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요?" 하고 타루가 나직하게 물었다.
"결국......" 의사는 말을 계속하려다가 타루를 물끄러미 보면서 또 주저했다. "당신 같은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세요? 그러나 세계의 질서는 죽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니만큼, 아마 신으로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 주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신이 그렇게 침묵하고만 있는 하늘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 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네." 타루가 그덕거렸다.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뿐이죠."
리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언제나 그렇죠. 나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 멈추어야 할 이유는 못 됩니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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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 병마가 가져온 엄청난 변혁 중 하나였다. 모든 시민들은 대개 즐거운 기분으로 여름을 맞이하곤 했다. 그때가되면 도시가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리면서 젊은이들을 해변으로 쏟아 놓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이번 여름에는 가까운 바다로의 접근이 금지되고 육체는 이미 기쁨을 누릴 권리가 없었다. 그러한 조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역시 타루가 그 당시 우리들의 생활에 대한 이미지를 충실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그는 물론 페스트의 전반적인 진행 과정을 더듬어 보면서, 그 병의 첫 고비는, 라디오에서 사망자 수가 매주 몇백이라는 식으로 보도하지 않고 하루에 92명, 107명, 120명이라는 식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시점이 계기였다고 지적한다.
"신문과 당국은 페스트에 관해서 더할 수 없이 교묘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 그들은 13이 910에 비해서 훨씬 적은 수라는 점에서 페스트보다 몇 점 더 앞지른 것이라고 상상하는 모양이다. 그는 또한 그 전염병이 보여 주는 비장한, 또는 연극 비슷한 면면도 소개한다. 일례를 들면, 덧문을 닫은 채 인기척이 없는 어떤 동네에서, 갑자기 머리 위로 창문을 열어젖히고 큰소리로 두 번 고함을 지르고 나서는 짙은 그늘에 잠긴 방의 덧문을 다시 닫아걸고 말았다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 같은 것이다. 그리고 또 딴 데서는 박하 정제(錠劑)가 약국에서 동이 났는데,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혹시 걸릴지도 모르는 전염병의 예방에 좋다고 해서 그것을 사 가지고 빨아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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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점령으로 이라크는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거의 20퍼센트를 손에 넣었다.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가 없어도 사담 후세인은 전 세계 석유의 3분의 2가 몰려 있는 페르시아만을 지배할 수 있었다. 다시말해 세계 석유 산업의 결정권을 쥐게 된 것이다.
이제 사담 후세인은 이집트의 나세르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던 범아랍권의 지도자가 되어 사이크스와 피코, 아니 그 이전의 오스만 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중동 지역의 과거 국경선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 지배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군사력과 석유를 앞세워 아랍의 초강대국을 만들겠다는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석유로 만들어낼 수 있는 자금, 그리고 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석유의 영향력을 믿었으며 그런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들은 냉전 시대 이후의 새로운 세계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전 세계 정치 지도를 바꾸게 될지도 몰랐다. 그가 새로운 지도에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미국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James Baker) 국무부 장관도 이와 똑같은 이유로 이라크 격퇴를 위한 34개국의 연합을 이끌어냈다. 냉전 시대 이후 처음 이루어진, 전례 없는 다국적군의 결성이었다.
- P312

이라크 군의 해산 명령은 전에 미국이 발표했던 정책들을 뒤엎는 행위였다. 전쟁 시작 전 심리전의 일환으로 미국은 ‘저항하지 않는 이라크 병사들은 보호받을 것‘이라 약속했고 또 그 대부분을 이라크 재건및 질서 유지에 동원할 계획도 세워둔 바 있었다. 그러나 어느 미군 장군은 600명의 이라크 고위급 장교들을 앞에 두고 이라크 군의 재건을위한 도움을 요청하고 있던 현장에서 600명 전원을 전역시키라는 명령을 전달받았는가 하면, 심지어 모든 장교들에게 20달러씩 지급해 우선 가족을 위한 생필품들을 구할 수 있게 해주겠다던 계획도 취소되었다. 이렇게 해서 60만 명에 달하는 병력과 기타 치안 관련 공무원들은 어떠한 보상이나 연금, 또 장래에 대한 보장도 없이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들에게 남은 건 쥐고 있던 무기와 허탈감, 그리고 분노밖에 없었고 이런 상황은 고스란히 이라크 국민들의 저항으로 이어졌다.
전역한 장병들에 대한 보상 계획은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만들어졌는데 이에 대해 해병대 제1사단장 출신으로 국방부 장관을역임하게 되는 제임스 매티스(James Matis)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라크 군에서 정치색을 빼버리는 대신 아예 그들 모두를 전역시켜버림으로써 우리는 이 나라의 가장 유능한 집단을 우리의 적으로 돌려버리고 말았다." 한 미군 장교도 이렇게 회고했다. 이라크 군대의 해산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코앞에 둔 승리를 놓쳤을 뿐 아니라 반란의 불씨까지 만들어내고 말았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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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지난 2017년 발표한 ‘메이드 인 차이나 2025(Made in China 2025)‘ 전략은 중국이 10개 첨단 산업 분야에서 선두에 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국은 자국이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의 6분의 1에 불과한 가운데 이른바 ‘중진국의 함정(middle incomme trap)‘이란 침체기에 접어드는 걸 피하려면 자국 경제를 가치사슬의 과정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미국을 "따라잡는 것" 역시 또 하나의 목표다. 펜스 부통령은 중국 "공산당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산업의 90퍼센트를 지배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21세기 경제의 결정권을 획득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말했다.
첨단 기술을 둘러싼 싸움에는 5G 통신 기술도 이미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중국 기업 화웨이(華為)를 둘러싼 갈등이 크다. 세계 최대의 통신기술 업체인 화웨이는 5G, 즉 5세대 휴대용 통신기술을 앞장서서 선도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첨단 기업이자 기술 및 상업적 역량의 상징이다. 워싱턴에서는 화웨이의 기술을 통해 중국 정부가 국민들의 통신기기에 접근해 감시와 조작을 벌이고 있으며 화웨이와 중국 정부, 그리고 공산당이 서로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정부는 자국 통신망에 화웨이의 장비와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금지했고 다른 국가들에게도 이에 동참할 것을 설득하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있었던 영국과 독일의 해군력 증강 경쟁을 연상시키는 이 방식은 5세대 휴대용 통신 기술과 화웨이 문제가이 시대의 새로운 경쟁 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 P259

