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입되는 정보량이 워낙 많다 보니 찬찬히 살필 여유 없이 텍스트는 Z자 형태로, SNS는 수직으로 대충 훑고 쓰륵쓰륵 넘긴다. 동영상 플랫폼의 경우 눈길을 붙잡는 콘텐츠를 발견하면 잠시 넋을 놓고 보지만 끝나도 멈출 줄 모르고 또 찾아다닌다. 대부분의 플랫폼이 오랜 시간 체류할 수 있도록 사용자에게 맞춤한 알고리즘을 설정하고 있어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자기도 모르는 새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배고 스마트폰 화면을 누비는 손가락만큼이나 성미가 부산해져 무엇하나 골똘히 집중하지 못한다. 사용자의 이런 성향을 알기에 온라인상의 어휘는 클릭 수나 체류 시간을 높일 목적으로 더욱 직감적이고 자극적으로 되어 가고 이제 그런 어휘들조차 단조롭다.
숫자가 기업 수익과 사회적 영향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가진 반응 미디어를 손에 들고 있는 한 사유, 추론, 음미, 상상, 사색  등이 끼어들 틈은 없다. 내면에 집중할 시간을 스스로에게 내어주지 않는다는 소리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은 그에 따른 후유증을 피할 길 없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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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에 그녀는 자기가 올가 아주머니와 함께 눈물이 글썽해진채 그 연속극들을 듣곤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페드로 카마조의 글재주가 리마의 가정주부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는지 확인한 셈이었다. 그리고 다음 며칠 동안 몇몇 친척들의 집에서도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건 내가 어쩌다 라우라 아주머니 댁을 찾아갔을 때의 일인데, 그 아주머니는 볼리비아 방송작가의 목소리를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냄새를 맡고 만지기까지 하려는 것처럼 (떨리는가, 거친가, 열렬한가, 또는 퉁명한가) 라디오 쪽으로 바짝 몸을 담기고 앉아 있다가 내가 기실 문간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자마자 입 다물고 있으라는 뜻으로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또 가비 아주머니 댁을 찾아갔을때는 그녀와 오르텐시아 아주머니가 건성으로 뜨개실 뭉치를 풀면서 루시아노 판도와 호세피나 산제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도, 할머니 말에 따르자면, 늘 소설 나부랭이나 즐겨 읽으시던 우리 할아버지까지도 이제는 라디오 연속극에 상당히 관심을 갖게 되셨다는 것이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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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책‘은 일정하게 자리 잡은 주장이나 판단력이다. ‘일정한 줏대가 없이 되는 대로 하는 짓‘을 말하려면 ‘주책(이)없다‘고 해야 맞지만, 으레 ‘주책이다‘라 하고 ‘주책없다‘ 와
‘주책이다‘가 같은 뜻으로 함께 인정받고 있다. 사용자들이 의미를 바꾼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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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낱말의 의미는 주체가 주관적으로 정의하는 게 아니라 타인들에 의해 그 의미가 규정된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 P171

모든 어휘와 문장구조는 중의성과 모호성을 띨수 있다. 최대한 걷어내기 위해 적확한 낱말을 선택할수 있는 어휘력과 적절히 나열할 수 있는 문법 지식이필요하다. 그렇다고 풍부한 어휘력과 바른 문법을 갖춘 말과 글이 늘 바람직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몇 안 되는 어휘로 앞뒤 안 맞는 소리를 하는데 마음을 움직이는 말과 글이 있다. 뜨뜻한 손바닥으로 아픈 곳을 지그시 누르듯 인간의 속성을 짚어낼 때다. 정확히 설명하기어렵고 섣불리 판단하기 힘든 것을 정확히 그 옮기려 들면 도리어 허상을 만들 수 있다. 중의적이고 모호한 표현이 울림을 준다. 이때 수신자는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자유를 누리면 된다.
모든 어휘와 문장구조는 중의성과 모호성을 지녔다.
- P179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당연히 자기 자신이다.
내가 없으면, 구체적으로 나의 생각과 느낌이 없다면 글을 쓸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이 목적이라면 일기 쓰기를 권한다. 이런 글쓰기는 분명 자기치유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게 아니고서야 글 쓸 때 나는 이런 나이기를 바란다. "내가 ‘나‘라고 할 때는 당신들 모두를 가리키는 거요."  - P198

나는 돌덩이
뜨겁게 지져봐라.
나는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

거세게 때려봐라.
나는 단단한 돌덩이.

