, 딸들이 그녀에게 마음 붙일 일과 활동을 만들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또 한편으로는 개인 도우미와 치료사를 별도로 고용할 경제력이 있었다는 점, 팻을 끊임없이 면밀히 관찰해주는 병리사를 만났다는 점, 인간적으로 용기를 주고 그녀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도구인 ‘경전‘을 준비해서 치료에 도움이 되었다는 점 등 팻은 실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팻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세계와 교감하고 있어서 가족에게 "달링"이라고 말하지만 병동에서는 팻이 달링이었다. 팻은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을 전혀 잃지 않았으며(다나가 말하길, "어머니는 선생님도 사로잡았지요, 색스 선생님"), 왼손으로 그림도 그릴 수 있다. 그녀는 살아 있다는 사실,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으며, 다나는것이 어머니가 의욕을 잃지 않고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라고보았다. - P64

우리가 생각하는 읽기는 분할할 수 없이 하나로 이어지는 행위이우리 읽을 때는 그 의미와 글로 쓰인 언어의 아름다움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많은 과정은 의식하지 못한다. 하워드 엥겔이 겪은 것과 같은 상황에 맞닥뜨리고 나서야, 알고 보면 읽기의 단계들이 일렬로 혹은 서열에 따라 연결된 하나의 전체에 종속되어서 어느 순간에라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890년, 독일 신경학자 하인리히 리사우어가 뇌졸중이 발생한 환자가잘 아는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심맹psychic blind-ness" 이라고 기술했다. 이 상태, 즉 시각 실인증을 겪는 사람들은 시력, 색 인지, 시야 등은 완전히 정상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눈앞에 보이는것을 전혀 인지하거나 식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독증은 특수한 형태의 시각 실인증으로, 문자언어를 인지하지 못하는 장애다. 1861년에 프랑스 신경학자 폴 브로카가 말의 ‘운동 심상‘을 관장하는 중심부를 찾아내고, 그로부터 몇 해 뒤에 독일의 신경학자 카를 베르니케가 말의 ‘청각 심상을 관장하는 중심부를 찾아낸 뒤로, 19세기 신경학자들은 뇌 안에 말의 시각 심상을 관장하는 부위(손상될 경우에 읽기장에 즉 ‘심맹‘을 일으키는 부위도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겼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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