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를 지나고부터 줄곧 창밖을 내다보던 그녀는 가슴이 설레도록 기뻤다. 식당차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쳐다보고 있던 조지아 주의 마지막 산이 뒤로 물어나고, 적색토에 이어 비질한 마당에 자리한 양철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당마다 어김없이 하얗게 칠한 타이어들에 에워싸여 버베나‘가 자라고 있었다. 페인트칠을 하지 않은 니그로의 집에 달린 안테나를 처음 본 순간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그런 집들이 더 많이 보일수록 그녀의 기쁨도 커졌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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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를? 엄마 어디를 쐈다는 거야?"
"엄마 다리를 쐈어."
"아. 그렇구나." 내가 안심하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엄마 머리를 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이 마구 떨렸다. 당시에 신호등이 어떤 색깔이었는지도 정확히 기억난다. 순간적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마치 난생처음 울어 보는 것처럼 눈물이 평평 흘렀다. 서럽게 신음하듯 무너져 울었다. 여태까지 살면서 울었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울었다. 지금 울고 있는 내 자신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우는 나 자신을 보면 찰싹 등을 때리며 "이건 울 가치도 없는 일이야"
라고 할 정도로 심하게 울었다. 내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카타르시스도 아니었다. 내 자신이 서러워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느끼는 고통을 내 몸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나오는 날것 그대로의 고통이 터져 나오는 거였다. 그 사람은 내 엄마였다. 내 동료였다.
나와 엄마는 늘 함께하며, 같이 세상에 맞서 왔다. 앤드루가 "엄마 머리를 쐈어"라고 했을 때 나는 둘로 쪼개졌다.
- P405

"쉬" 엄마가 말했다. "울지 마라, 얘야, 쉬이이, 울지 마."
"어떻게 안 울 수가 있어요, 엄마? 엄만 거의 죽을 뻔했다고요."
"아니, 난 죽지 않았을 거야. 난 죽지 않았어. 괜찮다."
"하지만 전 엄마가 죽은 줄 알았다고요."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를 잃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아니지, 얘야. 아가, 울지마, 트레버. 트레버, 내 말 들어. 내 말 들어라. 들어."
"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아가, 넌 좋은 면을 볼 줄 알아야 해."
"뭐라고요? 좋은 면이라니 무슨 말이에요? 엄마, 엄마는 얼굴에 총을 맞았어요. 좋은 면 따위는 없다고요."
"당연히 있다. 이제는 네가 공식적으로 가족 중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이 되었잖니."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서 나도 따라 웃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데 동시에 미친사람처럼 웃음도 났다. 엄마는 내 손을 꼭 붙잡았고, 우리는 늘 그랬던것처럼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엄마와 아들이 중환자실의 고통 속에서 함께 웃고 있었다. 밝고 청명하고 이름다운 날이었다.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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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도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중요하다. 부유한 국가들이 자국의 환경파괴적인 습관을 바람직하게 바뭐야 할 의무를 돈으로 벗어던질 수 있게 한다면, 자연에 대한 잘못된태도를 강화시켜서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자연은 쓰레기장이 되어버린다. 대개 경제학자들은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올바른 인센티브 제도를 세우고 각 국가가 서명하게 만들면 된다고 예상한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에는 규범이 중요하다는 핵심이 빠져 있다.
기후 변화에 국제적으로 대응하려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자연계에대한 새로운 태도, 즉 새로운 환경윤리가 필요할 것이다. 효율성이 어떠하든 국제시장에서 오염배출권이 거래된다면 책임 있는 환경윤리에 필요한 공동 희생정신과 자제의 습관을 계발하기가 더욱 힘들어질수 있다.
- P113

그러나 바다코끼리 사냥 시장에는 도덕적으로 인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논쟁을 위해, 이누이트족이 수백 년 동안 해왔던 대로 생계를위한 바다코끼리 사냥을 허용하는 정책이 합당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바다코끼리를 죽일 권리를 사냥꾼들에게 팔도록 허용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도덕적으로 반박의 여지가 여전히 있다.
한 가지 이유는 바다코끼리 사냥이라는 이상야릇한 시장이 사회적효용에 전혀 보템이 되지 않는 비뚤어진 욕구를 채워줄 뿐이기 때문이다. 맹수사냥을 어떻게 생각하든지간에 바다코끼리 사냥은 좀 다른 문제다.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사냥감을 쫓지도 않으면서, 단순히사냥 목록을 채우기 위해 무력한 포유동물을 가까운 거리에서 죽이고자 하는 욕구는 설사 이누이트 족에게 별도의 수입원을 안겨준다 하더라도 충족할 가치가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이누이트 족이 자기 부족에게 할당된 바다코끼리 사냥 권리를 외부인에게 파는 것은 애당초 자신들의 공동체가 부여받은 면제 혜택의 의미와 목적을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이누이트 족의 생활방식을 기리고 그들이 오랫동안 바다코끼리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것과 특권을 악용하여 동물을 죽여 현금을 손에 쥐는 부업으로 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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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로코스트가 의심의 여지없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잔혹 행위였다고 주장하는 서구 사림들을 종종 만난다. 물론, 홀로코스트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궁금할 때가 많다. 과연 공고에서와 같은 아프리카의 잔혹 행위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유대인들은 가졌지만 아프리카인에게는 없는 것은 기록이다. 나치는 꼼꼼하게 기록했고, 사진을 남겼고, 영화를 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실제 전해 내려왔다.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얼마나 됐는지 아는 이유는 히틀러가 그 숫자를 셌기 때문이다. 600만 명이 죽었다. 우리 모두 그 숫자를 보면서 경악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을 상대로 행해진 잔혹 행위의 역사를 들여다본다면, 명확한 숫자는 없이 오직 추정만이 존재한다는 걸알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추정만으로는 경악하기가 어렵다. 포르투갈과 벨기에가 앙골라와 콩고를 약탈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학살한 흑인들의 숫자를 세지 않았다. 콩고에서 고무를 수확하다 죽은 흑인들이 얼마나 많을까? 트란스발 Taeuna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동부의 옛 주명 - 을긴이)의 금과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죽은 흑인들의 수는?
- P286