깊은 어둠에 가둬봐라.
나는 홀로 빛나는 돌덩이.

부서지고 재가 되고 썩어 버리는
섭리마저 거부하리.

살아남은 나.
나는 다이아.

ㅡ 광진, 웹툰&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 P206

일찍이 문자가 미디어이자 클라우드가 될 수있으며 권력과 부로 맞바꿀 수 있음을 알아차린 사람들이있었다. 그들은 문자를, 지식과 정보를, 권력과 부를 독점했다.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이라 불리는 것)을 창조했다. 문자는 오랫동안 위치재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문자의 민주화는 불과 백여 년 사이에 벌어진 일로 저절로 열린 것이 아니라 쟁취된 것이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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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도 생각을 오염시킬수 있다." 조지 오웰이 한 말이다. 가격을 매길 수 있는 상품이나 가축 등에 쓸 어휘를 사람에게 쓰지 않는지, 사람이 하는 일을 도구나 수단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은지, 늘 말본새를 점검해야 한다. 많은 속어나 욕설 등이 가축과 관련한 어휘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때는 가축이 흔했고 지금은 물건이 흔하다. 이 대목에서 "존중할 만해야 존중하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악머구리 끓듯 악한과 파렴치한이 적지 않으니 심정이야 이해하나 경계한다. 그 옛날 양반이 백정과 노비에게, 백인이 흑인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부자가 빈자에게, 어른이 어린이에게 같은 말을 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내가 옳다고 느끼면 옳은 것이라는 식으로 서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상대주의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우선에 두는 것이 인격이며 인격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타고 나는 것은 인성이다.) 배움과 습관을 통해 갖출 수 있다.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에게 배어 있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적절치 못한 어휘를 쓸 수 있다. 아직 배우지 못했거나 잘못 알아 그렇다. 문제는 다음이다. 모르거나 잘못 아는데 올바로 알려 하지 않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 P106

"여자가 할 수 있겠어?", "남자가 그것도못 해?", "뚱뚱해", "키가 작아", "어린 사람이 뭘 알아?", "나이가 있는데 할 수 있겠어요?" 등이 쉽게 떠오른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도 해당한다. "여자가 능력 있어",
"남자치고 세심하네", "가정교육을 잘 받았네", "좋은 대학나와서 스마트해", "예쁘게 생겼어", "키가 크고 날씬해서 뭘입어도 잘 어울려", "젊은 사람이 아주 예의바르고 겸손해".
"젊게 사시네요", "나이보다 훨씬 건강하고 젊어 보이세요."
칭찬으로 들리는가? 고정관념에 기준한 수직적 평가다.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칭찬으로 착각하기 쉬운 이런발언은 부모 자식 간에도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칭찬이랍시고 하면 칭찬이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으로 성별이나 외모, 능력 등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고 남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게 된다.
평가가 해악인 이유는 사람을 물건이나 상품, 가축처럼 등급을 매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등급을 왜 매기겠는가? 물건이나 상품, 가축 등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비싼 값에 팔기위해서다. 무엇이 쓸모 있을지 계산하는 것이다. 평가는 필연적으로 차별로 이어진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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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래전 한창 젊었던 시절에 나는 미라플로레스의 오차란 로에 있는 하얀 회벽칠을 한 빌라에서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있었다. 그 당시 나는 산마르코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기론 아마도 훗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밥벌이를 해보겠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비록 정말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느 날엔가는 반드시 작가가 되고야 말겠다고 생각했지만서도.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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