일대일로는 영어로 ‘One Belt, One Road Initiative‘, 혹은 줄여서 ‘BRI‘라 한다. 다만 중국어와는 그 의미가 미묘하게 달라서, 영어로는 ‘일대일로 계획‘ 정도로 풀이되지만 중국 측에서는 계획이 아닌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실제로 중국의 일대일로는 하나의 계획인 동시에 전략이기도 하며 그냥 ‘전략‘이라는 말을 빼고 ‘일대일로‘라고만 부르거나 혹은 영어로 그저 ‘BRI‘로만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일대일로 계획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모든 계획에 적용되는 개념임과 동시에 중국의 세계 전략을 나타내는 상표이자 상징이다.
- P264

서쪽으로 나아가자는 말은 일대일로에서의 ‘일대(一帶)‘를 의미하는데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다리 (Eurasian Land Bridge)‘로도 해석된다. 이 다리를 따라가며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 러시아를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비롯한 중국의 여러 영향력들을 퍼트리고 마침내 유럽까지 가닿자는 것이다. 이렇게 육지로 이어진 길은 중국이 전략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인 미 해군과 ‘말라카 딜레마‘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줄 수 있다. 한 중국 장성의 말을 빌자면 이렇게 서쪽으로 나아갈 경우중국은 "전략적인 후방 지원과 중국을 벗어난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일대일로에서의 ‘일로(一路)‘는 ‘일대‘와는 다른, 바다로 이어지는 길의 개척을 의미한다.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로 간 뒤 다시 아라비아 반도 쪽으로 올라가 지중해를 지나 유럽으로 이어지는바닷길을 만들자는 것이다. 중국 바닷길 개척의 최종 목표는 곳곳에 중국의 해상 무역에 도움이 되는 항구를 건설하고 중국 해군을 위한 기항지를 제공하겠다는 이른바 ‘진주 목걸이(string of pearls)‘ 전략이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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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한번 살펴보자. 중국은 산호초 위에 수백만 톤의 돌과 모래를 쏟아부어 인공 섬들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런 인공 섬들은 기존에 있던 육지를 넓혀 새로운 섬으로 만드는 것이기에 완전한 인공 구조물이 아닌 실제 ‘섬‘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현재 그곳에선 해군 함선이 정박하고 미사일을 발사할 수있는 군사용 기지들이 건설되고, 전략 폭격기들을 운용할 수 있는 활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타이완 역시 남중국해에서 비슷한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그 규모는 상대적으로 대단히 작다. 중국이 벌이고 있는 작입의 속도와 규모를 어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 지역에시 무려 3,200에이커(약 13제곱킬로미터 옮긴이)에 달하는 간척지를 만들 계획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섬들을 발판으로 중국은 남중국해 위에서 계속 공중 감시 활동을 벌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 지역에 대한 자국의 방공 식별 구역을 선포할 가능성이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 P216

세 번째 쟁점은 배타적 경제수역(Exclusive Economic Zone, EEZ)에 대한 것이다. EEZ의 개념은 앞서 언급했던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에 정의되어 있다. 보통 해안에서 12마일(약 19.3킬로미터 옮긴이)까지인 자국 영해와 달리 EEZ는 그 길이가 무려 200마일(약 321킬로미터 옮긴이)에 이른다.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EEZ는 ‘경제적‘ 권리, 다시말해 그 안에서 어업 활동을 하거나 그 밑에 묻혀 있는 석유 또는 천연가스, 그리고 광물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만을 의미한다. 그런데 중국은 EEZ 안을 지나는 선박이나 항공기에 간섭할 수 있는 권리까지 포함된다고 주장하고, 바로 이 때문에 미국과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것이다. 문제의 핵심, 그러니까 갈등의 중심에는 국제변호사 로버트 벡맨(Robert Beckman)의 설명처럼 단순한 "항행(航行)의 자유"가 아닌, "외해(外海)에서 군사 활동을 할 자유"가 자리한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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