아파르트헤이트 기간 동안 남아공의 실업률이 통계적으로 ‘낮았다‘는 건 이해되는 부분이다. 모두들 노예로 고용된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민주주의 이후에는 누구에게나 최저 임금을 줘야 했다.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갑자기 수백만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흑인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치솟았고, 50퍼센트에 이르기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해당되는 애기였고, 후드 출신이고 특정한 말투를 쓰면 판매직조차도 얻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남아공의 흑인 거주구에 사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자유란 이런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모들이 직장에 가거나 말거나 한 상태고, 밖에 나가 골목에서 노닥거리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하루를 보낸다. 그들은 자유였고, 고기를 낚는 법도 배웠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낚싯대를 주지 않았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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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푸피가 내 개라고 믿었지만,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푸피는 그냥 한 마리의 개였다. 나는 소년이었고, 우리는 잘 어울렸다. 푸피는 그저 우연히 우리 집에 살게 됐을 뿐이었다. 그 경험은 이후 내삶의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해서 그를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비록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운좋게도 그런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내 주변에는 배신감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내게 와서 화내고 울며 얘기한다. 자신이 어떻게 기만당했고 어떤 거짓말을 들었는지를, 그럼 나는 함께 안타까워한다. 나는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안다. 함께 앉아 음료를 한잔 사주면서 말한다. "친구야, 너에게 푸피 이야기를 해 줄게."
- P151

우리는 바로 과거 헤어졌던 시절로 돌아갔다. 아빠는 나를 열세살 소년이었을 때와 똑같이 대했다. 습관의 힘이 아빠를 그때로 돌려놓았다. "맞아! 우리 어디까지 했더라? 자, 네가 좋아하는 것들 다 모아놨다. 감자 뢰스티, 스프라이트 한 병, 그리고 캐러멜 얹은 커스터드까지." 다행히 열세 살 이후로 입맛에 발전이 없었던 나는 맛있게 먹었다.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아빠는 대형 앨범을 가져와서 식탁 위에펼쳐 보였다. "난 늘 너를 지켜봐 왔지." 거기엔 내가 해 온 모든 것들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내 이름이 언급된 신문 기사들, 클럽 출연진을 다룬 잡지 기사들, 커리어의 시작부터 바로 이번 주까지 내 모든 행적이담겨 있었다. 아빠는 나와 함께 앨범을 넘기는 동안 헤드라인을 보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트레버 노아가 금주 토요일에 블루스룸에 출연. 새 텔레비전 쇼의 진행자로 트레버 노아 낙점.‘
온갖 감정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걸 느꼈다. 울음을 터뜨리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지난 10년간의 잃어버렸던 시간이 순식간에 메워지는 듯했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게 마치 어제 일 같았다.
오랫동안 나는 너무 많은 의문들 속에서 살아왔다. 아빠가 내 생각을 할까? 내가 뭘 하는지 아빠는 알고 있을까? 나를 자랑스러워할까? 하지만 그는 내내 나와 함께 있었다. 그는 늘 나를 자랑스러워해왔다. 비록 상황이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아빠는 한순간도 내 아빠가 아닌 적이 없었다.
그날 아빠 집에서 나온 나는 한 뼘 자라 있었다. 그를 만나니 아빠가 나를 선택한 거라는 확신이 더 강해졌다. 아빠는 자신의 인생에 나를 들이기로 선택했던 거였다. 아빠는 내 편지에 답장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의 바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선택받는다는 건 인간이 다른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 P165

내가 자라면서 만나게 된 유색인들로부터 느꼈던 적대감은 내게 닥친 일들 중 가장 다루기 어려웠다. 그로 인해 나는 외부자가 내부자로 사는 것이 사실은 내부자인데 외부자로 사는 것보다 쉽다는 걸 배웠다. 백인이 힙합 문화에 빠져 흑인들하고만 어울리기로 결심한다면흑인들은 그에게 "멋진데, 백인 청년, 원하는 대로 해 보라고 하고 말해 줄 것이다. 흑인이 자신의 피부색에도 불구하고 백인들 사이에서살며 골프를 치려고 한다면 백인들은 "괜찮아. 나는 얼뜨기를 좋아해.
그는 안전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흑인이 백인 문화에 따르면서도 여전히 흑인들 사이에서 산다면? 백인이 흑인 문화를 과시하면서도 여전히 백인들 사이에서 산다면?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증오와 조롱과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동화되고자하는 외부자는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동류로 보이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부류임을 부정한다면, 그런 사람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이것이 에덴 파크에서 내가 겪었던 현상이었다.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는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에서는 매년 일부 유색인들이 백인으로 승격되곤 했다. 그건 그냥 신화가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사람들은 정부에 신청서를 낼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충분히 곧고, 피부가 충분히 하고, 억양이 충분히 세련됐다면, 백인으로 재분류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오직 자신의 민족을 비난하고, 자신의 역사를 배격하고, 자신보다 피부색이 더 어두운 친구들과 가족들을 멀리하는 것뿐이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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