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롤라는 오랜 세월을 혼자 외롭고 슬프게 살다 보니 재미도 없고 감정도 모두 메말라버린 채 몇 가지 끔찍하고 커다란 열정에만 집착하게 되었다. 페룰라는 작은 동요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치사하게 누구에게 원한을 갖지도 않았고, 남몰래 누군가를 질투하지도 않았다. 위선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고, 싫은데 좋은 척하지도 않았고, 예의상 친절하게 굴지도 않았고, 평소 남에 대한 배려도 하지 않았다. 페룰라는 오로지 어마어마한 사랑 하나만을 위해 태어난 그런 사람이었다. 엄청난 증오나 끔찍한 복수, 가장 숭고한 영웅심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 낭만적으로 풀어 나갈 수 가 없었다. 대신 병든 엄마의 방 안이나 비참한 빈민가에 감혀 고된 고해 성사나 하면서 우울하고 밋밋한 생을 살아야했다. 어머니가 되기 위해, 대의명분을 위해, 열정을 위해, 풍요를 위해 뜨거운 피를 가지고 태어난 덩치 크고 중만한 여자가 그렇게 자신을 소진하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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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을 통해 경제 성장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수는 없죠.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런 식으로 성공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농업을 혁신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좁거든요. 50년 전과 비교하면 우리는 단위 면적당 훨씬 더 많은 밀을 수확하죠. 하지만 밀 자체는 옛날에 먹던 그 밀과 다르지 않습니다. 반면 오늘날 우리가 보는 TV는 30년 전에 TV라고 부르던 것과 완전히 다른 물건이에요."
딘은 설명을 위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달하는 한국과 1만4000달러에 머물고 있는 아르헨티나를 비교했다. "아르헨티나는 1920년대에 이탈리아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았던 나라입니다. 한국과는비교할 수도 없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다양한 요소가 개입해있겠지만 제조업을 택한 한국과 다른 길을, 특히 농업을 택한 아르헨티나의 발전 경로가 달라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거예요."
- P223

나를 포함해 환경 운동가들은 제조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오랜 편견과 달리 제조업의 긍정적 영향은 부정적 영향을 훨씬 뛰어넘는다. 수파르티 같은 개발도상국 노동자가 만든 옷을 입을 때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은 죄책감이 아니다.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환경 운동가와 언론은 H&M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가난한 국가에서 옷을 생산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하지만 그건 옳지 않다. 그런 비난을 멈춰야 한다.
마텔, 나이키, H&M 같은 회사들이 노동자의 근로 조건을 개선하지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비자들은 기업이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압력을 넣음으로써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개발도상국에서 만들어 낸 저렴한 상품을 소비자가 구입하는 행위 자체를 악마화하지 말아야 한다.
- P226

작별을 앞두고 나는 수파르티의 사진을 한 장 찍어 간직하고 싶었다.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묻자 "어디서 찍을까요?" 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우리는 수파르티의 집에서 대화하고 있었으므로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택해 보라고 했다. 수파르티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재봉틀옆에 섰다. 재봉틀 위에는 액자에 넣은 가족사진과 친구들 사진, 플라스틱 조화, 작은 장난감 전자 기타가 놓여 있었다.
나는 셔터를 눌렀다. 사진 속 수파르티는 왼손을 출퇴근할 때 타는 오토바이 헬멧 위에 올리고 있었다. 뒤로는 무슬림이 기도할 때 까는 양탄자가 걸려 있었다. 수파르티는 자부심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P228

"그린피스의 활동에 장단을 맞추며 목청을 높이는 나라들이 있었지만 그 나라들 스스로가 포경업을 막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아니었다. "포경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경하게 내세우는 것은 자국의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울 수 있는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여겨졌다. 포경업과무관한 국가들이 실질적 비용 투입 없이 환경주의를 들이밀었다."
사회가 점점 더 풍요로워짐에 따라 고래를 대체할 수 있는 소재에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그 수요가 고래를 살렸다. 사람들이 고래를 살린것은 더는 고래를 물건의 재료로 원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 풍부하고, 저렴하고, 질적으로 우수한 대안을 찾았으니 말이다.
- P241

시장은 주기적으로 특정 1차 에너지원에서 다른 1차 에너지원으로이행했다. 적어도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그러한 이행은 특정 1차 에너지원이 고갈되기 훨씬 전에 일어났다. 
드레이크가 유전을 개발할 때 투자자들이 달라붙었던 것처럼 특정에너지가 희소해지면 대안을 찾는 경향이 커지기는 한다. 하지만 많은경우 에너지 전환은 경제 성장과 더불어 새로운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가령 조명, 교통, 난방, 산업 등에서 발생한 수요를감당하기 위해서는 바이오매스 대신 화석 연료를, 그리고 석탄 대신 석유나 가스를 써야 했던 것이다.
고래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펜실베이니아 유전이 개발되고 석유를 등유로 정제하는 기술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돼지기름과 에탄올이고래기름의 대체제로 여겨졌다. 석유가 생물에서 추출하는 그런 바이오연료와 벌인 경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양이 풍부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에너지 밀도가 대단히 높았기 때문이다.
전체 에너지 수요 중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낮아지기 시작했다. 석유나 천연가스로 대체되기 시작했을 때 "석탄의 매장랑은 무한대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는데"도 그랬다. 에너지 전환은 마르케티가 예견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에너지 밀도가 낮고 탄소 밀도가 높은 연료에서 에너지 밀도와 수소 밀도가 높은 연료 쪽으로 움직여 온 것이다. 석탄은 나무보다 에너지 밀도가 2배 높고, 석유는 액체 형태로 전환 가능한 천연가스와 마찬가지로석탄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다.
화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쉽다. 석탄은 대략 수소 원자 하나당 탄소 원자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석유는 탄소 원자 하나당 2개의 수소 원자를 갖고 있다. 천연가스 또는 천연가스의 주요 구성물인 메탄은 탄소 원자 하나에 수소 원자가 4개다. 그래서 화학식이 CH4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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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클라라는 엄마와 여성 참정권론자 친구들 두세 명이 공장을 방문하러 갈 때 그들을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이 궤짝 위에 올라가 여직공들에게 연설하는동안 공장장과 공장주들은 멀찌감치 적당한 거리를 두고떨어져 적개심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비웃으며 지켜보았다. 클라라는 나이도 어리고 세상 물정에도 어두웠지만 그상황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클라라는 모피 코트에 스웨이드 부츠를 신고 억압과 평등, 권리에 대해 설교하는 엄마와 엄마 친구들과 투박한 면 앞치마를 두르고 손은 동상에 걸려 시뻘겋게 된, 중노동에 시달리는 여직공들의 서글프고 체념한 듯한 표정이 그렇게 대조적일 수 없다고 자기 노트에다가 적었다.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는 귀부인들은 차와 파스텔을 들면서 여권 운동에대해 얘기하기 위해 공장에서 곧바로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경박하게기분 전환을 한다고 해서 불타오르는 그들의 이상이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 P147

