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홀로코스트가 의심의 여지없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잔혹 행위였다고 주장하는 서구 사림들을 종종 만난다. 물론, 홀로코스트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궁금할 때가 많다. 과연 공고에서와 같은 아프리카의 잔혹 행위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유대인들은 가졌지만 아프리카인에게는 없는 것은 기록이다. 나치는 꼼꼼하게 기록했고, 사진을 남겼고, 영화를 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실제 전해 내려왔다.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얼마나 됐는지 아는 이유는 히틀러가 그 숫자를 셌기 때문이다. 600만 명이 죽었다. 우리 모두 그 숫자를 보면서 경악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을 상대로 행해진 잔혹 행위의 역사를 들여다본다면, 명확한 숫자는 없이 오직 추정만이 존재한다는 걸알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추정만으로는 경악하기가 어렵다. 포르투갈과 벨기에가 앙골라와 콩고를 약탈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학살한 흑인들의 숫자를 세지 않았다. 콩고에서 고무를 수확하다 죽은 흑인들이 얼마나 많을까? 트란스발 Taeuna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동부의 옛 주명 - 을긴이)의 금과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죽은 흑인들의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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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르트헤이트 기간 동안 남아공의 실업률이 통계적으로 ‘낮았다‘는 건 이해되는 부분이다. 모두들 노예로 고용된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민주주의 이후에는 누구에게나 최저 임금을 줘야 했다.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갑자기 수백만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흑인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치솟았고, 50퍼센트에 이르기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해당되는 애기였고, 후드 출신이고 특정한 말투를 쓰면 판매직조차도 얻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남아공의 흑인 거주구에 사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 자유란 이런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모들이 직장에 가거나 말거나 한 상태고, 밖에 나가 골목에서 노닥거리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하루를 보낸다. 그들은 자유였고, 고기를 낚는 법도 배웠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낚싯대를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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