클라라는 자기가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혹독한 삶의 풍상을 겪지 않도록 보호받으며 살았다. 클라라의 세계에서는 물질적인 물체들의 멋대가리 없는 실체가 꿈의 요란스러운 진실과 뒤섞였으며, 그곳에서는 물리학이나 논리학의 법칙들이 늘 적용되지 않았다. 그 시절, 클라라는 공기의 정령과 물의 정령, 대지의 정령들과 함께 환상 속에 푹빠져 살았다. 클라라는 너무 행복해서 구 년 동안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클라라의 목소리를 다시 듣기는 틀렸다고 마음을 비웠을 때, 클라라는 생일날 초콜릿 케이크에 꽃힌 열아홉 개의 촛불을 불어서 끄고 난 후 입을 열었다. 오랜 세월 갇혀 있던 터라 마치 조율되지않은 악기와 같은 투박한 소리가 났다.
"난 곧 결혼할 거예요...
클라라가 말했다.
"누구?
아빠가 물었다.
"로사 언니의 약혼자랑요."
클라라가 대답했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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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예산을 가장 많이 따낼 수 있다고 해서 그 지역이 꼭 가장 많은 관심이 필요한 곳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아요. 한때는 이렇게 생각했죠. ‘지구 위에서 이 생물종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어.‘ 그런데 생각을 해 봐야죠. ‘이렇게 큰 사회, 정치, 경제 비용을인간 쪽에서 감당하면서까지 이 종들을 지켜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렇게 말해 볼 수도 있어요. ‘우리는 이 종을 지키고 싶어. 하지만 이 지역에서 우선 처리해야 할 일이 과연 그것뿐일까?‘"
- P175

야생 동물의 작물 피해를 연구해 온 과학자 프랜신 매든에 따르면 환경 보호 활동가들의 공격적인 태도는 현지인들이 야생 동물을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사람들은 인정과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어딘가에 화풀이를 하죠. 우리가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방향으로 화풀이를 하려고 드는 거예요." 저널리스트들과 과학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그런사태를 기록해 왔다. - P177

  제조업은 부의 증가를 가져온다. 국가는 그 부를 기반으로 도로를 건설하고, 발전소를 짓고, 송전 시설을 확충하고, 홍수 통제 체제를 갖추고, 상하수도를 건설하고, 쓰레기 관리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콩고 같은 가난한 나라와 미국 같은 부유한 나라를 구별 짓는 요소다.
게다가 도시는 인구 집중을 불러온다. 반대로 말하면 더 많은 교외지역이 야생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도시는 얼어붙지 않은 지표면 중 고작 0.5퍼센트만을 차지할 뿐이다. 지구 전체를 놓고 볼 때 포장도로와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 또한 0.5퍼센트 미만에 지나지 않는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초원, 숲, 야생의 영역은 넓어진다. 세계적으로 보자면 삼림 회복 속도가 느린 삼림 파괴 속도를 따라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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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밤이었다. 어쩌면 내 평생 가장 긴 밤이었을지도모른다. 그날 밤 나는 로사의 무덤 곁에 앉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의 저승길을 함께했다. 그때가 이승에서 발을 떼기가 가장 힘든 순간으로, 적어도 누군가의 가슴에 뭔가를 심어놓았다는 위안을 갖고 꺼날 수 있도록 남아 있는 사람들의 애덩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했을 것이다. - P71

그리고 박사의 옆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청년이있었다. 얼굴이 달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으며, 셔츠는 피로 얼룩져 있었고, 두 눈은 사랑에 취해 있었다. 큰언니의 하얗디하얀 다리와 맨발이 보였다. 클라라는 온몸이 떨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쿠에바스 박사가 옆으로 비키면서 로사가 대리석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그 무시무시한광경을 모두 목격하게 되었다. 로사의 내장들이 옆에 있는샐러드 볼에 담겨 있었으며, 몸은 운하처럼 반으로 깊이 갈라져 있었다. 로사의 머리는 클라라가 엿보고 있는 창문쪽으로 돌려져 있었고, 긴 초록색 머리카락은 식탁에서 피로 얼룩진 타일 바닥 위로 양치식물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두 눈은 감겨 있었다. 그렇지만 어린 클라라는 너울거리는 그림자들과 거리가 떨어져 있던 탓인지 아니면 단순한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언니의 얼굴에서 치욕스러워하며 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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